Unbelievab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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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태호는 로드 매니저인 현철의 등에 업혀 갔다.
“어째 흐지부지 돼버렸네.”
택시 안에서 수련이 쓸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운전석 쪽 룸미러에 달린 인형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단유가 수련에게 물었다.
“아쉬워요?”
“응? 뭐가?”
“데뷔하고도 성공을 하지 못해서 아쉽냐고요.”
“당연히 아쉽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아깝게 포기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아니니까,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회사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는 상황도 아쉽고, 태호 오빠 말대로 이유도 모른 채로 이렇게 묻혀야 된다는 것도 아쉽고 그렇지.”
고작 3년 만에 그룹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해서 이러한 조치를 취한 회사의 입장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는 수련의 말이었다. 잠시 도시의 야경을 감상하던 수련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정식 앨범도 한 번 못 내고 끝내는 것 같아서 아쉬워. 지금까지 디지털 싱글만 겨우 3장이야. 발표된 음원도 5곡이 전부고. 고작 5곡에 우리 그룹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게 아쉬워.”
목소리가 좋은 명지, 춤 잘 추는 예영, 은근 애교가 많은 리더 수영,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했던 지수. 모두 끼도 많고 재밌는 사람들이어서 예능 프로 같은데 나가면 빵빵 터뜨릴 자신이 있는데도, 어디 하나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인터넷 방송을 해도 팬들이 재밌다고, 레전드라고 호응해주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그룹이어서 찾아보려는 이가 없었다.
“미안해서 어떡하니? 분위기가 그래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
“괜찮아요. 그래도 이렇게 싸 가지고 가잖아요? 아마 명수가 좋아할 거예요.”
하얀 비닐 봉지 안에 은박지로 대충 둘러서 싼 치킨을 흔들어 보인 단유는 달리 수련을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로가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그쪽 업계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기에 번득 생각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될 거예요’, ‘성공할 수 있어요’ 같은 공수표를 남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수, 계속하실 거죠?”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분위기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노래하는 게 좋고, 노래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집만 부리기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선택을 막고 있었다.
단유가 집에 돌아왔을 때, 시간은 거의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수련은 이미 늦을 거라고 연락을 했었지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를 드렸다.
“나한테 미안할 건 없어요. 하려면 단유에게 해야지.”
“저도 괜찮아요. 덕분에 잠시 머리도 식히고, 좋았어요.”
수련은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늦었네?”
명수가 졸린 눈을 하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거 뭐야?”
명수는 은박지에 싸인 물건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챘다.
“치킨이야.”
“진짜?”
졸린 눈이 크게 뜨이면서 손을 내미는데, 선생님이 재빠르게 손등을 쳐서 막았다.
“늦었어.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먹어.”
“내일 먹으면 눅눅해진단 말이에요.”
“그래도 안 돼.”
단호한 선생님의 제지로 명수는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단유는 치킨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운이라.”
사전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어,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되어 있고, 역학에서는 ‘후천적으로 그 사람에 관련하여 발생하는 사항’이라고 했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인간의 인생을 주관한다는 비과학적 신앙 혹은 신념이 빚어낸 개념이라 하겠다.
운이 좋다는 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는 의미였고, 운이 나쁘다는 건, 어떤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결과를 맞이했을 때였다. 즉, 갤럭시즈가 운이 좋지 않다는 건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그룹, 이라는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인생이 의미 없지 않은가?
‘난 운이 좋을까?’
별로 오래 살지도 않은 인생이건만, 그래도 나름 굴곡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유였다. 생각해보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사람들 덕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운이 없는 편이기도 했다. 가족을 잃었고, 가족같이 지내던 친구들, 동생들, 형들과 헤어지기도 했고, 친한 친구를 잃을 뻔도 했고, 그 외에도 온갖 사건, 사고를 경험했다.
그러다 문득,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하는 짓이람.’
운이라니. 애초에 그런 정해진 운명 따위가 있었다면, 자신이 이토록 애가 타게 바짝 긴장하고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결국 확률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조건들에 의해 구성된 발생 가능성의 확률에 따라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천체의 움직임에 의해, 신의 의지에 따라 정해지는 운명 따위는 없어.’
그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모독이고, 단유의 삶에 대한 부정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단유는 생각해보았다.
‘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확률에 대한 오류에서 발생한 것이다.’
‘우연’이란 것도, 거시적으로 살피면, 다양한 연계 고리들 속에서 발생 가능성의 확률에 따라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길을 걷다 떨어진 돈을 줍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 길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돈을 떨어뜨릴 확률과, 그 돈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할 확률과, 마침 자신이 그 돈을 발견하여 주울 확률의 연산에 의해 벌어지는 일에 불과하다. 물론 그 확률이 지나치게 낮은 확률이라는 사실은 접어두더라도,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기에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피상적으로 따지면, 그 확률이 너무나도 낮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기 어려워’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래서 ‘운이 좋았어’라는 대답으로 이어질 뿐인 것이다.
어쨌든 ‘우연’ 역시 크게 보면 인과관계였다. 바닥을 보며 걷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바닥을 보며 걷는 이에 속한다는 사실과, 돈을 흘릴 정도의 부주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부주의한 쪽에 속한 사람이 자기보다 앞서 그 길을 지나갔다는 사실이 겹쳐진 인과라고 봤다.
‘그러니까, 갤럭시즈도 사실은 인과관계가 있을 거야.’
결론은 그렇다. 원인을 모른다는 태호의 말은 틀렸다. 아니 틀렸지만 맞기도 했다. 태호가 지적한 여러 가지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던지,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던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단유는 생각했다.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단유는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났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주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통제하던 그 순간을.
그랬다. 그 순간, 단유는 거의 신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인지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 완벽한 ‘통제’를 해낼 수 있었던 그 경험은 마약을 다시 찾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고, 충만한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아니 세상 그 무엇도 단유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으니까.
단유는 머리를 세게 헝클어뜨리다가 침대에 푹하고 엎어졌다. 더 이상 생각을 하다가는 다시 위험한 세계에 발을 들이밀 것 같은 충동이 느껴져서였다. 발을 동동 구르던 단유는 호흡을 천천히 가져갔다. 들이마시고, 멈추고, 내쉬는 호흡에만 신경을 쓰던 단유는 몇 십 분 정도 지난 뒤 잠이 들었다.
****
“그랬구나. 누나들 힘들겠다.”
다음날 점심시간, 학교 스탠드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던 명수는 입에서 다리뼈를 뽑아내서 빈 봉지에 집어넣고, 새로운 치킨 조각을 집어 들어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치킨 살만 골라 발라먹던 명수가 언제 저런 스킬을 터득했는지, 입안에 치킨 조각을 집어넣고 오물거리다가 뼈만 발골해내는 이상한 기술을 보였다. 그 점을 물었더니, 명수는 TV에서 보고 따라 하다 보니 되더라, 이야기했다.
“그럼 넌 그 누나들 돕고 싶다는 거네?”
지태가 뼈를 쪽쪽 빨면서 뼈에 붙은 살을 남김없이 뜯어 먹는 반면, 채윤은 손 끝으로 세심하게 살을 골라내서 씹어대고 있었다.
“응. 인연도 있고, 또 개인적으로 잘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그런데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냥 생각만 하는 거야.”
“그런 건 민일이한테 물어보면 잘 알지 않을까?”
채윤의 말에 지태가 고개를 저었다.
“지 앞가림도 못 하는 애한테 뭘 물어보냐? 그리고 걔도 이제 겨우 연습생일 뿐인데. 그리고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런 건 전문가가 필요해.”
“전문가? 누구? 매니저?”
지태가 뼈다귀를 흔들어 보였다.
“아니. 원래 연예인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전문가는 따로 있는 법이야.”
“그게 누군데?”
단유도 그런 전문가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우리 반에도 있어.”
교실에? 지태의 대답에 기대감이 한풀 꺾이는 느낌이었다. 지태는 히죽 웃으면서 단유를 가리켜 보였다.
“니 짝 말이야.”
“···병수?”
병수는 1학기 때부터 단유의 짝이었다. 2학기 이후 새로 짝을 정할 때도 또 병수가 단유의 짝이 되었다. 어쩔 수 없었던 이유는 병수가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큰 사람이 단유였고.
“병수가 전문가야?”
“응. 걸그룹 전문가. 소위 덕후라고 하지.”
지태가 씨익 웃고, 채윤이 손뼉을 쳤으며, 명수는 또 한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니가 걸그룹에 대해서 잘 알아?”
단유의 물음에 책을 보던 병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으응?”
“지태가 그러는데, 니가 걸그룹 전문가라던데?”
“아아.”
병수는 쑥스럽다는 듯 팔뚝을 매만지다가 이내 수긍했다.
“조금 알아.”
“혹시 어디 회사에라도 속해 있는 거야? 마케팅 부서 같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는 얼굴로 단유를 보던 병수가 고개를 젓고는 책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화보집, 시디, 각종 스크랩북과 카드 집까지.
“이게 다 뭐야?”
“내가 덕질하는 그룹 애들 꺼.”
단유는 갑작스런 병수의 덕밍아웃(?)과 덕질, 덕후라는 용어가 낯설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병수는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터 해서 화보집과 시디집 등을 보여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매력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얘가 원래는 별로 말이 없는데, 매니저가 바뀌면서 완전히 성공한 케이스. 새침한 게 매력이었는데, 드라마에만 나오면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서 팬들 중에는 얘만 좋아하는 팬들도 많아. 따로 팬클럽이 만들어졌는데, 기존 그룹의 팬들이랑 팬 사인회 같은 데서 싸우기도 하고 그래.”
이번에 새로 영화도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해외 유명 영화제에도 갔다는 첨언이 붙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단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쨌든 걸그룹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거지?”
“뭐, 얘네들 좋아하기 전에도 다른 걸그룹 좋아하기도 했고. 사실 내가 잡덕이라.”
모르는 용어는 패스하고 단유는 다시 물음을 던졌다.
“갤럭시즈 알지?”
“알지.”
적어도 단유네 반에서는 갤럭시즈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반 친구가 걸그룹 뮤직비디오에 나왔다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 그 누나들이 왜 뜨지 못하는지도 알아?”
“뭐, 대충은.”
단유는 회사도 매니저도 모르는 이유를 안다는 병수의 말에 귀가 뜨였다.
“그게 뭔데?”
병수는 볼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말해줄 수는 있는데,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무슨 부탁?”
병수는 어차피 주위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주위 눈치를 살피는 시늉을 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갤럭시즈에 수련 있지? 그 누나 싸인 좀 받아줄래?”
뭐, 그 정도야.
“그런데, 너 갤럭시즈도 좋아해?”
“아니, 원래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너 때문에 입덕했어.”
무슨 ‘덕’, ‘덕’ 하는데 도대체 그게 어떤 덕인지 모르겠지만, 그 덕 좀 보자는 의미로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받아줄게. 이유가 뭔데?”
“갤럭시즈는 말이야.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단유는 뜸을 들이는 병수의 입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심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