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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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전화도 안 받고 그래?”
말하는 것과 달리 태호는 별달리 화난 모습이 아니었다. 조금 지쳐 보이는 것 같았지만, 워낙 성실한 모습을 보이던 매니저인지라 일이 없어도 찾아서 하는 성격임을 알기에 멤버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연습 끝나고 핸드폰을 켜지 않았나 봐요.”
연습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켜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들 꺼놓고 레슨을 받다가 필(?) 받아서 밥 먹으러 나오느라고 핸드폰을 켤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랬어?”
태호는 가을 바람이 차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무심하게 넘겼다. 그리고 수영이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자리를 차지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해.”
태호는 아무도 손댈 생각을 않고 있던 닭 다리에 손을 가져갔다.
“아, 이거 누가 계산하는 거야?”
딱히 누가 계산하자고 나온 게 아니라 대답을 못 하고 있었더니, 태호는 닭다리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아무도 없으면 내가 계산할게.”
이쯤 되면 이상함을 못 느끼는 게 이상한 거였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태호는 손을 높이 치켜들고 아주머니에게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가 올 때까지 계속 닭 다리를 뜯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섭게.”
명지가 태호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래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10년 동안 목말라 있었던 사람이 그러할 것처럼 벌컥벌컥 입에 들이붓다시피 했다. 입가에 묻은 거품을 손등으로 훔치며 감탄사를 내뱉던 태호는 닭 다리를 마저 뜯더니 뼈를 내려놓은 다음에야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단유야, 자주 못 찾아봐서 궁금했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반갑다.”
정작 대화의 시작은 단유였다.
“아, 예. 반갑네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경황이 없었다기보다 태호가 난데없이 나타나 분위기를 끌어가는 통에 단유마저도 휩쓸렸던 탓이지만, 태호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뭐, 그런 걸 가지고. 내가 말이야, 진짜 니 얼굴 보기 너무 미안해서 자주 못 봤다. 그래도 내 마음 알지?”
“그럼요. 형이 저 신경 많이 써주셨던 거 잘 알아요. 아, 그리고 형이 주신 게임기는 명수가 잘 사용하고 있어요. 거의 매일 게임기를 붙잡고 있어서 선생님이 조금 화가 나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게임기 덕분에 명수가 우울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네요.”
“명수가 왜 우울해?”
단유는 명수가 다리를 다친 이야기를 해주었고,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에 시간 나면 병문안이라도 가야겠다고 말을 남겼다. 다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단유에게 닭을 권한 뒤, 애써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단유의 입에 물렸다. 맥주가 나오고, 입맛을 다실 틈도 없이 금세 또 입에 털어 넣어서 잔을 비운 태호가 트림을 뱉어낸 뒤, 참다못한 지수가 태호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뭐예요, 지금? 우리한테 뭐 못 할 짓이라도 했어요? 왜 못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딴청이나 피우고 그래요?”
태호는 빈 잔을 꾹 쥐고 있다가, 살짝 머리를 저었다. 눈을 찌를 만큼 길어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갤럭시즈 멤버들을 둘러보는 태호였다.
“그래도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다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까 좋긴 하네. 다행이다.”
“설마 우리가 모여서 다행이다, 속으로 걱정 많이 했다, 뭐 이런 이야기 하려고요? 감동먹었다느니 뭐 그런 낯간지러운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면 관둬요. 닭살 돋으니까.”
지수의 능청에 태호가 피식 웃었다. 태호가 웃으니 그제야 분위기가 살짝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게 들어오다가 잠깐 들었는데, 이제 갤럭시즈 않을 거라며?”
능청 떨던 지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아니, 꼭 그게···지금 그런다는 이야기는 아닌데요···죄송해요.”
태호는 만년설 쌓인 설산에서 10년을 면벽한 수행자처럼 고아하고 우아하게, 너그러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백 실장님이 퇴사하시기 전에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참고했을 텐데, 전혀 듣질 못했던 상태라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런데 너처럼 생각하고 가수 준비하는 케이스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니가 특별히 유난을 떨었던 것도 아니어서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어.”
바로 옆에 앉은 수영은 태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긴장감이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태호가 아무리 갤럭시즈에게 잘하는 매니저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렇게 남 일 말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태호라는 사람 자체가 활화산처럼 열정이 끓어오르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차분하게 있는다는 게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에이, 오빠. 그래도 이런 이야기 들으면 섭섭하지 않아요?”
“섭섭하긴.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잘해준 게 있어야 섭섭하기라도 하지.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만 하다야.”
수영이 포크로 태호가 쥐고 있는 잔을 두드렸다. 텅 빈 유리잔에서 청명한 울림이 들렸다.
“오빠, 그냥 얘기해 봐요. 이 시간에 퇴근도 안 하고 여기 온 것도 그렇고, 급히 할 이야기가 있었으면 벌써 했을 텐데, 여태 말을 빙빙 돌리는 것도 그렇고, 수상한 게 한두 가지 아니에요.”
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빠. 괜히 무섭게 왜 그래요? 그냥 이야기해줘요? 네?”
태호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별 이야기는 아니야. 니네 숙소 갔다가 아직 안 들어왔길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여길 찾은 거고, 할 말은 뭐···천천히 해도 되니까. 그리고 야, 니들은 감히 치느님을 이렇게 영접해놓고 제사라도 지낼 참이야? 왜들 안 먹어? 빨리 먹어, 식기 전에.”
수련은 포크 대신 돋보기 안경을 든 셜록처럼 태호의 말을 조각조각 뜯어내고 거기서 의문점을 찾아냈다.
“숙소에도 갔다고요? 왜요?”
“아, 그게.”
“스케줄이라도 잡혔어요? 지방 행사?”
만약 스케줄이 잡힌 거라면, 오기 전에 문자로 알려 줬을 거였다. 직접 대면하고 말을 해주고 싶어 달려왔던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스케줄은 아니고.”
태호는 한숨을 쉰 뒤,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맥주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기본 안주가 없네, 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숙소에 새 연습생 들어올 거야.”
다들 얼굴을 굳혔다.
“새 멤버가 들어온다는 뜻인가요?”
단유가 물었더니, 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아직.”
태호의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수영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을 쥐었다. 지수나 명지도 오랜 연습생 시절을 보낸 탓에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모를 수 없었다.
원래 데뷔하기 전, 그러니깐 연습생들끼리 숙식을 할 수 있도록 회사차원에서 숙소를 마련해준다. 회사 사정이 좋다면야, 좋은 집, 넓은 집을 구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세 칸짜리 월세 집에 8명, 9명도 집어넣고 숙소 생활을 시킨다. 그런데, 이것도 데뷔하기 전이었다.
데뷔조가 확정되면, 데뷔조를 제외한 연습생은 숙소를 나와야 했다. 데뷔조의 단합을 위해서, 또 데뷔조에 대한 특혜로서 단독 숙소를 제공하는 이유도 있고, 데뷔조에 포함되지 않은 연습생들의 박탈감에 대한 우려와 배려 때문이기도 했다. 데뷔조가 아침저녁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다른 스케줄로 움직이면서 얼굴을 마주한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데뷔조도 아니고 데뷔를 한 그룹의 숙소에 새로운 연습생이 들어온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였다. 한 가지는 새로운 멤버의 구성. 바로 투입될 수도 있고, 혹은 더 오랜 기간을 가지고 연습하다가 투입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입되기 전에 그룹 내 멤버들간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미리 숙소에 배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아닐 때, 또 다른 경우라면.
“우리 해체해요?”
명지가 울먹이는 소리로 물었다. 태호는 턱을 긁으면서 대답을 망설였다.
“아니, 해체는 아니고. 아직 해체가 결정되진 않았어.”
“아직이란 말은 해체가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건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지. 어느 그룹이든 해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
태호는 여전히 턱이 가려운지 검지로 계속 긁어댔다. 면도를 덜 해서 그런가?
“단유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애가 벌써 민망해하고 있잖아?”
단유는 다른 누나들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별로 민망하진 않아요.”
“너 때문에 내가 더 민망하네.”
농담처럼 허허 웃는 태호에게 수영이 물었다.
“회사에서 결정이 난 거죠?”
“···응.”
“오빠도 동의한 거예요?”
“···내 동의가 중요한가?”
“제 의견은 안 중요하고요?”
태호는 입을 다물었다.
“매번 이런 식이잖아요. 사장님은 왜 저한테 리더를 맡긴 거예요? 이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아니, 저한테 먼저 물어봐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니까 애들이···.”
울컥한 수영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미용실 가서 애들 머리하고 나올 때, 인사 구호 외치는 거. 무대 가서 스탭들한테 인사할 때 구호 외치는 거. 대기실에서 마이크 챙기는 거. 그런 거 말고 리더로서 제가 하는 일이 뭔 줄 알아요? 없어요.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도 않고, 맨날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해요. 그러니까 애들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놓고 또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어떻게 하란 거예요? 우리보고 그냥 나가든지, 아니면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라는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태호는 말이 없었다. 태호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 역시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태호 역시 회사에서 역정을 내고 나온 참이었다. 전화로 숙소 인원 충원을 고지하는 실장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따지고 나온 참이었다. 따져봐야 바뀌는 것도, 앞으로 달라질 것도 없었지만, 이런 충격적인 내용을 아이들에게 알리는 역할은 또 늘 태호의 역할이었다.
“형, 궁금한 게 있어요.”
“뭐?”
단유는 화장지를 하나 빼서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며 물었다.
“갤럭시즈라는 그룹이 왜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응?”
난데없이 디스전이라도 펼치자는 뜻?
“형이 오기 전에도 들은 바로는 그런 것 같아서요. 인기가 없는 그룹이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들 하시더라고요, 누나들. 그런데 인기가 없는 게 문제라면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니 말이 맞아.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면 되지. 그래서 아까 지수 말처럼 실력이 모자라면 연습을 더 해서 실력을 쌓고, 혹은 새로운 멤버를 충원해서 그룹에 모자라는 부분들을 채워 넣는 방법을 쓰기도 해.”
태호는 수영에게 손에 든 맥주 마실 거냐고 물었다. 수영이 맥주를 건네주자, 맥주잔을 들어 올린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도 처음에 일할 땐,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참 우스운 게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도식적이지가 않아. 얘들이 안 뜨는 이유? 몰라. 나도 모르고, 얘네들도 모르고, 회사도 몰라.”
맥주를 들이켰다.
“니가 보기에 이 누나들 어떻게 보이니? 노래 못 부르는 거 같아? 노래야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내가 얘네들 매니저라서가 아니라, 그냥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얘네들 노래 잘해. 실력 안 떨어져. 지수, 저게 실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푸념하는데, 지수 쟤도 타고난 음색이 있어서 결코 안 밀려. 스킬이야 조금 떨어지지만. 그치?”
지수는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수련이야, 이미 가요 예능에도 단독으로 출연해서 인정을 받을 정도고, 명지도 솔직히 회사에서 지원을 잘 못 해줘서 미안하긴 하지만 메인보컬 급이지. 안 그래?”
메인보컬은 맥주를 입에 물었다.
“춤? 안무? 뭐, 우리 안무가가 조금 싸구려긴 하지만, 이런 소리 지영쌤한테는 하지 마라, 아무튼 꽤 센스가 좋은 사람이라서 안무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얘들도 춤 잘 추고. 비보이 댄스대회라도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방송 무대용으로는 합격점이야.”
수영에게 뺏은 맥주잔을 살짝 기울였다. 마시지 않고 오래도록 잡고만 있었던 맥주였던지라 거품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외모. 이런 말 하면 팔불출 같지만, 이런 외모 어디 가서 쉽게 못 본다. 안 그러냐?”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전에 한 번 디스 아닌 디스를 한 적도 있지만, 이곳(?) 기준에서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니까.
“자, 그럼 노래, 춤, 외모 다 되는데 왜 안 뜰까? 지난번에 니들이 싸운 것처럼 노래가 안 좋아서? 너 당장 핸드폰으로 차트 꺼내서 봐봐. 그 차트에 좋은 노래라고 부를 만한 게 과연 몇 곡이나 있는지. 안 좋은 노래도 많아. 세상에 이런 노래가 뜨네? 라는 것도 있어. 왜 그럴까?”
태호는 맥주를 입안에 들이부었다. 다시 원샷. 그리고 목에서 끌어올린 감탄사가 입 밖으로 삐져나오고, 맥주잔이 식탁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릴 때, 태호는 답을 말했다.
“운이야.”
“···운이요?”
“그래, 운. 그냥 보니까, 운이더라고. 운이 좋으면 뜨는 거고, 운이 안 좋으면 안 떠. 백날 해도 안 떠. 그리고 그렇게 묻힌 가수와 노래가 이 바닥에 널리고 널렸어.”
태호는 고개를 쭉 빼서 멤버들을 훑었다.
“니들이 안 되는 이유? 회사 탓? 노래 탓? 실력 탓? 아니야. 그냥 운이 없어서 그래.”
태호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단유가 옆에 앉은 수련에게 물었다.
“태호 형, 취한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단유는 물끄러미 태호를 바라보다가, ‘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운이 안 좋다, 라···.’
그 순간에 생각나는 건, 운을 좋게 만드는 법이 있을까, 라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