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74화 (274/956)

소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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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치킨 한 마리로 되겠어?”

지수의 딴지에 수련이 핑계를 대려다, 말을 바꿔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아, 죄송해요. 너무 들떠서 신경을 못 썼네. 미안.”

마지막 사과는 단유를 향해서였다.

“이모, 여기 치킨 한 마리 더 주세요.”

뒤늦은 주문에도 아주머니의 얼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 언니 왜 그랬는지 알 거 같아. 보통은 한 마리만 시켜서 나눠 먹곤 했으니까, 습관적으로 주문한 거야, 그치?”

“역시, 예영이 니가 알아주는구나!”

오랜만에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습관적으로 주문을 넣었던 수련이었다. 수련은 예영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단유에게 물었다.

“음료수 시켜 줄까?”

“물이면 충분해요.”

평소 탄산음료를 즐기지 않는 단유였기에, 수련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했다.

“여기 자주 오는 곳이에요?”

단유는 일부러 명지에게 시선을 두고 물었다.

“뭐, 그냥 이 근처에 올 만한 곳이 여기 밖에 없어서 말이야.”

“우리 연습생일 때부터 여길 다녔거든. 오면서 봤겠지만, 이 동네에는 제대로 먹을만한 곳이 없어. 가려면 큰길까지 나가야 하고.”

식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슬쩍 주방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지수가 명지의 말에 덧붙였다.

“그런데 듣기로는 연습생 때부터 몸매관리 시킨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기름진 음식 먹어도 돼요?”

“안 되지, 당연히. 태호 오빠 있었으면 당장 말렸을걸? 그런데 뭐 어때? 지금은 활동도 없고, 다음 활동도 언제 있을지 모를 판국에 하루쯤은 이렇게라도 먹고 싶은 거 먹어야 스트레스를 풀지.”

이쯤에서 아주머니가 맥주를 들고 와서 단유를 제외한 다섯 명에게 나눠주었다. 막상 맥주를 받고 나니 괜히 서먹해지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자, 언니들. 짠 해요.”

이럴 때는 막내가 애를 써야 하는 법이다. 예영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면서 맥주잔을 들자, 수련이 먼저 잔을 들고 뒤따라 다른 멤버들도 맥주를 들었다.

“건배!”

수련이 특별한 건배사 없이 건배를 외치자, 다른 이들도 어물쩍 잔을 들어 부딪쳐 주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빼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수련은 기분 좋게 원샷을 했다.

“우와, 언니 술 고팠나 보다?”

“크, 당연하지. 내가 이걸 그렇게 먹고 싶어 했다.”

예영이 짧은 웃음을 터뜨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웃음과 대화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놓을 순 없었다. 대화가 멈추고 다시 서로의 시선이 엇갈리는 시간이 찾아오니, 식탁 위에 서먹함이 깃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라고 생각한 건, 수영이었다.

“단유야, 일단 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지?”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를 잠시 고민했다.

“사실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었어요. 몇몇 사람들이 악성 댓글을 달았다고 해서 제 인생이 막 변하고 우울해지고 그러는 건 없더라고요. 게다가 주영 누나가 잘 처리해주기도 했고요.”

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누나들은 악성 댓글 받으면 많이 힘들고 그래요?”

단유의 물음에 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게다가 여자 아이돌이라 만만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심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기만 해? 어떨 때는 잠도 못 잘 정도로 괴로운 것도 있다고.”

명지의 투덜거림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무관심이 관심보다 무섭다고들 이야기하지만, 난 그런 악성 댓글을 받느니 차라리 무관심한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을 하곤 맥주를 들이키는 지수를 보던 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그럴 때도 있지. 특히 지수가 우리 그룹에서 섹시 컨셉을 맡고 있다 보니까, 지수한테 안 좋은 댓글이 달릴 때가 많았지.”

“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니까? 그때 지수 언니가 댓글보고 이틀 동안 밥을 못 먹을 정도였어.”

“그 정도로요?”

놀란 표정의 단유를 향해 보충 설명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젓는 수련이었다.

“아유, 애한테 할 말이 아니어서 못하겠다만, 진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독하고 나쁜지 처음 알았어. 만약 그런 사람들만 주변에 있다면 난 차라리 가수 안 할 거야.”

꿈을 접고 싶을 정도로 심한 악성 댓글이라면, 회사 차원에서 어떤 조치가 있지 않았냐는 단유의 물음에 명지가 분하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했지. 그리고 나름 언플(언론플레이)도 하고. 그런데 정작 잡고 나서는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를 봤다고, 용서해 줬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봐주고, 누가 용서해 주는 거야?”

소속 연예인의 이미지 보호 차원에서 택한 결정이라는데, 갤럭시즈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지수 언니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지수는 다시금 그때 생각이 나는지 술잔을 들어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천천히 마셔.”

수영이 지수를 말리자, 지수가 잔을 탁 내려놓고 수영을 째려봤다. 그 눈빛에 수영이 새삼 미안하다는 눈을 하고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수영도 지수의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리더의 자격. 과연 자신은 리더로서 충실했는지 되물으면 자신이 없었다.

“뭐, 지수 언니뿐만 아니라 다들 악성 댓글 하나씩은 달려 봤을걸?”

“인터넷 방송 같은 거 해도 종종 그런 댓글들이 올라오니까.”

“예전에 콘도에서 인터넷 방송했을 때도 그런 댓글이 올라왔어요? 나 못 본 거 같은데.”

“넌 아예 댓글을 안 보는 것 같더만. 수련이 얼굴만 보느라고.”

예영이 농담처럼 꺼낸 말이지만,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기 어려웠다.

“하아.”

수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다 놀라서 숨을 멈추고 동생들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딱히 다들 수영의 한숨 소리에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수는 갑자기 화제가 되는 바람에 떠올린 예전 일과, 최근의 일들이 모두 버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그 짐이 너무 무거웠던 탓에 입을 열기가 어려워 술만 홀짝 마셔댈 뿐이었다. 명지 역시도 험난했던 과거의 일과 여전히 나아질 줄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했다.

“우리, 미래가 있을까?”

저도 모르게 뱉어낸 그 말에 다들 명지를 쳐다보았다.

“···답답해서요.”

수련이 뭔지 알겠다는 듯, 명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지만 굳은 얼굴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치킨 두 마리가 식탁 위에 올라왔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음.”

단유가 소리를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결국, 서로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문제도 겹쳐 있던 거네요.”

“응? 뭐, 그렇지.”

수련이 굳이 대답을 해주자, 단유는 수련을 보며 물었다.

“가수로 성공하는 게 꿈이에요?”

“그렇지.”

“다른 누나들도요?”

“그렇지 않을까?”

라고 대답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들 입을 열진 않았다.

“솔직히.”

지수가 고심 끝에 술잔을 들었다.

“난 아니었어.”

“응?”

지수의 폭탄 선언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알다시피, 난 노래도 잘 못 하고, 춤도 잘 못 따라 하잖아.”

갤럭시즈의 팬들에게는 춤을 잘 추는 멤버로 지수를 뽑지만, 정작 지수 본인은 춤을 잘 못 춘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처음 데뷔하기 전에 춤 때문에 나 엄청 고생한 거 알잖아. 그때, 백실장님이 그러셨어. 1년만 버티라고. 1년만 고생해서 얼굴이 알려지면, 그때 배우로든 뭐든 바꾸자고.”

다들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눈치였다.

“그때가 이미 연습생으로 1년을 보낸 참이었어. 백실장님 이야기 듣고 바로 데뷔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예전에 데뷔하기 직전에 엎은 적 있었잖아? 우리 집에서는 나보고 차라리 대학이나 제대로 다니지 헛바람 들어서 연예인하겠다고 나가냐고 잔소리하고, 회사에서는 실력이 부족해서 당장은 데뷔가 어렵다고 하고.”

지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래서 솔직히 그때 나 포기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왜 안 했어요?”

예영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추임새를 넣자, 지수가 씁쓸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수영 언니가 그랬지? 1년 고생했는데, 1년 더 못 참냐고. 그동안 다른 연습생들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아깝지 않냐고? 사실 내가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이 하긴 했거든?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어. 연습량만큼은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타고난 실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연습으로 극복해 보겠다는 오기도 있었어. 그런데 실력이 부족해서 데뷔가 안 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꺾였던 거지. 그런데 그런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수영 언니였던 거야.”

수영은 무안해지는 기분에 괜히 술잔을 들어 올렸지만, 잔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찰랑이는 술 때문에 그냥 내려놓고 말았다.

“그래서 버텼어. 수영 언니가 1년만 더 하자고 꼬셔서. 지금 생각하니까 참 바보 같다.”

자조 섞인 웃음에 다들 숙연해졌다. 어디 지수만 그런 경험이 있겠는가. 다들 힘든 연습생 생활을 거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녔으니까.

“가수로서의 성공? 난 잘 모르겠어. 그냥 데뷔하고 얼굴 알리는 게 목적이라고만 생각했어. 대신 다른 멤버들한테 피해는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습은 열심히 했어.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진지하게 가수를 꿈꾸던 친구들이었으니까.”

지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악성 댓글 일도 그렇고, 최근의 일도 그렇고,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내가 못 버티겠어. 억지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지수는, 그래서 수영이 미웠다. 왜 억지로 자신을 붙잡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냐고 토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아니까. 그냥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컸기에 수영에게 화를 냈을 뿐이었고, 실제로 화를 내고 싶은 대상은 자신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내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이제는 바른 선택을 하고 싶을 뿐이야.”

수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끝이구나.’

저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아무래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언니. 언니한테 화내서 정말 미안해. 수련이 너한테도 너무 심한 말 했던 거, 후회하고 있어. 정말 미안해, 수련아.”

수련은 감은 눈을 뜨지 않고 대신 고개만 세차게 저었다. 눈을 뜨면 왈칵 쏟아질 뜨거움을 참느라고 이까지 꽉 깨물었다. 데뷔 쇼케이스를 앞두고 무대 뒤에서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 첫 공개방송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서로 부둥켜안았던 모습, 자신들을 좋아해 준다는 팬레터를 받고 숙소 안에서 뛰어다니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추억’이 되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비단 수련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비슷한 듯, 예영은 이미 울음이 입술 끝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너희들한테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해왔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창피한 모습을 남겨서 너무 미안해. 특히 언니한테도. 그때 연습실에서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런 말 하지 마. 니가 우리들 중에서 제일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다는 건 다들 아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래요, 언니. 언니가 가장 늦게까지 연습실에 남아서 춤 연습했던 건 다들 아는 걸요.”

단유는 말없이 다섯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이런 자리가 되고 보니, 딱히 자신이 도울 일이 없기도 했고, 또 이들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꿈이라.”

나지막이 중얼거려보던 단유는 식탁 위를 톡톡 두드렸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단유를 보던 수련이 왜 그러냐고 묻자, 반개(半開)한 눈으로 대답하는 단유였다.

“서로 다른 꿈을 꾸더라도, 꿈이 있는 거잖아요? 전 아직 꿈이 뭔지 몰라서요. 부러워서 그래요.”

“이 상황에 부럽다니, 너도 참 별나다.”

지수가 피식 웃음을 짓자, 단유는 목을 긁으며 멋쩍다는 듯 답했다.

“그래도 누나는 계속 연예인을 할 거죠? 배우가 꿈이니까?”

“뭐, 일단은 그렇긴 한데···.”

“왜 그 꿈을 꾸게 된 거에요? 동경? 아니면 재능?”

“재능은 무슨. 그냥 다른 삶을 연기한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

단유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단유 일행의 시선이 모두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밝은 쥐색의 자켓을 걸친 태호가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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