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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273화 (273/956)

소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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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에 나오는 게 힘이 들었다. 2시간씩 받는 레슨이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특히 최근의 일로 서로 얼굴을 대면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만나서 함께해야 한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그래서 이럴 때는 차라리 리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리더만 아니었으면, 그냥 레슨을 빠지고 놀러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리더이기에, 수영은 오늘도 힘들게 회사의 연습실로 출근을 했다. 숙소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회사에 나오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안무를 연습하는 게 숙소에서 동생들 눈치 보는 것보다 나았다. 그리고 동생들도 자신이 없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숙소를 나올 때, 아무도 어디 가냐고 묻지 않았고, 나중에 연습실에서 얼굴을 마주해도 누구 하나 인사하는 이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이러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분명히 태호가 위에 보고했을 텐데도 여전히 아무런 지침이 없는 걸 보면, 아예 갤럭시즈에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망한 그룹, 이대로 해체되어도 별 상관없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우고 지워도 계속 잡생각이 나서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수영이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풀어진 신발 끈을 묶고 풀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연습생들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연습생들에게 데뷔 3년 차 갤럭시즈는 대 선배였다. 게다가 수영은 갤럭시즈 이전에 가장 오랜 연습생 시절을 보낸 이였으니 다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보냈다.

“어, 안녕.”

수영은 엉거주춤 일어나 손 인사를 하고는 땀을 닦으며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연습생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게 자리를 피해주려는 배려이기도 했지만, 최근의 사태로 눈치가 보인 탓도 있었다.

‘쟤네들도 다 알겠지?’

갤럭시즈 곧 해체한대. 정말? 얼마 전에 대판 싸웠다던데? 그런데 왜 회사에서 아무 말이 없대? 아마 새로운 걸그룹 데뷔조가 결성되고 나서 이야기할 건가 봐. 진짜? 그럼 우리도 데뷔할 수 있는 거야? 나 이번에 꼭 데뷔하고 싶어. 솔직히 우리가 하면 갤럭시즈보다 더 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갤럭시즈는 너무 어중간해. 선배들이긴 해도 노래나 춤이 별로잖아.

수영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분이었다. 덩달아 마음도 우울해지고, 시선도 바닥만 향했다. 다들 자기들 흉만 보는 것 같고, 자신이 등을 돌린 사이에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회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자기편은 한 명도 없는 것만 같았다.

외로웠다.

레슨시간이 다가올수록 속이 쓰린 기분이었다. 기분만이 아니라, 진짜 쓰려 오는데 아무래도 소화가 안 돼서 그런 것 같았다. 비활동기간이지만, 몸매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몸이 붓는 체질이라서 평소에도 식사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수영이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도 샐러드와 고구마 반 조각으로 가볍게 해결하긴 했는데, 그것마저도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레슨이 시작하기 10분 전에 회사 밖으로 나가 대로변에 위치한 약국에까지 찾아갔다.

“소화제 좀 주세요.”

이마를 살짝 덮은 앞머리를 정리하던 약사가 수영을 보더니, 익숙하게 소화제 두 알과 액상 소화제 한 병을 꺼내 놓았다.

“요즘 또 힘든가 봐.”

“아, 네.”

수영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그 자리에서 소화제를 모두 삼켰다.

“요즘은 잘 안 찾아오길래, 얼굴 까먹을 뻔했어.”

약사는 가벼운 농담이라고 뱉었는데, 그 말도 어쩐지 수영에게는 심상치 않게 들렸다. 얼굴이 기억되지 않는 아이돌그룹이라니.

“수고하세요.”

수영은 짧게 인사를 건네고, 약국을 나왔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하늘이 건물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저 어둠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레슨을 해야 했다. 수영은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 다가가니 평소와 달리 조곤조곤 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없을 때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급격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낯선 이의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호 오빠는 아닌 것 같은데?’

연습실 문을 열자, 세 멤버와 익숙한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연습실 입구의 반대편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서 그 아이가 단유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명지 누나가 저기 서서··· 그리고 지수 누나가 저기서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물을 나눠줬잖아요.”

수영은 다른 세 멤버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단유의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의 모습과 이 연습실 전체가 모두 하나로 보이는 느낌이었네요.”

라고 말하는 단유의 말이 가슴에 쿡 박히는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여태 붙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걸쇠가 걸리는 소리가 나면서 연습실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수영에게로 모였다.

멤버들의 얼굴들이 신기하게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다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마도 자기 역시 비슷한 표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단유가 이 미묘한 침묵을 깨뜨려 주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수영이 반갑다는 듯 얼른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니, 단유가 설핏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어? 어.”

단유는 입술 한쪽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수영을 가리켰다.

“잘 지내신 거 맞아요? 약이라도 드신 거 같은데?”

그 말에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손에 액상 소화제 병이 들려 있었다. 약국에서 급하게 나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소화제 빈병을 계속 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그냥··· 소화가 안 돼서.”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전환했다.

“오늘 수련 누나 따라 잠시 들렀어요. 누나들 연습하는 거 구경해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요. 봐도 괜찮죠?”

“···어? 어, 괜찮지. 괜찮···지?”

단유의 말에 대답했다가, 얼른 다른 멤버들에게도 의사를 구하는 수영이었다. 갑자기 돌려진 화살에 명지와 지수도 당황했다.

“어, 괜찮아.”

지수가 멍청한 얼굴로 대답했더니, 명지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일주일 만에 서로 대화(?)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히는 세 사람이었다.

“그럼, 잠깐만 구경하다가 갈게요.”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예영이 들어왔다. 예영은 늦지 않게 오느라고 뛰어왔던지 살짝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문 앞에 수영이 있자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느닷없는 사과에 무안해진 수영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사이, 또 단유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어? 단유네?”

예영이 단유를 보더니 화사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 2초도 안 돼서 사라진 웃음이었지만, 단유를 보는 순간에는 무장 해제가 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주일 만에 편하게 웃음을 지어 보인 순간이기도 했다.

“어쩐 일이야?”

“연습하는 거 구경하고 싶어서 수련 누나 따라 왔어요.”

수련은 단유가 너무 고마웠다. 눈치 빠르게 타이밍에 맞춰서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이어 나가주는 단유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역시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연습실 문이 열리고, 보컬 레슨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들어왔다.

“어? 니들 왜 이 앞에 서 있어?”

그때까지도 문 앞에서 얼쩡거리던 두 사람은 얼른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길을 열어주었다.

“넌 누구니?”

단유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후, 조용히 구경만 하겠다고 했다. 보컬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자, 수련이 나섰다.

“그냥 구경만 하게 해주세요. 얌전한 아이라서 별 일 없을 거예요.”

선생님은 수련을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일주일간 거의 시체처럼 죽은 얼굴을 하고 있던 수련이 모처럼 생기있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불만 없으니까, 잠깐 있게 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수영까지 나서자, 선생님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시작하자.”

어쩐지, 어제까지와 다르게 아이들의 분위기가 살아난 것 같다는 느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너 너무 늦는 거 아니야?”

수련이 연습실 한 편에서 마치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단유에게 미안한 얼굴을 하고 다가갔더니, 단유는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괜찮네요. 가끔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시쳇말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보다, 라며 단유 답지 않게 능청도 떠는 모습에 수련이 웃음을 지었다.

“끝나고 밥이라도 먹자. 괜찮지?”

단유가 연습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바라보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밥을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이만큼 땀을 흘렸으니, 조금은 먹어줘야 내일도 움직이지.”

과연 수련이 입은 헐렁한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든 상태였다.

“그럼 다 같이 먹는 건가요?”

“어? 그건··· 물어봐야겠는데?”

단유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들 쉬는 척하고 있지만, 귀는 다 수련과 자신의 대화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다들 같이 먹는 게 좋죠. 오랜만에 얼굴도 봤는데,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지 않겠어요?”

단유 니가 돈 낼 거도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기야! 라는 말은 속으로 눌러두고 수련은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향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말은 두 입술 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혀 끝에서 맴돌았다.

“수영 누나, 같이 밥 먹죠?”

“응? 저기···.”

수영은 솔직한 마음으로는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단유를 봐서 반가운 마음은 있지만, 그리고 솔직히 단유의 말에 감동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멤버들에게 서운한 점이나 미안한 점이 많았고, 그 마음이 쉬이 풀리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유는 머뭇거리는 수영이나 눈치를 보는 지수나 어정쩡한 태도로 등을 돌린 명지, 예영이나 모두 선뜻 나서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에, 특별히 한 마디 더 던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왕 돕기로 했으면, 이 정도 창피함은 무릅써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누나, 저한테 미안한 거 많지 않아요?”

“응?”

“미안하지 않아요? 그 이야기 좀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수영은 얼굴이 빨개졌다. 솔직히 그 일에 대해서 단유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그건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 이야기를 먼저 들고 나서니, 여태 사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피하기가 곤란했다.

“아니, 저기.”

단유는 수영의 말을 자르고 단답식 대답을 원했다.

“같이 밥 먹으면 이야기해요. 알았죠?”

어떤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상대에게서 쉽게 ‘Yes’라는 대답을 받는 방법은, ‘Yes’를 말하기 편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라고.

“으응.”

저것도 굳이 말하면 ‘Yes’니까. 이어서 다른 멤버들에게도 질문을 던져 ‘Yes’를 받아낸 단유는 이후로 레슨이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아, 창피해.’

자기 입으로 그 일을 언급하는 것도 쑥스러운데,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으니···. 창피함에 얼굴을 들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사과를 받을 필요도 없고, 들을 이유도 없는 일이건만, 괜히 사람들을 모이게 하려고 상대의 약점을 찌른 기분이어서 미안하기까지 하니,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창피했다.

하지만 단유의 이런 노력으로 다섯 멤버는 일주일 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게 되었다.

“아줌마, 여기 치킨 한 마리요.”

한 마리 가지고 되겠어, 라는 눈치를 주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수련이 덧붙여 주문했다.

“맥주도 5잔 주세요.”

아주머니는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 주문을 입력하며 주방에 소리쳤다.

“치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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