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72화 (272/956)

소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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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콩나물시루 같다고. 콩나물시루를 직접 보지 못해서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단유가 직접 체험해본 바로는 시내버스를 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도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내버스가 수학책이라고 할 때, 지하철은 국어책 정도랄까?

“그게 무슨 뜻이야?”

단유의 비유에 수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학책에는 글자가 많지는 않잖아요. 반면에 국어책에는 글자가 빼곡하고요.”

중학교 교과서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인 수련은 단유의 비유를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전혀 이해 못 할 부분도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학책은 푸는 재미가 있는데, 국어책은 그냥 글만 읽어야 해서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요. 시내버스는 바깥 풍경 보는 재미가 있는데, 지하철은 그냥 컴컴하기만 하고 그렇네요.”

‘그 반대가 아닐까?’ 싶지만, 단유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고 납득하면서 대꾸해 주었다.

“지금은 지하라서 그렇지만, 지상으로 올라가는 노선에서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야. 한강을 건널 때,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 특히 해 질 무렵? 그때 강물에 반사되는 노을빛이 보기 좋아.”

그 말을 기억해두겠다고 대답한 단유는 이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그런데, 보통 연예인들은 지하철 잘 안 타지 않나요?”

듣기로는 시커멓게 선팅한 밴이나 타고 다니는 줄 알았던 단유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수련을 처음 만났을 때도, 당시에 밴을 타고 이동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나올 질문이었지만, 수련에게는 씁쓸하기만 일일 뿐이었다.

“그때는 공중파 방송 녹화를 가는 거라서 급하게 대절한 밴이었고, 공식 스케줄이 없으면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수련을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못 알아보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딱히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이도 드물었다. 게다가 간간이 수련처럼 검은 마스크를 끼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띄기도 해서, 결코 수련이 특별히 뭔가를 감춘다는 기색마저도 옅어지는 분위기였다.

“그게 유행이에요?”

검은 마스크를 가리켜 보이는 단유에게 글쎄, 라고 얼버무리는 수련이었다. 유행이라기보다는 그냥 패션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패션이라고 부르기엔 또 너무 심심한 느낌?

“마스크 없어도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네요?”

수련은 애써 대답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한강은 가 봤어?”

“아직 못 가봤어요.”

수련은 시간을 확인한 뒤 물었다.

“아직 레슨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잠깐 한강에 들렀다 갈까?

어차피 오늘 오후 시간은 수련과 함께 보내기로 하고 나온 참이니 뭘 하든 상관은 없겠다 싶어 단유는 수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수련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던 단유의 말에 수련은 이야기하는 대신 연습하는 거 구경하러 오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딴에는 단유가 있으면 분위기가 조금 풀리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는데, 다른 멤버들도 단유를 좋아하기 때문에 즉석에서 생각해낸 거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단유는 잠시 고민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연습을 구경하러 간다면, 꽤 많은 시간이 소비될지도 모르고, 그 시간 동안 자기만의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해서였다. 대충 예상해봐도 그 정도 시간이면 한 권의 책을 탐독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닐까?

그러나 단유는 곧 생각을 고쳤다. 모처럼 ‘돕겠다’고 생각해놓고선 자기 시간 뺏기는 게 아깝다고 물러서면, 자신의 결심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질 거 같아서였다. 마약을 구하겠다고 야밤에 클럽도 간 녀석이 고작 이 정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라는 생각에 이르자 대답이 곧 튀어나왔다.

“그래요. 같이 가봐요.”

이유를 붙이자면, 오랜만에 다른 누나들 얼굴도 한 번 본다는 핑계였고―굳이 볼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지워버렸다―,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이들에게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굳이 자신이 가서 해명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또 들었지만 애써 누르며―가는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나도 가고 싶은데.”

명수는 무리하면 안 된다는 단유의 제지에 고집을 꺾었고, 상미는,

“넌 명수랑 놀아줘야지.”

라는 단유의 말에 막혔다.

“야, 내가 무슨 애 돌보미야?”

“누가 돌보래? 같이 놀라는 거지.”

게다가 갤럭시즈의 현재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낯선 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단유는 상미를 제외했다.

“나중에 같이 가자. 그때는 언니가 맛있는 것도 사줄게.”

수련 역시 비슷한 이유로 상미에게 미안함을 표현했고, 나중에 또 보자는 말로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가을바람에 흩날려 헝클어지는 걸 몇 번이고 고쳐 다듬던 수련은 이윽고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단유를 안내했다.

“저 처음 타봐요.”

단유는 지하철 안에 들어가며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지하철을 탄다는 단유의 말에 수련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완전 시골 촌놈이네?”

자기 말이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는 수련과 달리, 단유는 그저 주위를 구경하기 바쁠 뿐이었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타고 내려가 자동문 앞에 줄 선 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굉장히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감상했다.

비교적 한산한 역의 분위기를 살피던 수련이, 출근이나 퇴근 시간이면 시내버스보다 더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며 부언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한강을 구경하기로 결정을 내린 뒤, 몇 번의 환승을 거쳐 여의도역으로 나왔다.

“여기서 바로 넘어가도 되긴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여의도 공원은 구경하고 가야 하지 않겠니?”

제대로 가이드 역할을 해보겠다는 듯 수련은 단유의 손을 잡고 앞서 나갔다.

“봄이 되면, 여기서부터 저 길 끝까지 벚꽃이 피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데이트하러 많이들 찾아오고 그래. 특히 저기가 여의도 벚꽃 축제할 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수련은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자신의 잡다한 지식을 방출했고, 단유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주위 풍광을 구경하기 바빴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 생각해서 한적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실상은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어쩐지 바쁘게만 보이는, 그냥 평범한 도로였다.

시큰둥해 보였는지, 수련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봄에 오면 다를 거야.”

두 사람은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여의도 공원은 한적했다. 더러 몇몇 넥타이를 맨 이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정장 차림의 여성들이 손에 커피를 든 채 지나다니는 모습도 보였지만, 가끔 TV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보다 넓어 보이는 공원을 보며 뛰어다니기 좋겠다는 생각은 잠시 해보았다.

“어때? 탁 트인 느낌이 들지?”

녹스성 앞 평야에서 오물을 푸던 기억을 떠올리면 ‘겨우’ 이 정도로 탁 트였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딱히 설명하기도 어려워 그렇노라 대답했다.

다시 수련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한강이었다. 여의도 공원에서 이어지는 지하터널을 지나니, 공원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한강 변의 산책로가 보였다.

“여기서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 저렇게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운동 삼아 걷기에도 공원보다는 경치가 좋아서 그럴 거야.”

형광색 운동복을 걸치고 팔을 휘젓는 아주머니들부터 안전모까지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강공원을 메우고 있었다.

마침 시간이 노을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서쪽으로 붉게 물든 하늘과 깃털 같은 구름들이 잘 보였다.

“예전에는 자주 여기 와서 구경하곤 했었는데···.”

옆에서 수련이 하늘을 보며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 오래 걸었던 탓에 숨이 거칠어 답답했던지 마스크는 턱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데뷔하기 전에 멤버들이랑 여기 와서 강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 사실 내가 들어온 순서로 따지면 제일 마지막이어서 언니들이랑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언니들이 먼저 날 데리고 여길 와줬거든. 그때, 난 고3이어서 대학도 준비해야 했고, 그래서 되게 마음으로 힘들었는데, 언니들이 위로를 많이 해줬어. 용기도 많이 주고.”

수련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마치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을 하고 눈물 대신 노을을 눈에 담고 있었다.

“예영이가 20살이 되었을 때도, 한강에 와서 같이 맥주를 마셨어. 다 같이 모여서 맥주캔 하나씩 붙잡고 원샷하고, 그러다 예영이가 사래가 걸려서 켁켁 대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다들 웃고 난리가 났었지.”

마침, 한강공원의 잔디밭에 남녀 둘이서 캔을 부딪치며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살짝 서늘하기도 한 강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속을 시원하게 해줄 것 같았다.

“그때 우리끼리는 그랬어. 꼭 갤럭시즈로 성공하자고. 그래서 나중에 여기서 무대 한 번 가지자고. 저기에 앰프 하나만 갖다 놓고 팬 미팅 같은 거 하자고. 팬이랑 함께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분위기 좋지 않겠냐고···그런 이야기도 하곤 했었지.”

수련이 가리킨 야외무대 쪽에는 몇몇 어르신들이 운동에 지쳐서인지 관람석 쪽에 앉아서 무릎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시선을 돌리며 주위를 구경하던 단유가 물었다.

“그렇게 힘들어요?”

“응?”

“지금 말한 것들을 이루지 못할 거로 생각할 만큼 힘드냐고요.”

오는 동안 단유가 물었던 질문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비수처럼 콕콕 찌르는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의 질문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입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단유는 주변을 쭉 둘러보다가, 수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가요, 너무 늦겠어요.”

수련은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 수련은 너무 감상에 젖은 탓인지 입을 꾹 닫아버렸다. 동행한 일행이 뻘쭘해지지 않을까 싶지만, 단유가 겨우 그 정도로 어색해 할 인물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별다른 일 없이 연습실로 올 수 있었다.

“늦은 건 아니죠?”

가을이라서 그런지 하늘이 벌써 어둑해졌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초저녁이라 연습 시간에 늦은 건 아니라는 수련의 설명이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레슨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인 멤버가 있었다.

명지가 가장 먼저 수련을 발견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수련을 본 지수가 손을 허리에 얹었다.

“너 왜 이렇게···.”

하지만 말은 이어지지 못했고, 대신 수련의 뒤를 따라 들어온 단유가 지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지수는 한 것도 없이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어, 어. 오랜···만이네?”

명지도 고개를 돌려 단유를 보더니 미소를 띠려다가 얼른 얼굴을 굳혔다.

“웬일이니?”

수련을 가리키며 따라왔다고 대답한 단유는 연습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연습실 바뀐 거죠?”

예전에 세 번째 싱글의 뮤직비디오 참여 때문에 몇 번 와본 적 있던 단유는 그때랑 조금 달라진 연습실 인테리어를 지적했다.

“어떻게 알았어?”

수련의 물음에 단유가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예전에는 그냥 베이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하얀색이잖아요. 그리고 저기까지가 연습실이었던 것 같은데, 더 커졌고요. 위의 조명도 LED 아닌가요? 훨씬 밝아진 것 같아요.”

명지가 감탄해서 손뼉을 쳤다.

“우와 너 진짜··· 그때 한 번 봐 놓고선 그걸 다 기억하는 거야?”

단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의 이미지가 꽤 강해서요.”

명지가 되물었다.

“어떤 이미지?”

단유는 볼을 긁더니, 천천히 기억을 소환했다.

“저기쯤에서 명지 누나가 서서, 2절 파트를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예영이 누나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누나 연습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기쯤에서 수련 누나가 안무를 추고, 그 앞에서 수영이 누나가 팔짱을 끼고 수련 누나 춤을 봐주고 있었어요. 팔이 이렇게 꺾이면 안 된다면서 직접 동작을 보여주고 있었죠. 그리고 지수 누나가 저기서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을 나눠줬어요.”

단유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연습실 안의 세 멤버는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제게는 꽤 강한 이미지였어요. 다 따로 있는데도 하나처럼 보이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각자의 모습과 이 연습실 전체가 모두 하나로 보이는 느낌이었네요.”

달칵, 걸쇠가 걸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수영이 들어와 문을 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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