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71화 (271/956)

소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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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지수가 수영을 향해 뾰족한 날을 들이밀었다.

“심하긴 뭐가 심해? 그리고 지금 네 태도가 심하다는 생각은 안 하니?”

그룹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두 언니의 다툼에 동생들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나마 수영과 오래 연습생으로 함께 했던 명지가 수영을 말리는 시늉을 해 보았지만, 수영은 듣질 않았다.

“너도 마찬가지야. 수련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그룹에서 나름 메인보컬 급이라고 자신했잖아? 그런데 너 요새 목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어? 그래 가지고 방송에서 보컬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니?”

수영은 지금 다들 너무 풀어져서 그렇다고 판단했다. 물론 스스로도 현 상황이 갤럭시즈에게 좋지 않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상태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맏인 데다가 리더라는 직책까지 맡은 바에, 자신이 쓴소리라도 해서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랑 함께 한 명지라면 자기 뜻을 헤아릴 거라는 생각에 조금 더 독하게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댄스 레슨 시간에는 왜 매번 늦는 건데? 우리가 각자 따로 추니? 다 같이 동선 짜서 함께 동작을 맞춰야 하잖아? 한 사람이라도 늦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데 미안하지도 않니? 동생들 보기에 미안하지도 않아?”

“죄송해요, 언니. 앞으로 늦지 않고 일찍 일찍 다닐게요. 화 푸세요, 언니.”

라는 반응을 기대했던 수영이지만, 명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제가 뭐 노느라 그랬어요? 저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늦은 건데,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전 뭐가 돼요? 그러면 언니는 뭐 아무 잘못도 없어요? 다들 언니한테 불만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뭐?”

명지가 붉으락푸르락하며 대들자, 수영은 순간 멍해져서 제때 대꾸하지 못했다. 내용은 둘째치고 평소에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잘 따른다고 생각했던 명지가 이렇게 나오니 당황하고 만 것이다.

“리더가 뭐하는 자린데요? 그냥 우리들만 들들 볶으면 되는 자리에요? 회사의 의견을 우리한테 알려주기도 하고, 우리 의견을 회사에 제대로 밝히기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맨날 회사 입장만 강요하고, 우리는 아무 뜻도 없는 것처럼 굴어요? 우리가 아무 소리도 안 내고 예 예 거리니까, 회사에서도 우릴 만만하게 보고 지난번처럼 마음대로 활동 종료시키고 지방으로나 돌리는 거 아니에요? 언니가 그때 제대로 한마디라도 했어 봐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리가 있겠냐고요!”

수영은 명지의 반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럴 때를 말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또 다른 비수가 날아와 박혔다.

“곡이나 안무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이 무슨 90년대에요? 리더라면 안무나 컨셉에 대해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언니가 우리한테 이런 거 이야기한 적 있어요? 한 번도 없죠? 언니가 리더라고 하는 일이 뭐 있어요? 맨날 누가 지각하나 감시만 하고 있고, 지각하면 팀장님한테 달려가서 조르기나 하고. 그게 무슨 리더야?”

지수가 명지의 어시스트를 받아서 빈틈을 노리고 들어왔다. 결국, 방심했던 수영은 두 충신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았다.

“언니들, 왜 그러세요? 그만 하세요. 조금 있다가 보컬쌤 오실 건데.”

예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언니들을 말리려 했지만, 날 선 눈으로 리더를 바라보는 두 여자의 기세를 꺾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기세로 따지자면, 두 여자 못지않게 강한 이가 있었으니, 수련이 참전을 선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뭐?”

명지가 비스듬히 고개를 틀어 수련을 바라보았다. 수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언니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언니들 하는 말은 그냥 억지나 마찬가지라서 하는 말이에요. 수영 언니가 물론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있을 순 있지만, 회사에다 우리 입장을 밝힌다느니, 곡이나 안무에 대해 우리 의견을 밝힌다느니 하는 속 좋은 소리를 할 수나 있는 처지예요? 우리가 무슨 순위권에 드는 그룹도 아니고, 인기가 없어서 지방이나 전전하는 마당인데 회사에서 뭐가 좋다고 우리 의견을 듣니 마니 한다는 거예요?”

지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수의 날을 세웠다.

“회사에서 아낀다고 이제는 위아래도 안 보이고 그러지? 응? 회사에서 뒤를 봐주니까, 언니들 따위는 아주 우습게 보이고 그러지?”

수련은 욱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간신히 눌러 참았다.

“제가 누굴 우습게 본다고 그래요? 언니들이 수영 언니한테 억지를 쓰니까 하는 말이죠!”

“억지는 무슨 억지야! 우리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지금이 어떤 시댄데 회사에서 시킨 대로만 해? 그럼 넌 회사가 시키면 그게 뭐든 아무 말 없이 따라야 한다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왜···.”

논점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하려는데 지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넌 회사에서 술자리에 좀 나오라고 해도 옳다구나 하고 나가겠구나?”

“네?”

지수가 준비한 칼은 독이 묻은 칼이었다. 의미를 해석하니, 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는 느낌이었다.

―짝.

지수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뺨을 부여잡고 돌아봤을 때, 수영이 차가운 눈으로 지수를 쳐다보았다.

“너,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 그런 것도 가릴 줄 모르면 지금 당장 나가.”

수영이 생각하기에 지수는 지켜야 할 선을 넘겼다.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부지처럼 아무 말이나 다 해대면, 우리가 그저 웃어주면 받아 줄 거로 생각했어? 뭐? 술자리? 너 제정신으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와? 그런 말이 너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든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니?”

당연히 지수 역시 말을 뱉고 나서 바로 후회를 하긴 했다. 요즘 말로 ‘아무 말 대잔치’라도 벌인 느낌인데, 지금 상황은 단순히 NG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방송 사고급 멘트였다.

하지만 이왕 친 사고, 돌이킬 수 없었다.

“누가 진짜 나가래?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언니가 제대로 리더 역할을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다툴 일도 없는 거 아니야?”

눈시울이 붉어진 지수가 말을 맺을 때쯤에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칼날은 여전히 수영을 향하고 있으니, 수영도 이번에는 그냥 참지 않았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할 건데? 니가 잘났어? 아무 말이나 뱉어도 용서할 만큼 잘났냐고? 니가 예영이만큼 어리면 또 모를까, 밑의 동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니?”

“니들 뭐하는 거야!”

수영의 말을 막은 것은 태호였다. 퇴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보고 가려던 태호는 소란스러워진 연습실 풍경에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연습실에서 싸우래? 엉?”

수영은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여 보였고, 지수와 명지는 등을 돌렸고, 수련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바닥만 바라볼 뿐이었다. 예영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다 같이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장수영!”

“네.”

“이게 무슨 짓이야! 맏언니가 돼서 이 판국이 될 때까지 뭐했어? 설마 너도 같이 싸웠어?”

수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호의 시선은 등을 돌린 채 얼굴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신지수. 박명지.”

두 사람을 불러 보지만, 두 사람은 돌부처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것들 봐라?”

분위기가 그냥 다툰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에 태호는 연습실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달칵.

연습실 문이 잠겼고, 보컬선생님이 왔을 때, 태호는 양해를 구한 뒤, 오늘 있을 레슨을 직권으로 취소시켰다. 그리고 그 뒤로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

“싸웠어요?”

단유의 목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수련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조금.”

어쩐지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수련이 말을 아끼는 모습은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왜요?”

“그런 일이 있어.”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활동이 침체된 3류 걸그룹의 비애가 빚어낸 갈등, 이라고 축약할 정도의 이유였지만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기가 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너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까닭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지수나 명지도 평소에 그렇게 막말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속에 있는 말을 필터 없이 내뱉는 수련을 말리는 스타일이었다.

만약 지수나 명지가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냐고 묻는다면, 수련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언제나 수영을 곧잘 따르던 명지도 그렇고, 맏언니가 리더로서 부담을 느낄 때 오히려 옆에서 위로하고 다독이는 역할을 하던 게 지수였으니까.

‘그래도 심하긴 심했어.’

그런 탓에 현재 수련과 멤버들은 숙소에서든 연습실에서든 불편한 마음으로 함께 해야 했다. 숙소와 연습실 외에는 달리 갈 곳도 없었고, 단지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연습을 빠진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싸움 이후 3일 동안 멤버들은 서로 대화 없이 지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수련이 미안한 와중에도 그나마 쉴만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단유를 찾아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서도 단유에게나 명수에게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쉰다는 느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요.”

단유가 수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이 힘든 사람은 얼굴에도 그 표정이 저렇게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단유였다. 아마 명수도 자신의 얼굴에서 저런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실···조금 힘들긴 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수련을 보던 단유가 도울 일이 없냐고 물었지만,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아이가 어찌 도울 일이 있을까?

“괜찮아. 이렇게 말 상대 해주는 것만으로도 편하네. 덕분에 힘내서 레슨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힘들어도 레슨을 받으면서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수련의 모습이 멋있다고 단유는 생각했다. 수련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 또 꿈을 꾸는 인간이었다.

연예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

예전이라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수련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보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수련은 눈만 끔뻑끔뻑하면서 단유를 바라보았다.

“왜요?”

“너야말로 이상해서. 예전 같으면 그러시든가, 이런 표정으로 관심 없는 척 시크하게 넘어갔을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누구라도 의심을 하긴 하나 보다. 단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며칠 전에 제가 명수한테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누나가 전혀 모르는 남도 아니고, 이렇게 우리 집에 찾아올 정도라면, 딱히 친구도 없는 것 같아서요. 제가 친구 노릇을 잘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편이잖아요.”

수련은 손을 뻗어 단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나도 친구 있거든?”

그 말만 안 했어도 되게 감동 먹었을거다, 라며 혀를 빼무는 수련이었다.

“오예! 딱밤 한 대!”

명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넌 여자애한테 이기고 좋냐?”

“여자애한테 이긴 건 별론데, 너한테 이긴 건 좋다! 일루 와!”

“진짜 때리려고?”

“얼른 대라. 나 그동안 많이 맞아줬다!”

상미는 패드를 내려놓고 가만히 이마를 들이미는가 싶더니, 냉큼 몸을 빼내어 도망을 쳤다. 그리고 단유에게로 달려와 단유 뒤에 몸을 가렸다.

“야, 쟤 좀 봐. 우락부락하게 생긴 게 막 연약한 여자를 때리려고 그래.”

단유는 상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명수가 우락부락하게 생기지는 않았지. 그리고 니가 연약한 여자도 아니고.”

“뭐? 연약한 여자가 아니면 뭔데? 남자야?”

상미의 말에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약아빠진 애.”

“우와, 니들 친구라고 서로 감싸기냐?”

명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단유는 거짓말 못 하거든?”

“웃기시네.”

상미는 수련 뒤로 달아났다.

“언니, 쟤들 좀 봐요. 막 연약한 여자애를 때리려고 서로 연합하고 막 저래요. 쟤들 좀 혼내줘요, 네?”

수련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이 집에 온 이유는 바로 이런 일상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수련의 맑은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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