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68화 (268/956)

파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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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술 잘 안 받는다.”

“네가 요즘 운동을 게을리해서 그래.”

“일이 많아서 그래. 내가 요즘 잘 나가는 중 아니냐.”

이런 대화가 두 남자 사이에 오가는 중이었다. 물론 좀 더 거친 방식으로 주고받는 와중이었지만, 단유가 걸러 들은 대화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단유가 기다리던 것과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오늘 누구 먹지?”

“야, 니가 원하면 다 먹을 수 있냐?”

“광철이는 미지한테 꽂힌 거 같은데.”

“나도 눈치 있어, 임마.”

“그럼 솔직히 니 스타일은 누군데?”

“나? 난···.”

그런 대화의 중간에 화장실에 또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이미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던 탓에 남자는 소변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투덜대면서 닫혀있던 좌변기 칸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좌변기 칸은 잠겨서 열리지 않았고, 그 사실이 짜증 난 남자가 끝내 신경질을 부렸다.

“아, 씨발. 화장실 혼자 쓰나!”

소변기 앞에 섰던 두 사람은 힐끔 눈치를 보다가 모른 척했다. 그런데 그 시선이 영 못마땅했던지, 뒤에 들어온 사내, 하얀 드레스 셔츠를 입은 남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뭘 봐, 새꺄.”

하얀 셔츠와 대비가 될 정도로 붉은 얼굴과 붉은 눈에서 남자가 얼마나 술이 됐는지를 짐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만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앞춤을 대충 정리하고 돌아선 사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어디서 시비야? 응?”

돈 좀 있어 보이는 차림에 곱상한 얼굴이 꽤 만만하게 여겨졌던지, 사내는 바지를 탁탁 털면서 턱을 쳐들었다. 곁에 선 친구가 말렸다.

“야, 참아라. 딱 보니까 꽐라네.”

말리는 척하면서, 실은 친구와 같이 어울려서 시비라도 걸고 싶었던 것일까? 두 친구가 쿵짝을 맞추며 사내를 압박하자, 드레스 셔츠의 사내는 한숨을 쉬며 눈을 치켜떴다. 앞의 선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은,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꽤 왜소한 타입의 남성이었기 때문에 종종 이런 자리에서 시비가 붙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는 남자가 바로 드레스셔츠의 사내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죽고 싶냐?”

드레스 셔츠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바라보자, 한 친구는 위험을 감지했고, 한 친구는 이성을 잃었다.

“뭐, 이 새끼야?”

단유는 화장실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아니 그냥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끼어들 분위기도, 명분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꽤나 사소한 문제로도 저렇게 다투는구나.’

일단 서로 오가는 말부터가 욕으로 주고 욕으로 받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서로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다툼이 생긴다는 게 단유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가끔 저런 이유로 학교 안에서도 아이들끼리 싸우기도 하던데, 나이를 먹어도 저러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자신이 끼어들 일은 아니었고, 부디 자신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자리를 지켰다.

말로 붙은 시비는 가볍게 밀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국, 주먹이 오가는 싸움으로 커져 버렸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세 사람이 주먹질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상황에서 단유는 부디 다른 사람이 와서 이들을 말려주길 바랐다.

‘아니지. 다른 사람이 오면 나도 위험해지려나?’

단유는 이럴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문득 왜 자신이 이런 더러운 꼴을 사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명수의 말이 생각났다.

“너 정말 이상해졌다!”

단유는 그 말이 생각나는 즉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자신은 이상해지지 않았다. 언제나와 같이, 늘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었다.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도 오로지 명수를 위해서였다.

그런 생각의 와중에 바깥이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유가 다른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와서 싸움을 말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싸움을 말리더라도 이렇게 갑자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조용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싸움이 끝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때, 단유가 있던 화장실의 문이 덜컥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씹새끼야, 문 안 여냐?”

단유는 그 목소리가 가장 뒤에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마도 그 남자가 앞선 두 사람을 제압했던지, 아니면 두 사람이 남자를 피해 도망을 갔던지 둘 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화장실 문을 열려고 하는 걸까? 굳이 따지면 옆 칸도 있는데 말이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단유는 곧 바깥의 사내가 화장실 문을 발로 찬 것임을 알았다. 단유가 자신의 행동 방침을 세우기도 전에 화장실 문은 두 번째 발길질과 함께 걸쇠가 뜯겨나가면서 문이 열렸다.

단유는 사내와 눈을 마주했다. 사내의 붉은 눈이 단유를 응시했다.

“개새끼가 어디서 사람을 갖고 놀려고 그래?”

단유는 사내의 눈보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 사람은 꿈틀대고 있었고, 한 사람은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드레스 셔츠의 사내는 왜소한 몸 때문에 종종 시비가 붙곤 했다. 그런데 사내는 사실 싸움을 잘했다. 어렸을 때부터 잘했고, 그래서 학교도 특수한 곳, 소년원에서 지내다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가끔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만 보고 만만하게 봐서 그런지 시비가 붙곤 했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사실 싸움의 원인 제공자를 굳이 따지자면 드레스 셔츠의 사내가 대부분 시비를 거는 쪽이었다. 다만 본인이 그걸 못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만만하게 봐서 시비를 건다고만 생각할 뿐이었지만.

조금 전의 일도 그랬다. 만약 화장실에 들어와서 괜한 욕설을 내뱉지 않았어도, 그리고 자신이 소란을 떠는 통에 그들이 돌아본 것일 뿐인데, 거기에 대고 시비를 먼저 걸었다는 것도 그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두 사람이 자신을 만만히 보고 달려드는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드레스 셔츠는 일단 수를 줄이기 위해, 한 사람의 턱을 날렸다. 턱이 꺾일 듯이 맞은 남자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짧은 순간에 기억을 잃은 충격이었지만, 넘어질 때는 제대로 넘어졌다. 화장실의 자기(瓷器)형 타일에 머리를 찧었다. 타일이 산산조각이 날 정도의 충격에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사내는 그대로 바르르 떨다가 움직임이 멎었다.

또 다른 남자는 친구의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드레스 셔츠가 한 사내를 넘어뜨린 즉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꽤 빠르게 반응한다고 주먹을 던지긴 했지만, 드레스 셔츠는 그 주먹을 왼팔로 가볍게 막고, 오른쪽 주먹으로 명치를 강타했다.

순간 호흡이 멎을 정도의 충격에 얼굴이 파래진 사내는 눈앞으로 달려드는 무릎을 보았고,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사내를 쓰러뜨린 드레스 셔츠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잠겨있는 변기 칸을 노려봤다.

사내는 그 안에서 얌전한 숨소리를 들었다. 그 차분한 숨소리가 기분이 나빴다.

“야, 당장 안 나와?”

말로만 하고 끝날 사내가 아니었다. 굳이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발로 화장실 문을 찼다. 아드레날린이 가득 차오른 사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문이 열리고, 눈을 마주한 순간, 사내는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쥐 새끼 같은 놈이···.”

척 봐도 어린 꼬마 아이였다. 키는 자기랑 비슷해 보이는데, 얼굴이 꼬마였다. 아주 동안이거나, 아니면 진짜 꼬마거나.

“너 몇 살이냐?”

단유는 사내의 손에서 눈으로 시선을 옮겼다.

“14살인데요.”

사내는 절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꼬마가 있는 줄 알았으면, 그냥 말로 할 걸 그랬다.

“난 또 웬 미친놈이, 사람 싸우는데 가만히 있는다 싶었다.”

사내는 단유에게 다가갔다.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단유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새끼가. 어른이 묻는데 대답은 안 하고 새끼가···.”

사내는 단유의 머리를 툭 쳤다. 아니 치려고 하는데, 단유가 머리를 뒤로 빼면서 손을 피했다.

“어쭈? 요놈 봐라?”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소매를 천천히 걷어올렸다. 아까 싸울 때도 올리지 않던 소매를 올리는 것은 단순한 겁주기 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먹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 단유는 감정 없이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는 단유의 눈에서 그것을 읽었다.

“와, 이 새끼 눈깔 한 번 이상하네?”

사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죽거렸다.

“초점 빠진 눈이 열라 기분 나쁘게 만드네?”

사내는 다시 한번, 빠르게 손을 날려 단유의 뺨을 치려 했고, 단유는 또다시 머리를 흔들어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뒤이어 날라오는 주먹에 구석에 몰린 단유로서는 피할 공간이 없었다.

사내의 주먹은 그대로 뻗어 나가 단유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

사내가 순간 이상을 느꼈다. 하지만 이상을 느끼기에는 너무 늦었던지 그의 주먹은 힘차게 화장실 내벽을 향해 나아갔고, 곧 강한 충격이 주먹에 전달되었다.

“악!”

참을 수 없는 충격에 비명을 지른 사내가 주먹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너무 아파서 손을 펼 수도 없었다. 인기척을 느낀 사내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뒤에서 단유가 감정 없이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뭔 짓 한 거야!”

단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상황을 분석했다. 이 이상은 자신의 얼굴이 팔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게다가 더 있어 봐야 자신이 원했던 약은 구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단유가 몸을 돌려 걸어나가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디 가, 이 씨발 놈아. 너 씹새끼, 이대로 가면 괜찮을 줄 알지? 개새끼야, 내가 네 얼굴 똑똑히 봐뒀어. 새끼야? 내가 애들 풀어서 너 잡으려면 못 잡을 거 같아!”

단유는 걸음을 멈췄다. 단유가 돌아보자, 여전히 주먹을 펴지 못하고 인상을 쓰고만 있는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과 하얗게 질린 얼굴, 하지만 아직도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기괴하기만 했다.

“개새끼야, 쫄았냐. 좆같은 새끼가.”

사내는 단유가 싸움 좀 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눈치도 못 챌 만큼 빠르게 사각으로 빠져서 몸을 피하는 수는 어른들이라고 해도 쉽게 하지 못할 동작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 해도, 고작 14살이라는 꼬마였다. 꼬마한테 당하고 말면, 자신의 자존심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 무기는 남아 있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웃기고 자빠졌네. 개새끼야, 넌 사람 이 꼴로 만들고 그냥 튀려고 하냐, 이 새끼야?”

아픈 주먹을 억지로 들어 보이는 사내였다.

“저는 아저씨한테 손도 안 댔거든요?”

단유의 변명에 기도 안 찬다는 듯,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야, 씹새끼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일로 와, 이 새끼야.”

단유는 움직이지 않고 지켜봤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무릎을 구부렸다가 어깨로 밀어붙였다. 단유는 재빨리 몸을 틀어 사내의 공격을 피했고, 사내는 단유가 있던 자리를 지나 입구로 향했다. 단유도 그 방향을 알고 있었기에 자리를 피했고, 부디 저대로 나가버리기를 바랬다. 하지만 단유의 바람과는 달리, 사내는 크게 힘을 실은 공격은 아니었던지, 곧 몸을 세운 뒤 화장실 문을 닫아버리는 액션을 취했다.

단유가 사내의 행동에 놀라워할 때, 사내가 뒤로 돌며 인상을 썼다.

“개새끼, 넌 오늘 그냥은 못 나간다. 씨발, 어디 한 군데라도 부러뜨려서 보내줄게.”

사내는 아픈 손을 그대로 늘어뜨린 채, 다른 손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었다.

단유는 사내의 악의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이러한 악의와 맞닥뜨려야 할 이유가 있던가?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세요? 아저씨도 지금 많이 다치셨잖아요?”

“이 새끼가, 갑자기 혀를 굴리네? 씹새끼야? 나만 다치면 억울하니까, 너도 죽어봐, 이 새끼야.”

단유는 뒷걸음질을 하려다 발에 걸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쓰러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머리에 발 뒤꿈치가 닿아 있었다. 순간 시선을 들어 올렸을 때, 이미 드레스 셔츠의 주먹이 단유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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