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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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악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유지만, 지금은 비록 명수가 거친 언사를 뱉으며 단유를 압박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명수의 말에 악의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왜 진심을 몰라주냐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지도 않았던 탓이다.
단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려 했다.
“야, 말하다 말고 어디가?”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
명수는 단유의 소매를 붙잡고 흔들었다.
“새끼야, 지금 도망가는 거냐? 응?”
단유는 거칠게 소매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놔, 이거.”
“못 놔.”
“나중에 얘기하자.”
“뭘 나중에 얘기해? 그냥 지금 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명수에게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던 단유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지금 얘기해봐야 제대로 대화가 안 될 테니까.”
하지만, 명수는 쉽게 놓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그저 소매만 붙잡는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아니었다면 단유를 한 대 쳐서라도 잡았을지도 몰랐다.
단유는 명수가 잡은 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살짝 힘을 주고 그러쥐더니 소매를 놓게 하였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단유는 문을 열고, 명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명수는 단유를 노려보다가 절룩이는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명수의 방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니들 무슨 일 있어?”
선생님이 단유에게 다가와 물었다.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사소한 오해, 라고 대답했다.
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 위에 걸터 앉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자기는 그저 명수를 돕고 싶은 마음에, 위험을 무릅쓰고 마약을 구하려 했던 것뿐인데. 괜히 걱정 시킬까 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래도 지금은 후회든, 분노든 뒤로 미뤄야 했다. 오늘 밤, 단유는 아까 미뤄뒀던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
도시의 밤은 화려하다. 불이 꺼질 줄 모를 정도로 밝고 활기차다. 게다가 그곳이 대도시 유흥가의 중심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강남대로 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에는 사람들의 통행을 막을 정도로 많은 길거리 음식 매대가 하얀 김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홀린 듯 지나가던 이들이 멈춰 서서 싸지만 않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어댔다.
“오빠, 우리 저거 먹자.”
“이거 얼마에요?”
“3천 원이요.”
시크한 아주머니의 대답에 남자는 가볍게 지갑을 열고 지폐를 내밀었다. 그리고 종이컵에 겨우 담길 먹거리를 담아서 여자에게 건넸다. 술에 취한 볼 빨간 여자는 짙은 마스카라로 가린 눈으로 웃음을 지으며 컵을 받았다.
또 한 편에서는 술주정 부리는 사내들이 붙어서 목소리를 높였고, 복잡한 인파들로 가득 찬 골목을 기어코 차로 지나가 보겠다고 경적을 울려대며 사람들을 갈라 새우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유명한 한 클럽 앞에서는 파란 네온사인으로 불을 밝힌 간판 앞에 여러 사람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여기 물 좋은 거 맞아?”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같이 온 친구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친구가 보기에도 과연 그런 의심이 들 법했다.
“애들 마스크가 영, 그렇네. 딴 데 갈까?”
줄 선 여자들의 얼굴을 살피던 친구의 말에 괜히 시계를 보는 척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딴 데 가면 줄 선 게 아깝잖아. 다음에 딴 데 가면 되지 뭐.”
“그러자. 그리고 혹시 아냐, 안에는 물이 좋을지.”
그렇게 줄 선 여자들의 짧은 치마와 노출된 가슴을 보며 품평을 펼치던 두 남자가 어두운 클럽 입구를 지나갈 때, 그들을 보던 다른 여자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방금 들어간 애들 봤어?”
“난 무슨 회사 면접 보러 오는 애들인 줄 알았다.”
“아니, 저런 애들은 가려서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여기도 이제 다 됐나 보다.”
“여기 실장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하지만, 그 여자들 역시 클럽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가 버렸다. 진공청소기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던 클럽 입구는 여전히 어두웠고, 간간이 뱉어낸 사람들은 입구 옆의 으슥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힘겨운 소리를 뱉어냈다.
뱃속 가장 깊은 곳에서 암반수 끌어 올리듯 끌어올려 입으로 토해내는 토사물들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발을 적시지만, 이를 가늠할 정신이 없던 이들은 그저 구토 소리에 귀가 먹먹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클럽 주변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던 그 시각, 단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곳은 어둠이라고 해도 안전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일부러 어두운 곳만 찾는 것처럼 찾아 들어오는 탓에,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곧바로 몸을 피하기 일쑤였다.
‘···클럽에서 엑스터시와 같은 환각제를 복용하는 사례가 경찰에 적발되어···.’
와 같은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 단유는 클럽 주위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와 구역질이 나오는 토사물의 흔적뿐이었다.
‘안에 들어가 봐야 할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마음이 있어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 없었던 단유는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입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입구 근처에는 헐렁한 옷을 입을 덩치 두 사람이 살벌한 표정을 짓고 들어오는 이들을 선별하여 받고 있었다.
‘선별’이라고는 했지만, 거부당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이가 너무 많은 이들을 막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별다른 제지 없이 클럽 안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단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
쿵쾅거리는 베이스의 묵직한 울림이 온몸을 뒤흔드는 느낌에 단유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클럽 밖에서도 조금씩 새어 나오던 음악인지라 요란스럽다는 인상은 가지고 있었지만, 클럽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함성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불빛이 번쩍이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사람들의 얼굴이나 인상을 정확히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정신없이 몸을 뒤흔드는 사람들과 정신이 나갈 정도로 큰 음량의 음악 때문에 주위를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들었다.
단유는 한쪽 벽에 손을 짚고는 그 벽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모두 스테이지에서 믹싱을 하는 DJ를 쳐다보는지 바깥쪽 벽을 따라 움직이는 단유를 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들어찬 곳이다 보니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어머, 얘, 너 어떻게 들어왔어?”
“얼래? 얘 너무 어려 보이는데? 너 우리보다 어리지?”
살짝 혀가 꼬인 발음으로 단유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두 여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단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단유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눈을 마주치지 않게 지나가려 했다.
“어딜 가?”
한 여자가 단유의 어깨를 잡았다. 단유는 어깨를 털어 손을 뿌리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이동할만한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비집고 나갈 수밖에 없을 듯했다.
단유는 더욱 몸을 움츠린 자세로 벽을 따라 나아갔다.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지만, 그 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스테이지를 향한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목적지도 없이 나아가던 단유는 어깨를 부딪치고,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헤집으며 나아가다 마침내 클럽 가장 안쪽에 있는 복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복도에는 여러 개의 룸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과연 사전에 알아본 것과 같이 그 룸들은 창문 하나 없이, 두꺼운 가죽시트로 뒤덮인 문 외에는 들어가거나 나올 구멍이 보이질 않았고 안을 훔쳐볼 방법도 없어 보였다. 복도 건너편을 바라보니, 붉은색 계열의 등이 드문드문 점멸하듯 불을 밝히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듣기로는 이런 곳에서 거래가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인터넷의 속성상 그 말을 100% 믿을 수도 없었고, 설령 믿는다 해도 그런 거래 현장이 우연히 단유의 눈에 발각될 확률은 극히 드물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만 문제는 저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단유가 저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면 여러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볼 것이라는 점이었다. 들어온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자신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띌 복장과 외모였다.
그러다 문득 룸에서 나온 사람들이 복도 건너편을 가로질러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 다른 룸에서 나온 사람들도 그곳으로 갔다가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나타내고는 나왔던 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유는 복도 건너편으로 향했다. 과연 그곳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술 취한 한 남성이 비틀거리면서 일을 보는 중이었다. 남자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러다 화장실 출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분명히 누가 들어왔던 것 같은데, 일을 볼 생각은 하지 않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돌렸던 것인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나보다, 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한 사내는 마저 일을 봤다. 그때, 뒤에서 딸깍거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큰 거 보러 왔구나.’
사내는 냄새가 나기 전에 화장실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안에는 변기 칸에 단유가 코를 막고 벽에 기대어 선 채로 기다렸다.
솔직히 무엇을 기다려야겠다는 목적은 없었다.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간절함, 혹은 절박한 마음에 단유는 화장실에서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러다가 날이 샐지도 모르잖아.’
제발 그렇게만 되지 않기를 바라며 화장실 한 칸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단유였다.
****
“야,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야, 나도.”
“씨발, 니들 뭐냐? 게이냐? 화장실을 왜 같이 가냐?”
“개새끼야, 좆같은 소리 하지 마라. 아까부터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참다가 가는 거다, 새끼야.”
“지랄한다. 빨리 꺼져, 새끼야.”
“딱 기다려, 이 새끼야. 갔다 와서 두고 봐.”
“지랄하다가 바지에 지리지나 말고 빨리 가, 새끼야.”
그렇게 정겨운 대화를 나눈 뒤, 두 사람이 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룸 안에는 여자 셋과 남자 하나가 남았다.
“아, 씨발. 졸라 뻘줌하네.”
남자는 괜히 툴툴거리면서 잔을 들었다.
“한잔하자.”
“그래, 자, 건배.”
치렁거리는 노란 머리를 목 뒤로 넘기던 여자가 앞에 놓인 노란 잔을 들어다 잔을 마주쳤다. 뒤이어 다른 여자들도 깔깔거리면서 잔을 들어주었다.
“니들은 화장실도 안 가냐?”
“왜? 우리 가고 나서 미지, 쟤랑 뭐 좀 할라고?”
붉은 단발머리의 여자애가 익살맞은 눈을 하고는 농담을 건넸다. 사내는 그 농담을 넙죽 받아먹었다.
“당연하지. 야, 니들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잖아?”
“웃기시네. 여기서 무슨 수줍음 배틀 할 일 있어? 그냥 하면 되지, 사내 새끼가 빼고 그래?”
가슴이 반쯤 드러난 짧은 탱크톱 차림의 여자애가 잔을 기울이면서 흉을 보자, 사내는 잔을 탁 내려놓더니 콧김을 뿜어냈다.
“와, 이것들이 또 야마 돌게 만드네.”
사내는 잔에다 양주를 들이붓더니, 이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은 흥미롭다는 듯 사내를 보면서 기대를 높이고 있었고, 마침내 사내가 잔을 내려놓자, 눈을 반짝였다.
“야, 일로 와.”
사내는 거칠게 옆에 앉은 ‘미지’라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췄다. 미지는 거절하지 않았고, 다른 두 여자애가 오오, 하면서 방청객 리액션으로 사내의 액션에 화답했다. 진한 키스의 와중에 손이 거침없이 미지의 허리와 등을 쓸어내렸고, 이내 엉덩이를 강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야, 야. 적당히 해라.”
“판 깔아주니까, 아주 덮치네, 덮쳐.”
여자 둘은 키득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잔을 나눴다.
“근데, 화장실 간 애들은 왜 오질 않는 거니?”
“얘들, 진짜 게이 아냐?”
그 소리에 사내가 침과 립스틱으로 범벅이 된 입을 떼고 항변했다.
“아니라고!”
“니가 왜 그래? 누가 너보고 게이래?”
“야! 내 친구들한테 게이라고 하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냐?”
하지만 여자 둘의 걸쭉한 입담에 사내는 이길 도리가 없었다.
“야, 그럼 사내 둘이 화장실에 가서 이렇게 시간 보낼 일이 뭐 있냐? 전립선이 터졌거나, 똥꼬가 터졌거나 둘 중의 하나 아냐?”
빨간 단발의 농담에 다른 두 여자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내는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
미지가 물었다.
“내가 데리고 올게.”
사내의 대답에 탱크탑이 입꼬리를 늘리며 말했다.
“왜? 너도 대주게?”
다시 터진 웃음바다 속에서 미지가 사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냥 나랑 하지?”
사내는 얼굴이 붉어진 가운데, 못 이긴 척 미지에게 끌려갔다. 다시 하나가 되듯이 얼굴을 겹친 두 사람을 보며 두 여자가 뜨거운 농담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 화장실에 간 두 남자는 위기에 봉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