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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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가장 먼저 간 곳은 공원이었다. 반 친구 중에는 심야의 음침한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검은 손과의 거래 같은 걸 상상하기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단유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저녁 시간대의 공원은 일을 마치고 온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 겸, 혹은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산책을 나온 이들이 많았다. 단유는 그 행렬 속에서 조용히 묻혀 걸어가다가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공원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벤치로 향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시작하였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단유와 지금의 단유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현대문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을지도 몰랐다. 특히 방학 전에 있었던 인터넷 악성 댓글 사건 이후, 단유는 인터넷이란 도구를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효용성에 대해서는 아직 100% 확신하지는 못하지만―그리고 그것은 단유가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그래도 특정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정한 정보란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가 그럴 것이다.
「마약」
주제어를 검색창에 넣고 검색을 했더니, 주르륵 검색결과를 보여주었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 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컴퓨터는 거실에 있었고, 거실에는 명수와 상미가 있고, 선생님의 눈도 쉽게 닿는 곳이라 이런 단어를 여유롭게 검색할 수는 없었다.
좀 더 구체적인 주제어로 검색결과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단유는 이것저것 집어넣어서 검색을 했다. 4인치도 되지 않는 조그만 액정에서 단유만 볼 수 있는 화면이건만, 괜히 사람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눈앞에 들고 검색을 계속했다.
30 여분을 소비한 후,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약 구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유 역시 ‘정당하게’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럴 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검색 도중에 합리적인 방법을 떠올린 단유였다.
‘어둠 속에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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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 어디 멀리 갔나?”
식사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단유를 걱정하는 선생님을 보던 명수가 말했다.
“전화해 볼까요?”
그러면서 이미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나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상하네? 전화기 두고 갔나?”
하지만 단유의 방에서는 핸드폰이 발견되지 않았다.
“오늘 단유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상미가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그게···나도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 사실,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계속 잠도 못 자는 거 같고, 늘 피곤해 보이고 그렇던데.”
그런 이유 때문에, 아까도 방에 홀로 들어가 있는 단유를 부르려다 그만두었던 상미였다. 피곤해 보이는 애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런 상미의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그렇긴 한데, 2학기도 시작되고 하니까, 좀 더 무리해서 공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일단 그냥 두고 봤는데, 니 눈에도 그렇게 많이 피곤해 보였다면,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는걸?”
상미와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명수는 말없이 핸드폰만 들고 있었다. 사실 명수는 자신이 다친 사실보다 단유의 이상이 더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다른 사람은 이상한 것 같은데, 라고 느끼는 중이었지만 명수는 이상하다, 고 확신을 하던 중이었으니까.
‘분명히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성격이 변했다고 느낄 정도로 차분함이 많이 사라지고,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일상의 루틴이 무너진 건 아니어서, 새벽에 일어나 함께 운동하고, 등교하고, 하교하는 시간은 꼬박꼬박 지켰던 단유였다. 그저 느낌이 이상하다고 해서 단유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기에는 그간 단유가 보여온 완벽함이 걸렸다. 자신만 해도 새로운 도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는데, 아무리 단유라지만 아무렇지 않을 리 없다는 게 명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밀려들었다.
“아무튼, 우리끼리 우선 먹자. 국 식겠어. 단유는 나중에라도 데워서 주든가 해야지. 먹자.”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단유 때문에 식사를 참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 선생님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명수와 상미 두 사람도 말없이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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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네온 싸인이 빛나는 거리, 일전에 갤럭시즈를 따라서 와 본 적이 있던 유흥가 거리였다. 그때는 의도치 않게 이상한 일에 말려들면서 정체가 드러날 뻔도 했지만, 다행히 별 탈이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유흥가의 뒷골목에 꽤나 음험한 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소위 ‘불량배’라고 칭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마치 토엔이나 포세와 같이. 그런 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게, 단유의 생각이었다.
‘이 세계나 저 세계나 결국 사람들이 사는 동네니까, 비슷할 거야.’
비슷하기를 바라며, 단유는 뒷골목을 전전했다. 과연 유흥가의 뒷골목은 처음에 가졌던 생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초저녁인데도 이미 흥청망청 취해서 비틀거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남녀가 허리를 부둥켜안고 저렇게 걸으면 힘들 텐데, 하는 자세로 걷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간간이 이마에 인상을 쓰고 다니는 무리도 볼 수 있었는데, 불량배인지 아니면 그냥 인상이 좋지 않은 대학 체육과 학생들인지 구분이 잘 안 되었다.
애초에 겉모습으로 판단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그들은 단유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지나갈 뿐이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는 중학생에게 훈계를 하려는 마음을 먹은 이들은 그 이후에도 없었다. 때문에 단유는 편하게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역시나 생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어쩐지 ‘암흑의 소굴’ 혹은 ‘악의 발상지’ 같은 기분도 있어서 찾아와 봤는데, 악은커녕 술 냄새와 구토의 흔적만 발견될 뿐이었다.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이미 주변 환경과 하늘의 색을 통해 많이 늦었음을 깨달았다. 단유는 일단 철수를 결정했다.
‘한 번에 이룰 수는 없는 법이구나.’
생각해보니, 원래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차라리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냐, 는 말 대신 선생님은 밥 먹었냐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그리고 이미 국을 데워서 식탁을 다시 차려주는 이모님이셨다.
“이것만 차려주고 난 퇴근해야겠네. 설거지는 단유 네가 해야겠다. 늦었으니까, 벌이야. 알겠지?”
웃음기 가득한 이모님의 말에 단유는 고맙습니다,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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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방에 홀로 들어와,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단유가 대답을 하자, 천천히 문이 열리고 명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들어가도 돼?”
단유는 벌떡 일어나 명수를 부축했다.
“야, 그 정도는 아냐. 혼자 걸을 수 있어.”
“무리하지 마. 빨리 나아야 할 거 아냐?”
명수는 연신 괜찮다고 하면서도 단유의 부축을 애써 거절하지는 않았다. 단유의 침대에 앉은 명수를 향해 단유가 궁금증을 드러냈다.
“갑자기 웬일이야?”
혹시 상미가 집에 가서 심심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하던 단유의 귀에 명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명수는 팔을 뒤로 뻗어 몸을 살짝 뒤로 기울였다.
“역시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
단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다들 너 걱정해. 나도 그렇고.”
단유는 가만히 있다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별일 없다. 그리고 니가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하다. 무슨 청춘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너 너무 TV를 많이 본 거 아니야?”
그러나 명수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지금 니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해. 너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애 아니잖아?”
단유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런 식이라니?”
“예전의 너라면, 걱정할 거 없다, 아무 일 없다, 라고 확신을 주는 말을 했을 거야. 아니면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고민이 있지만, 곧 해결될 거다, 라는 식으로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겠지. 그런데 지금 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려고 하잖아. TV도 안 보는 니가 청춘 드라마니 뭐니 하는 거 어울리지도 않아.”
명수의 말에 단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명수의 말대로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명수가 단유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간단한 문답에서 단유의 이상한 점을 바로 캐치해 내니까.
“맞아, 사실 일이 조금 있어. 그리고 니 말대로 금방 해결될 문제야. 다른 사람들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서 그랬어.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마. 그리고 그 시간에 니 다리나 신경 써. 빨리 나아야 하잖아.”
“내 다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너처럼.”
명수가 다소 심술이 난 어조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계속 뭔갈 감추려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 너 지금까지 그런 적 없잖아?”
아니, 사실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감춘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걸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걸렸다는 게 다를 뿐.
“감추는 거 아니고, 정말 시답잖은 일이라서 말하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진짜 괜찮다.”
“시답잖은 일이 뭔데? 정말 별거 아니면 이야기해봐. 내가 다리가 이래서 도와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들어는 줄게. 고민이 있으면 나누라는 말도 있잖아?”
“그렇게 나누고 자시고 할 문제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명수는 끈질겼다.
“솔직히 방학 전부터 너 이상했거든? 그런데 다들 아무 말 안 하고 있고, 너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어서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을 뿐이야. 너무 더워서 그렇던지, 아니면 1학기 때 있었던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확신은 못 해도 대충 그런 이유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거야. 그런데, 지금 너 나아지지 않잖아? 상미도 오늘 너보고 좀 심한 것 같다고 그랬어. 알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너 조금 문제 있다고.”
단유는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야, 명수야. 내가 아무 문제 없다고 했지? 내가 지금까지 너랑 함께하면서 거짓말 한 적 있어? 없었지? 내가 문제가 없다고 하면 없는 거야.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서 그래? 게다가 고작 상미 걔가 한 마디 했다고 그러는 거야? 걔가 날 잘 알아? 걔보다 니가 더 날 잘 알잖아? 그럼 니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명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뭐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몰아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말이야···.”
단유는 입을 급히 다물었다. 명수의 얼굴이 새파랗다 싶을 정도로 질린 표정이었다. 반대로 그의 눈은 불신의 빛이 서리는 중이었다.
“김단유.”
단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정말 이상해졌다.”
단유는 시선을 돌렸다. 책상 위에 하얀 지우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뻗어 그 지우개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들 지금 널 걱정하는데, 넌 왜 화를 내는데? 내가 널 욕했냐, 뭘 했냐? 응? 내가 물으면 안 될 거라도 물었냐? 응? 제기랄, 나는 그냥 니가 하자는 대로 그냥 입 처닫고 따라만 가면 되는 거야? 응? 말해봐, 씨발놈아.”
점점 격앙되는 명수의 목소리. 단유는 가슴 속에서 온갖 감정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러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소용돌이에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