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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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을 마치고 학교 갈 준비까지 마친 단유가 명수에게 갔다.
“뭐 해?”
명수는 아직 교복도 챙겨입지 않은 채였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웅크리고 있는데, 등을 돌린 채여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냥 좀.”
고개만 돌려 대답하는 명수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단유는 다가가서 명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명수의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았다. 명수는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아까 운동하다가 살짝 접질렸는데, 조금 아프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을 감출 수는 없었다. 주전으로 뽑힌 후, 얼마 남지 않은 추계 축구 대회 준비 때문에 운동량을 늘린 명수였다. 이번에 확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서 입지를 다지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던 명수에게 비상이 걸린 셈이었다.
“많이 아파? 병원 가봐야겠어?”
“아냐, 그 정도는. 걸을 수는 있어. 아까 같이 왔잖아.”
모르는 사람들은 명수가 까불고 가볍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는 명수였다. 일부러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단유는 그가 일부러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올게. 무리하다가 나중에 더 큰 일 만들지 말자. 알았지?”
“병원 가야 돼?”
굳이 단유에게 확인받지 않더라도 알 수 있지만, 명수는 물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후, 명수는 선생님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고, 단유만 홀로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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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다친 거야?”
채윤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명수의 안부를 물었다. 채윤은 결국 새벽 운동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키에 대한 걱정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괜찮을 거야.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병원에 갔으니까, 낫기도 빨리 나을 테고.”
확신은 못 하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답했다. 채윤의 뒤를 이어 지태가 물었다.
“그럼 이번에 축구 대회 나가기 힘든 거 아냐?”
확실히 대회가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이라 부상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설령 명수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팀에서는 명수를 대신해 뛸 사람들이 많았고, 굳이 명수가 뛰어야 한다는 것도 없었으니 출전이 불확실할 수도 있었다.
“중학교 축구팀이라 아무래도 아이들의 건강이 우선이겠지.”
단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했다. 아직은 결정된 게 없는데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을 안고 등교를 한 단유는 수업시간에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늘 생각하던 부분이긴 했지만, 이 세상에서 단유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명수였다. 때문에 더욱 각별하고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책을 들여다보는데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때, 그 능력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고 보니, 더욱 그 능력이 갖고 싶어졌다. 칼에 찔린 상처도 완치시키던 능력이었는데, 접질린 부상 따위야 금방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김단유!”
단유는 옆에서 쿡쿡 찌르는 느낌에 정신이 들며, 고개를 들었다. 도덕 선생님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수업 시간에 딴생각이나 하고 있고···. 전교 1등은 공부 안 해도 선생님이 아무 말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이들이 오오, 하는 기묘한 탄성을 질러댔다. 단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잘못을 시인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정신 차리자, 응? 1등이 모범을 보여야지, 안 그래? 아니면 별로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서 집중 안 하고 그러는 거야? 아니지?”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결코 그런 생각이 아님을 밝혔다.
“아닙니다.”
“그래, 그럼 집중해라. 다른 사람들도 집중하고, 거기 너. 이제 잠 깼니? 잠 깬 김에 수업 좀 듣자?”
짧은 웃음소리를 끝으로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과서를 읽고 짧은 주제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과 몇 가지 테마를 주제로 한 발표 수업이 이어졌다. 하지만, 선생님에겐 미안하게도 단유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눈은 칠판을 향하지만, 정신은 계속 명수에게 향했다.
예전에 명수가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걱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괜한 불안과 초조함이 단유를 잠식해갔다.
“단유야.”
또 정신을 팔고 있었던지, 단유가 정신을 차리자 눈에 걱정을 담은 지태와 채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이상하다? 오늘 완전히 정신이 나갔는데?”
“멘탈이 나가는 정도가 아닌데, 이건? 얼굴색도 안 좋은 거 같고.”
단유는 괜히 볼을 쓰다듬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아마 수업시간이라서 선생님이나 명수가 연락하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자기가 이렇게 걱정을 하는데도 연락이 없다는 것에 괜히 화도 나고, 또 걱정도 들었다.
잠시 시간을 확인한 단유는 핸드폰 단축번호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몇 번의 울림 뒤에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전데요.”
「아, 단유니? 쉬는 시간이야?」
“예.”
「그렇구나. 아, 명수는 괜찮아. 크게 다친 건 아니라서 지금 깁스하고 학교 가는 중이다.」
단유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깁스’를 했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깁스까지 한 거예요?”
「부상이 빨리 나으려면 깁스를 해야 한다더구나. 단유야, 선생님이 운전해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네.”
단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두 친구가 달려들었다.
“명수 깁스했어?”
“많이 다친 거야?”
단유는 들은 대로 알려주었다.
“다음 쉬는 시간에 가서 보면 되겠네.”
“그래.”
지태와 채윤은 자리로 돌아갔지만, 단유의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한 시간이 지난 후, 단유는 명수네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앞에 다가가니 단유의 얼굴을 아는 7반 아이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명수를 가리키며
“아까 왔어.”
라고 알려주었다. 단유는 고개를 간단히 끄덕여 보이곤 명수에게로 향했다.
“왔어?”
태평한 명수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느꼈다’고 생각했다.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괜찮아? 많이 다친 거야? 의사선생님이 뭐라셔? 오래 있어야 돼?”
명수는 진정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냐, 1주일만 깁스하고, 2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면 바로 뛰어도 아무 문제 없대.”
밝은 얼굴의 명수였다. 다만 공교롭게도 명수가 말한 기간은 3주였고, 바로 그 3주가 지나면 바로 추계 대회라는 점. 명수 역시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던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깁스 풀고 대회 출전해도 괜찮을 거야.”
명수가 단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적당하게 맞춰진 기간인지라 단유는 의심이 들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무리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냐, 진짜 괜찮아. 별거 아닌데, 더 빨리 나으려고 깁스 한 거야.”
단유가 시선을 내려 명수의 오른쪽 발목을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깁스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의식한 명수가 발을 까닥거려 보였다.
“싸인이나 하고 가라. 쉬는 시간 다 끝났어.”
단유는 손에 쥐여주는 펜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끄적거렸다.
“응? 뭐야?”
명수가 바라보니, 단유는 단순히 싸인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야, 그게 무슨 공책이라도 되는 줄 알아? 왜 거기다 계산을 하고 있어?”
단유는 명수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쓰던 것을 마저 썼다. 끝까지 쓰고 난 후에야 펜을 돌려주었다.
“이거 지우지도 말고 그대로 둬. 알겠지? 부적 같은 거야.”
명수는 멋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유가 직접 써 준거라, 알겠다고 대답했다.
“근데, 이게 뭔데?”
“건강을 기원하는 숫자.”
그런 것도 있냐는 듯 눈동자를 동그랗게 굴리던 명수는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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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내측의 삼각 인대가 손상되었는데, 정확히는 2도 염좌라고. 그래서 회복 기간이 대략 4주에서 8주 정도가 되는데, 깁스는 1주일 뒤에 풀더라도, 지금의 부상 정도라면 재활치료와 동반해서 치료해도 완전 회복을 하는 데는 4주 이상이 걸릴 거라고 하더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유는 인상을 와락 썼다. 불안한 예감이 빗나가지 않은 것에 화가 났고, 중요한 기회를 맞은 명수에게 생긴 불행에 대해 화가 났다. 그리고 함께 운동했던 자신이 빨리 눈치채지 못했던 것에 화가 났다. 요즘 쓸데없이 이상한 데 꽂혀서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지만 않았어도 명수의 부상쯤은 빨리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명수가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자신 때문에 명수가 다쳤다는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네 탓 아니야.”
단유가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명수 다친 것 때문에 마음 쓰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걸 네 탓이라 생각하면 안 되지. 네가 신도 아니고, 사람이 다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니? 그것도 그냥 달리다가 접질렸을 뿐인데. 다만 좀 심하게 접질렸던 모양이지만.”
단유는 선생님께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뭘?”
“명수 다친 게 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요.”
선생님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유야. 내가 그래도 너희랑 지낸 시간이 있는데, 네 얼굴에 드러난 표정 하나 못 읽겠니? 아주 얼굴에다가 내 탓이요, 하고 써놓았는데 그걸 모르겠니?”
단유는 당장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 싶었다.
그 일로 명수는 추계 축구 대회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명수가 억지를 쓰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결국 무리하게 할 수 없다는 축구팀 감독님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니가 무슨 만화책 주인공도 아니고, 지금이 영광의 시간인 것도 아니잖아? 앞으로 남은 네 미래를 지금 이 순간에 고집부려서 날려 버릴래? 지금 아니더라도 기회는 많으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회복에만 신경 써라. 일단 깁스 풀 때까지는 훈련에 안 나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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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명수는 소파에 엉덩이를 묻고 깁스한 다리를 스툴 위에 올린 뒤, 손에 게임 컨트롤러를 들었다.
“야, 야. 좀!”
“입으로 게임 하나?”
“야, 나 다쳤잖아?”
“다리를 다쳤지, 손을 다친 건 아니잖아?”
상미는 인정사정없이 버튼을 연타하여 캐릭터를 경기장 끝까지 끌고 갔다. 곧 골키퍼와 1:1이 된 상황, 상미는 여유롭게 골을 집어넣었다.
“이예!”
상미가 두 손을 번쩍 들었고, 명수는 입술을 삐죽였다.
“넌 어떻게 다친 사람한테도 봐주는 게 없냐?”
“야, 게임에 봐주면 재미없어.”
상미는 명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상미가 있어서 명수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저렇게 툴툴대는 동안에도 게임 패드를 놓지 않는 것이리라.
“그런데 단유는 뭐하는 거지?”
그렇게 상미와 명수가 어울리고 있을 때, 단유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
“공부하나 보지.”
명수가 메뉴 키를 조작해서 다음 게임을 설정했다.
“나오라고 할까?”
상미가 넌지시 묻자, 명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냥 둬.”
“왜?”
상미는 이럴 때일수록 곁에서 힘도 북돋아 주고 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물었던 것인데, 명수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래 보여도, 나 때문에 걱정 많이 했어. 차라리 이렇게 있는 게 서로 편해. 나도 단유가 나 때문에 신경 쓰고 걱정하는 모습은 보기 싫으니까.”
이게 바로 남자의 우정이란 거다, 라며 이죽대는 명수를 바라보고, 단유가 있을 방을 한 번 쳐다보다가 이윽고 시작된 게임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 번 봐줄까?”
“됐어. 꼭 이기고 말 테니까.”
명수는 각오를 다지며, 버튼을 눌렀다.
그 시간, 책을 보고 있으리라는 두 사람의 예상과 달리 단유는 책상 앞에 앉아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해보자, 꼭.”
단유는 힘이 필요했다. 이제까지 추구했던 ‘힘’과 다른 진짜 ‘능력’이 필요했다.
‘한 번 했던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단유는 이를 꽉 깨물었다. 명수를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