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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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자신의 이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선생님께 물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분이니까, 자신의 이름을 잘 해석하지 않을까 하고. 그랬더니 선생님은 과연 노련하게 대처하셨다.
“이런 것도 있어요?”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니?”
선생님은 핸드폰으로 역술 사이트를 찾아가 단유의 이름을 넣었다. 사주도 넣어야 하는데, 단유는 보육원에서 쓰던 생일을 알려주었다.
“보자, 사주팔자는 태어날 때 정해지지만 이름은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습니다. 타고난 사주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름에서 보완해 주어야 합니다?”
첫머리에 등장한 글귀를 읽고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이게 다 ‘상술’이라며 그냥 재미로 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단유의 이름을 해석한 결과를 읽어주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의가 있어 대내외적으로 성공하여 안락하고 부귀영화를 누려 후손에게까지 전달되고 건강 복까지 장수하는 운이 유도된다.”
“우와, 단유 너 성공한대!”
옆에서 호빵을 안고 있던 명수가 더 신이 난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읽어나갔다.
“의사, 정치가, 관공직 계통이 적성에 맞아 성공한다. 너, 의사 할 거니? 너 성공할 수 있다는데?”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단유는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천(天), 인(人), 지(地) 삼재(三才)가 나를 돕는 격으로 대내외적 활기가 충만하고 대길하며 심신이 건강하여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다, 고 하는데?”
“우와 좋겠다. 단유, 너 이름 되게 좋은 거구나?”
명수가 한껏 부럽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 것도 봐줄까?”
기다렸다는 듯 명수가 대답했다.
“네!”
선생님은 잠시 시간을 들여 명수의 이름과 사주를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 페이지가 로딩된 후, 선생님은 그 결과를 명수에게 알려주었다.
“보자. 이건···아까 똑같은 작명소 안내문이고, 여기부터네.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의가 있어 대내외적으로 성공하여 안락하고 부귀영화를 누려···.”
명수는 자신도 성공한다는 말에 들뜬 얼굴이 되었다가,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질수록 조금씩 얼굴이 굳어갔다.
“선생님, 그거 제 거 맞아요?”
“맞아, 봐봐.”
선생님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과연, ‘인명수’라는 이름이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왜 단유랑 똑같아요?”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명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단유만큼 좋은 이름이라는 뜻이겠지. 여기 봐. 심신이 건강하고 천수를 누린다고 되어 있지? 너도 좋은 이름이란 뜻이야.”
실상은 작명 사이트의 상술에 따른 일이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명수는 자기도 좋은 뜻이라고 이해해 버렸다. 다만 단유는 흥미를 잃고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
2학기의 시작은 처음이 낯설었을 뿐, 그다음은 마치 언제 방학이 있었냐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살짝 그을린 얼굴도 있고, 아주 하얗게 변해버린 아이도 있었다.
“넌 얼굴이 왜 그러냐?”
“왜?”
“너무 하얗잖아? 무슨 병에라도 걸린 거야?”
“아니, 햇빛을 못 봐서 그런지도.”
“무슨 일 있었어?”
“악마의 게임에 손을 대고 말았다.”
친구는 엄지를 추켜세워 그 아이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다.
익숙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들의 머리 위로, 1교시를 알리는 알림 소리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내려와 들뜬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여름도 다 지났는데, 누가 에어컨을 켰어!”
1교시를 맡은 수학 선생님이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냉기에 인사 대신 에어컨 스위치를 찾았다.
“아직 더운데요!”
“더운데 함 봐주세요, 쌤.”
아이들은 마치 짠 것처럼 하소연했다. 선생님은 이 녀석들, 혀를 차며 한 번 봐준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둘러본 뒤, 교탁에 섰다.
“방학 잘들 보냈고?”
“네.”
“방학 동안 놀기만 했다, 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얼굴에 웃음을 담아 말했다.
“좋다. 학생이 방학이라고 놀기만 하면 안 되지.”
선생님은 준비해온 쪽지를 분단 별로 나누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쪽지 시험 치고 가자.”
“아아! 쌤!”
아이들의 저항은 가볍게 묻혔고, 선생님이 전해준 쪽지는 손에 손을 거쳐 가장 뒷줄에까지 이르렀다.
“5문제밖에 안 되니까 10분이면 되지?”
“아아! 쌤!”
“좋다. 20분.”
그리고 20분간 교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이라 더위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아직 학교로 복귀하지 못한 정신을 수습하느라 정신없던 이들에게 쪽지는 특효약이었다.
단유는 문제를 보자마자, 답이 떠올랐다. 애초에 10분 만에 풀―하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20분간 풀 수 있게 된―간단한 문제였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빨리 수식이 머릿속에 완성되고 그 해가 구해진다는 느낌이었다.
저쪽 세계의 마약이 여기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며칠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특별히 의심스럽거나 걱정스러운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안심하고 있던 단유였다.
“다 풀었냐?”
“네.”
“역시 전교 1등은 다르다. 그치?”
주변의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려 했건만, 아이들은 문제를 푸느라 바쁘거나, 혹은 그냥 대답을 피했다.
1교시가 끝난 후, 돌아온 정신을 수습한 아이들은 빠르게 학교에 적응했다.
“2교시가 영언데, 이것도 쪽지 시험 치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아이들은 혹시 몰라 영단어 숙어집을 꺼내거나, 교과서를 살펴보거나, 혹은 책상에 엎드려 부족한 수면을 채웠다.
하지만 또 일부는 방학 동안의 진귀한 체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키하바라 가봤냐? 와, 죽이더라.”
“진짜? 혼자?”
“형이랑 같이 갔지. 엄빠는 호텔에서 쉬고, 형이랑 나랑만 갔거든. 근데, 완전 대박.”
“왜?”
“만다라케라고 알아? 거기 있잖아, 8층짜리인데, 거기 있잖아, 별의별 거 다 팔거든? 막 피규어도 팔고, 게임도 팔고, 만화책도 파는데 우리 형이 거기서 하나 샀거든?”
아이는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씨발, 인터넷에서나 봤지, 실제로 이렇게 파는 건 처음 봤다. 근데, 졸라 대박.”
아이는 형 몰래 가져온 책을 펼쳐 친구들에게 진귀한(?) 구경거리를 선사했다.
지태와 함께 있던 채윤이 고개를 빼고 흘끔 구경하려는 모양새를 보이자, 지태가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가서 보고 와. 여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아냐, 괜찮아.”
볼이 빨개진 채윤이 고개를 저었다.
“뭐 어때서? 궁금하면 볼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창피해하지 마.”
“뭘 어쨌다고 그래? 괜찮다니깐.”
지태가 짓궂게 놀리자, 채윤이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채윤의 반응이 재밌어서 더 놀리려다,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는 단유의 모습에 화제를 돌렸다.
“너 무슨 일 있어?”
단유는 지태를 보았다.
“아니, 없는데?”
“그래? 근데 오늘 좀··· 이상하다?”
“뭐가?”
지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예전이랑 다른 분위기인데, 뭐가 달라졌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다르거든?”
지태의 말에 채윤이 즉각 반응했다.
“책을 안 보잖아.”
“아! 맞네.”
“그리고 머리 스타일도 좀 바뀌었고. 방학 전에는 4:6? 3:7? 뭐 그 정도 가르마를 탔었는데, 지금은 가르마를 안 탔잖아.”
“아! 우와 대박.”
채윤은 계속 단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얼굴이 조금 탔나? 그건 좀 애매하긴 한데, 조금 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리고··· 앉은키도 커진 거 같긴 한데, 그냥 키가 커진 걸까?”
“너 무슨 단유 스토커냐?”
지태가 채윤을 지긋이 쳐다보며 물었다. 채윤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했다.
“그 정도는 관찰력이 좋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야. 오히려 그걸 모르는 니가 너무 눈치가 없는 거 아냐?”
“굳이 그런 걸 알아야 하냐?”
“굳이 알려고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거지.”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 내가 무슨 틀린 그림 찾기도 아니고, 뭐냐?”
“음. 이것 봐. 말투도 조금 변한 거 같다.”
“말투?”
지태가 또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또 바로 이해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렇네. 내가 이상하다는 게 그거다.”
“뭐?”
“너 변성기야?”
“응?”
단유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얼굴로 지태를 바라보는데, 채윤이 덩달아 손가락을 퉁기며 지태의 말에 수긍했다.
“아, 그러네. 단유, 너 변성기다.”
“어?”
단유는 저도 모르게 목에 손을 가져갔다. 어떤 조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변화, 변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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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꿈을 꿨다. 숲속을 뛰어놀던 아이가 숲을 뛰쳐나오는 꿈이었다. 그 아이는 숲에서 약초를 구한다거나, 나무껍질을 뜯는다거나, 떨어진 가지를 줍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직 빛이 새어 들어오는 숲속을 뛰어다닐 뿐이었다. 숨이 가쁘도록 뛰어다니다, 마침내 숲속을 빠져나오는 게 다였다. 아이는 언덕을 지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높은 자작나무 2그루가 뒤편에 심어진 목조 건물의 두꺼운 현관을 열었더니, 구수한 냄새가 아이의 코를 찔렀다.
“엄마!”
아이의 부름에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았다. 어머니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팔을 벌려 뛰어오는 아이를 맞이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를 번쩍 안아 든 뒤,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 떠 놓은 물로 아이의 얼굴과 손을 간단히 씻긴 후,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식탁에 앉혔다.
“배고파.”
어머니는 웃으면서 곧 화덕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내어 도마에 올렸다. 그리고 아이가 먹기 편하도록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접시에 놓은 뒤,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이가 급히 손을 뻗어 먹으려 하자,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 눈웃음을 짓던 어머니는 곧 컵에 하얀 우유를 담아서 아이 앞에 내놓았다. 그렇게 식사 준비가 끝난 후에야 마주 앉은 어머니는 아이가 식사해도 되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잘먹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빵에 손을 가져가는데,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었다.
“몇 개니?”
아이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뻗던 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의 어머니는 여전히 고아한 얼굴을 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빵, 몇 개니?”
아이는 고개를 숙여 접시에 올려진 빵을 세어 보았다.
“몇 개니?”
다시 한번 묻는 어머니의 물음에, 아이는 대답했다.
아니 대답을 하려고 했다.
“단유야.”
단유는 번쩍 눈을 떴다.
“우와, 너 잘 잔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잠이 와? 어제 잠 못 잤어?”
상미가 단유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단유가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명수를 따라 조기축구회를 나온 참이었다. 물론 명수만 뛰고 단유와 상미는 관중석에서 명수를 응원하는 역할이었다.
“뭐라고 했어?”
단유는 상미가 자신에게 뭔가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막 응원하는데 갑자기 니가 어깨를 들썩거리길래 보니까, 자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그냥 보는데, 니가 눈을 뜬 거야.”
단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아저씨들이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운동장을 누비는 중이었다. 누가 보면 발 대신 입으로 축구하냐고 한소리 했을 장면이었다. 그런 와중에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놀라는 단유였다.
“무슨 꿈이라도 꿨어? 너 조금 전에 얼굴 되게 심각했어.”
단유는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충이나마 조각난 기억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서 깨기 전, 빵이 몇 개냐고 묻던 질문에 답하려던 그때,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이르렀다.
‘몇 개였지?’
어쩐지 그 숫자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만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나지 않아서 더 알고 싶은, 그런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