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60화 (260/956)

상승(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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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는 아까와는 다른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아파 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과, 미지의 존재가 이야기하는 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루치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혹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완전(完全)이란 무엇이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 왜 완전해야 하느냐? 완전이야말로 자유이며, 해방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홀로 서기를 원하며 홀로 완벽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네가 바라본 이 세상의 진실이다. 모두의 목표와 모두의 진실이 무엇이더냐? 완전이다.”

루치드가 바라본 수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목적과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목적과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숭고했고, 목표는 뚜렷했다. 그래서 루치드는 그 수들의 변화와 진화에 대해 손을 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미지의 존재가 말했다. 그것은 ‘완전’을 향한 진화이며, ‘완벽’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일부는 의식적으로 진화해나가고, 일부는 깨닫지 못한 채로 그 길을 걸어나간다. 그 사람의 성격, 성향, 환경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그렇게 ‘완전’의 길을 걸어간다. 다만 이를 빨리 깨닫는 사람과 늦게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 길 위를 빨리 달리는 사람과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존재는 단언했다. 루치드는 혼란의 와중에도 존재의 이야기를 흘려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은연중에 원했던 것, 이라고 이해했다. 자신이 그토록 생존의 갈망으로 지식을 갈구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완전’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역사적으로도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을 살피면, 모두 완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과학의 발전, 철학의 깊이, 학문의 진보가 모두 그런 완전의 길을 걷는 와중에 발생한 여파가 아닐까?

“그렇다. 그리고 너는 다른 누구보다 빨리 완전의 길을 깨닫고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지 않으냐?”

루치드는 중간이 생략된 존재의 말에 궁금증을 드러냈다.

“어떤 기회요?”

그는 쉽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우습구나. 여전히 ‘완전’이 무엇인지를 모르다니. 완전함이란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홀로 완벽한 것이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를 갈구한다. 자유가 무엇이냐? 자신을 얽매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이다. 자신을 얽매는 것은 자기 안의 부족을 채우려는 욕심과 욕망의 산물이다. 하지만 주변의 것들로 자신을 채운들 그것이 채워질 성질이냐? 그러니 사람은 ‘홀로’ 서야 한다. ‘함께’해서 완벽해지는 경우가 있을까? 없다.”

루치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홀로 태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있고, 가족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결핍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걸 왜 모르느냐?”

“네?”

존재는 뒷짐을 지고 루치드 주변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느냐? 그럴 것이다. 그들이 너의 부족함을 채워주니까. 가족이 있어서 힘이 생긴다고? 그럴 것이다. 그들이 너의 허약함을 가려주니까. 그러니 생각해보아라. 가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가족이 없기 때문에, 너의 부족함을 니가 원하지 않더라도 채워주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넌 오롯이 혼자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너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너의 힘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너의 결핍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는 동작을 하며 루치드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부모가 없이 어린 아이가 어떻게 자랄 수 있어요? 부모가 없으면 아이는 먹지도, 자지도 못할 거에요. 그리고 배우지도 못할 거고요.”

그는 다시 뒷짐을 지고는 루치드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래서 사람은 완전에 다다르기 어려운 이들인 것이다.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배제된 채 태어나니까 말이다. 그래서 빨리 걷는 이와 느리게 걷는 이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완전’에 이른 이가 고금을 통틀어 열이나 될까 할 정도로 적은 이유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펴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 하늘 너머, 또 다른 세상이, 더 넓은 세상이, 더 많은 세상이 존재함을 아느냐?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마저도 완전을 꿈꾸지만, 쉽게 다다르지 못한다. 그런데 말이다. 너는 다르다. 너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이 선천적으로 결핍을 안고 태어난 아이다. 그런데 너에게는 다른 길이 주어졌다. 넌 누구보다 빨리 그 길을 깨달은 아이다. 누구보다 빨리 완전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고, 그 길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아이다. 그래서 니가 마침내 택한 답이 무엇이더냐?”

루치드는 저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답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이 자신의 입으로 나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니가 선택한 길이다. 니가 여기 있는 이들을 버렸다. 여기 있었던 이들은 물론, 너의 가족도 버렸다.”

루치드는 귀를 막았다.

“그리하여 니가 얻은 능력을 보아라. 너의 결핍이 채워지면서 드러난 권능이다. 오로지 완전에 다다른 이들에게 주어지는 권능들이 너에게도 나타났다. 물론!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 그러니 너에게 나타난 그 권능 역시 완벽하진 않지.”

루치드는 이런 능력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생겼을 뿐이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 시공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넌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아직 자각 능력이 떨어져서 그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뇨! 아니에요! 전··· 이런 거 원한 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말했잖니? 권능이라고. 그것은 네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능력이다. 네 심장이 원래 그 위치에 있던 것처럼, 너의 권능 역시 원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전제가 틀렸다.

“난, 난 가족을 버리지 않았어요!”

“가족을 찾으려고?”

“예! 찾고 싶어요! 찾아야 돼요!”

“그래. 그게 바로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의 본능이다. 가족에게서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여, 다시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려는 사람의 본능. 그것이 바로 결핍이다. 너는 그저 그 결핍을 채우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좋아요, 다 좋아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을 찾게 해주세요!”

그는 루치드에게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루치드와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존재의 눈은 암흑이었다.

“어머니를 떠난 것도 너의 의지였다. 있지도 않은 동생을 만들고, 거기에 이름까지 붙여준 것이 너의 의지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찾으려 하니, 그것도 너의 의지. 그러니,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나, 언제나와 같이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다. 다만 오랜만에 완전자(完全者)에 다다른 이를 보고 안타까움에 조언을 해주고 싶어 이렇게 나타났으니, 이제 다시 나는 나의 길로 가야겠구나. 그리고 너, 그렇게 너의 길로 가거라. 다만, 너의 길에서 부디 길을 잃지 말아라. 이 역시 어쩌면 너의 길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관문일지도 모르니.”

그 존재가 루치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가 머리에서 손을 떼었을 때, 루치드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은 너무나 요상해서 그 뜻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커다란 석벽 앞에서 통곡하는 기분도 들었고, 명수와 함께 갔던 그 바다를 홀로 바라보며 그 장대함에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정신이 드니?”

루치드는 힘겹게 머리를 털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땅을 짚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허약한 팔이었던가?

“루치드, 정신이 드니?”

“네.”

그러다가 루치드는 번뜩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 안트?”

안트가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늙어버린 얼굴로 루치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루치드였군. 왜 여기서 자느냐? 잘 데가 없어서 그러냐, 아니면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이 그리워서 바닥의 흙이라도 핥고 싶었던 것이냐?”

안트식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루치드는 고개를 털었다. 그리고 안트에게 인사를 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신테에게 듣기로는 대륙으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신테도 만났던 것이냐? 흠, 뭐 어쨌든 그 말대로 대륙에 나가긴 했지. 그리고 이제 돌아올 때가 된 거 같아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그나저나 넌 정말 여기 왜 이러고 있느냐?”

안트는 루치드를 일으켜 세우고, 몸을 털어 주었다. 루치드는 잠시 자신이 왜 여기 있었던 가를 생각한 뒤 안트에게 대답했다. 녹스에 일자리를 찾으러 갔던 일, 오물 수거일을 하면서 간간이 빈촌에 대해 물었던 일. 그리고 우연히 마약을 접하고, 손을 댔던 일. 그리고 그 후의 일들까지.

“그러니까, 세상이 온통 숫자로 보였다?”

“네.”

“그리고 혹시나 가족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곳으로 왔고?”

“네. 그리고 여기서 약효가 떨어졌던 것인지, 더 이상 숫자가 보이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힘이 다했던지 쓰러졌나 봐요.”

루치드는 마지막에 느꼈던 극심한 탈력감에 관해 설명했다. 안트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요즘 대륙에서도 마약 때문에 말이 많은 것 같더라만, 네가 말한 것 같은 마약은 들어본 적이 없구나. 아마도 네가 좀 특별한 녀석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

세상을 숫자로 치환하여 바라보게 한다는 루치드의 환상은 루치드 만의 특별함 때문이라 생각하며 안트는 화제를 바꿨다.

“혹시 다른 문제는 없느냐? 나도 잘은 모르지만, 마약을 직접 섭취하는 경우에는 몸에 심각한 후유증이 생긴다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몸에 힘이 없긴 하네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요.”

안트는 루치드를 일으켜 세운 뒤, 가까운 집으로 들어갔다. 다 낡은 문은 안트가 손을 대자,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부서져 버렸다.

“내가 디아트리도 아니고 이렇게 힘이 셀 리가 없는데?”

안트식 농담에는 대꾸하기가 어려웠다. 루치드는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의자 위에 앉았다. 다행히 의자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흔적은 찾았느냐?”

루치드는 고개를 저었다.

“거의 숫자가 사라지기 직전이긴 했어요. 그런데, 적어도 우리 집 안에서는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어요.”

“잘은 모르겠다만, 내 생각에 30년 전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상하긴 하다만, 애초에 찾을 수 없을 것 같구나.”

주위를 둘러보는 안트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루치드 역시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아무래도 마약에 취해서,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마약이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라고 생각하며 루치드는 안트를 돌아보았다.

“안트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륙에 나가서, 깨달음을 이어나갈 자를 찾았고, 찾아서 수련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지.”

“그게 끝이에요?”

“그럼 더 있겠느냐? 다른 이야기는 모두 불필요한 것들일 뿐이다. 설마 내가 어떤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를 모두 들어야 만족하겠냐?”

루치드는 끝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트를 만나서 반갑네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쓰러졌던 걸 들켜서 창피하기도 하지만요.”

“그런 건 창피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이런 곳에서 널 만난 게, 지난 10여 년간 겪었던 일 중에서 가장 극적인 일이구나.”

루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루치드는 잠시 ‘극적인 일’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었다.

“왜 그러느냐?”

“제가 마약인 줄 알고도 먹었다면, 미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루치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 때는 마치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꼭 그 맛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안트에게 교육을 잘 받은 거 같아요.”

“내가 언제 너에게 마약을 먹어보라고 가르쳤던가? 비록 이 나이가 되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너에게 그런 걸 알려줬던 기억이 없는데?”

“그게 아니고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하셨잖아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마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니, 제가 한 행동은 어쩌면, 안트의 말을 잘 따른 결과가 아닐까 하는 거죠.”

“부디 농담이길 바라고, 그게 농담이더라도 굉장히 불편한 농담이구나. 의심할 여지 없는 곳까지 의심해보라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까지 의심했길래 마약을 먹어도 된다는 결론을 냈는지 들어보고 싶구나.”

루치드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사래가 걸려 콜록거리기까지 했다.

“농담이었어요. 아무튼 그 때는 그냥 마약을 먹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후에는 마치 제가, 제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어요.”

“어떻게?”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요?”

안트는 턱을 쓰다듬더니 대꾸했다.

“어쩌면 그게 너의 원래 성격일지도?”

“농담인가요?”

“아니, 이건 진담. 예전에 널 봤을 때도 좀처럼 감정표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서 말이야.”

“뭐, 아무튼 그때의 전 제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게 마약의 부작용이겠죠.”

“이미 숫자로 된 세상을 봤을 때, 부작용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드니?”

“그것도 그렇네요.”

루치드는 최대한 가벼운 이야기로 안트와 대화를 나눴다. 그래야만 마약의 잔재가 모두 떨어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가슴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거운 감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트는 루치드의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기라도 하는 듯,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읽어주는 상대역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충실히 대화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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