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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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게리였다면, 숙소로 가는 길이 유난히 한산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뒷골목이라지만, 구관 지구의 특성상 골목마다 온갖 부랑배들이나 비렁뱅이들이 어슬렁거리며 진을 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서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걸으려 애썼던 게리였다. 그런데, 지금 고통과 분노, 두려움에 휩싸인 게리는 제대로 주변을 파악하지 못했고, 마침내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저게.”
게리는 숙소 주위를, 정확히는 숙소 옆 토엔의 집을 포위하고 있는 경비대를 발견했다. 게리는 덜컥 겁이 났다.
“설마, 내가 이야기해서 저렇게 된 거야?”
지금까지는 토엔에게 적대적인 부랑패 패거리에서 자신을 고문한 것으로 생각했는데―그리고 그게 사실이었지만, 게리는 몰랐다―지금 상황을 보니 자신이 말한 것 때문에 경비대가 출동한 것으로 보였다. 적대 패거리의 준동 정도와 경비대의 출동은 비교할 수 없었다. 게리는 토엔과 같은 패거리로 엮여서 잡혀가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져 바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있는데도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게리는 다시 몸을 숨긴 채로 고개만 내밀어 상황을 주시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일단 토엔이 붙잡혀서 끌려가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분명 토엔의 집을 목표로 경비대가 둘러싸고 있음은 분명한데, 토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토엔을 붙잡으려는 경비대의 모습치고는 너무 얌전한 게 아닌가?
침을 꿀꺽 삼킨 게리는 잠시 눈을 돌려 숙소를 보았다. 바로 옆의 집이긴 하지만, 경비대가 포위망을 좁힌 까닭에 숙소 쪽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숙소의 뒷문 쪽에는 경비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 게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비대의 현 위치 등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그쪽까지 경비대가 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몰래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게리는 눈동자를 열심히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게리는 몸을 돌려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시간, 누군가의 접근을 경계할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던 경비대장은 다른 경비대원과 마찬가지로 토엔의 집이 수상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봐, 저거 이상한 거지?”
경비대장은 평소 본업에 충실하기보다는 대장직이라는 지위에 더 관심이 있긴 했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경비대장의 물음을 들으니, 아둔함을 직위로 감추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경비대원 함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상합니다. 쉽게 덤벼들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내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뒤에 기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면돌격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경비대장이 알아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경비대장은 함머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집을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말에서 내려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 체포된 포세와 토엔을 내려다볼 작정이었는데, 이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명 보내서 살펴봐.”
함머는 눈이 좋고 날랜 경비대원 2명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두 명은 곧 앞으로 나서 집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창문 따위는 만들어놓지 않은 집이고, 환기구는 한참 위쪽이라 키가 닿지 않기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오직 정문뿐이었다.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순식간에 어둠 속에 도사리는 독사가 되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입안이 바짝 말랐다.
다가선 경비대원 한 명이 한껏 몸을 숙이고 발을 재게 놀려 정문 옆 흙벽에 다가갔다. 뒤이어 반대쪽에도 같은 자세로 다가간 경비대원과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대원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어 집 안을 살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집 안은 조용하기만 할 뿐 아니라 너무 어두워서 도통 실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비록 지금이 한낮이라 태양이 정수리 위에 있어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라지만, 이렇게 실내가 어두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심지어는 정문에서 손 한 뼘 안쪽으로는 아예 빛이 어둠에 잘려 먹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왜 그래?”
한참 동안 집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도 보고가 없는 경비대원이 답답했던 경비대장이 소리쳐 불렀다. 경비대원은 경비대장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들어가서 살펴!”
경비대장의 명령에 화들짝 놀란 함머가 다급히 대장을 말렸다.
“아직 내부 상황을 모르는 지금, 대원을 안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괜히 애꿎은 동료의 희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그럼 어떻게든 상황을 알아봐! 저기서 멍청하게 모른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부하들이 꾸물거리는 이유가 자신이 엄하게 대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던지, 경비대장은 소리를 질러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한지를 알렸다. 효과가 통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함머가 경비대장을 달래려는데 정찰을 담당했던 경비대원이 그보다 먼저 집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단 한 발만 밀어 넣고 저 어둠 속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한 행동이었다. 그 순간, 경비대원의 몸이 무언가에 붙잡힌 것처럼 빠르게 어둠 속으로 끌어 당겨졌다. 빨려 들어가는 경비대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는데, 옆에서 대기하던 또 다른 대원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는 대원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쿵, 하며 잡은 대원 마저 바닥에 심하게 넘어졌고, 그 순간에도 바지를 놓지 않은 대원의 의지와 용기는 과히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 대원 역시 집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아니 어둠에 먹혔다. 그리고 다시 정적이 흘렀다.
경비대장은 물론이고 모인 이들 모두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는 저 집의 입구가 그냥 평범한 현관이 아니라,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대장님.”
경비대장의 정신을 깨운 것은 함머였다.
“어, 어?”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일단···물러났다가 다시 정비해서 올까?”
경비대장의 아둔함에 질려버렸다는 표정을 감히 드러낼 수 없어 이를 꽉 깨문 함머는 고개를 저으며 의견을 밝혔다.
“저희 대원 2명이 이미 저 집 안에 있는데,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저 옆에 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입구를 막고 양옆에서 벽을 부수고 들어가서 양동으로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입구가 좁은 탓에 대원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적을 제압하는 작전을 쓰기 어렵다면, 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붙잡힌 대원을 구하는 것은 물론, 안에서 기다리는 적들을 제압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 그럴까? 그럼 준비해.”
다른 좋은 생각이 없던 경비대장은 함머의 제안을 채택했고, 곧 함머는 다른 대원을 시켜 벽을 부술 수 있는 해머를 가지고 오게 했다.
그렇게 바깥에서 혼란을 수습하고 집으로 들이닥칠 준비를 하는 동안, 집 안은 또 다른 혼란이 수습 중이었다.
“다 됐다.”
루치드는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눈에 보이는 모든 고장 난 것들을 고쳤다. 만약 어떤 경고등이 집 안에 달려 있었다면, 계속 적색 경보를 보내던 경고등이 파란 불로 바뀌며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던 또 다른 불량품(?)도 고치고 나니, 주위의 모든 것이 바르게 흘렀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에 루치드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오랜 노동의 결과로 맞이한 휴식은 달콤했다.
반면, 그런 달콤한 휴식을 즐기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토엔이었다.
토엔은 갈가리 찢어졌던 정신과 육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지?”
조금 전까지 토엔이 느꼈던 감각은 단순히 고통 혹은 괴로움 따위로 묘사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녹슨 톱에 목이 천천히 썰려도 이토록 고통스럽진 않을 것 같았고, 코르크 따개로 가슴을 찌르고 심장을 도려내더라도 이렇게 미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감각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토엔은 오랫동안 충치 때문에 고생했다. 어찌나 심각한지 시시때때로 턱을 부숴버리는 듯한 통증 때문에 인상을 쓰는 게 습관이 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토엔의 표정을 보고 오해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토엔은 그 치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고통 때문에 아픔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닌가, 라는 가정도 했지만, 곧 진짜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어도 전혀 턱과 잇몸에 가해지는 충격과 고통이 없던 것이다.
“세상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잘못 몸을 놀려 무릎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무릎 역시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억지로 곧게 펴려 하면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다리를 곧게 펴고 뻗어도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니, 토엔은 평소 아팠던 여러 부위를 모두 점검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어깨의 결림이나, 얼마 전 생긴 종기 때문에 간간이 괴로워야 했던 등의 통증도 전혀 없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늘 자신을 괴롭히던 만성 통증이 사라지니 이토록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셨네요.”
옆에서 들려온 평온한 목소리에 토엔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서서히 어둠이 옅어지면서 주위가 밝아졌고 곧 자기 앞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루치드가 보였다.
그리고 그때 토엔은 자신의 시력마저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시력이 저하되어 가까운 사물도 흐릿하게 보이곤 했는데, 지금은 마치 자신이 십 대의 나이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선명하게, 루치드가 보였다. 땀에 젖은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서 흔들거리는 모습과, 미세하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턱, 잘게 떨리는 눈꺼풀의 움직임까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뭐 한 거야? 나한테 뭐 한 거야?”
토엔은 조심스럽게 루치드에게 물었다. 사정은 모르지만, 루치드가 ‘시작하겠다’는 선언 이후 자신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떠올린 토엔은 루치드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그냥, 고장 난 걸 고쳤을 뿐이에요.”
‘고장’이란 말이 만약 ‘병’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니가 날 ‘치료’한 거냐?”
루치드는 아래로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눈동자를 올리는 것뿐인데도 매우 힘겨워 보인다고 토엔은 생각했다.
“치료요? 아뇨, 그냥 ‘고장’난 거였어요.”
토엔은 루치드의 대답에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혹시, 그러니까···.”
토엔은 머릿속에 떠도는 단어들을 고르고 골라 힘겹게 뱉어냈다.
“의사···는 아닌 거 같고, 누, 누구시죠?”
루치드는 토엔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누구라뇨? 전 루치드에요. 아침에도 봤었잖아요.”
“아니, 근데, 어떻게 똥쟁···, 아니 죄송합니다. 저기···.”
토엔이 하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루치드는 키득거렸다. 그러다 사레가 걸렸는지 콜록거렸다.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 다시 토엔을 바라보던 루치드는 통증이 있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네요.”
“뭐?”
“아까는 너무 보기 흉할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이제 보기 좋다고요. 토엔을 바라보는 게 편하니까 말하기도 편하네요.”
잠시 숨을 고르던 루치드가 말을 이었다.
“이제 고장 내지 마세요.”
토엔은 머리를 저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지금의 말을 이해해 보자면, ‘건강하세요’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자신은 루치드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짓을 하지 않았다. 직업을 구해주긴 했지만, 사실 솔직한 말로 제대로 된 직업도 아니고 똥물이나 퍼다 나르는 더럽고 모두 기피하는 일인 데다가 일당도 많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일이나 주선한 주제에,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혔던 병들을 말끔히 낫게 해준 분(!)에게 ‘건강하라’는 인사말까지 들을 자격이 있을까?
“저기 근데, 왜 날 고쳐준 거···에요?”
루치드는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유는 말씀드렸잖아요. 보기 흉할 정도였다고. 보기 편하려고 고친 것뿐이에요.”
토엔은 루치드가 겸양을 떠는 것으로 생각했다.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이던 토엔은 머리를 긁어도 가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머리가 가렵고 긁으면 비듬이 쏟아지곤 했는데.
“아니, 사실 말이야. 내가, 아니 제가 그렇게 잘해준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제가 그···쪽 분한테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해서요.”
루치드는 가만히 토엔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오해세요.”
루치드의 대답에 토엔은 자기가 뭘 오해했는지, 자기가 루치드에게 잘 대해줬던 게 무엇이 있었던지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냥 제가 보기 편하려고 고친 것뿐이에요. 길 가다 떨어진 쓰레기 줍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토엔은 멍하니 루치드를 바라보았다. 쓰레기?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쪽 분들도요.”
토엔은 소리 나게 고개를 돌렸다. 멍한 얼굴로 자신과 루치드를 바라보는 포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