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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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습니다.”
경비대장은 모처럼 출격(?)을 나가는 마당에 확실하게 복장을 갖춰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지, 허리띠에 긴 예식용 칼과 실전용 칼 두 자루를 꽂아 넣고 가슴에는 검은색 조끼에 붉은색 휘장까지 달아서 누가 봐도 경비대장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붉은 짧은 망토(short cape)까지 두르고 나서니 이 날씨에 가당키나 한가, 하는 불충한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오히려 당당한 포즈로 연단에 서서 모인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우리 동료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고에 대해서 모두들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일은 바로 우리가 담당하는 성 내에 마약이 들어왔다는 첩보다.”
병사들은 들고 있던 창과 칼을 굳게 쥐고 경비대장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 경비대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을 피해 마법사의 저주가 우리 녹스에 들어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본관은 심히 걱정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본관은 우리 경비대가 지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우리 눈을 피한 악의 무리를 포도(捕盜)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어떤가, 제군들. 자신 있는가?”
경비대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되도록 크게, 우렁찬 목소리로 함성을 질러 경비대장의 콧수염 끝이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경비대장은 빛나는 눈동자로 경비대원을 바라보며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
“녹스의 정의를 위하여!(Dikaio gia ta Nox)”
“디키오 지타 녹스!”
경비대장은 말에 올라타고 곧장 중앙대로로 향했다. 그 뒤를 경비대원들이 무장을 갖추고 뒤따랐다.
이윽고 구관 지구에 도착한 이들은 미리 와서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경비대원의 첩보에 따라 토엔의 집 주위로 포위망을 갖추기 시작했다.
“잘하면 어둠의 무리를 모두 일망타진할 수도 있겠군.”
정확히 표현하자면, 녹스 성내에 암약하는 어둠의 조직 중 두 집단을 잡는 것이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하려는 참모는 없었다. 대신 구체적인 작전 개요를 설명하는 것으로 경비대장을 만족하게 했다.
“현재 포세가 토엔에게 거의 도착했다고 하니, 이쪽 길로 진출해서 퇴로를 막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쪽 루트에서 일부 병력을 돌려 여길 막으면 확실히 도망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교대병력과 휴식 중인 병력까지 총동원한 까닭에 인원에 부족함은 없었다. 개별루트로 따지면 수가 많지 않을 수 있지만, 포세나 토엔이 눈치채기 전에 포위망을 갖추고 전열을 짜면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 참모의 작전에 경비대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치하했다.
“이대로 시행하게.”
그리고 마침내 토엔과 포세가 마주 보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경비대장은 외쳤다.
“모두, 저자들을 제압하라!”
경비대장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모두 복창하며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적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재빠른 경비대원들의 전열에 포세를 비롯한 건달패거리들은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경비대장은 가슴을 쭉 내밀고 말을 몰아 다가갔다.
“이런 제기랄!”
포세는 나름대로 조용히 움직인 것인데, 어떻게 알고 경비대원들이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직 포세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부하 몇 사람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긴 했지만, 겉으로 봐서는 어떤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으니, 경비대가 어떤 이유로 왔는지 몰라도 자기 때문은 아니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토엔의 집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경비대원들이 아닌가? 비록 그 숫자가 많다지만, 아직 길은 있다고 여긴 포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장님,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낯짝도 두껍구나. 감히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본관에게 안부나 묻고 있으니, 과연 감옥에서도 그리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중범죄라니요? 저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토엔과 사업적인 문제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여겨서 이렇게 모였을 뿐입니다. 만약 사람을 모은 게 죄가 된다면, 당장에라도 사람을 물리겠습니다.”
“살쾡이 같은 놈이로고. 어디서 본관을 우롱하는 것이냐! 너희나 토엔이라는 놈이나 모두 같은 놈들임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포세는 줄곧 강하게 나오는 경비대장의 태도가 자못 의심스러웠다. 혹시,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지만, 경비대가 알 리가 없다고 여겼다. 무려 3년간 들키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온 토엔은 물론이고, 자신도 여간 조심했던 것이 아니니 경비대원들이 어찌 알 것인가. 마침 자신의 무리에서 두뇌를 담당하는 이에게 눈을 돌려 봤지만, 그 역시도 영문을 모르는 모습이었다.
포세는 용기를 내서 다시 항변했다.
“어떤 오해가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저희는 정말 사업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저랑 토엔이 오물 수거업 때문에 약간의 마찰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것입니다. 부디 이를 참작하여 주시고, 혹 토엔에게 볼 일이 있으시다면 저희는 이대로 조용히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경비대장은 코웃음을 치며 포세를 내려다보았다.
“영악한 놈인지, 아둔한 놈인지 모르겠구나. 내 너희들이 오물 수거업을 핑계로 마약을 다루는 놈들인 줄 모르는 줄 알았더냐? 너희들 모두 죗값을 달게 치러야 할 놈들이다!”
‘마약’이 나온 순간, 포세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경비대원에게 걸린 것이다. 이런 위기의 순간, 포세의 머리는 평소보다 3배 이상 빨리 돌아간다.
“집으로 들어가!”
외침과 동시에 먼저 토엔의 집을 향해 뛰기 시작한 포세는 어차피 주위를 포위한 경비대원들을 뚫고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토엔의 집에서 항전하다가 틈을 뚫고 나가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일단 자기편도 전열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다들 빨리 들어와라!”
포세의 뜻을 알아챈 친우이자 참모인 커세가 소리치자, 패거리들이 서둘러 집으로 뛰어들었다. 경비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다고 도망갈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하느냐? 어차피 너희는 단 한 명도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모두 포위하라.”
경비대는 서두르지 않고 토엔의 집을 향해 완벽한 전열을 갖춘 채로 다가섰다.
하지만, 경비대들은 집 안에 들어선 패거리들이 꽤 숫자가 많았다는 것과 집에 들어갈 때도 소란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들어갔던 이들이 정작 집 안에 들어간 뒤에는 쥐죽은 듯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간, 포세는 경비대를 만났을 때보다, 마약 공급이 들켰을 때보다 더 크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이게 뭐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목소리에도 누구 하나 답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집 안은 밖에서 볼 때보다 더 어두웠고, 심지어는 방금 들어왔던 문이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 서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면 ‘떠 있는 느낌’이랄까?
포세가 토엔의 집 앞에 오기 전, 토엔이 루치드를 피해 벽으로 물러섰을 때, 루치드가 나직이 말한 문장을 토엔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듣기는 들었는데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저도 모르게 뜻을 되물었다. 하지만 루치드는 감정 없는 눈으로 토엔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토엔의 시각에서 그렇게 볼 뿐, 실상 루치드는 토엔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은 토엔을 바라보지만, 루치드의 눈을 거쳐 신경을 지나 뇌로 들어와 조합되는 이미지는 평소의 눈으로 보는 이미지가 아니라 복잡한 숫자의 나열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와 끝없이 연산 되는 계산식과 끝없이 출력해내는 결괏값들이 루치드의 머릿속을 채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숫자들을 보고 읽고 계산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루치드는 토엔이 자기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토엔이 드러누워 있다는 사실과 토엔이 벽에 부딪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토엔이 기대고 있는 벽이―더 세밀하게 표현되지만, 간단히 나타내자면―두께 18.7㎝라는 것과 토엔의 머리에서 위로 13㎝, 왼쪽으로 3㎝ 정도의 위치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으로 꼽등이가 머리를 내밀었다가 숨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신비였다. 모든 세상과 사물과 심지어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까지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니!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식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다니! 심지어 어떤 수식은 자신이 배운 적도 없는 역학 관계식이 구성되는 중인데, 그것마저 어찌 된 일인지 그냥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그 현상마저도 이해가 되는 것이, 본래 인간이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복잡한 현상도 간단하게 외물(外物)만 보고 ‘이해’를 한다고 착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가령 길가에 핀 꽃을 볼 때, 그 꽃이 씨앗에서 발아하는 순간부터 꽃을 피우는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지 못해도 꽃의 성장을 ‘이해’하는 것과 같았다.
같은 이유로 인간은 본래 시간의 틈을 보지 못하지만 이해한다. 매 순간 복잡한 생물학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꽃의 변화를 인간은 보지 못해도,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예쁜 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았다. 시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은 사진이란 형태의 예술에, 미술이란 형태의 예술에 매료된다.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는 시간의 틈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니까.
그런데, 지금 루치드는 그 시간의 틈을 보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변화해서 눈 한번 깜짝하면 지나가고 말 수의 향연에서 루치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고, 읽고, 이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틈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들로 인해 매 순간 깨달음을 얻는 루치드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루치드의 뇌가 그 정보들을 모두 받아들이는데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환희와 격통. 그 두 가지가 현재 루치드를 짓누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루치드의 눈에 ‘읽히는’ 토엔은 그냥 복합적 생물학적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인간이 아니었다. 토엔에게서 ‘정상적’으로 흘러야 수의 중간중간 불규칙적이고 수식을 방해하는 ‘또 다른 수식’이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체인의 중간에 색이 다른, 혹은 크기가 다른, 혹은 엇갈리게 맞물린 블록이 끼어든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수를 제거해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고, 그래야 안정된 수의 흐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워낙 복잡하게 꼬인 흐름 속에 끼어든 불순물을 그냥 제거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루치드가 떠올린 방식은 ‘인수분해’였다.
‘정상의 흐름으로 식을 전개하고 남은 불순물을 드러내어 그것들을 제거하는 방식.’
이란 것이 루치드의 인수분해였다. 세밀하게 따지고 들자면, 항등식의 성립을 만족하는 다항식으로 치환하되, 그 과정에서 걸러지는 불순물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게 하는 법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라는 것인데, ‘인수분해’를 떠올렸을 때, 루치드는 자신이 그 방법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작할게요.”
루치드가 ‘의지’를 드러내자, 토엔의 주위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토엔이 보기엔 ‘물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토엔이 존재하는 공간이 변화된 것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단어로 표현하자면 ‘공(空)’의 영역이었다. 모든 것이 비어버린 공간에 오로지 토엔만이 존재하도록 두었다. 루치드로서는 토엔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고, 다른 변수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에 수를 다루는 것이 쉬워졌다. 이윽고 루치드는 토엔을 이루는 수의 구성을 변화시켰다. 정상과 비정상, 순수와 불순물을 나누었다.
토엔은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정신이 갈가리 찢어지고 해체되는 느낌은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고통을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고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토엔이란 존재 자체를 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 후, 정확히는 포세가 선발대를 토엔의 집에 밀어 넣기 직전, 루치드는 토엔에게서 불순물을 걸러냈다. 그 과정이 토엔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루치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는 수열과 수식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는 기쁨만 있을 뿐이었다. 예컨대 자전거 기어로부터 고장 나 돌아가지 않는 체인을 떼어내 고친 후, 다시 기어에 꽂아 넣고 페달을 돌렸을 때, 페달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느끼는 기쁨 정도이리라.
루치드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격통 속에서 작은 기쁨을 만끽하던 중, 또 다른 불순물이 자신의 영역으로 끼어드는 것을 알았다.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기쁨은 세상을 다 얻은 기쁨 만큼은 아니지만 소소한 즐거움 정도는 되었다.
“이것들도 고쳐야겠구나.”
루치드는 영역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을 미루고 다시 ‘수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