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트립(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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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가 워낙 빨리 움직인 탓에 일이 빨리 끝나고 말았다. 구덩이까지 말끔히(?) 치운 두 사람은 빈 수레를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거의 점심시간 무렵. 토엔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벌써 와? 또 무슨 일 있어?”
하지만 게리와 루치드가 내민 확인증을 확인하고는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인상을 일그러뜨리더니 포세놈, 하고 중얼거리며 서랍에서 동전을 꺼내다 책상 위에 던지듯이, 아니 그냥 던졌다. 게리가 서둘러 동전을 주워다가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곧바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마 포세한테 뺏긴 경관지구 때문에 그럴 거야. 그런데 걱정할 필요 없어. 저래 보여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아마 곧 포세한테서 다시 지구를 되찾을 거야.”
루치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숙소로 들어가려는 게리를 붙잡았다.
“왜?”
“점심 먹어요.”
“점심을? 돈 없어.”
자기 돈으로 먹자고 할까 봐,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는 게리에게 루치드가 말했다.
“혹시 이 시간 이후로 할 일이 있나요?”
게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일단 점심을 먹어요. 그리고 저녁은 다른 거로 먹어요.”
“어떤 거?”
“기대하셔도 돼요. 대신 부탁하나만 들어 줘요.”
두 사람은 돈을 모아서 비스킷과 우유를 사서, 그 자리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 후, 루치드는 게리와 함께 상업지구로 향했다. 첫날에만 잠깐 보았던 포장도로를 다시 보니 엄청나게 넓고 깨끗하다는 인상이 느껴졌다. 아마도 오물 범벅인 뒷골목만 전전하다 보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치드의 부탁은 간단한 것이었다.
“녹스 성의 안내라고?”
“네. 녹스 성에 들어오자마자 거기로 끌려간 터라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거든요.”
게리는 루치드를 데리고 상업지구에서 시작하여 경관지구와 경남지구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신관지구야 이틀 동안 돌아다녔으니, 다른 곳도 구경하고 싶다는 루치드의 제안이었다.
“여기가 녹스 성의 중심. 예전에는 성이 있었다는데, 난 보질 못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아무튼 그 대신 저렇게 사거리 가운데에 동상을 만들어놨지. 듣기로는 어떤 신의 동상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루치드가 동상에 다가가 살펴보니 동상 앞에 동판이 붙어 있었고, 그 동판에는 ‘불의 여신’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불의 여신이라는데요?”
“너 글도 읽을 줄 알아?”
게리는 깜짝 놀라서 루치드를 바라보았다. 루치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게리는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런데 왜 이 일을 하는 거야?”
“네?”
“글을 읽을 줄 아는 녀석이 왜 똥이나 치우냐고?”
그렇게 말해봐야 루치드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준다길래 따라왔더니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덥석 일을 맡긴 게 바로 토엔과 다위 아니던가.
“글도 읽을 줄 아는 애가 바보는 아닐 텐데, 왜 이러지?”
게리는 되려 자기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때렸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구, 모르겠다. 니 사정이지, 내 사정이냐.”
그러더니 게리는 등을 돌려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길 잠시, 게리는 조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주위를 안내해 주었다.
“저 가게가 녹스에서 제일 오래된 가게야. 저기 붉은 기둥 보이지?”
가게 앞에 내놓은 천막을 받치던 두 기둥 중 하나가 붉은색이었다.
“성주가 이 가게의 오랜 전통과 녹스 성에 대한 충성을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뜻에서 내린 상이야.”
예컨대, 마치 무궁화 등급 매기는 식이라고나 할까? 루치드는 붉은 기둥이 세워진 가게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길을 따라가며 세워진 붉은 기둥의 가게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저 가게는 샤피로 아저씨한테 와서 시네디움을 사가던 유리 아저씨네 가게. 저기는 맨날 나한테 와서 계산 좀 해달라고 조르던 베이커 아저씨네 가게.’
옛 추억과 현재가 뒤섞이며 루치드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어떤 가게는 아예 분위기가 바뀌어서 알아볼 수도 없었지만, 또 어떤 가게는 20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던 곳도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매대 앞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거의 다 젊은 사람들 혹은 중년의 나이여서, 예전에 봤던 아저씨들이나 아줌마들은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자식들 혹은 손자들이 가게를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예 주인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인 만큼 과거의 일을 추적하자면 저런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경관지구야.”
남쪽의 구관 지구에서부터 상업지구를 지나 북쪽으로 향하니 자연 경관지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큰 거리 주변으로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지만, 그 뒤로 최신의 석조 건물들이 다양한 양식으로 건설되어 있어, 한눈에 다른 곳과 구별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여기는 경비대랑 근위대들이 수시로 순찰하는 곳이라서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간 금방 잡힐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태연하게 길을 가야 돼. 근데, 여기 안에도 봐야 하는 거야?”
루치드의 생각으로는 여기도 꽤 중요했다. 현대 지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자료나 기록물들이 관리되고 있을 만한 곳은 공공기관이 자리 잡은 이곳뿐일 테니까.
확실히 이 공간은 다른 곳과 달랐다. 심지어는 신관지구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한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복식 또한 정갈하다는 느낌을 주는 고급스러운 재질의 옷을 입고 있는데, 사실 여름에 입기에는 조금 답답하지 않을까 싶은 옷도 있었다. 그와 비교하면 두 사람의 복장이 너무 허름해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런 복장을 가진 이들이 이 거리를 지나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본척만척하며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게리는 얼마 전까지 경관지구를 돌아다니며 오물 수거일을 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루치드가 경관지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어떤 건물의 어떤 사람의 성격이 특이하여서 주의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들려줄 정도였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경관지구를 둘러보다가 경남지구로 건너갈 무렵이었다.
“어이, 게리? 여긴 어쩐 일이야? 니들 여기서 일 못 한다는 얘기 못 들었어?”
테리라는 녀석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이 친구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길래 지리를 알려주는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계속 가.”
그 말처럼 테리의 뒤에는 수레를 이끄는 두 사람이 서서 루치드와 게리를 보고 있었다.
“여기 지리를 알아서 뭐하게? 여기 올 일이 뭐 있다고? 왜? 경비대 들어가서 자수라도 하게? 제가요, 도둑질했거든요, 잘못했어요?”
게리 흉내를 내려는 건지 이상하게 목소리를 변조하고 우는 얼굴을 지어 보이는데 전혀 똑같지가 않았다. 게리도 딱히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체념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이 더 커지는 것을 꺼리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됐어. 우리도 이제 그냥 갈 거야.”
게리는 루치드의 팔을 잡고 테리를 피해 옆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려 하는데, 역시나 테리는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어딜 그냥 가?”
“뭐?”
“그냥 가게?”
“그냥 가지, 그럼 뭘 하란 거야?”
“에이, 그럼 쓰나? 니네가 놀 동네도 아닌데 멋대로 와서는 우리 길도 막고 방해나 하다가 그냥 가겠다고? 누구 허락 맡고 여길 와서 돌아다니는 거야? 응?”
우리가 언제 막았다고 그래, 라고 항변하고 싶은 걸 참는 게 분명한 게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는 이를 악무는 모습이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씩씩거리며 테리를 보던 게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의사를 전했다.
“너나 나나 여기서 소란 피우면 어찌 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지? 여기까지만 하자. 응?”
그러나 테리는 그 모습에 승기를 잡았다는 듯,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찌 되다니? 무슨 말이야? 이상한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도망가는 거야? 갈 길 바쁜 사람 길까지 막아놓고선 하는 소리가 그냥 간다고? 와, 이거 참 너무하네. 안 그래?”
테리의 말에 뒤에 선 이들도 동의한다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가 산 테리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게리 앞에 다가왔다.
“가고 싶어?”
게리가 아무 말 하지 않고 노려보기만 하자, 테리가 게리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세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 굴욕적인 폭력이었다. 그러나 게리는 반항하지 않았다.
“여기 무릎 꿇고 사과해.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여기 오지 않겠다고 사과해. 우리가 저 골목 끝까지 갈 동안.”
그것이 테리의 요구였다. 게리는 테리의 말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웅성거림이 들려 주변을 보았다. 어느새 몇몇 사람들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발견한 눈으로 모이고 있었다. 게리는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느낌에 순간 무릎에 힘이 풀릴 뻔했다.
이곳은 루치드에게 말한 것처럼 경비대와 근위대가 자주 순찰을 돌아다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웠다간 결코 그냥 두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테리와 그의 일행들은 마치 자기들은 그런 소란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자기까지 처벌을 받지 않는 건 아닐 테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게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걱정 앞에 두려움이 앞서니, 행동이 빨랐다.
철퍼덕하며 곧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테리의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미안해.”
“뭐라고?”
“길 막아서 미안해.”
게리는 빨리 끝내고 싶었다. 빨리 이 사태가 끝난다면, 그래서 빨리 이 경관지구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까짓 거 열 번도 더 할 수 있었다.
“새끼, 키만 커 가지고 겁대가리는 졸라게 많아요.”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던 테리는 몸을 돌리려다가, 가만히 서서 이 사태를 바라보던 루치드를 발견했다.
“뭐냐?”
“······.”
루치드는 대답 대신 그냥 테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넌 왜 그러고 서 있냐? 사과 안 해?”
테리가 이상한 놈 본다는 얼굴로 루치드에게 무릎을 꿇을 것을 강요했지만, 당연히 루치드는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데?”
“니 옆에 사과하고 있는 애 안 보여? 걔가 하는 데 왜 넌 안 하는데?”
루치드는 잠시 테리의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첫째, 게리는 사과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냥 무릎 꿇은 것이야. 더구나 사과할 일이 없는데 사과를 왜 하겠어. 그리고 너희들이 사과하라고 한 내용이 일단 진실에서 거리가 멀지. 우리가 너희들이 가는 길을 막지도 않을뿐더러 우리 둘이 막는다고 해서 이 길이 막힐 길이냐? 이렇게 넓은데? 그리고 너희는 세 사람이고 우리는 두 사람이야. 싸우기 싫어서 무릎도 금방 꿇는 게리가 어떻게 너희를 막았다고 주장하는 거지? 애초에 니 말이 틀렸다는 사실이야. 그러니 결론적으로 게리는 너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고, 사과할 필요도 없어.”
멍하니 루치드를 바라보는 테리 일행을 향해 루치드는 다음 말을 이었다.
“둘째, 게리가 사과하니까 내가 사과해야 한다는 말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일인데, 왜 나한테 사과하라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 아냐? 만약 내가 너한테 사과를 해야 한다면, 사과할 만큼의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고, 그 잘못에 따라서 사과하라고 요구해야 옳지. 옆의 사람이 사과하니까 너도 사과하란 말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말이야.”
테리는 외국어를 듣는 느낌으로 루치드를 바라보았다. 주변 사람들 마저 빠른 말발굽 소리를 듣는 느낌으로 루치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런 시선에 상관없이 루치드는 마지막 말을 꺼냈다.
“셋째, 너를 방해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왜 여길 오지 말라고 요구하는 거지? 이곳 거리의 통행권을 너희가 가지고 있는 거야? 어떤, 누구에게서 그런 권리를 얻었기에 마음대로 사람을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통행권을 행사하겠다는 거야? 만약 너에게 통행권을 위임한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봐. 그 사람에게 확인을 받아서 만약 니가 위임받은 사실이 없다면 넌 위조 혹은 사기죄로 처벌받아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위조, 사기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든 테리였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죄, 죄를 지었다고 그래!”
“니가 아까 그랬잖아. 여기 ‘누구 허락’ 맡고 여길 돌아다니냐고. 그리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마치 너한테 통행권을 단속할 권리라도 있는 사람처럼 굴었잖아.”
이건 억지였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 유용하게 먹힐 억지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잘 먹혔다.
테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도와달라는 듯, 뒤를 돌아보았지만, 뒤에 선 이들이라고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신 그들은 어떻게 이 자리를 조용히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해봐.”
“뭘!”
“항변해 보라고. 죄가 없으면 없다고 항변해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줄 테니까.”
루치드는 말을 뱉는 순간 매우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구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이렇게 또 써먹고 있다.
역시나 테리는 우물쭈물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제 딴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 중이겠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를 리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이 익숙한 이라면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시선 속에서 냉정해지기가 힘드니까.
이때 테리를 돕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테리를 더 곤란에 빠지게 하였다고나 할까?
“나도 궁금하군. 자네 어떤 할 말이 있는가?”
잘 다듬어진 턱수염을 가진, 딱 봐도 고급스러운 복장의 중년 신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중년 신사의 위풍도 대단했지만, 그 뒤에 선 군사의 시선이 더 대단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 꺼냈다간 죽는다!’
라는 생각을 하는 테리는 곧 적절한 방법을 찾아냈다.
“죄송합니다. 행정관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테리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그때, 루치드는 테리의 무릎이 깨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테리는 빠르게 엎드렸다―고개를 조아렸다.
“죽을죄를 지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란 말이지?”
“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저 소년의 말대로 누군가가 자네에게 통행권을 단속할 임무라도 주던가? 똥쟁이한테?”
테리는 기겁하며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제가 헛말을 한 것입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행정관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그런 일 없지?”
“네, 네. 그렇습니다.”
행정관은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감히 똥쟁이한테 그런 일을 시키는 놈이 있어선 안 되지. 안 그러냐?”
뒤의 병사들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 그럼 이놈은 잡아서 경비대에 끌고 가라.”
행정관의 지시에 병사 한 명이 테리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아니, 왜 저를!”
행정관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거리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워놓고선 아무 죄도 없다 하려고? 게다가 똥 수레를 저렇게 거리에 방치시켜 놓고도?”
어느새 똥 수레를 지키던 테리의 일행 두 사람은 행정관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달아났다. 그래 봐야 테리가 잡힌 마당에 그들이 무사할 리는 없었지만.
테리는 발광하며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행정관의 명령에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병사가 그를 데리고 간 후, 다른 병사에게는 똥수레를 치우도록 명령했다. 병사는 똥 수레를 치울 사람을 찾기 위해, 그러니까 경관지구의 오물 수거 담당인 포세를 찾아 떠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게리와 루치드, 그리고 행정관이 남았다.
“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행정관이 루치드를 향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