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46화 (246/956)

배틀 트립(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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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온 게리와 루치드는 숙소에 가기 전 토엔의 집에 들렀다. 토엔은 여전히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게리는 그런 토엔의 눈치를 보느라 마론인형처럼 쭈뼛댔다. 긴 팔을 뻗어 토엔에게 확인장을 건네는 게리와 이를 흘겨보는 토엔.

“······.”

토엔은 말없이 책상의 서랍을 열어, 동전 몇 개를 집어 책상 위에 던졌다. 굴러서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동전을 주운 게리는 허리를 숙여 보이곤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루치드에게도 눈짓을 하니, 루치드도 들고 있던 확인증을 보여주었다. 토엔이 힐끔 보고는 게리보다 작은 양의 동전을 주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동전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이것만 주시는 거죠?”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바라보던 토엔이 눈썹을 꿈틀대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실습 기간이잖아.”

“실습 기간이지만, 일은 같이했는데요? 같은 일을 했다면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뒤에 선 게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루치드를 말리려 했지만, 루치드는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른 게리가 힘으로 이겨내기 힘든 상대이기도 했고.

“이 새끼··· 야!”

결국 토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루치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잖아요. 똑같은 일을 했는데, 실습 기간이라는 이유로 보수를 작게 받는다는 건 이상한 거잖아요. 만약 제가 실습생이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분의 일이 정규직에 비해 모자랐다면 이해를 하겠어요. 하지만 같은 양의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아저씨가 거두는 수입은 똑같을 거 아닌가요? 그럼 아저씨가 저에게 ‘실습’이란 이유로 보수를 적게 지급하고, 그만큼 챙기셨다는 뜻인데 이건 불합리한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루치드가 그 말을 하기 전에 게리가 루치드의 입을 막고 토엔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교육을 다 못 해서, 아직 애가 잘 몰라서 그런 거예요. 제가 잘 교육 시킬게요. 잘 타이를게요. 토엔, 그러니 이번만 용서해줘요. 네?”

게리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면서 루치드를 억지로 끌고 집 밖으로 나섰다. 루치드의 동전을 대신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잠시 후, 끌려 나온 루치드는 게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하소연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니?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니? 응? 토엔이 정말 화가 나면 아무도 못 말린단 말이야. 심지어는···. 아니다. 아무튼, 제발 평화롭게 살자고.”

루치드는 게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불합리한 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게다가 루치드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봐도 불쌍한 게리가 저렇게 불쌍한 눈을 하고 사정을 하니, 그의 눈앞에서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안 그럴게요.”

어차피 실습은 내일까지라고 했으니까. 내일까지만 참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루치드는 숙소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번에도 게리가 루치드를 붙잡았다.

“먹을 거 사야 돼.”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종일 먹은 게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게리를 따라 골목길을 걷던 중에 물었다.

“하루에 한 번만 먹는 거예요? 점심은 안 먹어요?”

“점심이라니, 그런 사치를 어떻게 부려? 아침이나 잘 챙겨 먹으면 다행인 줄 알아야지.”

게리는 식료품점에 와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 시작했다. 거창한 요리를 사는 건 아니었고, 간단한 비스킷과 우유만을 샀을 뿐인데 하루 일당이 거덜 나는 것 같았다.

“매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게리는 고개를 저으며 원래 받는 보수는 이보다 많았다고 설명했다. ‘경관지구’의 담당을 잃으면서 보수가 반으로 줄었고, 둘이 같이 일을 해서 보수가 또 줄었다는 것. 원래는 교대로 번갈아가며 일하기 때문에 한 사람당 받는 일당이 컸다는 게리의 설명인데, 어차피 교대라면 거기서 거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루치드의 속마음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조삼모사’라던가?

“내일부터는 너 혼자 해야 돼. 그다음 날은 내가 해야 하고. 알겠지?”

루치드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이틀 동안 일할게요. 그리고 다음 이틀은 게리가 해요. 제가 이틀간은 다른 일을 해야 돼서 같이 일을 할 수 없을 거예요.”

게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루치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식료품을 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루치드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 ‘구관 지구’는 누가 담당해요?”

“아무도 담당 안 해.”

“안 해요? 그럼 여긴 어떻게 처리해요?”

“저렇게.”

마침 골목 안쪽에서 문이 열리고 칙칙한 색깔의 두건을 둘러쓴 중년 여인이 항아리를 들고나오더니 거리에 뿌렸다. 하루종일 오물을 맡았더니 후각이 마비되었던 건지, 거리 전체에서 나는 오물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던 루치드였다. 루치드는 발아래를 쳐다보았다. 과연 바닥 곳곳에 검은 얼룩들이 보이는데, 굳이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숙일 생각은 없었다.

“여기는 돈을 주고 청소를 맡길 집은 없어. 그 정도 여유가 없으니까.”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곧 식탁에 가지고 온 비스킷과 우유를 놓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게리는 그러지 않아도 마른 몸인데, 먹는 것도 비스킷을 잘게 쪼개서 조금씩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이거 남겼다가 내일 아침에 또 먹어야 하거든.”

그렇게 설명한 게리는 대충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종이봉투에 우유와 비스킷을 담아서 봉투 끝을 돌돌 만 뒤, 자신의 침실로 가지고 갔다.

“너도 먹다 남기면 이렇게 침대맡에 올려놔. 그래야 다른 이들이 안 가져가니까. 아, 그리고 니 침대는 저걸 쓰면 돼.”

여러 사정으로 이제 처음 침실을 구경하게 된 루치드는 자신의 침대라고 가리킨 것을 보게 되었다. 낡은 매트가 나무 프레임의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데, 빈촌에서 쓰던 침대를 떠올리게 하는 침구였다. 매트에서 삐져나온 짚들이 일부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저 침대들은요?”

“저건 다른 애들 꺼.”

“다른 사람도 있어요?”

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선 이 숙소에서 일하는 무리를 굳이 따지면 다 해서 3부류였다. 게리와 루치드처럼 오물처리를 하는 부류가 있고, 또 한 부류는 거리 청소를 주로 하는 이들인데 보통 인파가 적은 시간대에 나가서 청소하는 탓에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한다고 했다. 녹스 성의 포장도로가 생긴 이후부터 생긴 직업인데, 일당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고.

“거리 청소도 사실 만만한 게 아니야. 쓰레기나 오물을 처리하기도 하고, 깨진 석재가 있으면 교체를 하거나, 보수해야 하거든.”

또 한 부류에 관해 설명하려 할 때, 숙소 문이 열리고 일단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들어왔다.

“어? 게리, 너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이야, 게리가 우리보다 일찍 올 때가 있네?”

게리는 처연한 눈을 하고는 ‘경관지구’를 포세에게 뺏겨서 일이 줄었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옆에 선 루치드를 소개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기로 했어.”

“루치드라고 해요.”

아이들―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긴 한데, 얼굴은 대체로 어려 보였다―은 호기심이 깃든 눈으로 루치드를 바라보다가, 루치드의 인사를 받은 뒤 서로 나서서 인사를 했다.

“안녕, 난 포셉이야. 이름이 포세랑 비슷해서 종종 놀리고들 하는데, 그러지 말아줘. 난 포세 정말 싫어하거든.”

“난 제니스. 잘 지내자.”

“나 휴고라고 해. 너 정말 잘 생겼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얼굴인걸?”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마, 휴고. 실례야.”

자기들끼리 인사하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원래 쾌활한 건지 보통 소란이 아니었는데, 덕분에 조용한 숙소에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쟤들은 지붕청소부. 신관지구랑 경관지구 지붕은 쟤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어. 그런데 너희들은 경관지구를 안 뺏긴 거야?”

“지붕 쪽 일은 하기 힘들지. 걸핏하면 떨어져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인데 하려는 사람들이 많을까? 포세 쪽도 아직 사람을 많이 구하지 못해서 그나마 경남지구만 겨우 하는 거 같은데. 그런 거 보면 역시 일은 우리가 제일 힘들어. 그치?”

“그럼. 똥 치우는 일이야 냄새만 적응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우리 보수가 더 센 거 아냐?”

어느새 식탁에 둘러앉은 지붕청소부들은 각자의 종이봉투에서 먹을 것을 꺼내 들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게리네와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비스킷 대신, 순대같이 생긴 소시지와 맥주를 꺼내 들었다는 점이었다. 맥주를 담은 주머니도 빵빵하게 부풀어 있진 않았고, 조금 홀쭉했는데 들어보니 오던 길에 조금씩 홀짝 마시면서 오느라 그랬단다. 아무래도 그들이 쾌활했던 것은 술의 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만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지.”

루치드는 게리를 가만 보다가 물었다.

“안 씻어요?”

“씻다니? 왜?”

루치드는 순진한 게리의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오늘 일하느라 땀도 흘렸고, 오물도 많이 묻었고, 그러니까 씻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게리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니가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기서는 물이 귀해. 우물을 사용할 돈도 없는 데다가, 공짜로 물을 쓰려면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면 어차피 씻으나 마나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내일 또 더러워질 텐데 뭐하러 그래?”

게리의 말에서 추리 가능한 부분을 짚어보면, 우선 이곳에는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마을 내에 있는 우물도 유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 산에서 흐르는 냇물을 찾는 사람도 있다는 것. 세 번째로, 이곳에는 위생 개념이 없거나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을 데리고 박테리아와 위생 보건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아 봤자 이해도 못 할 테니 루치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홀로 밖으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금방 돌아올게요.”

어둑해진 거리로 나선 루치드는 잠시 먼 산을 향해 시선을 두고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개운해진 얼굴을 하고 돌아온 루치드는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들 침실에서 자는 것인지, 왁자지껄하던 식탁은 꺼질락 말락 하는 촛불 하나만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침실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코 고는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루치드는 자신의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얇은 천으로 된 시트 한 장이 덮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행히 여름이라 그렇게 필요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덮고 자야 할 것 같았다. 목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붙여보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뭐 하는 걸까.”

루치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갯짓을 하고는 방금 떠올린 질문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114의 제곱. 38의 소수, 12의 공배수···.”

루치드는 다른 생각이 날 틈이 없도록 열심히 숫자를 되뇌었다. 그리고 부디 빨리 잠이 들기를 빌었다.

****

다음 날, 새벽 동이 틀 무렵 게리가 루치드를 깨웠다. 게리가 몸을 일으킬 무렵 이미 루치드도 정신이 들었기에 게리는 걱정을 덜었다.

“나가자.”

루치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아직 일어나지 못한 세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갔다.

“거리 청소한다는 분들은 언제 오나요?”

“우리가 나간 뒤에나 올 거야. 시간이 그렇게 맞물리거든. 그래서 평소에는 보기 힘들어. 아마 나중에 교대 시간쯤에나 얼굴 한 번 볼 수 있으려나? 인사는 그때 하도록 해.”

하품하던 게리는 숙소 뒤에 두었던 수레를 끌고 나왔다.

“오늘은 제가 끌게요.”

“뭐? 아냐, 괜찮아. 길도 잘 모르잖아.”

“알아요.”

“안다고?”

“네. 다 외웠어요. 혹시 어제랑 다른 곳도 있나요?”

“아니, 똑같긴 한데, 그래도 다 외웠다고?”

루치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수레 앞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 게리는 불신이 가득한 눈을 하고 루치드를 보다가 뒤에서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일단은 두고 볼 심산으로 뒤에 자리하긴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게리의 눈에는 놀람으로 가득 찼다.

그날 루치드는 어제 게리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하고 용무를 밝힌 뒤, 항아리를 들어다 비우고, 다음 집을 방문했다.

“너 정말 다 외운 거야? 어떻게? 하루 만에?”

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루치드는 그저 묵묵히 일을 해 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게리가 도우려 했지만, 마땅히 도울 일이 없을 정도였다. 힘도 훨씬 좋은 루치드였기에 항아리를 맞들 일도 없었고, 수레를 끌어도 힘이 좋은 루치드가 앞에서 끌다 보니, 움푹 파인 곳을 지날 때도 어려움이 없었다.

“너 정말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구덩이 앞에서 가죽 주머니를 비울 때, 게리가 뱉은 칭찬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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