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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241화 (241/956)

배틀트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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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예년보다 더욱 더워지고 있다는데,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몸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막아!”

명수가 찬 회심의 골을 막아낸 골키퍼. 그 놀라운 선방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명수네 팀 아저씨들은 명수를 위로했다. 오늘따라 명수의 골은 번번이 골키퍼의 손에 막히거나, 골대 옆을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빗겨나고 있었다.

“오늘 명수가 날이 아닌가 보다.”

상미가 턱을 괴고 앉아서 운동장 위에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명수를 보며 말했다. 바다에서 놀고 온 후유증일까, 명수가 좀처럼 힘을 못 내는 것처럼 보여 안타까운 상미였다.

“상대편이 잘하는 거야.”

그간 붙었던 상대와 달리 이번에 붙은 상대 팀은 실력이 꽤 좋다고 생각했다.

“특히 상대 수비수가 명수한테 좋은 위치를 허락하지 않아서 명수가 쫓기듯이 공을 차는 게 문제야.”

물론 명수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상대 수비수가 잘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그리고 명수는 아직 성장하는 중이니까, 지금 못한다는 건 아무런 흠이 되지 않아.”

단유는 상미가 저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기에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왜?”

“아니, 그냥.”

상미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명수를 바라보았다.

“명수 실력이라면 나중에 프로선수가 되겠지?”

“응.”

아주 오랜 시간 축구에 꿈을 가지고 살아가던 명수였다.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축구선수가 되는 것만을 그리며 살아왔고, 지금도 또래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명수였기에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단지 말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넌 뭐가 되고 싶어?”

상미가 단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순간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입이 절로 닫혔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묻는 말들이 ‘이름’과 ‘장래’였다. 한때는 이름이 가장 말하기 힘든 질문이었는데, 이제는 ‘장래희망’이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되었다.

“넌 뭔데?”

단유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되받았다. 상미는 턱을 괴던 자세 그대로 단유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뭐?”

“···그래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하는 거야.”

단유는 상미의 옆모습을 지켜보다가 장난은 아니라는 생각에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거야?”

“응. 종일 게임만 하면서 살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

단유가 상미의 꿈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는지 상미가 몸을 돌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게임단에 중학생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협회 차원에서 중학생의 진출을 막는 추세라며, 그래서 게임단에 들어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그래서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서 게임단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는 이야기였다.

그 꿈이 유치하다느니, 장래성이 어떡하다 느니 판단할 기준이 없던 단유는, 자기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상미가 눈을 흘기면서 물었다.

“그런데 네 꿈은 뭔데 말을 안 해줘? 말해주기 어려운 거야?”

말해주기 어려운 것은 꿈이 없기 때문이다.

“없어.”

“뭐가?”

“꿈이.”

“꿈이 없다고?”

“응.”

상미는 재차 물으려다 명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명수가 바닥으로 패스가 이어진 공을 받아 치고 나가던 중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수비수를 앞에 둔 명수가 같이 달리고 있던 동료에게 공을 넘겼다.

“사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던 거 같아. 우리 어릴 때 그러잖아, 너 뭐가 되고 싶냐고. 내 친구들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애들도 있었고, 학자나 교수가 되고 싶다는 애들도 있었고, 경찰이 되고 싶다는 애들도 있었잖아. 근데 난 공부도 잘 못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그랬거든. 그래서 니 맘 이해해.”

단유는 상미의 말에 처음으로 흥미가 솟았다.

“그럼 어떻게 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계기가 있어?”

상미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대답을 해 주었다.

“계기라고 말할 건 없고, 그냥 우연히 TV를 보다가 여자 게이머를 보게 된 거야. 근데 그 선수가 남자 선수랑 경기했는데, 아쉽게 지고 말았어. 경기 끝나고 인터뷰를 하는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야. 그거 보고 나도 게이머가 되겠다고 결심한 거야.”

“응?”

뭔가 조금 극적인 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그 눈물 때문에 결심한 거라고?”

“아니, 눈물이 아니라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결심했다고.”

단유는 잠시 스토리를 꿰맞춰 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 게이머가 게임에서 진 게 분해서 다음에는 이기겠다고 결심하는 모습 때문에 결심했다는 거지?”

“비슷해.”

비슷하다는 상미의 대답에 오히려 답답해진 단유였다.

“정확히는 뭔데?”

“인터뷰하는 모습.”

단유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거야, 아니면 니가 설명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니가 이해를 못 하는 거지. 그 선수가 다음에는 꼭 이기겠습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저런 게이머가 되겠다, 고 결심했다는 이야기가 어려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들었는데도 상미의 결심에 대한 이유가 정확히 와 닿지 않았다.

단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해를 해보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 선수가 게이머의 인터뷰를 보고 결심했다는 거지?”

“응.”

“그 인터뷰가 너한테 어떤 의미였는데?”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해 준 거.”

“아니, 그러니까 그 인터뷰를 보면서 니가 느낀 감정.”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멋있구나, 라는 거?”

“아, 그러니까 그 인터뷰가 너한테 멋있게 느껴졌다는 거지?”

“응.”

단유는 눈가를 굳히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 인터뷰의 어떤 모습이 너한테 멋있게 느껴진 거야?”

“전부 다. 그냥 다 멋있던데?”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상미가 틀린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자신이랑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상미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거라고. 이해 못 하는 게 틀린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어디 가?”

“운동하러.”

좀 뛰면서 머리를 비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같이 뛸까?”

“아니. 괜찮아.”

상미는 이미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 쫓아오는 중이었다.

****

여름 휴가 차원으로 바다를 다녀온 후, 단유는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 방학 때 다녀와야 앞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기 위해 전처럼 병원에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개인적인 시간을 뺄 방법이 필요했다. 혼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면 가장 편하겠지만, 절대 허락하지 않을 방법이기에 단유는 머리를 굴려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할 수도 없는 상황. 지난번처럼 그곳에서 5년을 지낸다고 가정할 때, 이곳에서 3일이 지났던 사실을 떠올리면 적어도 3일까지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3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주위 사람들―특히 선생님과 명수―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 필요했다.

호빵과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는 명수의 눈치를 본 후, 단유는 주방에서 이모님과 함께 냉장고를 정리하던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응?”

“잠시만요.”

“왜?”

단유는 선생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저기 혹시요.”

“응? 왜?”

“저 혼자 전국 일주, 하고 오면 안 될까요?”

선생님은 단유가 이런 파격적인 계획을 들이밀 줄 몰랐기에 처음에는 단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단유가 차분하게 계획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걱정이 먼저 들었다.

“단유야, 혹시 무슨 걱정 있니?”

“네?”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속으로 뜨끔한 단유가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 갑자기 전국 일주라니? 게다가 혼자?”

“···안 되나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단유는 미리 준비한 멘트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자립성, 독립성을 키우기 위한 준비라는 것부터 해서, 국내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이야기, 교과서와 책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는 감성적인 부분까지 빈틈없이 꽉꽉 채워서 선생님에게 전했다. 기대를 안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단유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단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벌써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기특하구나. 그런데 아쉽지만, 지금은 안 되겠다.”

“왜요?”

“아직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기에는 넌 너무 어려. 물론 니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철이 든 아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너 혼자 나다니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해. 오늘만 해도 뉴스에서 뺑소니니 강도니 하며 나오는 거 같이 봤잖니?”

그런 놈들, 솔직히 한주먹거리도 안 될뿐더러, 아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던 단유였다.

“나중에, 고등학생만 돼도 선생님이 허락하겠는데, 지금은 조금 이른 거 같구나. 아니면 선생님이랑 같이 가는 게 어떠니?”

“아, 아니요. 그냥 혼자 다녀야 자립심도 기르고 그러죠. 어릴 때는 사서 고생도 한다면서요.”

“그것도 어느 정도지. 지금 넌 너무 어려서 안 돼.”

결국 선생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단유는 이 방법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고집을 꺾어야 했다.

“그런데 왜 굳이 혼자여야 하니? 혹시 명수랑 무슨 문제라도 있니?”

도리어 선생님께 이상한 오해나 하게 만들었다. 단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저었다. 격렬하게 부정하는 단유를 가는 눈으로 쳐다보던 선생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명수랑 문제가 있으면 말로 잘 해결하라는 엉뚱한 해결책만 내놓은 채 방을 나갔다.

단유는 머리를 감싸고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좋은 방법 없을까?”

밖에서 점심 먹으라는 선생님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 고민에 빠져 있던 단유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방을 나왔다.

“와, 맛있다!”

오늘의 점심은 스파게티였다. 명수가 특히 좋아하는 메뉴였는데, 구운 마늘과 기름에 볶은 양파를 곁들인 토마토소스 베이스의 붉은 스파게티는 감칠맛이 뛰어났다. 명수는 허겁지겁 한 접시를 비운 후 다시 한 접시를 더 내밀었다.

“한 그릇 더요!”

“배 안 부르니?”

이모님이 이미 많이 담아줬었는데 그게 다 들어가냐는 물음이었다. 명수는 자기 배를 두드리며,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다시 한 접시를 건네받은 명수는 포크를 쉴 새 없이 움직여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이모님이 단유에게도 물었다.

“너도 더 줄까?”

“아니요, 먹어보고 모자라면 더 부탁드릴게요.”

“그래.”

단유는 다시 포크로 스파게티 면을 감다가, 멈칫했다.

“아!”

“왜?”

선생님과 이모님이 왜 그러냐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는데―명수는 먹느라 시선을 돌릴 틈도 없어 보였다―단유가 급히 손사래를 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변명했다.

“맛있네요. 저기···한 접시 더 주실래요?”

원치 않게 한 접시를 더 받아서 먹은 단유였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한 접시였다.

‘한 번에 다 담을 필요는 없지. 조금씩 담아서 먹어도 배는 부를 수 있으니까.’

굳이 예전처럼 5년을 통으로 지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언제든지 오갈 수 있으니까.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단유는 저도 모르게 예전처럼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라고만 생각해서 계획을 짰던 것인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이렇게 일상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게 꽤 재미있고 신기하고 놀라웠다. 깨달음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던 신테의 말이 떠올랐다.

‘아! 어쩌면 상미도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나간 생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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