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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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때문인지, 아니면 지형의 특성상 원래 어두운 것인지 눈앞의 돌산은 굉장히 어두웠다. 좁은 소로(小路)가 보이는데, 어쩐지 그쪽으로는 단유가 가지 않았을 것 같았다. 굳이 저런 음산한 곳으로 갈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여기 아닌 것 같아.”
그러나 상미는 그 길옆에 위치한 철조망을 발견했다.
“이거 잡고 올라가면 되겠다!”
상미가 철조망을 더듬어가며 길을 따라 오르자, 명수도 할 수 없이 상미를 따라갔다. 왜 철조망이 거기에 있는지는 명수나 상미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러나 뜻밖에도 일은 꽤 빨리 벌어졌다.
“아야!”
상미의 비명이 정적을 깨뜨렸다. 명수가 놀란 얼굴을 하고 상미에게 다가갔다.
“다쳤어?”
“응. 아파.”
울먹이는 상미의 소리에 놀란 명수가 얼른 몸을 굽히고 상미를 살폈다. 철조망 가장자리에 제대로 마감을 하지 못해 튀어나온 철사 한 가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두운 틈에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지나다가 긁혔는지 상미의 상의 왼쪽이 찢어져 있었다.
“야, 좀 봐봐.”
명수가 상미의 웃옷을 들쳤다. 옆구리에 찢어진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피도 나는 것 같았다. 명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안 되겠다. 빨리 돌아가자.”
“힝.”
상미는 옆구리에 화끈거리는 상처를 입은 게 억울했다. 또, 미션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억울하고 분했다.
“단유 찾아야 하는데.”
“야, 지금 단유가 문제야? 이거 빨리 치료해야지, 멍청아!”
명수가 상미의 팔을 붙잡고 돌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명수가 앞장서서 길을 내려갔고, 바쁜 와중에도 명수는 상미를 계속 돌아보며 상태를 살폈다. 돌산을 내려올 때까지 명수는 상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한편, 산 위에서 경치를 구경하던 단유가 해가 완전히 지는 것을 본 뒤에야 다시 수림으로 돌아왔다. 대략 30분 정도였을까? 너무 오래 지체하면 어른들이 걱정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름 시간을 재며 경치를 구경하던 단유였다.
“어?”
해변 텐트로 돌아가던 중, 단유는 저 멀리서 뛰어가는 명수와 상미를 보았다. 멀찍이서 두 사람을 보니, 명수가 상미의 손을 붙잡고 달리는 중이었고, 상미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어떤 사정이길래 저런 모습을 연출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되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오래 가지고 싶었으니까.
텐트로 돌아간 뒤에야 단유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많이 다쳤어?”
“아니. 조금 긁혔는데 얘가 오버했어.”
“웃기시네, 아까까지는 아프다고 징징대던 애가?”
“안 그랬거든?”
“그랬거든!”
“시끄러워! 둘 다 조용히 해.”
상미 어머니가 버럭 하자 동시에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상미의 옆구리를 소독하고 살피더니 밴드로 살짝 마무리만 했다.
치료가 너무 대충인데, 라고 생각하는 틈에 무릎을 굽혔던 상미 아버지가 일어났다.
“일단 가까운 병원에 갔다 와야겠어. 철사에 긁혔다니까, 파상풍도 염려되니까.”
“파상풍? 그게 뭔데?”
상미가 죽는 병인가 싶어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 안 해도 돼. 얼른 병원 가서 치료받으면 괜찮을 거야.”
상미 아버지는 여러 사람 모인 앞에서 괜히 큰 소리는 내고 싶지 않았던지, 계속 조곤조곤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그 마음을 눈치챈 어머니도 덩달아 차분한 모습으로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걱정돼서 그러니 잠시 아이 아빠랑 같이 병원엘 좀 다녀올게요.”
선생님은 그러시라고, 손짓하며 세 사람을 배웅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괜히 잘못한 거 같고 미안했다. 줄곧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은 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명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데를 올라갔어! 이렇게 어두운데 말이야. 기다리는 사람 마음이 어떡했겠어!”
“죄송합니다, 선생님.”
명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선생님에게 사과했다.
“선생님이 너한테 사과받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사과는 아까 상미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했었어야지. 그리고 명수 넌 남자잖아? 그럼 네가 상미를 지켜줘야지. 아무리 상미가 먼저 원했다고 해도 위험해 보인다면 네가 가지 못하게 막던지 했어야지, 어린 애들처럼 이게 뭐니? 명수 너도 이제 중학생이잖아? 그럼 이제 어릴 때처럼 철없이 굴 나이는 지났잖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명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다. 덩달아 단유도 명수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너희 둘 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아니잖아. 스스로의 행동에 무조건 책임을 지라고는 안 해도 스스로 위험한 거, 위험하지 않은 건 구별할 줄 알아야 하잖아? 그리고 너희들이 평소에도 상미를 그냥 친구처럼 대하는 게 크게 문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안 했었지만, 상미는 여자애야. 만약 잘못해서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어떡했겠어? 명수 너 생각해봐. 상미 얼굴에 상처가 나면 상미 부모님 마음이 어땠겠어?”
“잘못했어요, 선생님.”
그 뒤로도 선생님의 꾸중은 계속되었다. 평소 잔소리나 꾸중을 하지 않으시던 분이 화를 내시니 더욱 무섭고 미안했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명수는 물론이고, 단유도 선생님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김단유.”
“네.”
“집에서는 혼자 공부할 시간도 필요하고 해서 방에 들어가 있는 거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아무 말 안 했어. 하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까지 혼자 행동하는 모습 보기 안 좋아.”
“네, 선생님. 안 그럴게요.”
선생님은 단유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지금 이 사태도 어쩌면 너 때문에 일어난 것일 수도 있어. 알지?”
“네.”
물론 단유에게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참에 단유의 성격이 조금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에 선생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잔소리를 계속했다.
이런 야외에서, 특히 다른 가족들과 함께 나온 자리에서 혼자 행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 특히 친구들이 버젓이 함께 있음에도 혼자 있으려고만 하는 단유의 성향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단유도 그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금 전만 해도 명수와 상미가 자기보다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애써 그들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분명 자신이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리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어울리지 못할까?’
단유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고, 그래서 어울려 지내고는 있지만, 그런데도 자신은 그들과 잘 섞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저 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저 달처럼. 달은 바다와 섞이지 못하고 오직 그림자만 띄울 뿐이었다. 바다는 달의 그림자를 안아주지만, 달은 점점 더 바다에서 멀어질 뿐, 가까워지지 않는다.
“김단유!”
“네, 선생님.”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단유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선생님은 이 기회를 빌려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뱉을 요량으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셨고, 단유와 명수는 묵묵히 듣고, 사과하고, 반성해야 했다.
****
“이놈의 기집애, 내 사고 칠 줄 알았어! 이그.”
어머니는 병원을 찾아가는 내내 차 안에서 상미를 구박했다. 상미는 짜증을 내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큰 소리는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상미는 한껏 찌푸린 얼굴을 하고 옆 자리에 앉은 어머니를 흘겨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곧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미안하면 다니? 미안하면 다야? 지금 네 꼴을 봐. 다른 사람이 봤으면 다 비웃었어, 이것아.”
“다친 걸 갖고 비웃으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지, 내가 이상한 건가?”
상미는 창밖을 보면서도 어머니의 말에는 꼬박꼬박 대꾸했다.
“아이고, 기집애가 말이나 못 하면.”
“말이라도 잘하니까 이렇게 지내지.”
상미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그 틈에 머리를 쥐어박는 어머니였다.
“정신 차리고, 좀 조신하게 행동해. 친구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니?”
“왜 부끄러워? 친구들끼리 있는데?”
친구가 무슨 뜻인지 엄마 알아, 라고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짓는 상미였다.
“아이고, 내 속이 속이 아니네. 쟤들이 말로는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여자애가 천방지축이라고 혀를 찰 거다.”
“그런 애들 아니거든? 모함하지 말지?”
그때,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러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둘 다 조용히 해!”
그리고 조용해진 틈에 아버지도 한소리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상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에 아빠가 뭐랬어? 사고 치지 말랬지? 나가서 얌전하게 지내랬지? 그런데 이게 뭐야? 아빠랑 아침에 한 약속도 금방 잊어먹고 이게 뭐냐고? 이러니 아빠가 너한테 맨날 잔소릴 하는 거잖아.”
“그런 거 아닌데···.”
핸들을 쥐고 있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룸미러로 바라보는데 시선을 피하는 상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런 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는 제발 좀 여자처럼 행동하라고 했어, 안 했어? 응? 도대체 누가 널 보고 여자애라고 생각하겠어?”
“여자 같은 게 뭔데? 소꿉놀이하고 노란 옷 입고 막 그래야 여자 같은 건가? 맨날 치마만 입고, 입 가리고 웃고 그러면 여자 같은 건가?”
상미가 빈정거리며 시치미를 떼자,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셨다.
“누가 그런 걸 말한대? 행동을 조신하게 하라는 거잖아, 행동을!”
“그런 게 어딨어? 그냥 편한 대로 사는 거지, 남자 여자 행동이 뭐 따로 있나?”
남자는 서서 싸고, 여자는 앉아서 싸는 거 말고 다른 게 뭐 있어,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머니의 귀에도 들렸다.
“아이고, 저 계집애를 누가 데려갈지 참 걱정이다.”
“딸애 교육을 잘못해서 그래.”
무심코 뱉은 말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거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으흠.”
차마 룸미러로도 어머니의 눈빛을 받기가 곤란했던 아버지는 괜히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그 와중에 상미는 왜 자길 못 잡아서 안달이냐며 화를 냈다.
“나 참. 누가 교육을 잘못 받았다고 그러셔? 나 초등학교 제대로 졸업했거든?”
“어이구, 너랑 얘기하느니 차라리 앓지.”
“됐고, 빨리 병원이나 가요. 나 여기 따끔해.”
아픈 사람한테 이럴 수 있냐는 상미의 말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났다, 정말.”
****
상미가 돌아온 것은 밤이 깊어서였다.
“괜찮아?”
명수가 얼른 가서 상미의 안부를 물었다. 상미는 옷을 살짝 들추며 치료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주사 맞고 꿰매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 완전 아파서 죽는 줄.”
명수가 눈가를 찡그리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게 거기 가지 말자고 했잖아! 왜 꼭 가서 일을 내냐.”
“야. 나 병원 가고 오는 동안 차에서 실컷 들었거든? 니가 그런 말 안 해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으니까, 그만하자. 응?”
명수는 상미의 살벌한 경고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픈 애한테 이런저런 소리 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니까. 곁에 있던 단유도 상미한테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혼자 돌아다니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니까, 나도 사과할게.”
무슨 이상한 소리냐며 상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그게 무슨 니 잘못이야? 너 거기 철조망 있는데 갔었어?”
“아니.”
“거기 가지도 않아본 애가 무슨 그런 사과를 하고 그래? 니가 혼자 돌아다닌 게 괘씸하긴 하지만, 그거랑 내가 다친 거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
단유는 머리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같이 놀지 않고 말없이 혼자 빠져나와서 돌아다닌 거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나 찾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하니까, 나도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해.”
“알았어,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니 사과 받아줄게.”
“고마워.”
“그런데 말로만 끝낼 건 아니지?”
“응?”
상미가 히죽 웃었다.
“아까 명수랑 내기했었거든? 누가 빨리 너 찾는지. 그리고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를 했거든.”
“그래서?”
마음속에 불길함이 자라는 와중에 상미의 말이 이어졌다.
“내 소원 니가 들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