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36화 (236/956)

업타운걸(5)

-------------- 236/952 --------------

7월이 되는 첫 주, 기말고사가 예정되어 있던 단유와 명수는 본격적인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명수를 단유가 특별과외 하는 식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중학교 첫 기말고사를 잘 치르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도 이런 식이었지만, 다른 점이라면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과목과 더 어려워진 난이도 때문에 준비 기간을 길게 가져가기로 했다는 점이 첫째였고, 두 번째는 단유가 가르치는 대상이 명수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단유는 짧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나 선생님 아니거든?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줄래?”

상미는 키득거리면서 문제지를 내밀었다.

“이거 잘 모르겠어.”

단유는 상미가 내민 문제지를 힐끗 바라본 뒤, 간단하게 문제 풀이 과정을 설명했다. 상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지를 회수하자, 뒤이어 지태가 문제지를 내밀었다.

“이건 너도 풀 수 있는 거 아냐?”

지태는 단유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게 이해가 안 가서.”

단유는 간단한 방정식을 이용해서 해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해준 뒤, 채윤을 바라보았다. 채윤은 지태 다음에 물어보려고 문제지를 들고 있다가 단유의 시선에 찔끔 놀라는 얼굴을 했다.

“괜찮아.”

채윤이 헤실 웃으면서 문제지를 내밀었다. 오직 명수만이 문제지를 내밀지 않았다. 어차피 모르는 거 나중에 몰아서 물어보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

처음에는 단유의 집에 상미와 명수만 있었다. 상미 어머니는 마침내 단유라는 아이의 쓰임새(?)에 만족하며 고마워했고, 상미의 손에 간식거리를 들려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시험공부 하는 2주간은 11시에 들어와도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넌 학원 안 가?”

“내 체질이 아니라서.”

그보다는 게임 할 시간이 줄어들어서겠지, 라고 단유 나름대로 상미를 이해하며 명수랑 같이 공부를 가르쳤다. 상미네랑은 교과서가 다르지만, 어차피 중학교 1학년의 과목이고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제집으로 공부하게 되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래서 상미도 두 사람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편이에요.”

라고 선생님께 말씀하시던 상미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머리가 좋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결론적으로 상미와 명수는 도긴개긴이었다.

****

“벌써 시험 준비를 한다고?”

지태가 명수의 말에 놀랐다는 듯 반응했다. 아직 학교에서 시험 범위나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기말고사잖아. 나올 범위라는 것도 뻔하고 7월 첫 주에 시험 친다는 걸 다 아는데 기다릴 게 뭐 있어?”

라는 게 단유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명수는 평소보다 더 길게 기간을 잡고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기에 미리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축구부 활동도 겸해야 했던 명수였다.

“다른 축구부 애들 보면 별로 시험 준비 않던데?”

“난 시험성적 잘 나오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나.”

명수의 말에 지태와 채윤이 얼굴을 굳혔다. 두 사람도 어느 정도 단유와 명수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명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느낀 것이다.

“거짓말이야.”

단유가 장난치지 말라며 명수의 등을 쳤다. 명수가 오버하면서 아픈 척을 했다.

“완전 거짓말은 아니지. 재훈이 형이 시험성적 잘 안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잖아.”

본래 뜻은 ‘기본만 하자’라는 것이었지만, 명수에게는 그 기본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어려운 경지인지라, 나름 집에서 쫓겨날 각오로 공부하고 있었음이다.

“아무튼, 시험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거지? 단유가 가르쳐주고?”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알려주는 정도지.”

“그게 그거 아냐? 그럼 우리도 같이하자.”

이미 중간고사 때 단유가 전교 1등을 하면서 그의 실력이 드러난 참이었다. 지태와 채윤은 전교 1등의 노하우도 배울 겸, 시험공부도 할 겸 해서 단유의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괜찮아.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부하면 더 잘 될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명수 니가 그런 말을 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단 말이야.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문제가 아닌데.”

“뭐 문제 있어?”

채윤이 단유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채윤이 보기에 단유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모습을 종종 봤었기 때문에 혹시 지태와 자신이 단유네 집에 가는 게 싫은 건 아닐까, 염려하는 중이었다.

“선객이 있어, 우리 집에.”

“선객?”

“그게 뭔데?”

지태는 선객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고, 명수는 ‘선객’이란 단어가 뭔지 몰라 물었다.

“1주일 전부터 우리랑 같이 공부하는 애가 있다고.”

“아, 그거야?”

명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태와 채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우리 집 뒤에 사는 앤데, 평소에 같이 놀던 사이야. 시험공부도 같이하기로 해서 같이 단유한테 배우는 중이거든.”

“배우긴 뭘 배워.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잖아?”

단유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듯, 지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얼굴을 했다.

“그럼 우리도 같이해도 되겠네. 한 사람이 있으나 두 사람이 있으나 똑같잖아.”

“그게 어떻게 똑같아? 그리고 두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이 되는 거지.”

채윤이 지태의 말을 정정하면서 또 단유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덤덤한 표정인지라 딱히 꺼리는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단유야?”

“상관없지.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겠다는 건데. 서로에게 방해만 안 된다면 모여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단유는 지태나 채윤이 평소에도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들임을 알고 있었고, 수업시간 태도가 불량한 이들도 아니었기에 별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다만.

“그런데 상미한테도 물어봐야지. 걔가 불편하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그런가?”

명수가 고개를 갸우뚱할 때, 지태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상미? 이름이 상미야?”

“응.”

“···혹시 여자애야?”

“응.”

“여자애라고! 진짜? 어떻게···, 진짜야?”

단유는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얼굴로 지태를 바라보는데, 지태는 걸음도 멈추고 얼이 빠진 얼굴로 진짜냐고만 물을 뿐이었다. 명수가 히죽 웃으면서 지태의 어깨를 툭툭 쳤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너 여자애 본 적 없어? 초등학교 때 여자 친구들 없었어?”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지태였다. 채윤이 슬쩍 두 사람을 본 뒤 단유에게 물었다.

“여자애랑··· 같이 공부하는 거야?”

단유가 입을 열기 전에 명수가 먼저 대답했다.

“여자애라고 생각하지 마. 그냥, 친구라고 생각해. 걔도 1학년이거든.”

“어떻게 그래? 여자앤데? 안 부담스러워?”

지태가 명수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물었지만, 명수는 다 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지태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전혀. 너도 보면 알 거야. 전혀 부담스러울 필요 없어. 걔가 얼굴은 여잔데, 성격은 그냥 남자야, 남자.”

단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명수를 바라보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얼굴 붉히면서 상미를 대하던 인간이 지금 눈앞에 저 인간이었다. 단유의 시선을 느꼈는지 명수가 헛기침하면서 변명을 했다.

“나도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좀 지내다 보니까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니들도 아마 괜찮을 거야.”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인데, 지태와 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꼭 가서 보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

“친구들? 상관없어. 데리고 와. 너희 친구를 너희 집에 데리고 온다는 데 내가 뭐라고 그래? 난 상관없어.”

역시 쿨하게 받아치는 상미였다. 단유와 명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상미의 말을 받았고, 이튿날부터 단유의 집에 지태와 채윤이 찾아왔다.

“안녕? 나 장계여중 1학년 유상미야. 반갑다.”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상미였다. 두 남자아이는 상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상미가 손을 휘젓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히는 반응을 보였다.

잠시 후, 단유와 명수가 지태의 손에 이끌려 단유의 방에 들어왔다. 단유의 집에 처음 왔기 때문에 방을 구경하고 싶다는 핑계로 들어온 뒤, 지태는 화난 얼굴로 따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예쁘다는 말은 안 했잖아?”

그게 화낼 일인가? 단유가 눈을 껌뻑이며 지태를 바라보는데, 명수가 여유만만한 웃음을 띠면서 지태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어쩐지 요즘 들어 자주 보는 광경이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마음이지.”

라며 지태의 가슴을 손가락을 찌르는 명수였다. 무슨 뜻이냐며 명수를 바라보는 지태에게 명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조금만 같이 있다 보면 알 거야.”

지태는 물론이고 덩달아 방에 들어왔던 채윤마저 명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궁금해했다.

그리고 1시간 뒤, 두 사람은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문제만 풀었다. 그리고 그 시간 단유는 명수와 상미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기서 이거랑 이거 더하면 얼마야?”

“몰라.”

상미의 즉답에 단유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계산은 하고 대답하지?”

잠시 문제를 들여다보던 상미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단유의 눈가가 꿈틀했다.

“더하긴데?”

“아, 그래?”

상미가 연필을 들고 노트를 앞으로 끌어당겼다가 다시 내밀었다.

“뭐랑 뭐를 더해야 하는데?”

단유는 짧게 숨을 토하고 가만히 있는 명수를 바라보았다.

“넌 왜 아무 말 안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잖아.”

단유는 짧게 혀를 차며, 노트에다가 더하기부터 시작해서 가장 기초적인 방정식을 설명했다.

“···이렇게 줄이면 3a 더하기 4는 28이란 식이 되지? 그럼 3a는 24가 되잖아? 그럼 a는 얼마야?”

두 사람은 가만히 노트를 바라보다가 서로를 바라보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모르니까.”

상미와 명수가 히죽 웃었다. 단유는 혀를 차며, a=8이란 숫자를 써넣으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3 곱하기 a는 24니까, 구구단만 해도 답은 나오잖아. 3 곱하기 몇을 해야 24가 되는지.”

“아! 이게 곱하기야? 그런데 곱하기 표시 없잖아?”

“···곱하기 기호는 생략된 거야.”

“아, 그래?”

“···아까 이야기했잖아?”

“아, 그래?”

“···.”

“왜 나만 갖고 그래? 명수한테 물어봐. 명수도 모를걸?”

명수는 뜨끔한 얼굴로 단유의 시선을 피했다.

“왜 나한테 그래? 모르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됐고, 명수 너도 다음 문제 풀어봐.”

“네, 선생님.”

“선생님 아니라고!”

명수는 입을 지퍼로 채우는 시늉을 하고는 연필을 들었다. 그 옆에서 상미도 연필을 들고 단유가 내 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유가 거실에서 상미와 명수를 데리고 진땀을 흘리는 동안,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서 각자 가지고 온 문제를 풀고 있었다.

“의외다.”

“그렇네.”

“명수가 두 명인 거 같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명수야.”

그때, 상미가 머리를 들고 식탁을 바라보았다. 속삭이던 두 사람이 놀라서 고개를 숙일 때, 상미가 외쳤다.

“선생님, 쟤들 공부 안 하고 논대요!”

“신경 끄고 문제나 풀어. 그리고 나 선생님 아니라고!”

“쟤들이 떠들어서 문제가 안 풀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어떻게 들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문제나 풀어.”

상미가 명수에게 너도 그렇지, 라고 묻자 명수도 고개를 심하게 흔들며 자신도 그 때문에 문제가 안 풀린다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선생님이 간식거리를 접시에 담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

단유의 희생 덕분에 명수는 꼴찌를 면했다. 그러고 보면 단유가 잘 가르치기도 하지만 명수가 아예 공부를 못하는 머리는 아닌가 보다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상미의 어머니가 상미를 데리고 집에 나타났다.

“아이고, 단유야. 고맙다. 덕분에 우리 상미가 지난번보다 성적이 두 배로 올랐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성적이 두 배로 오를까, 라고 몰래 고민하던 단유는 상미 어머니가 쥐여 주는 선물을 받았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길래, 이거면 괜찮을까 싶어서 사 왔어. 앞으로도 우리 상미랑 잘 지내고, 또 나중에도 상미 공부하는 것 좀 부탁할 게.”

상미 어머니의 뇌물과 청탁을 받아든 단유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빛이 서렸다. 어머니는 상미에게도 인사하라고 시키려 했지만, 어느새 상미는 명수랑 거실에서 게임패드를 붙잡고 있었다.

“1달 동안 참느라 죽는 줄 알았어. 그치?”

“응. 지난번에 애매한 데서 끝내는 바람에 꿈에 계속 생각나더라.”

“나도, 나도! 오늘은 엔딩 보자, 오케이?”

“오케이!”

두 사람은 열혈 모드로 바뀌어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