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6) - 2.10 5: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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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거리로 나간 이는 지역 순찰 중이던 인근 지구대의 김 경장이었다. 빈번하게 신고가 들어오는 곳이라, 위치를 확인한 김 경장은 그 즉시 신고받은 장소로 향했다.
“저기로 갔어요.”
마침 상점 앞에서 구경 중이던 가게 주인이 김경장을 알아보고 아이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요즘 어린 애들이 너무 자주 보이는 데 걱정스러워요.”
라고 하는 한탄은 흘려듣고 김경장은 걸음을 재촉하여 아이를 찾으러 떠났다.
“벌써 멀리 간 거 같은데 찾을 수 있을까요?”
뒤따라오던 박순경이 인파를 헤치며 걷다가 고개를 저으며 이미 텄다는 듯, 툴툴댔지만 김경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놈인지 얼굴은 봐야 속이 시원하겠다, 이놈들.”
최근 무리를 지어서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취객들을 털고 다니는 애들이 있다는 신고가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어찌나 약삭빠른지 도저히 꼬리가 잡히질 않았다. 피해신고만 늘어나는데 목격자 신고는 좀처럼 걸려들지 않으니 인근 지구대에서도 걱정이 많던 차였다.
때문에 번화가 인근 순찰도 잦아서 피로도 많이 쌓이던 즈음이었다. 마침 수상한 아이 둘이 서로 싸운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참에 꼭 그 꼬리를 잡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던 김경장이었다.
어느덧 번화가 끝에 다다랐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싸우는 중이었다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을 텐데, 라고 추리를 해보는 김경장은 잠깐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 뭐지?”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에 초점을 맞추니, 눈앞에 문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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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고약한 냄새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던 단유가 길에 나왔을 때, 마침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 경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래 이런 문제는 경찰에게 맡겨야지.’
법을 어긴 사람이 있다면, 경찰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저 아이들, 몰라도 대략 법 한 개 이상은 어기고 있었던 걸로 보였으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저 분들에게 가서 이야기하자고 마음 먹고 발을 떼던 찰나, 단유는 멈칫거렸다.
생각해보니, 단유는 혼자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일행들은 아직도 식당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고 나간 애가 돌연 경찰과 함께 나타난다면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그리고 괜히 이 일로 또 누나들에게 안 좋은 소문이라도 붙는다면 단유는 정말 그 누나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다.
전화를 걸어서 신고하자니, 마침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 나온 참이었다. 일부러 두고 나온 거였는데, 이런 상황에 닥치고 보니 후회가 됐다.
역시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냥 지나가자니 눈으로 봤던 그 ‘나쁜 선배들’이 걸리고, 또 경찰에게 다가가자니 일행이 마음에 걸린다.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벌어진 판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문제가 되는 상황을 봤음에도 그냥 방관자처럼 행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뜻을 세우면, 실천하라고 했지.’
뜻은 내 마음이 가는 방향이라고 주희는 말했다. 그리고 인(仁)을 실천하라고 했다. 지금 단유의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번화가의 끝이라 사거리에 비해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단유는 골목에 몸을 감추고, 고개만 내밀어 상대를 살폈다.
단유는 걸어가고 있는 둘 중 누구를 보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런데 마침 그 고민을 도와주려는 듯 걸음을 멈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부탁해요.”
들리진 않겠지만, 일단 그 사람을 보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두 사람을 동시에 이동시키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한 단유였다. 대신 그다음 사람을 재빨리 보내면 될 일이니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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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김경장님?”
김경장이 열린 문 안을 들여다보다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바라보니 박순경이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무슨 일이죠? 여기··· 어디죠?”
박순경의 물음에 답할 거리가 궁색한 건 김경장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김경장은 손가락으로 룸 안을 가리켰다.
대충 봐도 노래방이었고, 노래방의 어두운 룸 안에 우르르 몰려서 매캐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담배만 있다면 그렇다 치더라도, 수많은 캔 맥주가 테이블과 소파 위에 뒹굴고 있으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비행 현장이었다. 게다가 룸 한가운데서 여러 사람의 신발에 멍든 학생이 있음에야,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모두 꼼짝 마.”
김경장이 경찰봉을 빼 들었다. 박순경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김경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 니가 그러면 어떡해?”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박순경이 머쓱해 하며 다가왔다. 김경장 뒤에 선 박순경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떡하시려고요?”
김경장은 살짝 눈치를 줘서 박순경의 입을 막았다. 사실 경찰봉을 빼 들었지만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아니 휘두를 일이 없기를 바랐다. 경찰봉을 휘둘러 저 아이들 중 누군가가 맞는 순간, 자신은 바로 근신(勤愼)행일 것이니. 방어 차원에서라도 휘두를 일이 없기를 속으로 바라며 박순경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원 요청이나 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전기를 빼 든 박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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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바늘이나 꿰맨 거야?”
예영이 단유의 옆 머리에 칭칭 감긴 붕대를 슬쩍 건들며 물었다.
“3바늘이란다.”
수련이 맥주를 벌컥 들이킨 후, 쓴 사탕이라도 삼킨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단유는 그저 미안한 얼굴을 하고 걱정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할 뿐이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녔길래 그렇게 다친대?”
“너 혹시 누구한테 맞은 건 아니지?”
단유는 습관적으로 머리에 손을 가져가는데 붕대가 손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보던 수련이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한소리를 하려는데, 명지가 말렸다.
“아픈 애한테 무슨 소릴 하려고 그래. 그만둬.”
덕분에 즐거웠던 자리는 분위기가 식으면서 더는 자리를 이어나가기 힘들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 단유였다. 거리를 나서는데 큰 길가에서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다가 지나가는 것이 들렸다.
‘그래. 위험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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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단유는 자리에 누워 오늘의 일을 복기했다.
‘만약 경찰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히 단유는 스스로 손을 쓰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단련이 되어 있지만, 확률이 낮은 위험에 대해서까지 나서는 것은 오버였으니까. 그리고 ‘나쁜 선배들’로 인한 위험은 등급으로 따지자면 가장 낮은 등급의 위험이었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적도 없었고, 그들이 특별한 인과관계도 없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판단 되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단유가 경찰을 부를 생각을 한 것은 그것이 ‘사회 정의’ 혹은 ‘준법정신’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 악플러들에게 단유가 했던 말처럼.
그런데 단유의 신경에 거슬리는 하나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었다.
지난 댓글 사건 때, 악플러들을 고소하면서 단유는 느꼈다. 법이 모든 것을 예방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속담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던가? 그것의 영향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았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미 그 사람들은 글로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뒤였다. 그 이후에 그 사람들에게 처벌을 내린들 상처가 사라지는가?
갤럭시즈 누나들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매니저 형은 대기 발령인지 뭔지로 타격을 입었다. 그런 마당에 악플러들을 고소한다고 그들에게 어떤 극적 반전이 일어났던가? 아무것도.
결국 그런 상황들이 심리적으로 단유를 압박했고, 단유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 것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자신의 비밀스런 힘을 노출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 ‘나쁜 선배들’은 예방의 정도를 벗어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유는 그저 광종에게 말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나쁜 짓을 하는지, 혹은 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즉 굳이 힘을 써가며 모험을 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만약, 단유가 거리로 나왔을 때 경찰을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조금 더 차분하게 판단을 했다면 어쩌면 단유는 경찰에게 신고를 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그게 옳은 일인가? 당연히 옳지 않은 일이다. 나쁜 짓을 보고도, 혹은 나쁜 짓을 할 게 보이는 데도 눈을 감은 꼴이니까. 그럼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짓이니까.
결국 어느 쪽을 선택했더라도 지금의 번민은 이미 피할 수 없었던 결과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광종이 착하게 살게 된다면, 그럼 다행이지.’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광종이 착하게 살게 된다면, 그리하여 교실에 분란이 생기지 않는다면, 단유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만 된다면 오늘 과하게 손을 쓴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유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늦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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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지구대에 근무하는 인원들 중 10명 가까이가 지원을 와서 아이들을 잡아갔다. 술에 취한 몇몇 아이들이 난동을 부리기도 했지만, 곧 제압을 당하고 모두 지구대로 끌려갔다.
―김경장, 수고했어. 그 아이들이 요즘 취객털이 한다던 그 아이들이라며?
“운이 좋았습니다, 서장님.”
관할 경찰서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치하하는 일도 벌어졌다. 물론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진 뒤에야 나올 말이지만, 이번 일은 아마도 김경장의 인사고과에 큰 점수를 부여할 일이 될 것이다. 특진은 어려워도 그게 어딘가?
다만 김경장은 조금 불편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신고를 받고 가던 길에 수상한 노래방이 있어서 들어갔다?”
“···네.”
“그리고 그곳에서 미성년자들이 술을 마시고 한 아이를 집단 폭행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뒤, 바로 지원 요청을 했다, 이거지?”
“네.”
“노래방을 특정한 건 그냥 직감이었고?”
“···네.”
그 외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떤 논리적인 수사도 불가능했으니까. 박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경장님. 여기.”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김경장이 고개를 돌리니 박순경이 종이컵 한 잔을 내밀고 있었다.
“어, 고마워.”
잠시 지난 일을 떠올리느라 넋을 놓고 있었던 김경장은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잔을 받아들었다. 지구대 건물 옆에 설치된 조그만 쉼터에서 저녁 하늘을 바라보던 김경장은 두서없이 말을 꺼냈다.
“이상하지?”
박순경은 가타부타 말없이 김경장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 마셨다.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꿈을 꿨던 건지, 아니면 제가 잠시 정신을 놨던 건지.”
“니가 꿈을 꿨다면, 같은 꿈을 꾼 거고, 정신을 놓은 거라면 같이 미쳤던 거겠지.”
김경장은 종이컵 끝을 살짝 깨물었다. 일그러진 종이컵의 가장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달달한 커피믹스의 느끼함이 입안 전체를 감쌌다.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한테?”
“···누구한테든요.”
김경장은 저녁 하늘에 떠오른 달을 바라보다가 종이컵을 비웠다.
“미쳤다는 소리밖에 더 들을까.”
박순경도 따라서 종이컵을 비우고, 비워진 종이컵을 구겼다. 멀리 떨어진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더니 통에 닿지도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런데요, 걔들 중에 한 놈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대요.”
“들었어.”
어떤 놈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신경 쓰는 동료들은 없었다. 오직 박순경과 김경장만이 그 진술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뿐.
“혹시 그 아이, 찾을 수 있다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찾아? 얼굴도 모른다는데.”
박순경이 한숨을 토하는데, 김경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나 버려.”
김경장이 건네준 종이컵을 받아든 박순경은 바닥에 구르는 종이컵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김경장을 따라갔다. 그런데 김경장은 지구대 건물로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 가십니까?”
김경장은 허리에 찬 경찰봉을 툭툭 두드려대다가 박순경의 물음에 답했다.
“그 노래방에.”
“왜요?”
“CCTV 한 번 보려고.”
결국, 호기심을 참아내지 못한 김경장이었다. 박순경은 김경장 뒤를 졸졸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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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못했던 일 중의 하나는, 광종이 학교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단유는 자신이 자리를 떠난 직후, 광종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이었다. 그것 때문에 며칠간 담임의 머리가 복잡했지만, 단유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넌지시 경고를 날렸다.
“최근에 안 좋은 일도 많았는데, 학교 끝나고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제발 너희들, 사고 좀 치지 마라, 응?”
담임의 당부가 경고로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평소라면 피시방이나 번화가로 돌아다닐 애들도 얌전히 귀가하는 일이 이틀간 이어졌다.
“야, 이틀이나 게임을 못했어! 그 시간이면 벌써 10렙은 올리고도 남았을 건데.”
“나도, 이번에 불칸에서 이벤트 했단 말야. 접속만 해도, 갑옷 셋트 준다고 했는데.”
겁 많은 아이들은 순진하게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말없이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선생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피시방을 전전했고, 혹시나 증거가 남을까봐 말 한마디도 아끼는 조심성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실은 한동안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일주일 뒤 광종이 학교로 나왔다.
“야, 너 무슨 일 있었어?”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광종의 패거리는 광종의 등장과 함께 잠시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그러나 그런 패거리의 분위기와 다르게 광종은 수줍음(?) 많은 아이로 변해 있었다.
“아무것도 아냐.”
연신 흘끔대며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이는 광종이었다. 왜 그러냐 물어도 대답 없는 광종의 시선이 닿는 곳에 단유가 있었다. 지레 짐작하기로 광종이 단유에게 크게 한 번 당한 후유증이라 판단한 아이들은 광종이 모르게 핸드폰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광종이 쫀 거 맞지?
―쫄았네, 쫄았어.
―그럼 이제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거지.
아무렇지 않게 지내되, 광종과도 가까운 티를 내지 않는 것. 그것이 그들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점점 광종 주위에 아이들이 다가오지 않게 되었고, 방학이 가까워질 무렵 광종은 혼자가 되었다. 왕따는 아니지만, 왕따 같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렇게 광종은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