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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225화 (225/956)

유령(5) - 2.10. 04: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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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전.

광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네온사인 가득한 번화가 거리로 뛰쳐나왔건만, 눈앞에는 낡은 흙집들만 가득했다. 아니 흙집이라고 해야 할지, 나무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광종의 지식수준에서 이런 집은 본 적도 없었고,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

“뭐야?”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빈 공터와 으슬으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골목과 어둑해진 하늘과 어울리지 않게 밝은 빛을 뿌리고 있는 하얀 달까지. 어느 것도 익숙하지 않은, 그런 공간에 홀로 서 있음을 알게 된 광종이 살짝 두려움을 느낄 때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야기 좀 하자.”

흠칫 놀란 광종이 목소리에 반응하여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몸을 돌렸다. 달빛으로도 밝혀지지 않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보이는 희미한 실루엣은 그 녀석의 것이었다.

“너, 너 뭐야! 여, 여기 어디야?”

“···일단 이거라도 걸쳐.”

실루엣이 던진 천을 받아든 광종은 그제야 자신이 벌거벗은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옷을 벗고 있다는 것도 잊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수치심은 재빨리 천을 뒤적거리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에 입는 옷과 달라서 어디로 머리를 넣고 팔을 집어넣어야 할지 헷갈렸다. 광종이 원피스 형태의 옷을 입기 위해 허둥대는 사이, 실루엣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광종이 옷을 걸친 후 실루엣을 바라보니, 골목 사이로 드리워진 검은 그늘 아래로 번들거리는 하얀 눈빛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여기 어디야?”

광종은 기가 죽은 듯, 목소리에 잔 떨림이 느껴졌다.

“여긴, 평소라면 올 수 없는 곳이야.”

실루엣의 대답은 마치 익숙한 주소를 부르는 것처럼 평이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서, 설마?”

광종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찰 때, 실루엣의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보다, 여기에 왜 왔냐는 이유가 더 중요해.”

하지만 광종의 귀에 실루엣의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오지 않을 곳, 하지만 평소와 달리 오게 된 낯선 곳이라면?

“나, 나 죽은 거야? ···진짜?”

실루엣에게서 즉각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광종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질 때, 다소 당황한 듯한 어조의 대답이 들려왔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 어떻게 죽었어? 넘어져서 죽은 거야? 어떡해? 나 죽었을 때 기억이 안 나.”

울먹거리는 광종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어이없는 광종의 반응에 실루엣은 한숨이 나오는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광종아.”

소리를 높여 광종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광종이었다.

“이야기 좀 하자.”

광종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고는 죽었어, 죽은 거야,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실루엣은 몇 번 더 차분하게 광종을 달랜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광종의 눈빛은 달빛 아래에서도 흐리멍텅하게 빛을 잃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

“니 이야기.”

실루엣은 차분한 어조로 광종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폭력을 휘둘렀던 것인지, 평소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부러워서 그랬어. 단유, 넌 모든 걸 다 가졌잖아.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도 널 좋아하고, 아이들도 널 따르고. 그런데 난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광종은 눈앞의 실루엣을 저승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저승에 가기 전, 이승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는 규칙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예전에 들었던 전래동화에서 이런 장면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단유의 외형과 단유의 목소리를 닮은, 하지만 단유가 아닌 실루엣의 물음에 광종은 솔직한 답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집에 안 들어와. 지방에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가끔씩 집에 들어오시긴 하는데, 와도 잠만 자고 나가. 그래서 아빠를 봐도 아빠 같지 않은 느낌이야.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내가 공부를 하든, 어디서 놀든 관심이 없어. 자기 일만 중요하고 다른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 무관심한 부모님 때문에 비뚤어졌던 거야.

“선배들이 그랬어. 일진이 안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 선배들은 무서운 사람들이야. 사람을 칼로 찌른 적도 있다고 그랬어. 만약에 내가 그 선배들 말을 듣지 않으면 나도 당할 거야. ···그런데 이미 난 죽었는데? 이제 상관없네? ···개새끼들. 난 억지로 해야만 했어. 나라고 애들을 괴롭히고 싶었겠어? 그냥···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라고. 나도 살고 싶었다고! 살려고 그랬던 거라고!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날 보호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런 힘도 없던 나는 그냥 선배들의 말에 따랐을 뿐이야. 그래서 다른 친구들을 때렸고, 돈을 뺐었어. 돈을 뺏았어도 내 마음대로 쓴 적은 없어. 전부 형들에게 바쳤다고. 형들이 주는 용돈만 조금 썼을 뿐이야.”

나쁜 형들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었겠어? 그런데 내 주변에 있는 새끼들부터가 다 그런 놈들뿐이잖아? 난 정말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옆에서 부추기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안 그럼 내가 당하는데 어떡해?”

변명인지, 고백인지, 합리화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뒤섞인 광종의 이야기를 실루엣은 묵묵히 들어주었다. 광종은 그 뒤로도 줄줄이 이어지는 선배들의 악행, 가끔 자신이 남몰래 했던 선행―예컨대, 원래는 삥을 뜯으려 했는데 불쌍해 보여서 봐줬다거나, 떨어진 지갑을 주워서 주인을 찾아줬다거나 하는 드문 행동―들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역시 솔직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이야기를 듣던 실루엣이 한마디 했다.

“만약에 말이야,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예전?”

광종은 예전이란 말에 불현듯 6학년 여름방학 때가 생각났다. 광종이 본격적으로 일탈을 걸었던 시점. 선배들을 만났던 그때. 자유와 해방감이 폭발했던 그때.

“이렇게 안 살지. 착하게 살아야지. 나도 한때는 공부 좀 하고 살았단 말이야.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살고 싶어.”

광종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냥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 다른 사람도 있는데, 자신만 이런 처지에 처하고 말았는지. 더 오래 살고 싶은데,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는데 왜 자기만 이런 처지에 처하고 말았는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자신이 불쌍했고, 자신의 인생이 한심했다.

“흑.”

감정이 북받쳐 오른 광종은 결국 입 밖으로 숨을 토해내며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뜨거운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자국을 남겼다. 차가운 질감의 바닥에 점점이 늘어나는 눈물 자국을 보니 더욱 슬프고 억울함이 커져만 갔다.

“쟤 왜 저래?”

“중딩 같은데?”

“무슨 일 당한 거 아냐?”

“오빠, 경찰에 신고할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검은 구두를 신은 누군가가 다가와 광종의 어깨를 짚었다.

“괜찮아?”

흠칫 놀란 광종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반응에 덩달아 놀란 남자가 주춤거리는 모습이 광종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

한참 쏟아져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광종이 주위를 두리번거려 살피자 몇몇 사람들이 광종의 주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눈빛들이었다. 불콰해진 얼굴로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사람들, 핸드폰을 들고 자신을 찍는 사람들. 또 어떤 이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슬쩍 눈길을 주다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 입구에서 병아리 팔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조그만 종이 박스 안에 지저분한 신문지 몇 장을 깔고 삐약대는 병아리들을 깔아놓고 구경시켜주던 아저씨. 자신을 비롯해 여러 아이들이 호기심에 상자 안을 구경했다. 그저 삐약대는 소리가 재밌어서, 작고 노란 병아리가 귀여워서 구경하던 친구들과 자신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병아리를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요즘 누가 이런 걸 사냐?”

누군가 던진 말이었다. 아무도 병아리 따위를 사진 않는다. 집에 들여 놓아봤자, 곧 죽어버릴 거니까. 그 정도는 안다.

지금 자신을 구경하는 이들도 그런 눈이었다. 호기심, 걱정. 하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눈빛들을 통해 광종은 깨달았다.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이게, 뭐, 뭐야? 돌아온 거야? 나, 다시 살아났어?’

광종은 돌아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는데?

“쟤, 약 먹은 거 아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여력이 없던 광종은 우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너편에 익숙한 가게 간판―평소 탐내던 옷가게의 간판―과 익숙한 거리―먹자골목과 술집거리가 시작되는 사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훑어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단유와 함께 있었던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 가운데에서 여태 상황을 지켜보던 단유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헉!”

광종은 덜컥 겁이 났다. 골목 어둠 속의 단유와 저승(?)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광종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밀치며 달리기 시작한 광종은 우선 눈에 익은 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친 숨을 토하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광종의 질주에 사람들은 헛바람을 삼키며 물러섰다.

“뭐야, 쟤?”

뜬금없는 질주에 주변 사람들이 다양한 추측들을 하는 사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대로 두고 갈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지만, 곧 광종이 마지막에 보인 일그러진 표정이 떠올라 선뜻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무시하자니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고, 간섭하자니 괜한 시간과 노력만 낭비하는 것 같고.

그렇게 고민할 때, 상황을 지켜보던 몇 사람은 골목에서 나온 단유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로 보이는 데다가 광종이 달아나는 모습이 마치 단유를 보고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사실이기도 했지만.

“너 뭐야? 쟤 왜 저래?”

단유는 무의식적으로 볼을 긁적이다, 손에 진득한 피가 묻었음을 알았다.

“어, 피다?”

“야, 너 피 많이 흘리는데?”

그제야 단유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축축히 젖은 옆 머리와 붉게 물든 어깨가 번화가의 불빛 아래 선명히 드러났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사이, 단유는 잠시 광종이 뛰어간 길을 바라보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광종은 자신을 향해 벽돌을 휘두르기까지 한 아이였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고 완전히 그 사람을 파악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고 들은 광종을 평가하자면 ‘믿을 수 없는’ 쪽에 속했다.

단유는 광종을 쫓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또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단유를 붙잡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전화기를 들기도 했지만, 그 누구 하나 단유나 광종을 붙잡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시민의식은 전화번호를 누르는 데까지였다.

30분 전.

어떻게 뛰어왔는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광종이 노래방을 찾아온 것은 정말 본능적인, 생존 의지의 발로였다.

“살려주세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광종은 선배들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방의 가장 안쪽, 가장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웅크렸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자기 눈을 가리면 다른 사람도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듯이. 병아리가 상자 가장 안쪽에 머리를 박고 숨듯이.

선배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광종을 바라보다가 뒤이어 나타난 아이 때문에 광종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너 누구야!”

단유는 슬쩍 방 안을 쳐다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 곳이 광종이 언급했던 ‘못된 선배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과연 그들은 못된 선배들답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순간, 단유에게 방 안에 들어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방 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복도로 되돌아가는 듯한 아이의 모습을 본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명령했다.

“야, 잡아 와.”

곧 지명하지 않아도 이럴 때 나서는 아이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나간 아이들이 방을 나와 도망간 아이를 찾았다. 그런데 복도로 나오는 순간 아이들은 당황했다. 늦지 않게 뛰쳐나왔는데 복도는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

당황은 순간이었다. 엄청 빨리 도망갔구나, 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은 복도를 가로질러 노래방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TV를 보는 노래방 주인아주머니만 있을 뿐이었다.

“아줌마, 방금 나간 애 어디로 갔어요?”

“누구? 아무도 안 나갔는데?”

“방금 나간 애 있잖아요? 키 좀 큰 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는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가 되물었다.

“좀 전에 니네 후배라는 애가 뛰어들어가는 건 봤다.”

“···지금 나간 애는 없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간 사람은 없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소년은 재빨리 다른 아이들에게 흩어져서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이 입구만 막으면 다른 곳으로 도망갈 길은 없으니까. 하지만 어느 방에서도 아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새끼 어디로 튄 거야?”

수색조는 다시 본래의 방으로 돌아가 보고 했다.

“없는데요?”

수색조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 방에는 가운데 테이블이 벽으로 밀려나고 대신 광종이가 중앙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안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어디서 뻘짓을 하다가 뒤늦게 나타나서는 미친놈처럼 살려달라고 울부짖다가 이제는 죄송하다며,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는 광종이었다.

“이게 어디서 죽으려고 용을 써?”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무슨 저승사자를 만나서 심판을 받았니 뭐니 하는 헛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이 새끼 일부러 미친 척하는 거 아냐?”

그때 돌아온 수색조의 보고를 들으며 선배들은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 신나게 음주가무를 즐기며 흥겨웠던 기분이 미친놈 하나 때문에 잡쳤다는 생각이 들자, 선배들은 광종을 이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담배를 꼬나문 선배가 광종의 머리를 짓밟으면서 추궁을 시작했다.

“너랑 같이 온 새끼 누구야? 말해, 얼른?”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광종의 이야기는 뒤죽박죽이었다.

“저승사자요, 아니 우리 반 앤데요, 걔가 저승사자였거든요? 그래서 잡히면 죽을 지도 몰라요.”

“이 새끼, 뭐라는 거야?”

말을 못하면 하게 만들고, 정신을 못 차리면 차리게 만들면 된다. 그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니 어려울 건 없었다. 곧 광종이 선배들의 발길질에 술과 담뱃재로 얼룩진 발자국을 온몸에 새길 무렵,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 너희들 누구야? 무슨 짓이야?”

룸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어벙벙한 목소리로 물었다. 광종을 밟던 아이, 상석에서 담배를 피던 아이, 캔 맥주를 들이키던 아이들 모두가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들은 그 사람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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