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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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놈을 이겨야 하는데.’
광종은 그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찰 것이라고 예상했다. 7월이 오기 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단유를 처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단유를 보자,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럽다.’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통유리 안쪽에서 해맑게 웃는 그 웃음이 부러웠다. 그놈이 입고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티셔츠도 부러웠고, 그놈이 들고 있는 음료수 한 잔도 부러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식당 안쪽의 따뜻함이 부러웠고, 선배들의 뒤치다꺼리 걱정도 할 필요 없는 그놈의 여유가 부러웠다.
왜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을 저놈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일까? 광종의 눈시울이 뜨거워질 무렵, 우연히 단유와 눈이 마주쳤다.
“······.”
곧 단유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지만, 그 짧은 순간 단유의 담담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에서 비웃음이 느껴졌다.
“저 새끼, 감히 날 비웃어?”
그래 좋다. 니가 다 가졌다, 이거지? 난 못 가진다 이거지? 그래, 다 해라. 다 니거 해라. 대신 그냥은 못 주겠다.
광종이 돌아섰다. 돌아서 사라지는 광종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단유는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불안감이랄까, 예감이랄까?
너무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늘 주변의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단유였다.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떠들어대는 악의쯤이야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널린 악의들이 얼마나 많은데.
보이지도 닿지도 않는 공간에서 떠들어대는 악의쯤이야, 게다가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고 나니 그 정도는 우습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달랐다. 수없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담담함을 유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인간 레이더 단유의 시야에 방금 위험이 감지되었다. 직접적일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예방이 필요한가, 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졌다. 지난 시간 동안 광종이 보여준 폭력적이고 반이성적인 행동들을 돌이켜 보자면, 그저 지켜보기엔 함께한 이들이 걱정되었다.
인기가 없다고 해도 연예인,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었다. 괜히 눈에 띄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게 좋으리라.
“단유야, 뭐하니?”
젓가락질도 하지 않고 밖만 멍하니 바라보는 단유를 보고, 수련이 그의 눈앞에 손을 휘저어 보였다. 단유는 수련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왜?”
“답답해서요.”
단유의 대답이 어색하진 않았다. 실제로 맛집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많은 사람 중에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화장을 안 해서 그런가?
“나도 같이 나갈까?”
“아뇨, 제가 어디 멀리 갈 것도 아닌데. 이 앞에 잠시 나갔다 들어올 거예요.”
그래도 혼자 보내기가 조금 마음에 걸린 수련이 명수를 바라봤더니, 명수는 접시에 코를 박고 아귀 살을 뜯어 먹는데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단유가 수련의 의도를 눈치채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 먹기 바쁜 애를 방해하면 미안해져요.”
명수에게 ‘쉬엄쉬엄 먹으라’는 말을 건네기도 미안할 정도로 명수는 먹는 데 열중을 하고 있었다. 박 선생님은 괜히 집에서 먹을 걸 안 챙겨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안절부절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귀엽다며 명수 접시에 붉은 양념의 콩나물과 아귀 살을 올려 주었다.
****
광종은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었다. 그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봤다. 번화가라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도움이 되리라. 여기는 골목이 많아서, 잘만 하면 얼마든지 퇴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나쁜 쪽으로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한탄하던 광종은 저도 모르게 범죄 모의를 하고 시뮬레이션까지 머릿속으로 구현해냈다. 식당가 사이에 난 좁은 골목―이라기보다는 그냥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작은 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 광종은 벽에 붙은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서 벽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실외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놓은 듯했지만, 벽돌 하나쯤 없다고 문제가 있겠어?
실외기가 바닥에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났지만, 주변 거리의 소리가 더 컸기 때문에 아무도 듣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이 골목 안쪽으로는 불빛이 비치지 않았기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쪽으로는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벽돌을 바라보던 광종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긴 했다. 못 가질 바에야··· 부순다? 없앤다? 파괴한다? 뭐였더라?
“씨발, 그게 뭐 중요해.”
지금은 그냥 이 답답한 기분을 풀어버리고 싶었다. 자신과 단유 사이를 가로막았던 통유리만 깨뜨리면 될 것 같았다. 그럼 단유는 아마 당황한 표정을 짓겠지? 그 표정을 한번 보고 싶었다. 언제나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의 단유였다. 그 단유의 얼굴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겨도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인생, 한 방이지.”
벽돌을 들고 중얼거린 광종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어?”
광종 앞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림자의 등 뒤로 빛이 비쳐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광종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자기보다 살짝 더 큰 키와 어깨, 머리, 그리고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익숙한 눈빛. 그런 실루엣들이 광종에게 하나의 신호를 보냈다.
“그걸로 뭐하려고?”
목소리마저 감출 수 없는 그놈이었다.
“뭐, 뭔 상관인데?”
“상관있을 거 같아서.”
광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려놔. 위험한 물건이야. 여기서 필요한 것도 아니고.”
광종은 벽돌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자기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무기. 그리고 단유는 자기 사정거리 안에 있었고. 두 사람이 있는 이 골목은 어두웠고, 보는 사람도 없었다. 빠르게 처리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물러날 수도 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리라.
“하지 마.”
단유의 목소리가 광종의 머리를 멈춰 세웠다. 광종의 눈이 크게 뜨이는데 단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걸로 뭘 하든 하지 마. 그냥 너 가던 길 가.”
“내, 내가 뭘 하든 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뭔 짓을 했다고 그래? 니가 무슨 경찰이야?”
단유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너한테 조심하라고 말하는 거야.”
“응?”
“앞뒤 안 가리고 사고 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나 나나. 넌 좀 더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있어. 니가 한 행동이 나중에 어떻게 너에게 되돌아올지, 그 반향에 대해 고민하고 움직이도록 해. 그래야 후회를 안 할 거야.”
“뭐? 후회? 지랄한다.”
후회라고? 웃겼다. 후회할 거였으면 애초에 일진 시다바리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에 힘이 풀렸다. 굳었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단유는 광종의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웃지?
그때, 광종은 손에 쥔 벽돌을 휘둘렀다. 스스로 긴장을 풀었던 사이에 휘두른 벽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단유의 머리를 향했다. 단유는 재빨리 머리를 뒤로 뺐다. 하지만 잠시 방심했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던 탓일까, 벽돌 끝이 단유의 관자놀이 부분을 치고 지나갔다.
―찌익
실제 저런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광종은 그런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기대했던 둔탁한 충돌음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첫 공격이었다. 단유의 왼쪽 관자놀이 부근이 붉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씨발 놈아, 내가 후회를 해? 응? 후회? 지랄한다. 내 인생 내가 살아, 새끼야.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니가 공부 좀 한다고 설교질이냐, 응?”
잠시 고개가 돌아가긴 했지만,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는지 단유는 쓰러지지 않았다. 단유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다행히 골목 안이 어두운 탓에 저 눈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광종이었다. 잘 보이지 않음에도 눈빛에 서린 서늘함에 살짝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지만.
광종은 다시 한번 벽돌을 휘둘렀다. 단유는 이번에는 제대로 고개를 뺐다. 눈앞을 지나가는 벽돌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단유의 시선은 그대로 광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돌을 휘둘러 살짝 중심이 흐트러진 틈에 발을 뻗었다.
광종은 배를 걷어차이면서 뒤로 물러서다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광종은 서둘러 일어났지만, 단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광종이 다시 벽돌을 휘두르려는데, 손이 허전했다. 바라볼 것도 없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넘어지는 순간까지도 손에 들고 있었는데?
바닥을 둘러봐도 벽돌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그때 단유가 한 걸음 내디뎠다. 단유의 한 걸음, 그 한 동작에 광종의 사고가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벽돌 하나에 의지했던 용기가 깡그리 사라진 듯, 광종의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오, 오지 마. 새끼야!”
단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광종은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에 빈손으로 맞설 용기는 없었다. 이럴 때 광종의 판단은 빨랐다.
즉시 몸을 돌려 달아난 광종은 곧 골목을 빠져나와,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을 찾아갔다.
찾아가려 했다. 몇 걸음 안 되는 골목을 벗어나서 밝은 곳으로 뛰어나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골목을 나서니 낯선 곳이 눈앞에 나타났다.
****
“안주 사러 간 새끼는 안주 만들고 있다냐?”
선배의 농담에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던 아이들이 쿨럭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 정태야. 나가서 좀 찾아봐라. 이 새끼 너무 갈군다고 튄 거 아니지?”
“예, 선배님.”
정태가 문을 고개를 숙여 보이곤 곧 노래방 문을 여는데, 마침 광종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 뭐야? 너?”
광종은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서, 선배님. 사, 살려주세요.”
광종의 얼굴은 이보다 하얘질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주 사러 간 새끼가 왜 저래?”
광종은 대답할 겨를도 없다는 듯, 노래방 가장 구석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들었다. 광종의 기행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광종을 바라보는 사이, 문 앞에 섰던 정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뭐야?”
정태의 앞에 선 이, 단유는 잠시 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담배 냄새로 가득한 방 안은 차마 들어가기가 싫은 분위기였다. 어두컴컴하고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는 그 방에 발만 들여도 곧 오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보다 더하네.”
중얼거린 단유는 눈앞에 선 이의 얼굴을 보고, 그 뒤를 바라보았다.
“니들이 광종이 선배라는 사람들 인가 봐?”
“뭐야, 이 새끼?”
방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현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단유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곳에서 애들이 일탈을 벌여도 사람들이 알기 어려웠겠지.
눈에 보이는 것만큼 고약한 이들이 고약한 곳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고약한 악취미를 모의하고 있었음이다.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다.
****
“어디 갔다, 어? 너 머리 왜 그래?”
단유는 관자놀이 부근을 더듬었다. 미처 피를 닦지 못했던 걸까?
“부딪쳤어요. 심하진 않아요.”
“안 심하긴? 잠깐 봐봐.”
수련이 먼저 달려들었다. 왼쪽 머리에 축축하게 붙어버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하다, 살갗이 길게 찢어진 것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야, 너 많이 찢어졌어, 이거!”
그제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단유는 끝까지 괜찮다고 손을 저었지만, 수련은 오히려 단유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단유의 무심함을 탓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씻고 올걸.’
시간도 많았는데.
자신의 어설픈 뒤처리를 스스로 반성하며 단유는 박 선생님을 따라 응급실로 향했다. 갤럭시즈 멤버들에게는 기어코 괜찮으니 따라오지 말란 말을 남겼다.
“명수랑 먹고 계세요. 금방 올게요.”
“그래요, 드시고 계세요. 저만 따라가면 될 거 같으니까.”
하지만 끝내 수련이 자신도 같이 가야겠다며, 단유와 함께 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아까 너 혼자 밖에 내보내기 싫더라.”
단유는 무심코 머리를 긁적이려다, 상처가 있음을 알고 슬며시 손을 내렸다. 단유는 두 사람의 잔소리를 들으며 응급실로 향했다. 향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한 가지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법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준법정신을 강조하던 이들의 얼굴과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악행을 이어가던 이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어쩐지 오늘 밤엔 잠을 잘 자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