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23화 (223/956)

유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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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은 나쁜 쪽으로 머리를 잘 쓴다고 들었다. 어디 듣기만 했던가. 선배들이 하는 짓을 보면 어떻게 저런 방법을, 이란 생각이 절로 들 때가 많았다. 숱하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단 한번 걸린 적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배울 게 없진 않은 선배들이었다.

나쁜 놈들은 나쁜 쪽으로 머리를 잘 쓴다.

‘그리고 난 나쁜 놈이지.’

객관적(?)으로 봐서 자신은 나쁜 놈 축에 낀다고 할 것이다. 담배 빼고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것 같으니까. 길 가는 사람한테 시비걸기―물론 자신보다 어리고 약해보이는 대상, 후배들 삥 뜯기―정기적으로 헌납을 받기도 하지만, 뒷골목에서 주먹 한 번 쥐어 보이고 옆구리 한 대 때리면서 받는 돈이 더 효과적이고 재미있다, 술 마시고 행패부리기―솔직히 아직 술 맛은 잘 모르겠지만, 알딸딸해지며 유쾌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종종 술을 마신다, 그 외 여러 가지 나쁜 짓들은 다 하고 다녔다.

다만 담배는 이상하게 잘 안 받는데, 혀가 민감해서인지, 목이 약해서인지 담배 연기 몇 번 들이키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담배는 피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나쁜 놈이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왜 난 머리가 안 돌아가지?’

나쁜 놈들은 나쁜 머리 잘 쓴다며? 그럼 자신도 그런 쪽으로 머리가 발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단유를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느꼈지만, 단유의 눈빛만 봐도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긴장이 돼서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기 힘들어졌다. 선배들도 무섭지만, 단유는 더 무서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데 그랬다.

선배들 중에는 호주머니에 작은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그 칼로 사람을 찔러 본 적도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만약 무서워할 대상이 있다면 바로 그렇게, 장난스럽게 사람을 찌르고도 아무렇지 않을 선배가 무서 워야 했건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게 분명한 단유가 더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단유를 어떻게 해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똑, 똑

“들어가겠습니다.”

쟁반에 캔 맥주를 한가득 담아 방으로 들어간 광종은 테이블 위에 맥주를 올렸다. 동급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맥주를 선배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광종이도 맥주 하나를 집어, 대선배에게 건넸다.

“맛있게 드십시오.”

선배는 두꺼운 입술을 옆으로 늘리면서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리 광종이, 수고했네. 난 너 믿는다. 알지?”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푸식, 하고 캔을 따서 들이키는 선배를 뒤로 하고 자리로 돌아간 광종은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캔 하나를 집어 마셨다. 따끔한 탄산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

“오빠, 언제 돌아오실 거예요?”

“야, 그게 내 맘대로 되냐? 위에서 불러야 가지.”

“그럼 그 때까지 뭐하고 있으려고요?”

태호는 음료수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는 명수를 곁눈질 해보였다.

“쟤랑 놀아주면서 기다리는 거지, 뭐.”

명수가 자기 이야기인 줄 알았는지, 고개를 돌렸다가 태호와 눈이 마주쳤다. 명수와 태호가 동시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차피 너희도 이번에 활동 종료 됐다며? 행사 뛰는 거야, 회사에서 알아서 관리할 거고, 현철이도 있으니까···.”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음료수를 입에 무는 태호를 바라보던 갤럭시즈 멤버들은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자신들이 만약 탑스타 급, 아니 2군 급만 돼도 회사에다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3군이라 해야 할지, 바닥이라 해야 할지, 하여튼 이 쪽 업계에서 바닥을 기는 실태라 자신들의 매니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우린 언제 뜰 수 있을까?”

명지의 말에 수련이 등을 쓸며 위로했다.

“그러지 마요. 우리 조바심내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래도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답답하잖아.”

“우리 처음에 연습실에서 만났을 때, 이야기 했었잖아요. 이런 일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때마다 서로 위로하면서 이겨내자고.”

명지는 연습생 생활만 3년을 했다. 5년을 한 사람도 있고, 그 이상 한 사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3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몇 번이나 데뷔의 기회를 잡지 못해 팀 결성 직전에 번복되기 일쑤였다. 연습생 2년차에 수련을 만났을 때, 명지는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그 때 언니가 저한테 한 이야기, 아직 기억해요. 데뷔가 끝이 아니다. 데뷔하고 나서가 시작이다. 그리고 그 때가 더 힘들 것이다, 라고. 오히려 그 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기할 때라고.”

그 말에 명지뿐만 아니라 수영과 지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른 팀들을 봐도, 데뷔하고 나서 팀원이 교체되는 사례가 빈번한 이유가 그런 거지.”

데뷔하자마자 성공하는 사례는 사실 찾기 힘들었다. 대형 기획사의 몇몇 팀들이 데뷔 싱글을 내자마자 1위를 달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경우가 있긴 해도, 중소기획사 출신의 걸그룹들은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레드 오션이니까.”

태호가 한 마디 덧붙이며 멤버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이 제일 힘들 때긴 해. 누가 성공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시장, 규칙이나 법칙도 없는 걸그룹 시장에서 너희 시기쯤 되면 고민을 하게 되지.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이 아닌가봐, 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학업을 위해’ 혹은 ‘꿈을 위해’, ‘미래를 위해’라는 이름으로 탈퇴 혹은 은퇴를 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널리고 널린 이곳이 바로 연예계였다.

“하지만 포기하기도 이르지. 내가 너희들 매니저라서가 아니라, 이 업계에 오래 몸을 담은 선배로서, 객관적으로 너희들을 평가한다면 말이야. 너희들은 결코 다른 그룹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정말이야.”

“에이, 안 그러셔도 돼요. 저희가 그런 위로 받을 만큼 풀이 죽은 건 아니에요.”

“어허? 왜 이러실까? 내가 빈말하는 거 같아?”

태호는 음료수로 입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우리 메인보컬, 3옥타브 파까지는 가볍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실력 있지? 게다가 음정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까지 갖춘 메인보컬이 어디 흔한 줄 알아?”

수련은 괜히 낮 뜨거워지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리드보컬, 명지랑 수영이 너희 둘 다, 솔직히 다른 팀에 가면 메인 보컬 맡고도 남을 실력이란 건 누구나 다 인정할 걸?”

“에이, 오빠 왜 그래? 사람 앞에 두고 민망하게?”

“민망하긴? 우리 애들 내가 칭찬 좀 하겠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그리고 지수랑 예영이 너희 둘. 다른 걸그룹 봐봐, 너희만큼 춤 되는 애들 많은 줄 알아?”

지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태호의 말을 받았다.

“많죠. 요즘 우리만큼 춤추는 애들 널렸어요. 음방 안 봐요?”

“야! 걔들 백 명 데려다 놓고 춤 시켜봐라. 그래도 니들이 훨씬 잘 춘다고 할 거야. 춤 선이나 느낌이 천지차이라고.”

지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애들 기 세워주겠다고 용쓰는 느낌이 싫진 않았다.

“노래되고, 춤 되고, 얼굴 되고, 몸매 좋고, 키도 크고. 도대체 안 되는 게 어딨어? 응? 안 그러냐?”

갑자기 화살이 단유와 명수에게로 돌아왔다. 명수가 히죽 웃으며 엄지를 치켜 들었다.

“누나들이 제가 본 가수들 중에서는 최고예요!”

단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TV를 안 봐서.”

단유는 미안하다는 듯 변명을 했다. 수련이 웃음을 터뜨리며 단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괜찮아. 너 TV안보고, 인터넷 안 하고 사는 거 다 아니까. 그리고 저 오빠가 우리 기 세워주려고 오버한 거야. 그러니까 너까지 끼어 들어서 그러지 않아도 돼. 완전 오글거리니까.”

수련의 말에 태호가 발끈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뭐? 오글? 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그게 왜 오버냐? 니들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오버한 거야? 니들은 그렇게 자신이 없어? 되든 안 되든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응? 난 성공할 수 있다, 난 누구보다 뛰어나다, 인정하란 말이야!”

수영은 손사래를 치며 술도 안마셔놓고 마신 척 술주정이라며 태호를 나무랐다.

“그러지 말아요. 우리가 언제 자신이 없대? 우리도 자신 있으니까, 데뷔하고 노래하고 무대 뛰는 거지. 그냥 하도 안 풀려서 한 소리 한 걸 가지고 그렇게 추켜세우니까 민망하잖아요.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도 있는데서 말이야. 알았어요, 알았어. 오빠 말이 다 맞네요. 다 맞아.”

지수가 손뼉을 치며 화제를 돌렸다.

“자, 여기서 아웅다웅 하면서 시간만 보낼게 아니라, 어디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요?”

“소맥 해요, 우리!”

최근 술맛을 알아버린 막내 예영이 소맥을 강력히 원한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가서 뭐라도 마시지 뭐.”

“우리는요?”

명수가 슬쩍 끼어들었다.

“너? 안 되지. 애들이 무슨 술이야?”

“술 말고 그냥 먹기만 해도 되잖아요.”

역시 먹는 게 우선이었던 명수가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

“어허, 어른들 노는데 애들이 껴서 어쩌겠다는 거야! 니들은 얌전히 집에서 공부나 해.”

짐짓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예영의 말에 명수가 토라지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바라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어떻게 같이 나가실래요? 저희야 가볍게 한 잔 하면 되고, 애들 데리고 맛있는 거라도 먹이죠. 모처럼 우리 애들도 이렇게 다 모였는데 그냥 헤어지긴 아쉬우니까요.”

소파에 앉아 있던 박 선생님도 살짝 입맛을 다시다가 태호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너희들은 괜찮겠어?”

결국 아이들의 의사를 묻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을 들으며 결정을 내렸다.

“가자.”

우선 근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완전 매운 거 어때요?”

“애들은 매운 거 못 먹잖아?”

“애들은 싱거운 걸로 시키면 되지, 뭘 그래요?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대기발령이나 당하고 있지.”

“뭐!”

예영과 태호의 다툼 아닌 다툼을 막은 건 수련이었다.

“이 근처에 맛집 있다는데, 거기 한 번 가볼래요?”

“니가 여기 맛집을 어떻게 알아?”

자주 여길 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맛집을 아냐는 지수의 말에 수련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흔들어 보였다. 곧 어떤 블로거의 추천을 받은 집을 찾아간 사람들은 칼칼한 아구찜으로 소문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곧 식탁 위에 음식들이 차려지고, 두 아이를 제외한 어른들의 앞으로 탁한 금빛 음료가 담긴 컵들이 놓여졌다. 태호가 헛기침을 한 뒤 컵을 들었다.

“자, 일단 가볍게 한 잔들 합시다. 음··· 다음 앨범 성공을 기리며!”

“뭐야, 오빠. 쪽 팔리게···.”

“뭐, 어때? 내 아이들 내가 챙기겠다는데? 선생님, 괜찮으시죠?”

박 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

노래방 안은 어느새 너구리 굴처럼 뿌연 연기로 가득 메워졌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7, 8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뿜어낸 담배 연기 때문이었다. 광종은 연기 때문에 눈앞의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신기한 현상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옆에 앉은 선배에게 귀띔을 한 광종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광종아.”

“네, 선배님.”

“안주 다 떨어졌는데, 안주라도 좀 사와라.”

“네, 선배님.”

광종이 일어서는데 다시 뒤에서 그를 불렀다. 돌아보니 뭔가가 툭 내던져졌다. 뭔가 하고 받았는데, 빈 가방이었다.

“가방 안에 가득 채워서 와.”

이런 친절이라니, 아주 눈물 나게 고맙다. 결코 연기 때문에 눈이 매운 건 아니리라.

“다녀오겠습니다, 선배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온 광종은 그제야 마음껏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손에 들린 가방을 잠시 바라보다가 등에 매었다.

원래 심부름은 가장 낮은 서열이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광종은 가장 낮은 서열,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이 광종이 혼자는 아니었고, 아직 저 방 안에는 3명의 동급생이 더 있었다. 하지만 심부름은 오직 광종이만 했다. 이유는? 약하니까.

노래방 입구 쪽으로 나가는데, 문 옆의 데스크 안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흘깃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벽에 붙은 15인치 TV를 보는 아주머니의 무료함은 사실 불법을 눈감아주는 뻔뻔함이리라.

광종은 말없이 문을 열고 노래방을 나섰다. 어느새 각종 네온사인 간판이 범람하는 저녁이 되었다. 느린 걸음으로 번화가 거리를 걷던 광종은 문득 전면 통유리로 된 가게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머리가 희끗한 아버지와 수수한 옷차림의 어머니, 그리고 마냥 해맑은 아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가정이 부럽냐고?

‘개나 줘버려.’

침을 모아 길바닥에 뱉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문득 눈에 익은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돌아보니 식당 안쪽 그 곳에, 하하 호호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사람들 속에, 단유가 있었다.

광종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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