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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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단유는 그동안 집에 있었지만, 제대로 써 본 적 없던 컴퓨터를 켜고 하루 종일 키워왔던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밝은 빛이 단유의 얼굴을 오래 비출수록, 단유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얘 어릴 때부터 우리 동네에서 유명했어. 툭하면 애들 삥 뜯고 중학교 형들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행패는 다 부리고 다녔어.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해서 교실이나 방에서 나가지 않는 단유가 언제 밖을 싸돌아다녔단 말일까?
―꼴값한다고 학교 여자애들 다 건드리고 다녔어. 어릴 때부터 발랑 까진 애였던 것!
여자애들을 건드려? 왜? 그 시간에 미분 방정식을 한 번 더 건드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런 고아들도 있겠지만, 가정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 불만을 바깥에서 푸는 종족이 있음. 이 새끼도 딱 그런 종족임. 각이 나오네.
단유는 글을 읽으면서 생소한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알아왔던 단유였다. 게다가 폭력을 쓰기 이전에 대화를 통해 갈등을 푸는 것이 바른 방법이라고 배우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댓글을 읽는 동안, 단유는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불쑥 튀어나오려는 생소한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몇 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게 만들다니.
단언컨대 단유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악의에 찬 글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대화를 나눠도 이런 감정에 치우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었다. 거친 욕설을 입을 담으며 극한 대립 상황에 서 본적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 자길 향해 악의에 찬 말을 던지는 경우를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관심도 갖지 말고, 읽지도 않았다면 좋았을 걸. 학교에서 따뜻한 바람을 쐬며 상쾌함을 느꼈던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마 이런 것 때문에 주영이나 담임선생님이 걱정을 하셨던 것이리라.
“뭐 하니?”
마침 집으로 주영이 찾아왔다. 단유에게서 동영상을 받을 겸, 얼굴도 보면서 혹시 울적해한다면 달래줄 겸 해서 찾아온 주영은 역시나 평온한 얼굴의 단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가 본래 멘탈이 좋은 아이라는 것도 있지만,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이런 소동에 무감각한 것이리라.
주영은 앞으로 진행될 일들, 예를 들면 경찰에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거나 민사소송을 걸어서 본 때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일들을 일러주었다.
단유는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애초에 법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자신이 관여할 부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저기에 글 써도 돼요?”
댓글러가 되려 하는 단유의 태도에 잠시 당황한 주영은 댓글을 다는 것, 혹은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행위가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런 전제 하에서라면 굳이 막을 이유가 없던 주영이었다.
영상을 확인하고 자신의 클라우드 계정에 옮긴 주영은 혹시라도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꼭 연락을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돌아갔다.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자신의 호기심을 풀 수 있는, 꼭 필요한 말만 남겨야 한다면, 그 말은 어떤 것일까?
단유는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 짧은 한 마디를 남겼다.
―저 아세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아무 말이나 쓸 수는 없었고, 대화라는 게 그렇듯이 상대가 어떤 대답과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자신의 대화법도 바뀌게 된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을 잘 모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를 단유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가벼운 대화의 시작으로 저 물음을 던졌다. ‘저’라는 물음 속에 자신이 게시물의 주인공인 ‘단유’임이 드러나고, ‘아세요?’라는 물음에서 대화를 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니 곧 상대의 대답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대답에 맞춰 대화를 나눠보면 되리라.
하지만 그 날 자정이 되도록 대답이 없었다. 거실에서 모니터 빛을 쐬고 있던 단유를 본 박 선생님이 억지로 방으로 데려다 놓은 뒤에야 단유의 첫 인터넷 댓글러 체험이 끝이 났다.
얼마 뒤 각 사이트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무편집본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영상은 당시 학교에서 일어난 싸움과 그 싸움을 말리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편집본에서도 그랬지만, 워낙 좋은 핸드폰으로 찍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이며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얼굴에는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다.
「해당 영상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길 바라며, 아울러 초기 편집 영상 게시물에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들을 일괄 고소하였음을 밝힙니다. 또한 편집 영상의 내용만으로 추측성 기사를 쓴 XX기자 역시 고소하였습니다. 향후 해당 영상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악의적 댓글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이가 있을 경우, 즉시 고소 및 민사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과연 주영의 힘은 대단했다. 살짝 재단의 힘을 과시한 듯도 하지만, 구체적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마녀사냥’에 대한 토론이 펼쳐졌지만, 곧 다른 이슈들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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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얇은 금테 안경을 추켜올릴 틈도 없는지 손바닥을 비비며 잘못을 구하는 남자는 회사에 반차를 내고 경찰서로 달려왔다고 했다. 전날 저녁 출두요구서와 함께 송달로 도착한 고소장에 정신이 반쯤 가출 나간 상황이었다.
스트라이프 정장 차림의 붉은 하이힐을 신은 주영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꾹 참는 중이었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아니 그냥 남들이 그렇게 말하기에 진짜인 줄 알고 그런 거예요. 일부러 그런 거 진짜 아니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라고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주영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 눈가를 좁혔다. 하지만 주영 대신 그 사람에게 물음을 던진 이는 바로 단유였다.
“저기요?”
“으응? 아,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내가 잠깐 심심해서 그냥 장난치듯이 한 거야. 장난으로 한 걸, 죽자고 달려들면 안 되잖아? 응? 너도 많이 해 봤을 거 아냐? 장난 같은 거?”
“아니요.”
단호한 대답에 남자는 입을 다 물었다.
“저기요?”
“으으?”
“저 아세요?”
“···아니.”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에서는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더니 얼굴을 마주하고 물으니까 대답을 해 준다.
‘역시 대화란 서로 마주보고 해야 하는 거구나.’
사실 댓글을 다는 이들의 주 활동시간이 심야시간대였기에 단유가 기다렸던 시간대와 달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지만, 이를 단유가 알 수는 없었다.
“진짜 장난으로 하신 거예요?”
“응? 진짜야. 정말이야. 그냥 서로 웃자고 하는 소리잖아? 농담처럼.”
“아무런 의도도 없고요?”
“그럼 의도 없었어. 없었다니까?”
단유가 손에 든 복사지를 보면서 물었다.
“여기에는 제가 여자애들 다 건드리고 다니는 종마 같은 놈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누나한테 물어도 대답을 안 해 주던데.”
남자는 힐끗 주영을 바라보다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옆에 있던 형사도 팔짱을 끼고 남자의 촌극이 어떻게 진행되나 구경하는 자세였다. 애초에 저 복사지도 자신이 건네 준 것이었으니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아, 저기 그게 말이야.”
바싹 마르는 입술을 닦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아이는 어떻게 보면 순진한 얼굴로, 어떻게 보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다 볼 뿐이었다.
“저기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대답부터 해 주시면 안돼요?”
고집스럽게 대답을 듣고자 하는 아이였다.
“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래? 그게 뭐? 그거 그냥 조크잖아!”
남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물론 지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미쳤구나.
단유는 복사지를 형사에게 건네주었다.
“아저씨, 제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준법정신이란 게 뭔지는 배웠거든요? 우리나라는 사회의 영속과 발전을 위해서 법을 지켜야 하는 사회에요. 아저씨는 그걸 어긴 거구요. 그게 잘못이에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냥 웃자고 쓴 글이잖아!”
“제가 만약 웃고 싶어서 아저씨를 고소하는 거라면요?”
“···뭐?”
“아저씨가 웃자고 쓴 글이라면서요? 저도 제가 웃고 싶어서 아저씨를 고소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야, 경우가 다르잖아! 이건!”
“그걸 설명해 주세요. 어떻게 경우가 다른 건지.”
“······.”
“아저씨의 경우와 저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 건지 설명해 주세요. 납득이 가도록.”
남자는 깨달았다. 이 아이, 보통 말빨이 센 아이가 아니구나. 자신의 빈약한 논리로는 저 아이에게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법을 어겼대요. 사실 저도 그게 법을 어긴 건 줄은 몰랐지만요.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법을 어기고 살면 안 되잖아요. 법을 어겼으니 처벌을 받는 건 감수하셔야죠. 그래도 심한 벌은 아니라니까 그건 위로가 될 듯 하네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야, 싶은데 형사가 툭툭 어깨를 쳤다. 아래를 가리키는데 자기 앞에 놓인 그것은 진술서였다.
“지장 찍어요.”
****
오늘 하루 동안에만 5명의 사람을 만났다.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5명 째 였는데, 하나같이 단유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론적인 단유의 물음에는 답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속이 좀 풀려?”
주영이 음료수를 하나 건네며 물었다.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된 시간, 경찰서 로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렸다.
“풀릴 것도 없고, 그냥 그래요. 사실 아무도 대답을 제대로 해 주질 않았잖아요. 누나나 형사님도 대답 잘 안해주시더만.” “그런 니가 알아서 좋을 내용이 아닌 것들만 물으니까 그렇지.”
‘종마’나 ‘조폭’같은 용어는 물론이고, 온갖 욕으로 도배된 글들, 혹은 성드립이 판치는 댓글들의 의미를 묻는데 어찌 대답해줄까.
“그리고 혹시 하는 말이지만, 그거 전부 알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알려고 들지 마. 그런 것까지 호기심가지고 찾아보는 건 안 좋아. 알았지?”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오렌지 주스를 들이키며 대답하는 단유였다.
“몇 명 남았어요?”
“14명 정도?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마 더 늦게 오던지, 아니면 내일 올 거 같아. 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고. 다 만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다 만나보고 싶긴 한데, 그것도 참을게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진면목을 일일이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단유에게 악의를 가진 이라면 예전 감옥에서 만나 자신을 고문하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은 의외로 평범한 얼굴들이었다. 나이도 많게는 45살부터 자기 또래 아이까지. 길에서 오다가다 만날 법한 얼굴들이 그런 악의를 내보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단유였다.
“참 사람이란 다양한 것 같네요.”
오렌지 주스를 다 비운 뒤, 한참을 멍하니 있다 꺼낸 말에 주영이 단유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들 감옥에는 안 가는 거 맞죠?”
“아마 그럴 거야. 초범인 경우에는 대부분 가볍게 벌금 정도로 끝난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몇 십만 원 선에서.”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주영 역시 단유의 말에 진심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감옥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감옥에 가는 것만 아니라면, 심한 벌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단유였다. 반면, 마치 감옥에서 살아본 것처럼 말하는 단유의 말에 주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겨우 14살이 된 단유가 감옥은 물론이고 유치장이라도 가봤을 리 있을까? 그저 애가 아직 순수하고 착해서 저런 말을 했겠지, 라고 걸러들은 주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집에 갈 시간이야.”
“네.”
단유는 다 마신 캔을 구석에 놓인 파란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시원한 저녁 바람이 단유의 앞머리를 쓸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