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20화 (220/956)

어그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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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올 때는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곧 수업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될 터라, 서둘러 교실로 돌아온 단유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과 마주했다.

“야, 말려! 말리라고!”

“하지 마, 야! 야!”

복도에서부터 아이들이 몰려들어 있는데, 소란의 중심은 다름 아닌 3반 교실이었다.

“내 놔! 내 놓으라고!”

그리고 그 소란의 가운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바로 명수의 목소리였다.

단유가 교실로 들어오기 10분 전. 단유가 선생님을 따라가고 난 뒤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수군대는 소리로 가득했다.

“단유 처벌 받는 거 아냐?”

“바보냐? 걔가 왜 처벌을 받아? 무슨 잘못을 했다고?”

“동영상도 있잖아?”

“야. 그런 이유로 걔가 처벌받는 거면, 우리는? 우리는 괜찮겠냐?”

또 어떤 아이들은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게끔 원인을 제공한 기사에 대해 떠들었다.

“단유 걔 연예인 되려고 했던 거야?”

“모르지. 근데 그 기사만 보면, 이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 아냐? 얼굴 다 팔렸는데, 어떻게 연예인 하겠어?”

“그런데 걔 노래도 잘 부르나? 아이돌 하려고 그랬던 거야?”

“모르지. 그런데 설마 노래까지 잘 부르겠어?”

이미 단유에 대해 생각이상으로 놀랬던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놀랄 게 남았다는 게 신기하기만 한 아이들이었다. 싸움, 공부, 영어, 게다가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도대체 못하는 게 뭘까 싶었다.

“졸라 꼴좋네. 새끼. 꼴값 떨 때 알아봤어.”

광종의 이죽거림에 앞에 앉았던 성구가 실실 웃었다.

“거봐라. 내가 찍어놓길 잘했잖아.”

“잘했다, 새끼야. 때려서 미안타, 됐냐?”

성구와 광종이 죽이 맞아서 히죽대는 와중에, 이들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너구나.”

돌아보니 같은 반이 아니었다. 광종이 ‘누구지’하고 머릿속을 되짚는 사이, 성구가 먼저 얼굴을 알아봤다.

“어? 너 7반 아냐?”

명수는 성구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려 보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내 놔.”

“뭐?”

“핸드폰. 너 그 때 우리 다 찍고 있었잖아. 방금 다 들었어.”

단유와 마찬가지로 명수도 이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교실에 오고 나서야 난리가 났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기사를 찾아봤다. 명수는 단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리고 앞뒤 안 가리고 교실을 뛰쳐나와 곧바로 3반에 쳐들어왔다.

명수의 목적은 하나였다. 그 때 영상을 찍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놈에게 본때를 보이는 것. 처음 소셜사이트에 업로드가 됐을 때도 벼르고 있었지만, 단유가 다독였기에 참고 있었던 것인데 일이 이렇게 벌어지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을 뒤집고 3반에 날아든 명수는 단유가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을 제지하는 손이 없으니 곧장 목표를 향해 갔다. 얼굴을 정확히 알진 못했는데, 마침 교실에 들어서서 둘러보는 와중에 들린 이야기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내 놔.”

명수는 일단 성구의 핸드폰을 뺏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핸드폰 동영상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증거로 삼아야 자기가 때린 명분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씨발 놈이, 니가 뭔데 남의 반에 와서 지랄이야!”

명수의 태도에 뿔이 난 광종이 먼저 도발을 했다. 명수가 먼저 주먹을 날리는 순간, 자신에게 기회가 생길 것이다. 단유가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피하고, 반격을 가하면 명분도 생길 것이고.

“이 싹바가지, 고릴라같이 생긴 게 왜 끼어들어?”

하지만 진짜 도발은 명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사실 명수는 욕을 잘 했다. 그동안 수백 번의 시합을 하면서 깨끗한 승부만 했을 리가 있나. 거친 몸싸움과 시비를 거치며 명수는 나름 도발에 대응하는 방법을 체득한 베테랑이었다.

“뭐? 고릴라?”

“뭐, 왜 쳐다보는데? 사람 같지 않게 생긴 놈이.”

“이 새끼가!”

광종이 의자를 뒤로 밀치면서 벌떡 일어나 명수와 마주섰다. 교실 뒤편에서 난 소란에 반 아이들이 뒤늦게 사태를 눈치 챘다.

“야, 뭐야? 뭐야?”

“또 싸우는 거야?”

“씨발, 말려. 좀!”

아이들이 몰려드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X같은 게, 죽고 싶냐?”

“미쳤냐? 너 같은 삼겹살한테 죽게?”

“아오, 이 새끼가!”

“혓바닥에 오줌을 발랐냐, 아침에 똥을 처먹었냐? 냄새 난다, 새끼야.”

광종의 얼굴이 붉어지는데, 타이밍 좋게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 싸움을 방관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야, 안 놔? 안 놔, 새끼야!”

“참아. 안 돼! 지금은 안 돼!”

“놔 봐, 안 싸워, 안 싸운다고.”

강제로 두 사람 사이가 멀어졌지만, 입씨름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런 소란 때문에 옆 반의 아이들까지 복도로 나와 3반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단유가 나타난 것이다.

“명수야, 너 왜 여기 있어?”

“저 새끼가 그 때 동영상 찍은 놈이잖아. 저 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저 놈 손 안 보면 오늘 잠 못 잘 거 같다.”

단유는 이마를 잠시 짚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명수 놔줘.”

단유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명수를 놔줘도 될까 주춤하다가 재차 단유의 말이 이어지자, 명수는 아이들의 손에서 풀려났다.

“명수, 넌 니네 반에 돌아가.”

“왜! 싫어. 저 놈을 내가 꼭···.”

“명수야.”

“······.”

단유를 바라보던 명수가 아랫배에서 끌어올린 듯 깊은 한 숨을 토해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알았다, 알았어. 그냥 가만히 있을게.”

그 때 눈치 없게 광종이 끼어들었다.

“씨발 놈아, 가긴 어딜 가! 개새끼, 넌 오늘 내가 죽인다!”

단유가 고개를 돌려 광종을 바라보았다. 단유와 눈이 마주친 광종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광종을 붙잡고 말리던 아이들도 광종의 변화를 눈치 챘다.

단유는 광종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붙잡힌 터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광종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꽉 깨물며 버틸 뿐이었다. 사실 단유가 다가오는 순간 광종을 붙잡고 있던 아이들이 손에 힘을 풀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광종이었다.

“광종아.”

“뭐, 뭐 새끼야.”

“내가 나중에 보자고 했었지?”

“······.”

“그게 지금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할 말이 생겼어.”

광종은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쪽팔린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느끼는 것과 달리 몸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몸이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뭐지?

광종의 눈을 잠시 응시하던 단유가 시선을 돌렸다. 단유의 시선이 옮겨진 곳에 있던 성구가 움찔거리며 한 발 물러섰다.

“너 그 때 찍은 동영상, 아직 있어?”

“으?”

뭔가 입에서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제대로 벌려지지 않아 저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성구의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보다 빨갛게 변했다.

“그 영상 나한테 다 보내줄래?”

“어? 어.”

“지금 보내줄래?”

성구가 당황해하면서도 핸드폰을 조작해 동영상을 전송하려고 하다가, 용량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하다는 얼굴을 했다.

“용량이 너무 커서···.”

단유가 볼을 긁적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근처에 지태가 보였다.

“지태야, 어떻게 해야 돼?”

대답은 채윤이 했다.

“그거 이걸로 받으면 돼.”

채윤이 호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만 USB였다. 모바일 전용 USB디스크였는데, 채윤이 보충 설명을 했다.

“이거 그냥, 애니메이션만 있는 거야.”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단유는 채윤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광종아.”

“······.”

“우리, 반에서는 주먹질하지 말자. 분위기 안 좋잖아? 그리고 너한테도 좋을 일 없고. 잠깐 기분이 상해서 그럴 수 있겠지만, 되도록 참고 대화로 해결하려고 해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는 광종이었다. 아니 대부분 아이들이 광종과 같은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건 지양하도록 하자. 만약 폭력을 썼는데 그게 인터넷에 이야기가 올라가면, 평생 남는다더라. 그럼 평생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아야 하고, 평생 해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평생을 살 순 없잖아?”

‘그거 니 이야기잖아!’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단유가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며 광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단유의 손이 닿을 때마다 광종이 움찔거렸지만 그 누구도 그 모습을 비웃지 않았다.

“싸움이란 거 하지 마. 난 여태까지 감옥에 가는 게 가장 큰 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인터넷에 이름이 올라가는 게 가장 큰 벌인가 보더라고. 우리, 아니 너희들도 다들 조심해.”

뭔가 묘하게 핀트가 벗어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단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지 않는 아이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채윤이 단유에게 동영상을 다운 받은 USB디스크를 건넬 때, 수업 종이 울렸다.

“명수야, 너도 사고치지 말고.”

“알았어. 수업 잘 들어.”

명수가 한 차례 손을 흔들고 반으로 사라졌다.

****

“그래서 동영상을 구했는데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누나가 이런 거 잘 알지 않을까 생각해서 전화 드렸어요.”

핸드폰 스피커가 찢어질 정도로 큰 한숨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세요?”

―이런 일 아니면 누나한테 전화할 일도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대체 보호자라는 사람이 아이들한테 신경도 안 쓰고 사는데다가, 일이 터져도 제대로 처리해주지 못하니까 한심하고 답답하고 그렇지? 그래서 전화도 안 하고 이야기도 안 하고 그런 거지?

주영의 넋두리를 계속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단유는 단호하게 주영의 말을 끊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전화를 안 했던 건, 굳이 일하는 누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괜히 저희들 때문에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너흴 신경 쓰는 게 내 일이거든? 전화 안하는 게 오히려 더 큰 방해라고!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한숨소리가 들린 뒤 주영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동영상을 구했다고? 싸우는 장면만 편집된 거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찍은 영상이에요. 이거면 진실은 규명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거면 일단 너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은 바꿀 수 있을 거야. 증거가 있으니까. 그리고 정정보도 요청도 하고, 변호사도 고용해서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 모두 본 때를 보여주면···.

“저기요.”

―응?

단유는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그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을 고소한다는 거 말이에요. 안 하면 안 돼요?”

―왜? 그 놈들이 너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아니?

“그건 모르는데요. 근데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오해를 한 거잖아요? 오해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 오해 때문에 욕하는 거 정도는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니가 정말 댓글을 안 봤구나. 그런 오해 정도로 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냐. 내가 말하는 악성 댓글이란 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니가 그 동네 일진이라서 너한테 돈을 뺐긴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더 심한 것도 있고.

“그래요?”

그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니. 단유는 인터넷이란 곳이 정말 신기한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저 현실의 일을 기록해서 잊지 않게 하는 건 줄만 알았더니,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기록해 놓는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상황이 심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건 누나가 알아서 해 주세요. 그리고 누나, 저···.”

―뭐?

“아, 아니에요. 그냥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동영상은 어떻게 드릴까요?”

―저녁 때 내가 찾아갈게. 이번에 너 얼굴도 좀 보고 혼 좀 내야 겠어.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느껴져 단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명수도 같이 보는 거죠? 명수 좋아하겠네요?”

―명수가 왜 좋아하는데?

“명수는 누나 만나는 거 되게 좋아해요. 몰랐어요?”

주영이 올 때면 늘 맛있는 간식을 사들고 오기 때문에 명수는 주영을 좋아했다.

저녁 때 만나기로 약속을 정한 뒤, 통화를 마쳤다.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단유는 두 손을 뒤로 뻗고 상체를 살짝 뒤로 젖혔다. 점심시간, 배도 부르고 바람은 따뜻하고 문제도 잘 해결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 이번에 인터넷이란 거 좀 알아볼까?’

그동안은 명수가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것만 잠깐씩 봤을 뿐이어서 연예기사나 동영상 사이트를 탐색하는 정도로 이해했던 인터넷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앞일을 위해서도 좀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글이 올라온 사이트가 어딘지 명수에게 물어보면 되려나?”

한 때 핸드폰 게임에 빠지기도 했고 드라마에 빠지기도 했던 명수였지만, 축구부에 가입한 이후 다시 축구에 미쳐 살고 있었다. 그런 명수가 자신보다 더 잘 알까, 의문이 들었지만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을 한 차례 돌고 나온 따뜻한 바람이 단유를 살포시 안았다가 놓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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