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19화 (219/956)

어그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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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와 폭력으로 얼룩진 연예계에 또 한 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최근 컴백한 아이돌 그룹 ‘갤럭시즈’의 타이틀 곡 ‘미챠’의 뮤직비디오에 한 소년이 등장을 하는데, 이 소년의 행실에 관한 루머가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한 유머 사이트에서 처음 문제 제기된 이 영상에는 뮤직비디오 속 소년이 다른 소년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습니다.

···(중략)··· 학교 측에서는 해당 폭력 사건을 인지했지만, 따로 처벌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증언에 대해 인정을 했습니다. 추가적으로 학교 측은 당시 폭력 사건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었다고만 밝히며···(중략)··· 얼마 전, 한 유명 아이돌이 사소한 시비로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는데, 그 일이 잊혀지기도 전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많은 관계자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형 기획사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연예계에 입성하는 나이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과 맞물려 미성숙한 아이돌 연예인들의 사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중략)··· 특히 대중의 선망을 받는 직업으로 아이돌이 부각되는 요즘은 더욱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기본적인 인성과 사회규범 준수의식이 투철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단지 얼굴이 잘생겨서, 혹은 노래나 춤을 잘 해서, 라는 이유로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용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현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었습니다.』

헌영은 보던 인터넷 화면을 꺼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 속에 답답함이 한가득 차오르는데 풀 길이 없었다.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아침부터 학교가 발칵 뒤집혔는데,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헌영이었다. 뉴스에 난 학교가 장계중학교임이 학부모들이 공유하는 SNS에서 퍼지면서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부모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간 별 일 아니라 생각해서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이 입을 연 것이었다.

―우리 애가 얼굴이 부어왔는데도 애가 싸웠다는 소리를 안 해서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요?

―우리 애도요. 들어보니까 3반이랑 싸움이 크게 났는데, 지들끼리 화해해서 괜찮아졌다는 거예요.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학교가 너무 무책임 한 거죠, 이건. 그저 학교의 평판만 생각해서 싸움이 일어난 것도 쉬쉬하면서 감추려 했으니까요. 정작 지켜야 할 우리 아이들은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나중에 우리 아이가 맞고 와도, 자기들끼리 해결했으니 그만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어떡하란 거죠?

시끌시끌한 SNS의 난리는 그대로 학교로까지 이어졌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돌아다니는데, 선생님들은 대체 뭘 하신 거예요!”

“학교에서 주먹을 휘두른 애들이 있는데, 학교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요?”

“저기, 어머님. 진정 좀 하시고요.”

“제가 진정 하게 생겼어요? 무슨 일만 나면 진정하라 뭐하라, 가만있으라는 소리만 하고 앉아 있고 말이야! 책임을 져야 할 선생님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학부모들이 나서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당시 맞았던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학교로 항의 전화를 해 왔고, 말렸던 아이들의 부모님들 중에도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 사고가 뉴스에서 날 때까지 쉬쉬하고 감추려했던 학교의 행태에 화를 참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억울하기까지 한 헌영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고!’

안이한(?) 교장 선생님의 대처 때문에 일이 커졌다고 생각한 헌영은 일단 아침 조례를 위해 반으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어제와는 전혀 다른 교실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이 교실에만 빙하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심지어는 반장마저 얼어붙었는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반장, 인사해야지.”

지태가 엉거주춤 일어나 구령을 붙이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힘이 쭉 빠진 듯 아이들의 인사소리는 바닥에 들러붙은 기운 빠진 문어처럼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다. 죽 둘러보던 헌영은 괜히 아랫배가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거 같으니까, 긴 말은 안하겠다. 너희들은 학생이고,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건 누차 설명했으니까. 수업시간에 핸드폰 하는 사람 없길 바란다. 그리고 김단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단유가 고개를 들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쏠리는 가운데에서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마치 이 모든 소동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인지라, 오히려 그 속이 궁금했다.

“넌 나 따라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난 후, 단유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선생님의 뒤를 쫓았다. 교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한 두 사람은 곧 상담실로 향했다.

****

“자, 마셔라.”

헌영은 자판기에서 뽑은 코코아를 타서 단유에게 건넸다. 단유는 담임선생님의 갑작스런 친절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에만 그칠 뿐, 말로 드러낼 의지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단유와 다시 마주한 헌영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사실 기사를 보는 순간 헌영은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한 가지는 자신의 판단이 그르지 않았다는 생각. 물론 자기 생각대로 보고가 먼저 온다 한 들, 이런 기사가 안날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었다. 이미 사고가 난 마당에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쨌든 자기가 우려했던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라는 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단유에 관한 것.

“괜찮냐?”

사실 기사 자체만 보면, 학교에서 벌어진 사고는 잠깐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그 일로 학부모들이 사고를 알게 되고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단유 개인에 대한 것이었다. 마치 폭력 사고의 주범인 것처럼 묘사된 것도 그렇고, ‘미성숙’, ‘이기적’,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묘사된 것이 안타까웠다. 혹시 그 기사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짧은 물음이었지만, 단유는 담임이 묻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침에 학교에 오자마자 지태를 비롯한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괜찮냐’는 물음이었으니까.

어제 오후에 난 그 기사를 단유나 명수는 전혀 몰랐다. 아침에 교실에 오고 난 뒤에야 기사를 제대로 읽은 단유는, 사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것도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들이 자길 두고 뭐라고 해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결백하다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단유였다.

“···괜찮다니 다행이다만, 그래도 선생님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선생님은 기사를 읽기 전까지 니가 그런 뮤직비디오에 나온 줄도 몰랐으니까. 혹시 연예인 데뷔를 준비하는 거냐?”

“아니요. 그건 그냥, 우정 출연 같은 거였어요.”

‘매니저의 독단’이란 문구가 잠시 떠올랐지만, 헌영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래, 알겠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사가 나와서 니가 곤란해질까봐 선생님은 걱정이다.”

“왜요?”

단유가 진심으로 묻는다는 걸 알고, 헌영은 잠시 당황했다.

“전혀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둘 다네요. 곤란해질 이유가 없다는 것도 그렇고,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제가 죄를 지은 게 없는데 문제가 될 게 있나요?”

헌영은 잠시 헛기침을 한 뒤,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니가 결백하다는 것을 나는 물론이고, 우리 반, 그리고 7반의 아이들도 다 알거다. 하지만, 문제는 그 외의 사람들이지. 넌 공인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상대로 이런 악의적 소문이 퍼져나가면, 일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어떻게요?”

“사람들이 널 손가락질 할 거다.”

그게 뭐 어떠냐, 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담임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생각할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널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거야. 뮤직비디오에 니 얼굴까지 나왔다니 말이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널 알아보고 욕을 할 수도 있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고, 모함을 할 수도 있다. 이미 모함을 받는 수준인 것 같지만. 이런 소문은 사람들에게 어떤 선입견을 심어준다. 그래서 니가 제대로 해명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폭력’이나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될 거다. 이 꼬리표가 언제까지 갈 거 같니?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갈 때까지도 그 꼬리표가 널 따라다니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앞으로 니가 살아가는 동안 만날 사람들이 모두 널 그렇게 바라본다고 생각해보거라. 그게 과연 쉽게 생각할 일이겠니? 어쩌면 누군가가 나서서 너에게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넌 니가 한 짓이 아니다, 혹은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해명을 해야 할 거다. 그걸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지내야 한다면, 넌 참을 수 있겠니?”

“예전에도 제가 TV에 나온 적 있었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요?”

헌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원래 사람들은 좋은 건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나쁜 건 오래 기억하지. 독립 운동가는 잊지만, 매국노는 오래 기억하듯이. 선행으로 표창장을 받고 TV에 나온 사람의 이름은 몰라도,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수갑을 찬 사람들은 오래 기억한다.”

단유는 잠시 숨을 고르는 헌영을 바라보다가, 물음을 던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헌영은 잠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의 5월은 참 잔인한 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만 보면 한 달 내내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해야 할 것 같고, 늘 상쾌함을 느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사람살이가 어디 그렇게만 되던가.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저토록 청명한 하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너네 보호자란 분께서는 아직 아무 말 없으셨고?”

“···그저께 경찰에 연락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저께라면 이 기사가 나기 전이니,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는 말이었다.

“선생님 생각에는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니가 폭력 사태를 벌인 것도 아니고, 그 영상도 사실은 싸움을 말리던 중에 찍힌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헌영은 자신의 대답이 꽤나 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도 아닌데, 기자회견 같은 것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기자에게 말한들 과연 정정기사를 내 줄 것인가, 생각해보면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도요.”

과연 제대로 아는 것일까, 의심스럽기만 한 헌영이었다. 안다는 녀석이 저리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혹시 어떻게 할 건지 먼저 이야기해줄래?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담임으로서 학생이 더 큰 문제에 봉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음. 그냥 역순(逆順)으로 풀어나가면 될 거 같아요.”

“역순?”

“수학도 그렇잖아요? 답이 다르게 나오면 거꾸로 찾아가잖아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해결책도 나오겠죠.”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헌영은 코코아를 입에 물고 옅은 웃음을 짓는 단유를 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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