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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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반이 화해를 하고, 재시합을 결정하고, 시합 출전 선수를 고르고, 비밀 훈련(?)도 하면서 우애를 다진다고 해서 갑자기 청소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화기애애한 교실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이전까지는 이제 갓 초딩티를 벗어던진 아이들이 중학교라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려는 모습이었다면, 이젠 그저 흔하디흔한 여느 중학생 교실 같은 모습으로 변할 뿐이었다.
1학기도 중간 쯤 지나다보니, 이제 슬슬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엔 온통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정겨운 대화가 넘쳐흐르고, 수업 시간에는 교사와 학생 간의 핸드폰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까똑.
“어, 선생님! 저 아닌데요!”
“내놔, 얼른!”
-까똑.
“누구야!”
아이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핸드폰을 뺏기지 않고 소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선배들의 덕분이었다. 나름 치열한 토론―‘핸드폰 수거, 과연 정당한가’―과 싸움―과격한 몸싸움은 물론, 학부모까지 참여했던 멱살잡이가 벌어지기도 했다―끝에 얻어낸 그들만의 권리를, 아무런 수고 없이 그 혜택만을 받아쓰게 된 아이들은 그 소중함을 몰랐다.
“선생님이 제일 처음에 뭐라 그랬어?”
걸린 아이는 못난이 인형처럼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 소리 나면 어쩐다고 했었어?”
“···압수한다고 했습니다.”
“내놔.”
아이는 내밀어진 선생님의 손 위에 코발트블루 색의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너희 담임선생님한테 맡겨 놓을 테니까, 알아서 찾아가.”
“아아, 쌤!”
“어허? 이거 안 놔? 어디서 되도 않는 앙탈을 부려!”
어린 꼬마 아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중학생이나 된 놈이, 그것도 사내놈이 콧소리를 내면서 앙탈을 부리면 귀엽기는커녕 징그러울 뿐이었다. 반사적으로 주먹이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낸 선생님이 교탁 앞으로 가는 사이, 다른 아이들은 각자 책상 밑에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사실 반 전체 SNS방에 글이 올라오면서 알림 벨이 울린 것인데, 다른 아이들이 모두 무음으로 해놓은 것에 반해, 걸린 녀석만 벨 소리를 무음으로 바꿔놓지 않았던 탓에 압수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야야, 봤어?”
“동영상이던데?”
아이들의 낮은 수군거림도 여러 사람이 함께 떠들면 소음이 되는 법. 선생님은 교탁을 세게 두드리며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런 소동이 잠시 가라앉은 뒤 수업이 재개되었지만, 아이들은 단체 메시지로 온 내용에 온 신경이 쏠려 제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오로지 선생님 혼자 수업을 하다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은 시장통처럼 변했다.
“야, 봤어?”
“씨발, 보고 있잖아? 보는 거 보면서 묻냐, 븅신아?”
“븅신아, 그럼 보는 거잖아.”
“야, 새끼들아 좀 조용히 해 봐라. 감상하고 있는 거 안보이냐?”
“그게 무슨 영화냐? 감상이나 하고 자빠졌게?”
이러쿵저러쿵 하면서도 아이들의 전체대화방에 올라온 영상은 핫했고, 대부분 아이들의 관심을 쏙 빼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종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술을 일그러뜨리면서 보다가,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뒤통수를 때렸다.
“야, 이거 니가 올렸냐?”
뒤통수를 맞은 아이는 억울한 눈을 하고 광종을 바라보았다.
“올린 건 맞는데, 여기 올린 건 아니거든? 그리고 편집도 이렇게 안했거든?”
“씨발놈아, 어쨌든 인터넷에 올린 건 맞네, 개새끼야. 새끼야, 내가 두들겨 맞는 게 그리 좋았냐? 응?”
두들겨 맞은 건 아니지, 대충 그런 의미로 항변하려 했지만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뒤통수를 문지르던 성구는 대신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시선을 피했다.
실제로 성구는 당시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핸드폰으로 찍었던 장본인이었다. 싸움이 한참이던 순간부터 단유가 광종을 제압하는 장면까지 근거리에서 촬영했었다. 그리고 이후 약간의 편집을 해서 인터넷 페북에 동영상을 게시한 것이다.
영상은 패싸움 버전과 단유 제압 버전의 두 가지로 업로드 되었고, 비공개로 올리긴 했지만, 친구들끼리는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런데 이 영상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마침 그 영상 속의 주인공이 최근 공개된 어느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속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가 또 약간(!)의 편집으로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 한 것이었다. ‘#실제싸움 #갤럭시즈 #뮤직비디오_주인공’ 등의 해시태그를 마구 달아서 어떤 검색에도 영상이 노출될 수 있게끔 해 놓았더니, 점점 입소문을 타고 번지기 시작해서 어느새 핫한 영상이 되어버렸다.
성구는 억울했다. 자기가 올렸던 원본 영상은 추천도 많이 받지 못했는데, 이차 가공한 해당 영상물은 추천만 2만을 넘긴 인기 게시물이 된 것이다.
그런 사정도 억울한데, 광종에게 뒤통수까지 맞으니 분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그럼에도 성구는 광종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 자신은 광종보다 싸움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영상을 보던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뜨겁긴 마찬가지였다.
“나 그 때 제대로 못 봤었는데, 단유 싸움 되게 잘하는 거 아냐?”
혹시라도 광종에게 들릴까봐, 조용히 짝에게 들릴 정도로만 물었다. 짝 역시 눈치를 보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시 보니까, 무시무시하네? 이것 봐, 여기. 날아오는 주먹을 한 번에 잡잖아? 이거 거의 권투 선수 수준 아냐?”
“이종 격투기 선수들도 이런 기술 쓰거든?”
“단유가 이종 격투기를 배웠다고?”
온갖 풍문이 떠도는 교실 안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고, 단유의 주변 역시 그 소란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지태는 대스타를 영접한 팬에게 빙의된 듯 단유 주변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야, 이거는 뮤직비디오 같은데? 너 모델도 했었어? 모델이냐, 아니면 연습생이야? 연예인도 하고 막 그래?”
사정을 들은 바 있던 병수가 단유를 대신해 아는 척을 했다.
“그거 갤럭시즈라는 그룹 뮤직비디오래. 단유는 특별출연인가, 우정출연인가 뭐 비슷하게 한 거고.”
“니가 어떻게 알아?”
“지난번에 쟤랑 단유가 이걸로 이야기하는 거 들었거든.”
병수가 손가락질 하는 곳을 바라본 지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연예인 하는 거야? 아니지, 이미 연예인 아냐?”
“그런 거 아냐.”
단유가 단호하게 대답하곤 시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지태와 채윤에게 자리로 돌아가라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두 사람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단유 너, 이 사람들도 잘 알아? 갤럭시즈?”
“조금.”
“진짜? 와, 연예인 어떻게 알아? 친척이야?”
“그냥 어쩌다가 알게 된 거야. 잘 알진 못해.”
단유의 대답에도 호기심이 샘솟는 두 사람의 질문 세례는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단유는 이 일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반 아이들이 자기가 아는 얼굴이 영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요란 떠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영상을 제대로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이 영상은 반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즐기는 몇몇 유머사이트에까지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좋은 의미로 모였다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영상은 뮤직비디오 속 단유와 광종을 제압하는 단유를 교차편집해서 드러내고 있었는데, 특히 광종을 제압하는 단유의 모습은 앞 뒤 다 자르고 광종의 주먹을 막고, 다리를 걷어 올리고, 팔을 비틀어 광종을 제압해 바닥에 쓰러뜨리는 장면까지 재생되도록 편집이 되어 있었다.
제목은 《초전박살! 길거리 싸움 고수, 뮤비 출연》 이었다.
―이거 뭐임?
―학교에서 싸우는 거 아님? 교복 같은데?
―살벌한데? 주먹 잡아내는 거 보면, 완전 싸움 잘하는 듯.
―바닥에 쓰러지는 아이, 우는 거 아님?
―졸라 심하게 넘어졌는데, 저 정도면 갈비뼈 2개는 나감.
―뮤비랑 동일인 맞아? 나 저 뮤비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저기는 되게 착하게 생긴 것처럼 나옴.
―무슨 멍청한 소리야? 얼굴 생긴 거랑 싸우는 거랑 무슨 관계라고?
―그래도 저건 아니지. 학교에서 주먹 쓰는 아이가 제대로 일리가 없잖아? 요새 학교에서 싸우면 학폭위에서 가만 안 두는데? 그런 애를 뮤비에 쓴 거 아냐?
―저 영상 뒤에 위에 있던 애가 누워 있는 애 해머링 시전!
―진짜? 애는 괜찮고?
그리고 뒤를 이어 단유의 신상털이가 시작되었다. 사실 단유의 신상털이는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한 번 털린 적이 있었던 단유였기에, 이런 사이트에 상주하는 몇몇 네티즌에게는 꽤 익숙한 얼굴이기도 했다.
곧 단유의 과거가 쏟아져 나오고, 갤럭시즈와의 연관성을 알리는 인터넷 방송 장면도 캡처되어서 나왔다.
―고아였음. 완전 사회 반항아 컨셉?
―편견 ㄴㄴ. 영재였다고 하는데?
―영재였던 애가 왜 영재학교 안가고 일반 학교 가나? 저기 서울 장계중학교 교복인데? (내 사촌동생이 저 학교 나왔다)
말은 와전되고, 소문은 부풀고, 의심은 확신이 되고, 싸움은 폭력이 되어 이미 인터넷에서 단유는 문제아,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
―내 동생이 저 학교 다니는데, 학교에서 패싸움 했대. 그 때 찍힌 영상인 듯. 그런데 문제는 저 아이들 아무도 처벌 안 받았대.
―미친. 선생들은 뭐하고? 학교에서 패싸움이 벌어지는데 학폭위 출동해야 하는 거 아냐? 어느 학교냐? 교육청에 신고하자!
불똥은 갤럭시즈에게도 튀었다.
―저런 애를 뮤비에 쓴 건 문제 있는 거 아냐?
―회사에서 제대로 검증 안했네. 법원에 가는 애 중간에 빼돌려서 촬영장에 보낸 거야? 그런 거야?
―씨X, 얼굴만 잘 생기면 장땡이냐? 인성은 X도 없는 새끼들이 연예계에서 판치는 꼴을 언제까지 두고 볼 거냐?
―개나소나 나와서 설치네. 저런 애들이 나와서 하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니 얼굴이나 보고 깝쳐라.
―위에 분탕질 치는 놈 누구냐? 설마 본인이냐? IP추적 들어간다.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때, 불쑥 두꺼운 손이 나타나 자신의 핸드폰을 채갔다. 수련이 고개를 들자, 매니저가 눈썹을 치켜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습하고 있으랬더니, 누가 이런 거 보고 있으래?”
“지금 연습하게 생겼어요?”
“그럼 니가 뭘 할 건데? 여기 악플 다는 애들 하나하나 다 찾아가서 조질래? 너 잘하는 말 빨로 한 명씩 다 조지고 다니면, 일이 해결 되냐고?”
수련이 힘껏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어쩌라고요! 단유가 왜 이런 애들한테 이상한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는데요?”
매니저가 뚱한 표정으로 수련을 보다가 말했다.
“단유 때문이야?”
“그럼요? 아니면 뭣 때문에 화를 내요?”
매니저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우리 회사랑···너희들 욕먹으니까···.”
“나 참. 두 눈 뜨고 봐요. 회사랑 우리 욕먹는 거는 쥐꼬리만큼도 안 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악플 한두 번 받아요? 그런데 단유는 아니잖아요? 단유가 이런 싸움 할 애냐고요? 그리고 10초도 안 되는 이런 영상만 보고 단유가 문제아니 뭐니 떠들어대는 게 말이 되요? 사람들이 말이야, 앞 뒤 사정도 알아볼 생각 안하고 말이야.”
여간 흥분한 게 아닌지, 수련은 예의 속사포 신공으로 매니저를 쏘아붙였다. 애초에 오해를 한 것도 매니저였고, 수련의 마음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어서 태호는 머쓱한 표정만 짓다 돌아섰다.
“연습하고 있어. 일단 이 문제는 실장님이랑 이야기 좀 해 보고 어떻게 해결할지 결정할 테니까.”
“결정 잘 해야 할 거예요. 이번 일 잘 못하면, 단유 걔, 영원히 우리 회사 안 들어올 거예요.”
“응?”
“오빠가 늘 그랬잖아요? 단유보고 계약하자고. 그런데 단유가 이런 헛소문 때문에 우리랑 안 보고 살면 누가 손해겠어요?”
딱히 손해 볼 건 없는데, 라는 마음이 솔직한 매니저의 심정이었지만, 그간 보여줬던 모습을 보고 진심이라 생각했던 건지 수련의 태도가 진지해 보였다.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을 나온 태호는 곧장 실장실로 달려갔다.
“이게 회사차원에서 대응할 일이야?”
“그게··· 조금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우리 애들 뮤직비디오에 안 좋은 이미지가 깔릴 수 있잖아요?”
“야, 솔직히 이번 곡, 망한 거잖아? 그치? 이미 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차트 아웃했고, 인지도가 엉망이라서 행사도 잘 섭외 안 되는 판국인데, 이미 망한 뮤직비디오 출연자 갖고 싸워봐야 우리가 무슨 이득이 있어?”
실장은 냉정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았다.
“굳이 말하자면, 얘한테 우리가 손해배상청구를 해야지. 안 그래? 얘 때문에 이미지가 망가진 거잖아? 그리고 뮤직비디오 출연료도 줬다면서?”
“아, 그거는 그냥 용돈 겸 해서 조금 준 거죠.”
고작 20만원 정도였다. 조금 많이 주긴 했지만, 이전에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준 보답이기도 했기에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까지 줘가면서 출연시켰더니, 문제가 된 거잖아?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일 벌이면 나중에 갤럭시즈한테 더 큰 부메랑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냐? 응?”
했으니까 더 고민이 되고 갈팡질팡 하는 것이다. 태호는 실장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시적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좀 더 지켜보는 쪽으로 가고. 그리고 나중에 일이 더 커지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케이?”
“···네.”
태호는 힘없이 실장실은 나왔다. 나오기 전,
“야, 애들 연습이나 좀 시켜. 지금 그깟 소문이 문제야? 애들이 완전 비리비리 해가지고 말이야. 저런 애들한테 곡 주는 게 아깝다는 이야기는 안 나오게 해야 할 거 아냐!”
그 이야기 모두 실장님 입에서 나온 거라는 거 알거든요? 태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실장실을 나와 계단을 쿵쿵 걸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