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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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민일은 자신이 얼마나 춤과 노래에 열정이 많은지 피력했다. 자신의 꿈이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여태 인연이 닿지 않아, 그리고 집안의 반대가 조금(?)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만 들어만 가게 되면 최선을 다할 것이란 다짐도 했다.
“그런 말, 나한테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난 아무런 관계도 없는걸?”
그러나 민일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과일을 따기 위해 손을 뻗는 원숭이만큼 필사적이었고, 단유는 곤란해 하다 결국 민일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다들 집으로 돌아갈 때, 단유와 민일은 교실에 남았다.
“여보세요? 형? 아, 저 단유요. 예. 아뇨, 별 일은 아니고요, 부탁드릴 게 있어요. 아뇨, 계약은 안 할 거예요.”
단유는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친구 바꿔드릴게요. 걔가 형한테 할 말 있대요.”
민일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우물쭈물 대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단유 친군데요, 네··· 아, 아뇨, 갤럭시즈 팬이 아니고요, 아니 팬은 맞는데요.···아뇨, 통화하고 싶어서가 아니고요, 아니···저기 통화하면 좋긴 한데요. 그게 아니고요.”
민일은 어렵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본래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 후 말없이 한참을 듣기만 하다가 핸드폰을 단유에게 건넸다.
“네? 네. 예.”
단유는 전화를 끊은 뒤, 민일을 바라보았다. 민일은 멍한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다가 고맙다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지켜보던 병수가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뭔데? 뭐라고 한 건데?”
“···연습생 안 뽑는데.”
병수가 안타까운 눈으로 민일을 바라보지만, 이미 민일은 조용히 교실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하긴 갤럭시즈를 관리하는 현 기획사가 유명한 3대 기획사도 아니고 갤럭시즈 하나만 관리하기에도 벅차서 다른 연습생을 받아 관리할 여력이 없긴 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관리하는 연습생들도 언제 데뷔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새로운 연습생을 뽑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민일은 단유 덕분에 기획사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는 희망에, 과일이 거의 손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 차였던 터라, 오히려 더 큰 실망과 안타까움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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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일이 갤럭시즈의 뮤직비디오를 본 것은 굉장히 우연에 가까웠고,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갤럭시즈를 알지 못했다. 한 마디로 인지도가 거의 바닥이었던 셈이다.
“노래가 좋으면 뜰 수 있었을 텐데.”
셋째인 명지의 투덜거림을 들은 실장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야, 그런 소리 할 시간에 안무를 한 번 더 맞추고 보컬 연습을 더 해야 할 거 아냐? 노래? 니들이 지금 노래가 안 좋다고 불평할 때야?”
연습실에 둘러앉아서 시간을 죽이던 멤버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리고 말을 꺼낸 명지는 차마 시간을 돌리지 못해 그저 죄인이 된 얼굴을 하고 바싹 엎드렸다.
“옆 동네 하이걸스들이 왜 떴는데? 노래가 좋아서 떴어? 아냐, 걔네 노래 안 좋아. 알잖아? 근데 왜 떴어? 걔네 춤 때문에 뜬 거 아냐? 걔네 무대에서 봐봐? 춤 잘 추고, 자신감 있게 소리를 지르니까 뜨는 거 아냐? 명지 너 뭐야? 니 파트 때만 웃고, 다른 사람 파트일 때는 웃지를 않아서 사람들이 뭐라고 해? 정색한다고 지랄하는 거 몰라? 파트 아닐 때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거 몰라?”
명지는 그저 죄송합니다 입으로 되뇌면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수 너. 왜 자신 있게 노래를 못해? 리드보컬이잖아? 노래 처음 시작할 때, 왜 너한테 파트를 줬는데? 말해 봐. 왜 너한테 파트를 줬어?”
“···자신감 있게 부르라고.”
“그래, 알잖아? 근데 왜 못해? 그저께 공개방송 때, 너 라이브 할 때 니 표정 모니터링 해봤어? 엉망이야, 엉망. 사람들 다 알아, 너 자신 없는 거. 그러니까 사람들이 노래 시작부터 관심을 안 갖는다고. 잡은 지 한 달 넘은 고등어도 너 같은 표정은 아냐, 임마.”
왜 굳이 고등어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수련이 너. 니가 이 팀에서 뭐야? 메인보컬 아냐? 그런데 메인보컬이란 놈이 노래를 맹탕으로 부르는데 사람들이 무슨 흥을 느끼겠어? 응?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행동, 몸짓, 눈빛 다 써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니 파트는 그냥 너 빼고 오디오로 물려도 똑같다고. 있으나 마나야, 알아? 걸그룹에서 메인보컬 한다는 애가 힘이 안 느껴지니까 사람들이 재미없어 하는 거잖아!”
가수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장수영.”
“네.”
“너 리더지?”
“네.”
“리더가 뭐 해야 돼?”
“······.”
“뭐 해야 돼냐고!”
“···팀을 이끌고, 아이들 관리라고···.”
“아는 놈이 이 꼴을 만들어? 봐봐. 이게 뭐냐고? 메인 댄서라는 놈은 안무가 엉망이고 메인 보컬은 무슨 목석이 노래 부르는 꼴이야. 리드보컬은 자신감이 없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뭐야, 이게?”
수영은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를 하지만 이미 사과를 듣고 지나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실장은 신랄하게 멤버들을 다그쳤고, 그 와중에 자신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은 예영 역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예영은 막내로서 가장 에너지가 넘쳤지만, 역시 활약을 하기엔 모자랐다. 하긴 활약할 무대가 주어져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너네 지금 컴백한 지 한 달 됐어. 근데 이게 뭐야? 이 시간에 니들 여기 있으면 돼, 안 돼?”
“······.”
“대답 안 해, 새끼들아!”
“안 돼요.”
암 말기 환자의 그것과도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멤버들이었다.
“노래가 좋네, 안 좋네 하기 전에 너희가 실력이 부족하단 생각을 먼저 해야 할 거 아냐! 어제 제일 늦게까지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한 사람 누구야?”
그제야 예영이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다. 예영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너 몇 시에 집에 갔어?”
“11시 쯤이요.”
“봐라. 너희 중에 제일 실력 떨어진다는 애가 11시에 집에 들어가고 있다. 너희 현실이 이래. 연습도 안하고, 준비도 안 해. 위기의식도 없어. 그러니까 이런 꼴이라고. 너희 가수하기 싫어? 그만 둘까? 다 접을까? 넌 뭘 잘했다고 울고 지랄이야!”
눈물을 닦던 명지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배 앞에 가지런히 모았다.
“연습해라. 응? 노래가 어떠니, 홍보가 어떠니 불평불만 늘어놓을 생각 하지 말고, 실력을 기르라고. 알았어?”
한참 동안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며 갤럭시즈를 비난에 가깝게, 아니 그냥 비난하던 실장이 나가고 난 뒤, 연습실은 곧 소리 없는 눈물로 가득 차올랐다.
잠시 통화를 위해 나갔다가 들어온 매니저는 안타까움 반 원망 반의 심정으로 갤럭시즈를 바라보다가, 옆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던 현철에게 눈짓을 보냈다.
현철이 얼른 구석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다가 멤버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손에 둘둘 말아서 눈을 찍어대는 멤버들 앞으로 다가간 매니저는 잠시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실장님이 말은 과격하게 하셨어도 틀린 말은 없었어. 알잖아, 니들도? 첫 날 모니터링 했을 때, 이미 우리끼리 지적했잖아? 근데도 변한 게 없었잖아? 고쳐지지가 않으니까, 실장님이 더 화가 나신거야. 고깝게 듣지 말고, 반성하도록 해.”
“예.”
수영이 대표로 대답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끅끅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노래가 대중성이 없는 것도 이유는 있겠지. 명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냐. 노래가 안 좋으면, 춤으로, 눈빛으로, 자신감으로 극복을 해야 하는 거야.”
언제부터 노래를 자신감만으로 불러서 성공시켰단 말인가? 태호 스스로 생각해 봐도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긴 했다.
“연습이나 해.”
말이 길어져봐야 상처만 더 될 뿐이니 이쯤에서 달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왔는데요?”
로드매니저인 현철이 분위기 깨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밥 시켜놓고 잠시 쉬는 틈에 이 사달이 났었다. 태호는 애들끼리 먹을 수 있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눈치 없는 현철의 어깨를 붙잡고 연습실을 나가니, 드디어 다섯 멤버만 연습실에 남았다. 잠시 눈치를 보던 예영이 신문지를 가지고 와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음식들을 세팅했다. 수련과 명지가 예영을 도와 음식을 세팅하는 와중에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미어캣처럼 수영이 나간 문을 바라보던 세 사람을 부른 것은 지수였다.
“그만 쳐다보고, 밥 먹자.”
지수는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라고 중얼거리며 도시락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들었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도 지수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주자 그제야 밥술을 뜨기 시작했다. 밥이 조금 넘어가니, 흐르던 눈물도 말라가면서 몸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없이 밥을 먹던 중, 예영이 슬쩍 물었다.
“언니 건 어떡해요?”
명지가 슬쩍 보더니, 따로 빼놓으라고 턱짓을 했다. 다시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지수가 입 안 가득 우물거리다가 눈물을 쓱 훔쳤다. 소리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수련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은 전염이 되고, 울음은 위로가 된다. 울다보니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서러움이 폭발하며 좀처럼 울음을 멈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였다.
“뭐!”
연습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매니저, 태호의 고성에 멤버들은 울던 것도 멈추고 문을 바라보았다. 벽에 가려 보일 리도 없는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던 멤버들은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데, 바깥에서 쿠당탕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를 바라본 들, 누구도 답을 줄 순 없는 상황. 이럴 때 행동력은 수련이 가장 빨랐다. 벌떡 일어나 연습실을 나가자, 뒤따라 세 멤버들도 달려 나갔다.
문을 벌컥 열고나서니, 매니저가 씩씩거리는 모습으로 복도 가운데 서 있고, 그 옆에는 아까 나갔던 수영이 고개를 숙인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정수기에 꽂아 두었던 생수통이 뒹굴고 있었고, 그 뒤에서 로드인 현철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수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오, 오빠? 무, 무슨 일이에요?”
매니저가 흘끔 눈을 치뜨는데, 여간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고 있으니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수련은 멀찍이 서 있던 현철에게 물음을 던져야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예요, 갑자기? 무슨 일 있어요?”
현철이 태호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대다가 말했다.
“저기, 우리 뮤직비디오가···.”
“뮤직비디오가 뭐요? 뭐 잘못 됐어요?”
뮤직비디오가 방송에 송출된 지도 한참이 지났기에, 뒤늦게 심의에 걸려서 방송 금지가 된 다거나 하는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수련이 재차 추궁하자, 현철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척을 하다 입을 열었다.
“우리 뮤직비디오, SNS에서 난리 났어.”
난리?
“그럼 잘 된 거 아냐?”
“그게··· 좋은 쪽 말고 나쁜 쪽으로.”
“응?”
섹시 컨셉도 아니었고, 병맛 컨셉도 아니었는데 문제가 될 게 있나? 수련이 잠시 자신들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떠올려 보았다. 오히려 너무 컨셉이 약해서 밋밋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수련이 잠시 입을 닫은 사이, 궁금함을 참지 못한 예영이 불안감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뭔데요? 뭐가 문제가 된 거에요?”
현철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 언제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태호가 대답했다.
“단유야.”
“네?”
뜬금없는 대답에 일동 시선이 태호에게 몰렸고, 태호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단유가 문제가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