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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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반의 화해. 그리고 선생님과의 긴밀한 면담. 이 걸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교내 폭력 사건의 발생이 담임선생님 선에서 끝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교감선생님에게 경위서를 제출하고 그 후 교장선생님에게까지 보고가 들어갔다. 교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며 ‘패싸움’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선생님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허술하게 관리를 했으면,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싸움을 벌이는데 그 누구도 몰랐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두 반이 서로 시합을 한다는 건, 그 만큼 많은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몰렸다는 건데 어떻게 누구 하나 가서 감독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겁니까?”
예상했던 바였고,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역시 교감 선생님은 책임 운운하면서 담임선생님들을 힐난하였다.
“휴게실에서 지켜봤다고요?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박 선생님? 그리고 끝까지 지켜보지도 않으셨다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급한 용무라니요? 선생님은 담임으로서 자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점심시간에 급한 용무라고 마음대로 학교를 나가도 된다니요? 보고도 없이 학교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3반과 7반의 각 담임선생님들은 그저 죄송합니다, 만 연발할 따름이었다.
“아이들이 화해한다고 해서 이게 끝날 일이에요? 이러니까 학교 폭력이 계속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정신들 좀 차리세요! 가해자가 피해자와 어떤 식으로 화해를 하는지 지켜보지도 않고, 그저 말만 듣고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면 도대체 선생님들은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선생님들 각자가 무슨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렇게 아침 조례 분위기는 매우 심각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으니.
3반과 7반의 반장 및 주동자(?)들이 교장실로 불려갔을 때였다.
“화해했다고요?”
“네.”
“허허, 이거 참.”
은퇴를 앞둔 교장선생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고개 숙인 아이들을 쭉 훑었다.
“고개들 드세요.”
아이들이 두려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넓은 책상 뒤편에 자리한 교장 선생님의 넙데데한 얼굴을 보니, 무섭기도 하지만 살짝 긴장이 풀리는 느낌도 있었다.
“스스로들 화해를 한 거 맞아요?”
교장 선생님의 물음에 7반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애들이 저희 반 와가지고요, 고개 숙여서 사과했어요.”
“오, 그래요? 거기 키 큰 학생.”
“네.”
“학생이 반장인가요?”
“아니요, 반장은 옆의 이 친구고, 저는 최초 시합을 주선했던 입장이었던 데다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끼어들기도 했었기에 같이 간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눈을 살짝 치뜨면서 단유를 바라보았다.
“혹시 학생 이름이 김단유군?”
“네.”
다시 교장 선생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담임선생님들에게 구체적인 경과보고를 들은 터였기에, 특히 김단유라는 학생의 신상명세를 외워놓은 상황이었다.
‘영재라고 했던가?’
갑자기 왜 학생 자랑을 하나,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를 듣다보니 김단유라는 아이가 꽤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은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학생 생각에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면 좋을 거 같아요?”
단유는 거침없이 생각을 밝혔다. 다른 아이들은, 비록 교장 선생님의 인상이 푸근한 할아버지 같다고 여길지라도, 학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선 분인지라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해 단유는 그런 게 없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7반 반장과 이야기를 나눴고, 점심 때 매점에서 다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매점에서 보기로 한 이유는 다른 곳보다 학생들이 모이기 좋은 공간이고, 먹을 게 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쉽게 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무슨 화해추진위원회 회장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교장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다면, 말릴 이유가 없지요. 또한 비록 폭력이라는 잘못된 수단을 이용했다지만, 이를 반성하고 있음이 보이니 학교가 굳이 여러분들에게 벌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벌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데 듣기로는 학생이 보고 절차를 지키지 않고, 선생님에게 대들기까지 했었다면서요?”
단유는 심각할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요, 대들지는 않았···는데요.”
절로 목소리가 위축되기 시작한 단유는 더듬거리면서 변명을 했다.
“혹, 혹시 제 행동이 담임선생님께 불쾌함을 드리는 행동이었다면,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코 선생님께 대들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다, 나, 까’를 쓰면서 의젓하게 말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아직은 어린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농담이에요.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밝혔기에 그쪽 담임선생님도 이해를 해주셨고, 저한테도 선처를 부탁하시더군요. 그러니 너무 당황하지 말아요, 학생.”
“네, 선생님.”
교장선생님은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책상을 돌아 나왔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키가 그리 크지 않으셨다. 단유보다 작았고, 지태랑은 키가 비슷한 정도였으니, 대략 155 근방이리라.
“아까도 말했다시피, 여러분 반의 아이들에게 처벌을 내리진 않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겠죠?”
벌을 내리지 않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 아이들이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데, 교장 선생님이 앞에 놓인 소파에 엉덩이를 묻었다.
“두 반 모두, 교내 봉사활동 3시간을 이수하도록 하세요.”
아이들은 봉사활동이란 말에 살짝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시간은 오늘 점심시간, 매점에서 청소를 하면 좋겠군요?”
그제야 아이들의 얼굴이 풀렸다.
“아시겠어요?”
“네!”
학교폭력대책위원회는 열리지 않게 되었고, 그날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선생님의 참여 아래 매점에서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다소 어색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곧잘 웃음을 만들어내는 쾌활한 명수와 반장들, 또 반에서 나름 개그를 담당하는 아이들이 주도해서 이내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음에 제대로 시합 하자. 콜?”
“콜!”
아이들은 제2차 대전, 아니 시합을 약속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뿌듯한 느낌을 받았고, 선생님들은 일이 조용히 마무리돼서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교무실로 귀환했다.
****
“석고야! 이것 봐봐.”
거실에서 단유를 부르는 명수의 목소리에, 단유는 읽던 책 사이에 펜을 하나 끼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서니, 어느새 호빵이 조르르 달려와 다리 밑에서 헥헥 거리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뭔데?”
호빵을 안고는 머릴 쓰다듬어 주며 명수에게 다가갔다. 명수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질을 해댔다.
“나온다! 나온다, 너!”
그렇지 않아도 익숙한 노랫소리가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머, 단유네? 방송으로 보니까, 단유 더 잘생겼네?”
어느새 명수 뒤로 다가온 선생님과 이모가 TV를 보며 품평을 시작했다. 단유는 머쓱해져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는데, 명수가 어찌 알았는지 단유 팔을 끌어당겨 자기 옆에 앉혔다.
“누나들 컴백한 거지?”
방송제작진의 이름 등이 스크롤로 지나가는 20여초의 짧은 시간동안 갤럭시즈의 컴백곡 ‘미챠(meet yah)’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던 것을 명수가 보고 흥분한 것이었다.
“금방 컴백할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늦게 나왔대?”
3월에 컴백할 줄 알았던 갤럭시즈는 결국 5월이 되어서야 컴백이 된 모양이었다. 20여초가 금방 지나가고 TV에는 뚱뚱한 연예인이 라면사발을 맛있게 먹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전화해봐.”
“무슨 전화?”
“누나한테 뮤직비디오 봤다고 전화해야지?”
“왜?”
“컴백했으니까 축하한다고 해줘야지!”
가요프로 1등한 것도 아닌데, 무슨 축하를 하나 싶었지만 핸드폰을 쥐어주는 명수 때문에 단유는 어쩔 수 없이 수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봐.”
그 때, 신호가 끊어지고 ‘여보세요’ 라는 말이 들렸다.
“여보세요?”
「누구? 단유?」
굵은 남성의 목소리인데, 단유의 이름을 대뜸 말했다.
“네. 태호형이세요?”
「그래 나다. 녀석, 감히 수련이한테 전화를 해!」
장난스러운 매니저의 말에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게, 명수가 지금 TV에서 누나 뮤직비디오 나왔다고 축하하라고 해서요.”
「그래? 명수, 그 놈 기특하네. 명수 옆에 있어?」
단유가 명수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명수는 활짝 웃으면서 매니저와 즐겁게 통화를 했다. 한참을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단유에게로 폰이 넘어왔다.
「너도 좀 연락 좀 해라. 우리가 남이냐?」
“남이죠. 그리고 형한테 전화해봐야 계속 계약하자는 소리밖에 안하시잖아요.”
「고작 그게 싫어서 전화를 안했다고? 에이, 이런 쩨쩨한 녀석.」
쩨쩨하거나 말거나, 괜히 계약가지고 실랑이를 벌이고 싶진 않았다.
“근데 왜 수련누나 핸드폰을 형이 가지고 있어요?”
「원래 활동기간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거야. 활동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런 것도 매니저의 일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단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활동 잘하시고요, 1등하세요.”
「그래 고맙다. 조만간 1등하면 밥 쏠게.」
통화가 끝나고 명수를 바라보니, 어느새 명수는 자기 핸드폰으로 갤럭시즈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것 봐봐. 누나들 노래가 차트에 있어.”
비록 순위는 50위권 밖이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이런 사이트에 이름이 올라오는 게 신기했던 명수는 그 날 하루 종일 갤럭시즈를 검색하고 스트리밍을 했다.
“이렇게 해야 순위가 올라간대.”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을 단단히 닫는 것을 잊진 않았다. 그냥 혼자 들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소리를 키워서 집안 전체에 다 들리게끔 하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명수를 말리진 않았다. 대신 귀마개를 찾아서 귀에 꽂았다.
****
“야, 너 맞지?”
책을 보던 단유가 돌아보자, 민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갤럭시즈.”
아,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볼이 빨개진 민일의 얼굴을 보고 의아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어떻게 알았어?”
“뮤직비디오에 나오니까 알지.”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갤럭시즈가 컴백하고 2주가 지난 지금, 갤럭시즈의 노래는 차트 아웃을 했다. 처음 방송 가요 프로에 몇 번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뮤직비디오를 보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너 갤럭시즈 좋아해?”
민일의 얼굴이 좀 더 붉어진 것 같기도.
“좋아하면 안 돼?”
“안 될 건 없지.”
“왜 대답 안 해? 너 맞아, 아냐?”
“맞아.”
“우와! 너 갤럭시즈 알아? 친해? 너도 기획사 들어간 거야? 연예인이야? 연습생이야? 어떻게···.”
“쉿.”
단유는 흥분한 민일을 진정시켰다. 병수가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다른 아이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은 점심시간이었고, 이 시간에 교실 안에 남아 있는 애들은 대부분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한참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우연히 알게 돼서, 우연히! 한 번 출연한 거야. 그걸로 끝.”
민일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는데, 민일은 단유의 부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누구? 갤럭시즈?”
민일이 입술을 살짝 적시고 말을 이었다.
“그것도 좋지만, 그쪽 회사 매니저나 실장님도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단유는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민일의 뜨거운 시선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어서 난처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