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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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헌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다, 가장자리에서 아는 척을 하는 동료 교사 남희재가 손을 들어보였다. 헌영은 희재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좀 늦었네. 오래 기다렸어?”
별 이상한 소리 다한다는 눈으로 헌영을 바라보던 희재가 피식 웃으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가방을 옆에 놓인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의자 위에 올려놓고 벽에 걸린 앞치마를 빼어들었다. 고추장 양념 자국이 묻어있는 남색 앞치마를 목에 걸고 펼쳐서 앞을 가렸다.
“얼굴 보니까 오늘 일 좀 많았나 보네?”
“얼굴? 왜? 이상해?”
젓가락을 집어 들려다가 괜히 얼굴이 이상하다는 소리에 양 뺨을 만져보는 헌영이었다. 희재는 피식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옆에 놓인 소주병을 땄다. 병을 들어 올리니 자동으로 건너편에서 잔이 올라왔다. 잔을 가득 채워주고 가득 채워 받은 두 사람은 갈증이 났던 사람처럼 한 번에 잔을 털어 넣었다.
“무슨 일인데? 회의 시간에도 안 보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서 먼저 집에 간 줄 알았다.”
“주임선생님한테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반 학생이랑 상담 했다.”
“상담? 이 시기에?”
헌영은 다시 잔을 들어 올렸고, 이야기 값으로 소주 한 잔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라는 첨언과 함께 희재는 소주를 따랐다. 안주로 시킨 양념 주꾸미 볶음이 매운 향을 내며 불판 위를 뒹굴었다. 젓가락으로 몇 번 뒤적이다가 적당한 놈으로 골라 입 안에 넣으니 매운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매우면서도 달달한 맛이 혀를 녹이고 긴장을 녹였다.
“이거 맛있네?”
“이 집 유명해. 매운 거 먹고 싶다고 하길래, 마침 이 집이 생각나더라고. 무식하게 맵지도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고. 게다가 소주 안주로 딱이다 이거야. 아, 조금 있다가 계란탕도 나오는데 그거 한 번 먹어봐라. 죽음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꾸미 하나를 더 집어든 헌영은 절로 소주잔에 손이 갔다. 다시 잔을 부딪치고 한 잔을 더 들이킨 뒤에야 헌영은 오늘 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큰일 날 뻔 했었네? 너 오지게 당할 뻔 했어. 알지?”
“알지.”
학내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전처럼 학교 안에서 쑥덕쑥덕해서 넘어갈 수 없었다. 그 즉시 학교 측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고 적당한 제재를 가해서 재발을 방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사도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관리 책임을 물어 시말서는 물론이고 공식 혹은 비공식적 제재도 감수해야 했다. 감봉 2개월 정도면 경징계, 그 이상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패싸움을 했고, 자기들끼리 화해를 했다며 5교시 마치고 보고하더란 이야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으니.
헌영은 연신 소주를 들이켜 대면서 이후의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 안주가 반쯤 사라질 때쯤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어느새 희재 역시 헌영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소주잔을 붙잡았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냥 그렇게 끝났지.”
헌영은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너라면 뭐라고 했겠어?”
“글쎄. 잘 모르겠네?
헌영은 희재의 뻔뻔한 대답을 들으면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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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유. 의도가 뭐야?”
“네?”
“아까 교실에서 그렇게 말한 의도가 뭐냐고!”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해 당황한 들개가 낯선 이를 만나면 저리 짖지 않을까, 단유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교실에서 했던 제 발언의 의도는 제 행동과 제 생각을 선생님께 알려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싸움이 일어났을 당시 저는 저 뿐만 아니라 저희 반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자는 형벌을 생각한다’(君子懷刑, 小人懷恩 중)고 했는데, 이는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알고 인정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공자는 ‘어떤 일을 놓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 정의로운 방법을 먼저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의로움’에 주목했고, 싸움을 일으킨 각자가 화해를 하는 것이 정의로움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 뭐지?
“그 생각을 상세히 말씀드리려 했던 것이 제 의도이며 그 외에 다른 사특한 이득을 얻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 현대 한국, 법과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 시기, 온갖 청소년 범죄로 인해 청소년 선도의 중요성이 부각될 정도로 걱정스러운 시선이 한 가득인 이 시대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중학교 1학년이라니! 게다가―분명 기록부에 기록된 바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한 것으로 나오는―고아인데 마치 현지인과 비슷한 영어회화가 가능한 아이라고? 헌영은 잠시 ‘보육원이 우리나라 보육원이 아니라 미국이나 외국 어딘가의 보육원을 착각했던가’, 돌아볼 정도였다.
‘아니야, 정신 차려! 박헌영!’
시쳇말로 멘붕이 계속되는 중이다. 정신을 다잡고 단유를 다그쳤다.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그럼요?”
아,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질문은 그걸 물은 거긴 한데,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 시쳇말로 고구마, 라던가?
“그럼 넌 아무 잘못도 안했다는 거야?”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유가 입을 뗄 때,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유의 대답은 계속 이어졌다.
“···잘못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만약 선생님께서 물으시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순서에 관한 것이라면, 그 점에 있어서는 저 역시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교실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꼭 답을 해 주실 필요는 없겠지만, 말씀해주신다면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저도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고치고 다시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단유는 말을 마친 뒤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답이 뭔가요?’라고 묻는 눈이었다. 헌영은 술이 땡기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눈앞에 있는 놈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혀 중학생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술 한 잔 나누면서,
“새꺄, 까라면 까야지, 뭔 말이 많아! 형이 말야, 말씀을 하시면 예, 하고 고개 숙이고 어깨춤이나 털 것이지.”
라고 농담이나 떨어야 적당할 것 같은 놈인데. 이 시간에 차라리 희재를 붙잡고 술이나 마시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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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와의 대화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탁자 위에는 어느새 소주 3병이 텅 빈 채, 오묘한 녹색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모, 여기 계란탕 하나만 더 주세요.”
희재가 숟가락을 들고 소리쳤다. 주문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희재는 자작하려는 헌영의 손에서 소주병을 빼앗았다. 소주병을 기울여주자, 짧은 숨을 토해낸 헌영이 소주를 받아 자기 앞에 놓았다.
“왜 혼자 달리고 그러냐?”
“진짜, 오늘 술 많이 땡기더라고. 넌 진짜, 그 때 그 자리에 니가 없어서 모르는 거야. 진짜 거기 있었으면, 너! 진짜 술 생각 많이 났을 거다.”
아직까지는 술이 많이 취하지 않은 건지,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단어를 뭉개서 발음하진 않는 헌영이었다. 희재는 한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훔치고는 잔을 들었다.
“니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겠어. 그리고 잘 했어. 그렇게 한 것만으로도 너, 충분히 니 역할 한 거야. 걔도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이해했다며?”
헌영은 자동차에 달린 인형처럼 고개를 툭툭 떨구면서 희재의 말을 받았다.
“머리가 좋은 놈이니까. 바로 알더라고. 그런데 그 놈도 고집이 있는지 끝까지 묻더라고.”
“어떤 게 먼저냐고?”
“그것도 그렇고, ···선생님은 어떻게 화해시킬 거예요···라고 묻는데, 할 말이 궁한거지. 궁하니까 아무 말이나 하게 되고. 그러니까 괜히 내가 밉고, 불쌍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런 거지.”
희재는 식어서 양념이 굳은 주꾸미 하나를 집어 헌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헌영은 반쯤 감긴 눈으로도 희재가 주는 안주를 잘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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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선생님이 응? 너희들을 화해를 시켜도 응? 먼저 절차가 있는 법이잖아! 재판도 절차가 있고, 지하철을 타도 순서를 지켜야 하는데, 빨리 간다고 새치기 하면 되냐고! 그럼 규칙을 지켜서 순서를 지키는 사람들은 뭐가 돼? 넌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순서를 지키는 것 같아?”
지금까지 차분하던 단유의 눈에 동요가 생겼다. 하지만 그 동요를 바라보는 헌영의 마음은 아프기만 했다. 단유에 대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
눈앞에 있는 놈보다 배워도 한참을 더 배우고, 한참을 더 살아온 자신이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눈앞에 있는 놈 또래의 아이들을 벌써―담임이든 교과목 강사로든 상대한 아이를 모두 합해서―천여 명 가까이 돌봐 온 경력이 있는 몸이다. 그런 주제에 지금 무슨 추태를 보이는 걸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죠. 하지만 모든 일에 순서를 지키고만 있다면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고가 났는데, 순서를 지킨다고 한시가 급한 환자를 뒤로 물릴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말빨로 질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이럴 때 국어과 담당 선생님이나 사회과 담당 선생님들이 유리할 거란 생각이 잠깐 들었다. 희재도 영어과이긴 하지만 다른 문과 선생님들에 비하면 부족하겠지?
‘내가 문과를 전공했다면 달라졌을까?’
헌영은 이를 악물고, 논리로 대응했다. 이과지만 논리라면 수학과를 이길쏘냐.
“니 말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 어떤 경우에는 순서보다 시급한 일을 챙겨야 할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번 일이 과연 그런 경우였을까? 당장 화해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까? 선생님께 보고하는 것보다 먼저 화해해야 할 만큼 급한 일이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저는 확신이 없고, 정답도 모릅니다. 다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알려주신다면 반성하고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드린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저희들을 화해시켜 주시려고 하신건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십여 년 전 대기업의 압박 면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교사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집어넣고 있던 때였다. 다행히(?) 이력서를 넣은 곳이 모두 떨어졌기에 이렇게 교사직을 수행하고는 있지만.
그 때 어떤 기업에서 면접 전형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그런지 곡해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그 자리가 이 자리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으리라.
도저히 대답을 피하기가 어렵다.
“내가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너희들을 모아놓고 서로 화해하자고 손이라도 붙잡게 할 줄 알았어? 아니면 서로 안고 포크 댄스라도 추게 해줘야 화해를 하냐? 화해는 너희들이 하는 거지, 선생님이 해 주는 게 아냐. 선생님 말의 요지는, 너희들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다는 것에 화가 난 거란 말이다!”
그렇다. 둘러말했지만, 애초에 아이들을 화해시키는 것은 선생님의 역할은 아니었다. 처벌을 하거나 제재를 해서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헌영은 저도 모르게 씩씩대며 단유를 바라보는데, 단유의 얼굴이 어쩐지 뚱한 표정이었다.
“뭐야, 그 표정은? 선생님 말을 듣기 싫다는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단유는 볼을 긁으면서 어렵게 입을 뗐다
“포크댄스가 뭔지 몰라서요.”
“응?”
“그리고 사실은, 제가 유치원을 가본 적이 없어서요. 포크댄스가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거든요. 제가 아는 댄스는 아닌 것 같고, 그게 어떤 화해의 방법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나 보네요. 거슬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헌영은 속으로만 해야 할 한탄이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젠장.”
그 외의 것은 모두 이해했다는 듯, 앞으로 절차를 지키겠다는 단유의 반성이 있고나서 단유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반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반성’ 다운 반성은 아니었다.
“그러네요. 굳이 급할 일도 아니었는데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학교의 규칙과 절차를 따르는 데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던 대답은 들었는데, 개운하지 않았다.
“희재냐? 응. 나. 술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