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13화 (213/956)

미스터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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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영은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제자들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순 없다는 교사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도록 둘 순 없었다.

“김단유랑 반장은 나 따라오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대기해.”

선생님은 몸을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단유가 솔로토크콘서트를 벌이는 동안 다들 반쯤 정신이 가출한 상태였기에, 선생님의 대응 또한 바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지태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서,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만약 복도로 먼저 나갔던 선생님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그러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반장! 빨리 안 따라와!”

지태가 그제야 머릿속을 하얗게 지우고 ‘따라오라’는 선생님의 명령을 입력한 뒤,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서둘렀다. 급하게 나오느라 뒷자리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가 찍히는 사고가 있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미 선생님 뒤를 졸졸 따르던 단유가 언제나와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나, 아니면 표정으로라도 괜찮다고 해주면 좋겠다, 는 생각을 잠시 품어보지만 단유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앞서 가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갔다. 이미 다른 반은 텅텅 비어있던 터라 복도를 걷는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복도를 걷는 동안 심사가 어지러웠던 것은 비단 지태 뿐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하지?’

헌영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화도 나고, 당황도 하고, 어이도 없는데, 그 모든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당최 알 수가 없어 더욱 갑갑하고 열 받았다. 순간적으로 치솟는 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면, 일은 더 커졌으리라. 그걸 참은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할 만 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자리를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단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는데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표정을 다른 아이들한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교실을 빠져나오는 선택을 하고 말았는데, 복도를 걷다보니 어떻게든 교실에서 해결을 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복도를 걷는 동안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너무 취했던 탓에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화를 내기 전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침착하게 들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솟아났다.

‘아니야. 이제 중 1학년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을 데리고 무슨 성인군자 노릇을 하겠다는 거야! 박헌영, 정신 차려! 넌 풋내기 교사도 아니고 경험 많은 베테랑이야. 이 나이 때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 잘 알잖아!’

철이 덜 든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 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아이들이고, 아직 사회의 규칙을 제대로 따를 줄 모르는 아이들이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들이다. 충동적이고 생각이 얕은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선도해야 할 교사가 흔들리면 안 돼!’

하지만 이미 교실을 나온 이상, 다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단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헌영의 발걸음은 교무실 옆 학생상담실로 향했다.

교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2층에 오른 세 사람은 곧 상담실로 향했다. 교무실을 지나쳐야 나오는 상담실로 가는 동안에도 헌영은 어떤 이야기를 해서 단유를 가르치고 따르게 해야 할지, 그 첫마디를 고르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이윽고 상담실 문을 열려는 때였다.

“Hey, you. I thought you’re not coming here today. Why are you late?”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선생님은 교무실을 나오던 헤럴드가 단유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Sorry, Harold. It’s hard to talk to you now.”

“What? Why?”

“As you see, I will talk to my teacher first, and I will explain it next time because it is not suitable to explain the detailed reason. Sorry again, Harold.”

헌영은 두 눈을 껌벅이며 단유와 헤럴드의 대화 장면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알던 단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단유가 아니라 그냥 외국사람 둘이서 대화하는 줄 알았다.

헤럴드가 헌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래 걸려요? 이야기?”

“예? 아, 예. 조금···.”

헤럴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단유에게 말을 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그런데 혹시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요? 이 시간에 선생님과 상담을 한 다는 건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드릴 수 없어요. 대신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선생님에게 오해를 받기는 싫으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단유 학생? 나중에 다시 만나죠. 선생님,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Ok, ok. that’s all right.”

말꼬리에 자신을 바라보며 sorry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들은 헌영은 더듬거리긴 했지만 대답을 해주었다. 헤럴드가 손을 살짝 들고 다시 교무실로 들어가자 복도에는 다시 세 사람만 남았다. 상담실 문고리를 잡은 채 단유를 바라보는 선생님, 그 선생님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단유, 그리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태.

“선생님?”

단유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헌영은 상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단유와 지태가 따라 들어갔다.

상담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선생님과 제자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대치상태를 이루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던 헌영은 ‘단유, 그는 누구인가’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채운 탓에 입을 쉽게 열지 못했고, 선생님이 아무 말없이 있으니 아이들 역시 아무 말도 못하고 바른 자세로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헌영이 입을 열었다.

“반장.”

“네? 네.”

“교실로 돌아가서 아이들 모두 집에 돌아가라고 해라.”

“네?”

“그리고 내일 지각하지 말라고 하고. 오늘은 딴 데 들리지 말고 모두들 곧장 집으로 얌전히 가라고 전해. 그리고 너도 바로 집에 가도록 하고.”

지태는 고개를 얼른 숙여 보이고는 상담실을 빠져 나갔다. 교실로 돌아오니 수군거리면서 현 사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졸라 열 받은 거 같지?”

“응. 아까 얼굴 이렇게 벌겋게 변해가지고. 난 아까 선생님이 단유 때리는 줄 알았어.”

어떤 아이들은 단유가 던진 화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단유가 뭐라고 한 거야?”

“자기가 잘 했다, 뭐 그런 거 아냐?”

지태가 교실 앞으로 가자, 아이들이 입을 닫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태가 선생님의 전언을 알리자, 유리잔 같던 긴장이 깨지며 곧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교실이 메워졌다. 아마 저 아이들 대부분은 오늘 겪은 일들에 대해 주변으로 열심히 퍼다 나를 것이다. 지태 본인이 그럴 마음을 품고 있듯이.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 나가는 가운데, 채윤이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단유는?”

“선생님이랑 1:1.”

“많이 혼날까?”

“모르지, 뭐.”

두 사람도 가방을 챙겨들고 교실을 나와 운동장으로 나섰다. 마침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명수가 두 사람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다 끝났어? 아까 갔을 때 보니까 되게 분위기 안 좋던데?”

“일단은. 근데 단유는 아직.”

“왜?”

“선생님이랑 1:1 면담.”

“왜?”

“어··· 단유가 선생님한테 한 소리 했거든.”

“응?”

보통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한 소리’ 한다고 표현하지,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 법이다.

“어휴. 요즘 단유가 얌전히 지내나 했더니.”

그러나 역시 단유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명수는 단유가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어떤 상황을 연출했을 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지태와 채윤은 명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럴 수 있지’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단유, 영어 되게 잘하더라?”

명수가 눈을 끔뻑끔뻑 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명수는 한 번도 단유가 영어를 유창하게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잘 모르겠네, 그건. 근데··· 단유가 못하는 게 있을까?”

명수는 머리를 긁적이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아래에 놓인 공을 툭 차서 골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축구 한 게임 할래?”

오늘 그 일이 벌어져서 난리가 났음에도 천연덕스럽게 축구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명수의 얼굴을 보니, 두 사람의 얼굴에 실소가 피어났다.

“할까?”

“난 잘 못하는데?”

채윤이 살짝 빼는 모습을 보이자, 어느새 공을 들고 온 명수가 채윤의 앞으로 공을 굴려 주었다.

“잘 할 필요 없어. 그냥 시간 때우기 용으로 놀자는 건데, 부담 갖지 마. 그냥 공만 굴려도 돼.”

채윤이 발바닥으로 공을 살짝 눌러 세웠다.

“이왕이면 저기로 공을 차 봐.”

명수가 손가락을 들어 골대를 가리켰다. 채윤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명수는 손뼉을 쳐서 주의를 줬다.

“힘껏 차. 괜찮아. 못 찬다고 욕할 사람 없으니까.”

초등학교 때 몇 번 공을 차 본적은 있지만, 거의 공과 친하지 않았던 채윤은 공을 앞에 두고 망설였다. 그러나 명수가 계속 응원하며 골을 권하니, 채윤도 한 번 공을 세게 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가방을 내려놓고 두 발쯤 물러선 채윤은,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힘껏 공을 찼다. 가만히 있던 공을 차는 건데도 너무 힘이 들어갔던지, 자세가 안 좋았던지 제대로 맞지 못하고 공이 옆으로 튀었다.

“잘 차네. 대신 이번에 찰 때는 공을 바로 보고, 여길 차려고 해봐. 집중해서.”

명수가 공을 주워 와서 채윤의 앞에 내려놓았다. 몇 번 차는 시늉을 보이면서 알려준 뒤 채윤에게 기회를 주었다. 심호흡을 한 채윤이 공만 보며 달려와 힘껏 다리를 내뻗었다. 발등으로 때리라는 명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채윤은 발끝으로 공을 찼다. 조금 아랫부분을 찼는지 공은 높이 치솟았다. 그러다 곧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진 공은 몇 번 바닥에 튕기다가 골 안쪽으로 들어갔다.

“골!”

“우와!”

채윤은 두 손을 위로 치켜들며 명수와 같이 만세를 불렀다. 그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바라보던 지태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채윤은 처음 넣은 골에 괜히 기분이 좋아서 연신 만세를 불렀다.

명수가 다시 골대 안에서 공을 가지고 나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가 단유만큼 말을 잘 못해서 그렇긴 한데 말이야.”

채윤이 명수를 바라보았다.

“선수들처럼 멋있게 차든, 아니면 방금 니가 한 것처럼 차든, 결국 저 선만 넘으면 골이야. 그런데 차는 방법만 제대로 알면 저 선을 넘기는 게 어렵지 않아. 누구나 골을 넣을 수 있어. 처음 차는 사람이든, 오래 차던 사람이든 말이야.”

명수는 쪼그리고 앉은 지태를 보다가 씩 웃었다.

“난 축구를 좋아해서 그런지 다 그런 식으로만 생각이 돼. 아무리 앞에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공만 제대로 차면 골을 넣을 수 있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방해해도, 공을 제대로 찰 줄 아는 사람에게 패스하면 골을 넣을 수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공을 찰 줄 알면 된다는 이야기야.”

“무슨 소리야?”

“단유는 공을 잘 차는 사람이라고.”

“응?”

명수는 머리를 긁다가 헤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유 걱정 하지 말라고. 단유는 골을 넣을 줄 아는 사람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아이니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골을 넣는 것과 같다면, 단유는 초 슈퍼 울트라 골게터라고.”

지태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그럼 패스한다는 건 무슨 소리야?”

“응? 어··· 단유가 있으니까, 내가 골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채윤은 명수의 말을 알 듯 말 듯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한 번 더 공을 차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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