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12화 (212/956)

미스터리(3)

-------------- 212/952 --------------

광종은 지금 이 상황이 심히 불만이었다. 자기는 애들 축구 시합하는 걸 구경하지도 않았고, 뒤늦게 운동장을 지나다가 아이들이 싸우는 걸 구경했을 뿐이고, 어쩌다 7반 아이랑 싸우긴 했지만 축구 때문에 싸운 건 아니고―본인은 결코 축구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도리어 저 뒤에 뻔뻔한 얼굴로 서 있는 단유라는 놈한테 기습을 당해서 제압당했던 터였다. 오롯이 피해자이기만 한 자신이 이런 분위기에서 죄인으로 취급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겁도 없이 불만을 티나게 털어놓는 멍청이도 아니었기에, 입은 꾹 다물고 있었지만 삐죽 나온 입술과 찡그린 미간, 혀끝에서 감도는 욕지기가 그의 불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앉아있는 놈들도 다 일어나!”

생각할수록 저 앞에 선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공평하게 처리할 줄도 모르고 죄 없는 자기 같은 아이들한테까지 책임을 물으려 하다니.

“너희들은 모두 학생으로서의 자각이 없어! 너희들이 아직도 초딩인 줄 알아! 언제까지 니들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허용될 거라고 생각해? 규칙과 법도 따르지 않고, 따를 줄도 모르면서 무슨 중학생이야!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는 인간들이 공부해서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 가고 사회에 나가서 제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

지태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이었다. 죄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단유와 채윤에게 계속 말했듯이,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하는 반장이고 어느 정도 책임을 질 각오를 다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뭔지 모르겠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그러나 날카로운 가시를 한껏 담은 선생님의 훈계에 지태는 도저히 머리를 차갑게 하고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비단 지태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씨발, 그냥 한 대 때리고 말지.’

광종이 티 나지 않게 발로 책상을 툭 밀어 찼다. 그러나 살짝 밀어찬거라 선생님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광종으로서는 나름의 반항심을 보인 것으로 만족했고, 옆에 앉았던 짝이 흘깃 광종을 보고는 입모양으로 참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짝의 반응을 보니, 어쩐지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찍소리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적어도 자신만은 선생님을 향해 불만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헌영은 일어선 반 아이들을 둘러보다 일갈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면서 반성했다고 말하는 것은 진짜 반성도, 뉘우침도 아니야. 그런데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반장부터가 오늘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데, 너희들은 자기가 오늘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 알아야 고칠 거 아냐? 말만 잘못했다고 말하고 고개 숙이고 있으면 고쳐지냐고!”

마침 옆 반에서 종례가 끝난 아이들이 교실을 나서는 소리들로 인해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개중 일부는 야외극장에라도 온 것처럼 창가에 서서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야, 뭐야! 구경났어? 조용히들 못해!”

3반 앞 복도가 휑하니 텅 비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눈에 띄지 않게 멀찍이서 구경하는 이들이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헌영의 눈에 띄게 서 있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헌영은 앞자리에 선 아이부터 뭘 잘못했는지 말하도록 했다.

“저는···싸움이 났을 때 애들 말렸는데요.”

“말린 게 잘못이야!”

“···아니요.”

“잘못한 걸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왜 말을 못해!”

“······.”

“잘못한 게 없어?”

싸움을 말리던 소년은 억지로 자신의 잘못을 떠올려야 했다.

“···더 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또?”

“또···싸움이 났을 때 선생님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노려보던 선생님은 그 옆의 아이를 지목했다.

“넌!”

모범 답안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선생님이 반장을 꾸중하며 언급했고, 짝도 그 대답을 한 뒤 차례가 넘어갔으니, 아마도 그게 선생님이 원하시는 답이리라 생각했다.

“저도, 바로 선생님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또?”

“······.”

“그것밖에 없어?”

아이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그 대신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다른 아이들이 싸울 때 말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키가 작고 왜소했다.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을 때, 섣불리 끼어들기가 무서워서 응원을 하던 운동장 스탠드에서 내려가지 않고 끝날 때까지 지켜만 봤었다. 때문에 싸우지도 않았고, 말리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죄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큰 죄가 되었다.

선생님의 입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살짝 들린 것 같아, 어깨를 잔뜩 움츠렸는데, 선생님은 다음 아이에게 배턴을 넘겼다.

그 뒤로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다. 선생님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싸웠습니다, 말렸습니다, 지켜만 봤습니다 같은 죄들이 고해졌다. 3째 줄에 이르러 이전과 다른 대답이 나왔다.

“교실에 있었습니다.”

“뭐?”

“교실에서 음악 듣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교실에 있었지? 그러나 그 순간 시합이 점심시간에 있었고, 그 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나왔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운동장에 나가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교실에 계속 있었던 사람 손들어 봐.”

그랬더니 콩나물 머리 자라듯, 아이들 머리 위로 주먹 7개 정도가 올라왔다.

“이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아이들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으려 주의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싸움 이전에 반 전체가 단합을 위해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개별 행동을 하면서 반의 행사에 불참한 것도 문제는 있어. 하지만 이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자. 알겠지?”

“네.”

그 뒤로 아이들의 고해성사가 재개되었다. 지태에 이르렀을 때, 지태는 이유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뱃속을 꿀럭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장은 됐고. 그 옆에 말해 봐.”

채윤이 겁먹은 목소리로 자신의 죄를 고했다. 그렇게 줄줄 이어지던 고해성사가 다시 의외의 상황에 멈춘 것은 단유에 이르러서였다. 번호순으로 왔다면 단유는 가장 마지막쯤이어야 했지만, 분단별로 고해성사가 진행되던 터여서 1분단 끝줄에 섰던 단유가 다른 이의 주목을 받으며 고해성사를 해야 했다.

단유는 처음 선생님이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 고해성사를 하기 이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생각과 고민과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고민은 답이 없었고, 의문은 풀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하던 때에 선생님에 의한 강제 고해성사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 우선 아이들에게 힘을 써서 고통을 줬습니다.”

“무슨 소리야?”

때렸으면 때렸다고 할 이야기지, 저렇게 풀어서 할 이야긴가?

“아이들을 말리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힘을 써서 통증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게 때린 거야, 임마. 헌영은 차마 욕은 못하겠고, 일단 이야기를 계속 듣기로 했다.

“그리고 반장에게 7반과 먼저 화해한 뒤, 선생님께 보고하도록 조언했습니다.”

“뭐!”

아이들이 줄곧 자기 죄라고 알렸던 중요 죄목의 성립을 야기한 용의자가 자신이라는 고백에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단유는 오늘따라 이와 비슷한 상황에 많이 놓인다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말을 이었다.

“당시에는 당사자가 오해를 푼 뒤에 선생님께 보고해야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만, 저의 조언으로 반장을 비롯한 반 급우들 전체를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한 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선생님은 단유에 대한 신상명세를 떠올렸다.

‘고아, 영재, 초등학교 전교 1등.’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완전히 문제아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왜 니 맘대로 보고를 하니 마니야? 뭐가 중요한 지 구별이 안 돼? 그것도 못할 나이야?”

하지만 단유는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구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싸운 당사자들이 오해를 풀어서 싸움의 빌미를 없애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왜 니가 마음대로 결정하냐고!”

선생님의 일갈에도 단유는 차분히 대답을 이어나갔다.

“제가 마음대로 결정한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합리적이고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합리? 순리? 이게 어디서···.”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냐고 으름장을 놓으려 했는데, 단유의 눈빛을 보자 말을 잇기가 어려워진 헌영이었다. 그 순간 단유의 눈에서 나온 빛은 뭐랄까, 가장 차가운 금속을 벼려 만든 칼날을 햇빛에 비추었을 때 비치는 서늘함? 혹은 뜨거운 열풍이 부는 한 낮의 사막에서 홀로 고요함을 유지하는 오아시스의 차분함?

“선생님께서 걱정하셨던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선생님께 먼저 알려드려야 함이 옳습니다. 이번에도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 즉시 선생님께 알려드렸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저희 누구도 잘못이 없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 대부분 아이들은 싸움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때문에 흥분한 몇몇 아이들 간의 싸움을 말리는 데 다들 전력을 다했습니다. 싸움은 순식간에 일어난 급작스럽고도 우연한 사고였기에 경험이 많지 않은 이상,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란 어려웠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급우들의 노력이 싸움을 곧 끝낼 수 있게 해 주었고, 더 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반장은 선생님께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었고, 제가 말렸습니다. 당시 시간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15분 전이었고, 그 시간이라면 우선 상대 반을 찾아가서 서로의 오해를 푸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장에게 조언했고, 고맙게도 반장은 저의 조언을 따라 7반에 가서 오해를 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곧 수업이 시작되었기에, 5교시가 끝나자마자 선생님께 사태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단유의 브리핑을 들으며 헌영은 자칫 설득될 뻔했다. 찌푸려진 두 눈을 뜨지 못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언급했다.

“왜 오해를 푸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어?”

여전히 격앙된 목소리였지만, 단유는 어쩌면 대화로 자신의 의문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선생님은 모든 사건에 대해 해결에 앞서 선생님께 보고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사건’이라고 칭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나 그 모든 일들을 선생님께 선보고 후조치한다는 건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 일의 성격에 따라서는 선조치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령 어떤 친구가 운동장에서 넘어져서 다쳤을 때, 그 때도 물론 선생님께 급우가 다친 일이 있었음을 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선생님께 보고하기 전에 그 친구를 양호실에 먼저 데려가는 일이 우선일 것입니다. 즉, 사건의 경위나 그 정도에 따라 선조치가 필요한 일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켜보던 지태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번 일의 경우, 선생님께 보고를 먼저 한다면, 과연 각 반 아이들이 화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모든 아이들이 화해를 한 상황은 아닙니다. 대신 반장과 저, 그리고 기훈이가 대표로 찾아가서 저희의 잘못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로부터도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반 전체가 모여서 오늘의 일을 이야기하고 화해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싸움이 일어난 계기가 사소한 오해와 승부욕 때문에 벌어졌던 일이니 그 점만 풀어낸다면 두 반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유가 말을 마쳤을 때, 교실에는 벽에 걸린 시계 초침만이 틱틱 거리며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헌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단유를 바라보며 조금 질린 기분이 들었다. 분명 눈앞의 아이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온, 자기보다 무려 20살 이상 어린 아이인데도 전혀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의 말한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 그것도 심히 문제이긴 한데 그보다는 말하는 동안 아이가 보여준 침착함과 눈빛이 문제였다.

이 나이 또래 중에 어떤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저런 태도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미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수준을 넘어선 단유였다.

“그리고 그 당시 선 조치를 선택한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는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답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되묻는 대신 단유를 응시했다.

“당시, 전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먼저 한다면 과연 두 반의 아이들이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두 반의 학생들을 어떤 방식으로 화해를 시킬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답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저희끼리 화해하는 방법을 먼저 선택하고 선생님께 보고를 드렸지만, 그 방법이 옳은지에 대해 확신은 못하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두 반의 학생들을 화해시키시려고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건방지다. 매우 건방지다. 너무 건방진 녀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게 헌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대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