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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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가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온 헌영은 식곤증 때문인지, 50분간의 수업 때문인지 피로가 잔뜩 몰리는 느낌이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면서 넋을 놓고 있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반장인 지태였다.
“무슨 일이야?”
얼굴을 보니, 아까 점심 때 반 아이들이 7반과 축구 시합을 벌였던 것이 떠올랐다. 선배 교사와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떠나면서 결과를 끝까지 보지 못했었기에 지태의 얼굴을 보니 결과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태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요.”
지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헌영은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시합 중에 충돌이 있었고, 과격한 몸싸움이 있었고, 싸움이 벌어졌지만 말렸고, 화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점심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화해를 했다는 건 무슨 뜻이야?”
지태가 시선을 돌리자, 헌영도 지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마침 7반 담임도 반장의 보고를 받다가 고개를 돌려 헌영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이라도 한 듯, 반장들을 데리고 상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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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채윤의 물음에 지태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일단 수업 다 끝나고 보자시네. 종례 때 말씀하시겠지.”
“누구누구가 싸웠는지도 다 이야기했어?”
“구체적으로는 이야기 못했지. 시간도 부족했고. 선생님도 일단 자세한 내용은 종례 때 듣기로 했으니까, 그 때까지는 별 수 없이 가슴 졸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지.”
지태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교실을 쭉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에 주먹질을 했던 아이들이나 싸움을 말리던 아이들이나 특별히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부은 아이도 있고, 입술이 터진 아이도 있었지만, 심각하게 엉망이 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짝과 함께 수다를 떠는 아이, 매점으로 나들이 가는 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평범한 쉬는 시간 교실의 전경이었다.
“이렇게 보면, 아까 싸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채윤은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난 아까 싸우는 거 말리다가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이거 근육에 문제 생긴 거 아냐?”
“그건 그냥 근육이 놀래서 그런 거야. 별 거 아닐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지태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채윤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단유는 짧게 한숨을 토하며 말을 걸었다.
“근데 왜 내 자리에 와서 이러고 있어?”
지태와 채윤은 서로 짝이었다. 자기 자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미주알고주알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눠도 될 일을 왜 신경 쓰이게 뒤에 서서 이러고 있을까?
“뭐 어때서? 여기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치?”
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너도 당사자야. 너도 이 사태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걸? 가장 적극적으로 싸움판에 들어온 사람은 너라고.”
“표현이 이상하네. 난 말리려고 했던 거지.”
“그게 그거야.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지태는 어물쩍 넘어가려했다.
“넌 선생님이 어떻게 나올 거 같아? 설마 때리진 않겠지?”
“누굴 때려?”
“싸운 애들이나 싸움이 나게 만든 책임으로 반장을 때릴 수 있지 않을까?”
채윤이 지태를 대신해 대답했다.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다고 봐.”
“왜?”
“여기 학교 선생님들은 체벌 금지거든.”
각 주요 도, 시, 광역시 등에서 교육감의 권한으로 체벌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서울특별시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얼차려 받을 수도 있잖아?”
엄밀히 말하면 얼차려도 간접체벌로서 금지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융통성(?) 있게 시행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선생님이 얼차려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거부하기가 힘들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우리가 잘한 것도 아닌데. 반 전체가 싸움에 말려든 거나 마찬가지잖아.”
단체 생활에 있어 의도치 않게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면 선생님이 ‘연대 책임’과 ‘정신 무장’과 같은 이유로 단체 기합을 주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넌 걱정 안 돼?”
지태가 단유에게 물었다. 물론 단유는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을 할 부분이 전혀 없었으니까. 다만 지태의 물음을 통해, 지태가 상당히 겁을 먹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속은 귀신의 집 입구에 선 6살 꼬마 같이 겁을 잔뜩 집어 먹었나보다.
“혹시 억울해?”
“응? 뭐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반장이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게?”
“나 벌 받는 거야?”
“예를 들어서 말이야. 벌을 받는다면 억울하겠냐는 이야기야.”
“억울하지. 억울한데··· 책임도 있으니까.”
단유는 지태의 엉덩이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역시 지태네. 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반장은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물론 다 책임질 수는 없겠지. 그래도 책임지려는 마음과 자세가 중요해. 그만큼 자신이 맡은 직에 대한 무거움을 아는 것이고, 반을 소중히 하려는 마음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긴 한데, 그래도 무서워.”
“너 학교에서 혼나 본 적 없구나?”
지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들한테 귀여움을 독차지 할 정도였지. 공부도 잘해서 칭찬도 많이 받았고.”
채윤이 마치 자기 손으로 뱃살을 잘라내는 돼지를 보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니 입으로 그런 말하면 쑥스럽지 않냐?”
“뭐가? 사실을 말한 건데?”
의외로 지태가 저런 농담도 할 줄 아는구나. 단유가 피식 웃는데 지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농담 아냐. 사실을 말하는 게 왜 창피해? 나 초등학교 때 상도 많이 받고 그랬어. 선생님들이 혼낼 구석이 없다면서 얼마나 칭찬했는데?”
단유는 책을 폈고, 채윤은 자리로 돌아갔다. 마침 종이 울렸기에 지태는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시간 맞춰서 교실의 앞문이 열리면서, 노란 머리에 하얀 얼굴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스타일’의 남성이 들어왔다.
“Hello, Everyone?
영어 과목 전임교사는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놀러온 건지, 취업하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와서 교사가 된 이였다. 어느덧 경력 4년이 된, 풋내기 티는 벗은 교사 ‘헤럴드 와이즈먼(harold Wiseman)’이었다.
“Attention.”
“Bow.”
처음에는 학생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이런 절차가 수업을 집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인사를 받는 데 익숙해진 30대 초반의 영어교사였다.
넉넉한 얼굴과 팔자주름, 붉은 뺨 때문에 특정 연예인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구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의 성을 떠올리면 참 언발란스한 별칭이 아닐 수 없었다.
“Today, Let’s talk about hobby.”
단유로서는 참 곤란한 시간이었다. 사실 지난 3년간, 영어 시간에 말 한 마디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단유였다. 다만, 그동안 남들 모르게 애쓴 탓에 상대가 영어로 말한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자신의 입으로 나오는 언어가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구분이 잘 안갈 때가 있었다. 워낙 말을 하지 않은 탓에 의식적으로 구분하여 말하기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섣불리 입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듣는 걸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단유는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았다. 어쩌면 조만간 저 선생님과도 특별한 1:1 면담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날이 부디 오늘은 아니길 바라면서, 책만 뚫어져라 보았다.
“You, ok. Could you tell me what you did with your family last weekend?”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학생은 일어나서 지난 주말 가족들과 영화관에 갔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좋아하냐는 물음에는 ‘yes’, 영화 내용을 말해주겠냐는 물음에는 ‘hero movie’ 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서, 선생님은 짝과 주말에 했던 취미활동이나 혹은 가족과 함께 보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난 그냥 들어주기만 할게. 이야기 해봐.”
단유는 미리 자신은 말하기를 못한다고 짝인 병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병수는 이미 단유가 ‘영어로 말하기’를 극도로 피한다는 사실을 지난 몇 번의 수업을 통해 체험했기에 이번에도 자신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신기하게도 단유는 말하기는 못하면서 듣기는 잘하는 건지,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잘 들어주었다. 아니, 말하기를 못하는지 잘하는지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종종 자신이 틀리게 말하면 고쳐주기도 했기에.
“I, I like the figure. So I make the figure last weekend.”
“피규어를 만든다고?”
“응, 그러니까 조립 같은 거.”
“그럼, make 대신에 assemble이란 동사를 쓰는 게 좋을 거 같아.”
“I make, 아니 I assemble the figure?”
“과거형으로.”
“I assembled the figure last weekend. 맞아?”
“응.”
아무렇지 않게 표현을 고쳐주는 단유와, 덕분에 모르던 단어도 배우고 익혀가는 병수였다. 평소에도 단유는 수업시간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영어시간에는 특히나 말소리가 작아져서 들릴 듯 말 듯 했다. 그래서 병수는 고개를 숙인 단유에 맞춰 책상에 엎드릴 정도로 몸을 낮추어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두 사람의 자세가 선생님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Hey, there! Two in the back?”
단유가 고개를 들까 말까 고민했다. 분명히 자기를 부르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병수가 어리둥절하는데, 다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뭐하니?」
어느새 선생님은 병수 옆으로 다가오셨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여드는 느낌에 병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은 두 사람의 책상 위를 훑어보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왜 엎드려 있었는지 이야기 해보겠니?」
병수가 우물쭈물하다가 단유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단유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죄를 지은 느낌이 드는 병수였다.
「주말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왜 엎드려 있었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아니요. 아무것도.」
선생님이 보기에도 자세가 불량(?)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긴 했다. 그러다 문든 병수 옆에 앉은 아이가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거기 너.」
단유는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았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름이 뭐지?」
단유는 교실이 조용해졌음을 깨달았다. 이전 같으면 선생님이 어떤 학생을 붙잡고 지적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조용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있었던 일의 여파 때문인지, 단유는 어느새 반 아이들의 주요 관심대상이 된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줄곧 베일에 싸여있던 단유였다. 수업시간에 특별히 두드러진 면을 보인 적이 없었고, 종종 반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건 반장이 두루두루 사람을 챙기는 모습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 때, 단유가 보여준 힘(!)은 평소 가지고 있었던 인상을 깨뜨릴 정도로 엄청났고, 때문에 단유라는 아이의 존재감이 부쩍 커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단유의 비밀스러움이 드러날 계기가 마련되었다. 과연 단유, 저 아이는 어떤 행동 혹은 말을 할 것인가? 아이들의 눈에 별빛보다 더 밝게 반짝이는 호기심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