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09화 (209/956)

어른의 의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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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진정해. 도광종, 너도 그만해!”

지태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를 질러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7반 반장 역시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싸움이 나지 않게 말렸다.

“야, 내가 뭘 했다고 하라 마라냐?”

광종이 이죽대며 지태에게 시비를 걸었다. 지태가 움찔거리는 모습은 주변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지태는 물러나지 않았다.

“니가 뭘 하든 상관없는데, 괜히 애들 자극하는 말은 하지 마라.”

“이 새끼, 졸라 자존심 상하게 하네. 야, 씨발놈아. 내가 싸우라고 했냐, 뭘 했냐? 응? 내가 거기서 주먹질을 했냐, 뭘 했냐고?”

광종이 터벅터벅 스탠드를 걸어 내려와 지태에게 다가갔다. 지태는 벼랑 끝에 선 사람 모양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광종을 바라보기만 했다. 식은땀이 등 뒤로 주룩 흐르는 느낌이었다.

광종의 광역 도발에 반응한 것은 지태뿐이 아니었다. 한참 주먹질을 날리며 싸우다가 분위기가 식으면서 잠시 주변을 살피고 있던 7반의 경태라는 아이는 광종의 비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끼, 졸라 미친놈이네. 새끼야, 뒤에서 아가리만 털고 있으면 다냐?”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에게서 나온 욕에 광종의 눈꼬리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뭐냐 너는?”

“뭐, 씹새끼야.”

“이 새끼 존나 허접스러운 새끼가···. 눈 안 까냐?”

조금 전까지 머리에 쌓였던 열기가 채 빠져나가지 않았던 차에 다시 불이 지펴지자, 보이는 게 없어진 경태였다. 짧은 도약과 함께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광종은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는 대신 함께 주먹을 날렸다. 애초에 피하는 법 따위는 배운 적이 없던 광종이었다.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을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개싸움이 시작되려는데,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선 이가 있었다.

단유는 더 이상 싸움이 커지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광종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일단 가운데 모여든 아이들을 서로 갈라서 거리를 두게끔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광종과 경태가 주먹질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다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유는 두 손을 쫙 뻗어서 갈라진 아이들이 서로 뭉치지 않게끔 제스처를 취했다.

“그만해.”

단유의 제지에 갈라섰던 아이들이 쉽사리 붙진 못했지만, 결국 일부의 아이들은 엉키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40명 가량의 아이들이 엉킨 이 싸움을 말리기란 애초에 어려웠던 것일까.

“야, 그만하라고 하잖아!”

여태 뒤에서 자기 반 아이들을 말리고 있던 명수가 단유 곁으로 다가와서 단유를 도와 아이들을 가르기 시작했다. 명수도 한 힘을 하다 보니 도움이 되었다. 단유가 자기 반 아이들을 두 팔로 밀어 붙이고, 명수가 7반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밀어붙이니 다시 두 집단 사이가 벌어졌다.

“저 봐, 스모 하는 애들 같지 않냐?”

그 모습이 스탠드 위에 있던 아이들에게는 재밌는 구경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 했다. 그 와중에도 핸드폰을 들고 있던 아이의 시선은 광종과 경태의 싸움에 집중되어 있었다.

“둘이 비슷한 거 같네.”

몇 번의 주먹이 오가는데, 워낙 험악해서 주위 아이들이 섣불리 끼어들 틈이 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사이로 끼어든 손이 있었다.

“어?”

어느새 단유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이었다. 단유는 눈앞으로 휘둘러지는 팔들을 용케도 붙잡았다. 각각의 손들을 한 손으로 붙잡으니, 싸우던 두 사람의 주먹이 모두 멈췄다.

“뭐야!”

광종이 잡힌 손을 빼려고 이러 저리 힘을 써 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단유에게 붙잡힌 손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힘이 센 녀석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광종은 발을 먼저 내뻗었다. 경태의 손까지 잡고 있던 터라 허벅지를 걷어차일 수밖에 없었던 단유는, 그럼에도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마침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경태에게서 먼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아! 그만! 아, 안 할게, 그만!”

손이 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유의 손아귀 힘이 강했던 탓에 경태는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광종은 받는 고통 이상으로 악이 있었다.

“새꺄, 안 놔!”

광종은 다시 오른발로 단유를 걷어차려고 내 뻗었다. 하지만 이 때는 단유가 이미 경태를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상태였다. 뻗어오는 광종의 오른발 발목을 다시 낚아챈 단유는 잡은 발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광종이 놀란 눈을 감출 틈도 없이 단유에게로 끌려오는 틈에, 단유는 오른발을 옆으로 밀었다.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잡힌 상황에서 왼발만으로 중심을 잡고 있던 광종은 몸이 돌아가면서 중심을 잃고 결국 땅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다만 넘어질 때도 단유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과 발을 놓지를 않았기에 세게 넘어지진 않았다.

지켜보던 아이들은 기행 같은 단유의 솜씨에 모두 입을 쩍 벌렸다.

“무술인가?”

“유술인가, 뭐 그런 거 아냐?”

단유가 사람을 때리거나 특별한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달려드는 광종의 팔과 다리를 구속하여 중심을 무너뜨려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단유는 광종을 엎어놓고 그 위에서 팔을 비틀어 올려놓았다.

“놔! 새끼야, 안 놔!”

단유는 광종을 누른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어쩐지 웃음이 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광대가 된 거 같네.’

삐져나오려는 실소를 참으며 단유는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지태랑 7반 반장. 애들 진정시키고 물러서. 선생님들 올 수도 있으니까.”

그제야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흥분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더니, 어느새 다른 반 아이들도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몇 번의 주먹질이 있었지만, 다행히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단유나 다른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에 싸움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멈춘 상태였다. 재미난 구경거리를 찾아 온 다른 반 아이들, 혹은 다른 학년 아이들은 단유 밑에 깔려서 꿈틀거리며 온갖 욕지기를 퍼붓고 있는 소년에게 집중하는 상태였지만, 단유가 단단히 제압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들이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시시비비는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지금 서로 흥분해봤자 싸움밖에 안 되니까.”

지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안하자, 7반 반장 역시 제안에 수긍했다. 일단은 싸움이 벌어지도록 놔둬선 안 될 일이었으니까.

결국 전반전만으로 두 반의 시합은 끝이 났고, 아이들은 각 반의 반장의 설득 하에 물러났다. 물러나던 중에 단유를 흘깃 보던 경태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는 나서기가 곤란했던지, 경태는 얌전히 반으로 돌아갔다.

“석고야.”

“나중에 이야기하자. 먼저 들어가.”

명수마저 반으로 돌려보낸 뒤, 그 때까지도 욕지기를 퍼붓던 광종을 풀어주었다. 단유가 힘을 풀고 일어나자, 바닥에서 몸을 굴려 일어난 광종은 눈을 까뒤집고 단유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곁에 와 있던 광종의 패거리 아이들이 광종을 붙잡고 말렸다.

“야, 진정해.”

“광종아, 일단 참아라. 여기서는 위험해.”

그들 역시 선생님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일단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너 씹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정말 흔하디흔한 말이라도 저렇게 악을 담아서, 진정성 있게 말하면 흘려 듣기가 힘들었다.

“그래. 나중에 보자.”

“이, 개새끼가!”

단유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몸을 들썩여보지만, 이미 팔과 어깨를 친구들에게 붙잡힌 광종은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로 돌아갔다.

“괜찮아?”

지태가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단유는 교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무슨 무술 같은 거 배웠어?”

그게 그리도 궁금했었나보다.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배운 적 없음을 실토했다. 실제로 단유는 누군가와 싸우는 법 따위를 배운 적이 없었다. 다만 오랜 운동과 특유의 호흡법을 통해 또래보다 좀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었을 뿐이었고,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이 뛰어나 날아오는 주먹 따위도 쉽게 피할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만약 기술이라도 익혔다면, 다리를 걸어 넘기거나, 혹은 힘을 덜 쓰고 제압하는 방법을 썼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던 단유는 그저 우격다짐으로 힘을 썼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광종을 제압한 것도 사실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님한테 뭐라고 하지?”

“선생님보다 저쪽 반 아이들이랑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지.”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서 사태를 해결하는 법도 있겠지만, 폭력이 끼어든 이상 좋게 해결될 리가 없었다. 그 전에 당사자들이 먼저 이야기를 통해 오해를 풀고 그 사정을 선생님께 보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바로 가서 이야기하면 다시 흥분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어. 너랑 나, 그리고 기훈이까지 해서 셋이 먼저 가보자.”

지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단유의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고맙다.”

“응? 뭐가?”

단유는 뜬금없는 감사인사에 어리둥절했다. 지태는 등과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며 대답했다.

“그래도 니가 도와줘서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건 내가 받을 인사가 아니지. 나 말고도 그 싸움을 말리려고 나섰던 아이들 모두가 들을 이야기지.”

본인 때문에 싸움이 멈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지만, 지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유가 나섬으로서 두 반이 싸움을 멈췄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단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단유가 되도록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도 일이 크게 번지려는 조짐이 없었다면 나서지 않았으리라.

점심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 7반으로 단유와 지태, 기훈이 찾아갔다. 7반 반장과 명수가 아이들을 진정시킨 뒤, 볼이 살짝 부어오른 태수를 데리고 3 대 3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태수는 자신이 과했음을 인정했고, 기훈 역시 자신이 먼저 태수를 때렸음을 시인했다.

“일의 시작이야 어쨌든, 우리 반과 너희 반이 싸운 사실은 분명해. 그리고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선생님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 반 반장이 곧 선생님께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할 거야. 그리고 어쩌면 싸움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기훈이나 혹은 몇몇 아이들이 처벌을 받을지도 몰라.”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단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미 서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화해를 했다는 사실을 선생님들께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 사정을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여길 찾아온 거고.”

아이들은 조용히 단유의 말을 기다렸다.

“즐겁게 시합을 하자는 애초의 기대는 아쉽게 무너졌지만, 이 일로 우리 두 반이 나쁜 마음으로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 여기에도, 그리고 우리 반에도 맞은 아이들이 있어. 어쩌면 당사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대신 사과한다는 건 아냐. 그런 걸로 마음이 풀리진 않을 테니깐. 하지만 이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번 일은 서로가 너무 이기고 싶고, 그 마음이 조금 지나쳤기에 벌어졌던 일이니까.”

단유는 잠시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말을 맺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라는 반성을 해보자는 거야. 그 반성을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수 있을 거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실 내가 반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서 아니 꼽게 생각할 사람도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나 역시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싶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게. 미안.”

몇몇 아이들은 코웃음을 쳤고, 몇몇 아이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단유는 경태에게 다가갔다.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던 경태는 단유가 다가오자 바싹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금방이라도 반격할 준비를 갖추고 단유를 바라보는데, 단유가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하다. 아까는 조금 과격하게 힘을 썼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하지만 싸움을 말리려고 했던 거지, 너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니까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경태와 7반 아이들은 진심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어느 누구도, 단유가 자의적으로 고개를 숙여 사과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단유가 아니라 또래 누구라도 저런 태도로 사과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단유가 보인 힘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단유는 고개를 들고 경태를 바라보았다. 경태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단유는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자주 보자는 말은 못하겠고, 친하게 지내자는 말도 못하겠다. 내가 워낙에 숫기가 없는 놈이라서. 그래도 사과는 받아주길 바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단유의 손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경태였다. 내민 손을 잡으니 단유가 살짝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혹시 보면, 콜라라도 한 잔 살게. 아, 콜라 좋아하나?”

“으, 응. 좋아해.”

“그래.”

1시간 동안, 액션 블록버스터와 청춘 드라마와 시트콤을 동시에 찍은 느낌이라 어리벙벙해진 7반을 뒤로하고 3반의 사절단은 본진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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