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의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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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의 축구부 소속 찬열의 활약이 대단하긴 했다. 단유가 보기에 찬열의 공 컨트롤 능력은 명수 못지않게 뛰어났다. 밥만 먹고 축구만 하던 명수보다 더 잘할 아이가 있을까 생각했었던 자신이 너무 세상을 좁게 보고 있었던 것일까, 반성하게 만들 정도였다.
“찬열이 쟤, 되게 잘하는 것 같은데?”
축구를 잘 모르는 지태가 보기에도 그랬다. 하긴 2, 3명 정도는 간단한 드리블로 제치고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잘한다, 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
“우리 반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저 정도면 되게 잘하는 거 아냐?”
채윤의 물음에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7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7반의 태수도 공을 잡으면, 3반 수비진들이 넋을 놓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막아, 앞에 막아!”
“가라! 골! 골!”
두 사람의 활약이 커질수록 응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찬열의 공이 골대 위를 스치고 지나갈 때, 3반 아이들은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같은 탄식을 뱉으며 그 순간을 아쉬워했다.
전반 15분이 끝나기 전, 태수가 마지막 드리블을 했다. 3반은 무려 8명이 골문 앞에서 수비를 펼쳤고, 2사람을 제치고 들어가던 태수가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할 때 흘린 볼을 용케 주웠다.
“패스!”
중앙선―물론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대충 운동장의 중앙부근이었다―근처에서 기다리던 찬열이 오른손을 흔들었고, 공을 주운 아이가 힘껏 공을 차올렸다. 찬열은 공의 낙하지점을 찾아 열심히 뛰었고, 찬열 외에도 상대편 수비수 두 사람이 찬열을 쫓아 낙하지점으로 달려왔다.
결과적으로 공은 너무 길었고, 마침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상대편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상대편은 볼 컨트롤이 미숙해 낙하하던 공이 상대의 정강이 부분을 맞고 튀면서, 쫓아오던 찬열에게로 넘겨지는 행운이 뒤따랐고,
“우와!”
3반 아이들은 미리 열광의 함성을 질렀다. 찬열 앞에는 3명의 수비수가 지키고 있었지만, 축구부원의 솜씨에는 당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뒤에서 달려오던 이도 만만치 않은 이였으니, 최전방에서 뛰고 있던 태수가 어느새 중앙을 넘어 수비지역으로 건너오고 있었던 것이다.
“막아, 막으라고!”
7반 아이들은 수비수들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 바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사이에 올라온 태수가 찬열을 능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 태수 역시 그 믿음에 보답할 마음이 있었기에, 기를 쓰고 달렸다.
태수와 찬열이 축구부임에도 아직 중학교 1학년. 제대로 축구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일반 학생들보다 뛰어나다지만 그래도 중학교 레벨의 축구 실력이었기에 골문 앞을 지키는 3명 이상의 수비수를 능히 뺏는 드리블 실력을 가지진 못했다. 때문에 15분 동안 열심히 뛰었음에도 점수는 0:0. 그리고 전반 끝나기 전 찬열에게 온 찬스는 이 시합을 통틀어서도 몇 안 되는 기회일거란 생각을 찬열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7반의 태수라는 아이는 후반전에는 뛰지 않아. 명수가 뛸 테니까, 체력을 아낄 필요가 없어. 반면에 찬열이는 후반이 되어도 뛰어야 돼. 그래서 체력에 한계가 있지. 아마 찬열이는 지금이 자기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야.”
단유의 중계 설명을 들으며, 지태를 비롯한 주변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채윤이 기운을 내라는 뜻으로 소리를 질렀다.
“김찬열! 김찬열!”
채윤이 찬열의 이름을 외치자, 덩달아 다른 아이들이 합세하여 찬열을 응원했다. 찬열의 이름을 힘차게 외치는 사이, 찬열은 홀로 수비진을 뚫어나가고 있었다. 비록 왼쪽 사이드에서 달리고 있는 공격수가 있었지만, 몇 분, 아니 몇 초 남지 않았을 이 상황에서 패스 성공률이 30%도 안 되는 같은 편을 의지하느니 홀로 공격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7반도 결사적으로 진로를 막아섰고, 특히 중앙을 맡던 수비가 전력을 다해 찬열의 공격 루트를 막아내면서 시간을 끌었다.
“김태수! 김태수!”
7반의 태수가 달려와 찬열의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뒤에서 달려든 태수의 공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찬열은, 뒤늦게 공을 빼려했지만 태수의 태클이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태수가 다가와 걷어찬 것이 공이 아니라 찬열의 발목이었다는 것이다. 태수가 좀 더 신중했거나, 찬열이 공을 급하게 처리하려 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냥 운이 좋았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태수는 찬열의 공격을 막겠다는 일념하게 빠르게 달렸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만큼 빨라서 수비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 찬열이 늦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설픈 컨트롤로 공을 빼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 두 사람 다 황토 운동장에서 신고 다닐 축구화를 신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불행이었다.
“아!”
찬열은 발목을 부여잡고 넘어졌고, 흘러간 공은 상대편 수비수가 앞으로 걷어냈다. 찬열이 넘어지고 옆에서 달리던 공격수와 중앙의 미드필더―역할을 맡았지만, 사실은 공격도 수비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들이 잠시 찬열에게 시선을 붙잡힌 사이, 날아온 공을 잡은 것은 7반의 어느 공격수였고, 3반의 수비수가 뒤늦게 공을 잡으려 할 때, 7반의 무명(無名)공격수는 오른발을 힘껏 내질러 공을 찼다.
“와!”
공은 골키퍼의 발 안쪽을 잘못 맞고 휘어져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7반은 소리를 질렀고, 3반 응원석 아이들은 분노에 찼다.
“야! 반칙이잖아!”
“와아!”
3반의 항의에도 7반은 골 세레머니에 함께하며 기뻐했다. 그 때, 태수를 향해 달려든 3반 공격수, 기훈이 태수를 힘껏 밀쳤다. 태수는 엉겁결에 밀리면서 땅에 넘어졌다.
“새끼, 졸라 비겁하게 하네.”
가만히 있을 7반 선수들이 아니었다. 어느새 넘어진 태수와 밀친 기훈을 향해 굶주렸던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스탠드의 아이들 몇몇이 몰려들면서 경기장에는 아이들이 대치하게 되었다.
“야! 그만해! 야!”
지태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시비가 붙어 곧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선수들을 붙잡고 말렸다. 하지만 이미 얼굴이 붉어져 냉정을 잃은 몇몇 아이들은 상대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멱살을 잡히는 순간, 또 잡는 순간 모두 이성을 잃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먹이 교환되었다. 제대로 맞는 주먹은 없었고, 서로 빗겨 맞는 주먹에 살갗이 살짝 부어올랐지만 서로의 의사는 확실히 교환되었다.
“씨발놈이.”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욕과 주먹질이 시작되었고, 대부분 아이들은 같은 편을 보호하기 위해, 또 싸움을 말리기 위해 두 사람을 뜯어 말리려고 가운데로 몰렸다. 몰리다 눈이 마주치고, 들불처럼 일어난 감정이 교환되고 마침 팔꿈치가 우연히 턱을 건드렸다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에 아이들은 정신없이 말려들었다.
“졸라 재밌지 않냐?”
처음부터 애들 장난 같은 짓이라 생각하고 어울릴 생각이 없어 멀리 화단 뒤에서 떨어져 있던 광종은 그 장면을 보며 키득거렸다.
“야구장에서 저런 거 있거든? 뭐라더라?”
광종과 같이 있던 아이가 싸움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단어를 떠올리려 했다.
“벤치클리어링?”
“맞다!”
껌을 씹던 아이가 답을 내놓자, 처음 호기심을 드러냈던 아이가 손가락을 퉁기며 입 꼬리를 올렸다.
“야, 그래도 우리 반 애가 맞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연신 껌을 씹으면서 입 안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골몰하던 소년의 발언은 광종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가 반론을 펼쳤다.
“우리까지 저기 가서 끼면 일 커져. 우리 주먹 맞고 애들 쓰러지면 누가 책임 지냐? 우리가 덤터기 쓸지도 몰라.”
그 말도 맞다 싶었던 광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구경이나 하자.”
그 때, 처음 야구장 이야기를 꺼냈던 아이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운동장의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찍을까?”
그러면서 이미 발은 운동장 스탠드를 향하고 있었다. 싸우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겠다 싶어, 광종 패거리는 촬영 감독 놀이를 하는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이 개새끼가!”
“뭐래, 씨발놈이!”
“쳤냐, 이 새끼가! 죽을래!”
이런 싸움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단유는 빨리 아이들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전, 담임선생님에게도 이미 시합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싸움이 벌어진다면 반장인 지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고, 시합에 참여했던 명수에게―축구부란 이유로―혹시 모를 페널티나 처벌이 주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단유는 아이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서로 밀고 밀리는 와중이어서 중심을 잡기가 쉽진 않았지만, 단유가 괜히 그동안 몸을 키우고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유가 힘으로 밀고 지나가자 누구도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밀려났다.
땀과 먼지로 얼굴이 엉망이었던 7반 아이가 주먹을 휘두르려는데, 누군가가 팔목을 붙잡았다.
“응?”
붙잡은 것이 누구 손인지 모르겠지만, 힘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소년은 순간 선생님이 뒤에서 온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다가온 이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 착각할 만큼 큰 키와 억센 힘을 보여주었다.
“그만해.”
단유는 다소 강하게 나갔다.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아아, 그만! 그만!”
흡사 손목이 비틀리는 느낌에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단유는 그 손을 붙잡고 뒤로 천천히 끌었다. 뒤로 끌려 나온 아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니 옆에 있던 아이들이 주춤 물러섰다.
“진정해. 너랑 싸우려는 거 아니니까.”
단유는 아이를 뒤로 보냈다. 아이는 아픈 손목을 붙잡은 채 몰려든 아이들 뒤로 밀려나갔다. 단유는 계속 주먹질을 하는 아이들을 한 명씩 제압해 나갔다. 어떤 아이는 팔목을 붙잡았고, 어떤 아이는 팔꿈치를 붙잡았다. 붙잡히는 아이들 모두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눈물을 꼬리에 매단 채 무리 바깥으로 쫓겨나갔다.
3명 정도가 무리에서 이탈되는 현상에 주변 아이들도 이상을 느꼈다.
“뭐야, 새끼야.”
7반 아이 한 명이 단유에게 달려들었다. 자기 반 아이들이 당한다는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는데, 단유가 고개를 슬쩍 흔들었다. 주먹이 단유의 고개를 헛치고 지나갈 때, 단유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상대의 몸에 가까이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쪽 어깨를 짚으며 동시에 엄지손가락으로 쇄골 아래쪽을 힘껏 눌렀다.
“아아, 아파! 아프다고!”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저앉힌(?) 단유는 상대의 오른팔을 붙잡아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막은 뒤, 일으켜 세웠다.
“뒤로 가 있어. 그만 싸우고.”
그 순간에도 단유는 고저 없이 침착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광기에 물들지 않은 침착한 단유의 시선을 마주한 아이는 머리가 싸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단유가 팔을 놔주었음에도 아이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잠시 단유를 보다 스스로 물러났다.
단유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싸움이 멈춰있었다. 방금 그 아이가 지른 비명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4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제압하며 가운데로 다가온 단유의 행보에 놀란 탓인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나.”
평균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어깨도 쩍 벌어져 다부진 몸매를 한 단유가 가운데 서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 이상 싸울 생각 하지 말고, 한 걸음씩 물러나라고.”
싸우던 아이들도 말리던 아이들의 손에 붙잡혀 싸움은 멎어있었고, 그 틈에 들린 단유의 명령(?)은 잠시 서로의 손을 쉬게 할 명분이 되어 주었다.
단유는 이 싸움을 일단 말리는데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사태를 진정시키고 조용히 마무리하느냐를 고민하진 못했다. 이를 고민할 때, 스탠드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 싸웠냐? 존나 아쉽네.”
모두의 시선이 스탠드로 옮겨졌다.
“어? 들렸나?”
능글능글 웃으면서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던 소년이 먼저 보였고, 그 뒤에서 같은 웃음을 짓고 있던 광종이 보였다.
“새끼가 뭐래?”
“뭐야, 저 씹새끼!”
물러섰던 7반 아이들의 눈에 다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