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의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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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의 먼지가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또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황토 운동장 대신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으로 교체하는 곳이 늘어날 때가 있었다.
붉은 트랙과 푸른색 운동장을 보면 확실히 시각적으로는 깔끔하고 먼지가 덜 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다고 여겼던 학부모들이 많았기에 이 교체 행사는 많은 환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장계중학교는 그러한 시류에 반하여 황토운동장을 고집한 학교였다.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받기도 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금으로 교체하는 학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왜 교체를 하지 않고 버티느냐, 왜 우리 아이들이 먼지구덩이 속에서 콜록거려가며 뛰어다니고 공부해야 하느냐는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야, 그런데 축구부도 뛰면 반칙 아냐?”
“너희 반에도 축구부 있잖아? 뛰라고 해.”
“우리 반에는 1명뿐이지만, 너희 반에는 2명이잖아. 공평하게 한 명씩만 하든가, 아니면 다 빼자.”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먼지가 많이 날렸다. 등을 돌리고 모래 바람을 등져보지만,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바람에 꺾일 의지였다면, 애초에 반 대항 경기 따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각 선수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몸을 풀고 있었다.
“좋아, 우리 반에서는 찬열이 1명만 나가기로 했어. 너희 반은 누구 나올래?”
“잠시만. ···우리 반은 전, 후반 각각 1명씩 나오기로 했어. 전반전에는 태수, 후반전에는 명수. 콜?”
“그래, 그 정도는 우리가 봐줄게.”
두 반장은 악수를 함으로서 선수 명단을 확정했다.
“반칙은 알아서 콜 하기.”
“업사이드는?”
“너무 티나게 하면 반칙. 애매한 건 패스.”
두 사람은 선의의 경쟁을 약속하고 반 아이들에게 합의 사항을 알렸다.
이윽고 두 반의 출전 선수들이 적당히 포지션을 잡았다. 물론 정식 포메이션대로 나뉠 리 없는 구성이었다. 공격에 나설 애들, 수비 전문으로 할 애들, 나머지 애들, 이런 식이었으니까.
“공 차면 시작이다.”
호루라기 따위는 사치였으니까. 공격은 3반이 먼저 하기로 했다. 오른발 아래에 공을 두고 있던 소년이 옆으로 공을 굴렸다. 공을 받은 소년은 달려오는 상대가 다가오기 전에 뒤로 공을 뺐다. 일단 정석(?)대로 공을 돌리다가 틈을 노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던 듯, 공을 받은 아이는 오른쪽 라인을 따라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막아!”
공 하나를 두고 4명의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처음부터 거친 몸싸움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의외다.”
“···뭐가?”
운동장을 바라보던 지태는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너도 축구 좋아할 줄 알았거든. 명수랑 같이 지내니까.”
“명수는 공부 안 좋아하거든?”
단유의 대답에 지태는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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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 뭐해요?”
남교사 휴게실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던 헌영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선생님. 식사 맛있게 드셨습니까?”
현재 2학년 수학과를 담당하고 계시는 이해열 선생님이 종이컵을 들고 휴게실로 들어오고 계셨다. 이 선생님은 헌영보다 8년 먼저 교직에 나선 선배 교사였다.
“그래요. 박 선생은 뭐보고 있었어요? 꽤 열중해서 보고 계시던데?”
“애들 축구하는 거 보고 있었어요. 저희 반 애들이랑 다른 반 애들이 시합을 한다고 해서요.”
“그래요? 박 선생 1학년이잖아요? 1학년 애들이 반끼리 시합 붙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2학년 이상 올라가면 모를까, 1학년 때는 친분이 많지 않은 관계로 반 대항 시합이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실 한 반의 숫자가 줄어드는 요즘은 시합을 벌이는 경우도 적어진데다가, 먼지 가득한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것보단 교실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은 실정이었기에 지금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애들은 잘하고요?”
“그냥 애들 축구가 그렇죠.”
아직 몸이 덜 자란 아이들의 축구 시합이 요란해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몸에 힘이 좀 붙는 시기의 남자 아이들인지라 아기자기한 맛은 떨어져도 열정과 힘은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고, 저 먼지 좀 봐. 오늘 선생님 반 애들 난리 나겠네.”
이 선생님의 걱정에 헌영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3반의 5교시 과목 선생님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조금 고생할 것 같긴 했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을 앉혀놓고 수업하는 게 쉬울 리 없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뛰는 모습을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요.”
예전에는 저렇게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는 첨언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섞였다. 헌영은 선배교사의 말을 적당히 받아주면서도 시선은 창밖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마침 축구부에 들어갔다던 찬열이가 공을 잡고 골대로 향하고 있었다.
‘골! 골! 골!’
헌영의 기대가 한껏 투영된 찬열의 슛은 아쉽게도 골대 위를 스치고 지나가버렸다. 아쉬움이 컸던 것일까, 헌영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방금 공을 찬 아이가 선생님 반이었나 봐요?”
“예. 축구부에서 뛰는 아인데, 공을 꽤 잘 차는 모양이더라고요.”
이 선생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내년부터는 저런 모습도 보기 힘들겠네요?”
“예? 왜요?”
헌영의 물음에 이 선생님은 종이컵을 창가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2학기에 운동장 교체공사를 한다고 하잖아요.”
“아.”
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1학기 시작 전에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시공업체 선정만 남겨둔 장계중학교도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바꾸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버티고 버텼지만, 대세의 흐름이란 게 있어 결국 인조잔디 교체가 결정이 되었다.
“우습죠. 언제는 안 바꾼다고 뭐라 하더니, 이제는 바꾼다고 뭐라 하고.”
이 선생님의 말에 헌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기존에 인조잔디교체에 찬성했던 쪽의 주장은 그랬다. 인조잔디운동장이 황토운동장보다 미관상 좋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에 있어서도 인조잔디가 훨씬 안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관리비용도 훨씬 저렴하기에 학교 재정을 고려해도 인조잔디가 훨씬 좋다는 것. 장점만 있는데 왜 교체를 하지 않느냐, 라는 주장으로 학교 측을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작년 학부모회에서 결정이 나고 지원금과 예산이 집행되기 전인 상황에서 올해의 새 학부모회로부터 반대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조잔디운동장이 안전하다는 조사가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기준치에 한참을 웃도는 납 성분이 검출되는 운동장도 있다고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검증이 덜 된 인조잔디운동장을 왜 설치한다는 겁니까?”
물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부모회 임원으로 발탁된 학부모들은 그 의견에 반대했다.
“소수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사전 조사를 벌여서 하자보수를 요청하면 막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아이들의 일반적인 활동에 보다 안전한 인조잔디운동장 교체에 찬성하는 것입니다.”
지난해까지 아무 말 없던 시민단체에서도 굳이 교무실까지 찾아와서 ‘인조잔디의 위험성’이란 제목이 인쇄된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인조잔디교체를 반대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문제가 없을 때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지 않죠.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경고를 하는 거죠.”
시민단체의 행동을 변호하는 이 선생님의 발언에 헌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말로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위험성만 강조하는 것도 학교 측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거죠. 그리고 만약 시민단체에서 그리 생각했다면 애초에 2, 3년간 이 학교에서 진행되었던 교체 공사 협의건 때 왜 아무 말이 없었냐는 말입니다. 만약 그 때, 학교 측에 서서 학교 측의 주장을 지지해 주었다면, 이런 문제가 나지도 않았을 건데 말이죠. 물론 아무 이해관계가 없던 상황에서 먼저 나서는 게 쉽지는 않더라도, 괜히 심술이 나더라고요. 뒷북이나 치는 것 같아서.”
헌영이 가지는 불만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속담에 나오는 것처럼, 울타리 망가진 뒤에 고치러 들어오겠다는 집주인이면 모를까, 집주인도 아니고 건너 마을 사는 사람이 괜히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울타리 망가질 거라고 오지랖 부리는 행동처럼 느껴졌던 것이리라.
“그럼 박 선생 생각은 어때요? 고치는 게 좋을까요, 고치지 않는 게 좋을까요?”
막상 그렇게 물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헌영은 괜히 턱을 쓸면서 답을 아꼈다. 자신이 딱히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인 것도 아니고, 유능한 사회고발전문 기자도 아닌 이상 두 운동장의 환경 안전성에 관해 전문적인 소견을 가지지도 못했으니까. 그래도 들은 바에 따르면, 그리고 현직 교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에 의한다면,
“고치는 게 그래도 좋지 않을까요? 고양시의 어떤 중학교에서는 인조잔디운동장이 준공된 뒤에 고무 분말이랑 잔디의 안전성 검사를 하고나서 기준에 안 맞으니까 하자보수를 해서 고쳤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고칠 수 있다면 인조잔디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리고 위생적으로도 먼지 나는 운동장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봐요.”
“어떤?”
마침 운동장에서는 어느 편도 주도권을 확실히 잡지 못한 채로 공을 뻥뻥 차올리고 있었다. 어느 한 쪽으로 넘어와도 오래 끌지 못하고 상대진영을 향해 롱패스를 날리는, 소위 뻥축구가 시전 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건강, 중요하죠. 그런데 인조잔디나 우레탄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의심과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침해에 대한 우려는 잠시 접어두고,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저 운동장을 활보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죠.”
건강하지 않은 곳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헌영이 몰래 피어나는 의문을 잠시 붙잡아 둔 사이, 이 선생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요즘 아이들, 너무 운동장에 나오질 않아요. 지금도 아마 대부분 학생들은 교실에서, 혹은 매점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걸요? 인조잔디운동장이 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올까요? 제 생각에는 운동장이 문제가 아니라, 운동장을 뛰어다닐 아이들이 문제에요.”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다. 이 선생님이 처음 운동장을 보면서 ‘정말 오랜만’이라고 표현한 게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한 때 핸드폰 때문에 심각한 토론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던 장계 중학교는 몇 년 전, 학생들의 핸드폰 수거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다시 핸드폰 수거를 하자고 하면,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었죠? 아이들이 놀 곳이 없다, 아이들에게 바르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결국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그런 공간을 제시하는데 실패한 셈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더 이상 공간을 찾지 않아요. 찾아봐야 어른들과 다툼만 벌어지는, 비합법적 공간의 일탈이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3.7인치 액정 속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죠.”
순간 헌영은 눈앞에 선 이 선생님이 사실 수학 담당이 아니라 국어 담당이었던게 아닐까, 고민을 잠시 해 보았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목이 마르네. 커피나 같이 한 잔 할까요?”
이 선생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섰다. 헌영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앞섰다.
“제가 사드릴게요, 선생님.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는데요.”
이 선생님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면서 헌영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때,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야, 그만해.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