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ris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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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욱은 서둘러 매점을 갔다 왔지만, 교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선생님이 들어오신 후였다. 닫혀있던 교실 뒷문을 슬그머니 열었을 때, 교실 안의 모든 시선들이 지욱에게로 향했다.
“너,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거니? 빨리 자리로 돌아가.”
지욱은 귀까지 붉어진 얼굴로 목례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찾아갔다. 킥킥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생각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여긴 너희들이 잘못해도 어리광이라고 봐줄 사람들은 없어. 학교에서 지키라고 만들어진 규칙들은 엄격하게 지킬 줄 알아야 돼. 특히 수업 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딴 짓하는 건 초등학생 애들이나 할 짓이지, 중학생들이 할 행동은 아니라는 걸 명심하도록 해. 알았니?”
단발에 검은색 정장 투피스를 입은 선생님이 교실 전체의 아이들을 향해 경고를 했다. 어차피 첫 날은 수업이 될 리도 없고, 가벼운 오리엔테이션 정도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선생님은 이 참에 중학생으로 올라온 아이들의 정신무장을 시키겠다는 각오를 하셨는지, 그 뒤로도 훈계와 설교를 이어나갔다.
국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중년 여성들의 필수 스킬이라서 그런지 잔소리가 보통이 아니어서, 조근 조근한 교양 넘치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잔뜩 기가 죽는 기분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그랬으면, 자기 주변 정리도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언제까지 엄마 아빠 찾으면서 도움을 구할 수 있겠니? 그렇지? 옛날에 부모님이 방학 숙제 도와주던 기분으로 선생님들이 내주시는 숙제를 부탁하는 사람도 없어야 할 거고, 준비하라는 과제물이든 뭐든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가끔 보면 아침에 씻지도 않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는데, 엄마가 씻겨주지 않으면 못 씻니? 다들 손 있고 발 있는데 왜 자기 스스로 못해서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그래? 만약 오늘까지 그렇게 행동했더라도 이제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의젓하게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해. 알았니?”
대략 수업시간의 반 이상을 정신교육 타임으로 채우신 선생님은 남은 몇 십분 정도를 국어과목의 중요성과 교육방침에 대한 이야기로 할애하셨다.
수업종이 울린 뒤에야 선생님은 시간 엄수하라는 마지막 경고를 남기시고 교실을 떠났다.
“양지욱 이리와.”
지욱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다가가니, 돼지 같은 광종이 입 꼬리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왜 늦었어?”
“아니, 저···.”
“됐고, 빵부터 내놓고 말해, 새꺄.”
지욱은 교복 안쪽에 숨겨뒀던 빵을 꺼내들었다.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안쪽에 숨겨뒀던 빵이 살짝 눌려서 사이의 크림이 삐져나온 상태였다.
“야, 빵 다 터졌잖아. 너나 처먹어, 새끼야.”
광종이 집어던진 빵이 지욱의 얼굴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광종이 던질 때 움찔했던 지욱의 모습이 웃겨보였는지, 광종 주위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쫄았어, 이 새끼.”
“졸라 쫄았네.”
광종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심부름도 제대로 못해가지고 어쩌려고 그래? 아까 쌤이 하던 말 못들었냐? 니가 초딩이야? 시킬 때 제대로 해 새꺄.”
손을 번쩍 들자, 다시 움찔하는 지욱이었다. 아이들이 다시 한 번 피식거리며 웃을 때, 광종이 옆을 둘러보며 물었다.
“야, 니들은 뭐 시킬 거 없어?”
“나도 시켜도 돼?”
“시켜. 가는 김에 하나 더 사들고 오는 건데 뭐가 힘들다고?”
아이들이 이것저것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광종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지욱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욱이 머뭇대자 광종이 으르렁거렸다.
“안가고 뭐해, 새끼야. 빨리 사갖고 와. 또 늦고 싶어?”
벌써 쉬는 시간이 반쯤 흘렀다. 이대로면 아까처럼 수업시간에 늦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욱은 ‘못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야, 쟤 안 갈 모양인데? 니 말 생까는 거 아냐?”
광종의 뒤에서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던 한 아이가 마치 시누이라도 된 양 시비를 걸었다. 그 말에 광종이 화가 난 척을 하며 일어섰다. 지욱의 이마로 검지로 밀자, 지욱이 한 걸음 물러서다 뒤의 책상에 부딪쳤다.
“새끼야, 왜 가만히 있는 사람 치고 지랄이야!”
마침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도 광종의 놀이에 동참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발을 들어 지욱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지욱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몸을 틀었는데, 그 꼴이 우스웠던지 광종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중학교 입학 첫 날 어색하고 낯설어 적응하기 힘들 뻔 했던 아이들이 하나로 뭉쳤다. 원 없이 웃고 즐겼다.
그 때 수업종이 치지 않았으면, 정말 지욱은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눈물을 보였을지도 몰랐다. 수업종이 침과 동시에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남자 선생님 덕분에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로 교실이 어수선해졌고, 그 틈에 지욱도 끼어 제자리로 향했다. 가기 전 ‘나중에 보자’는 광종의 속삭임을 들었지만, 일단은 앞에 선 선생님의 사나운 눈초리가 더 무서웠다.
“수업시간 종이 쳤는데, 자기 자리도 못 찾고 있는 사람들은 뭐야!”
아이들이 제자리에 착석한 뒤, 지태가 ‘차렷’을 외치자 아이들이 일동 침묵 속에 허리를 바르게 폈다. ‘경례’라는 구령과 함께 아이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외쳤지만, 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라고 말했다.
“차렷이라고 했으면, 다들 동작을 멈추고 선생님을 봐야지, 딴 짓하는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1교시와 같은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아이들은 그 뒤로 3번이나 ‘안녕하세요’를 외쳤고, 과학을 맡은 젊은 남자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10분이 지나도록 수업 받을 태도가 되지 않은 놈들이 무슨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겠냐!”
고 일갈하면서, 1교시의 재탕 같은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지욱은 입술을 꼭 깨물면서 이 지옥 같은 시간들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
‘집에 가고 싶다.’
간절히 바라는 지욱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공평하게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니 사실은 점심시간이어야 하지만, 첫날이라서 수업이 4교시까지만 진행이 되었다. 대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일 대청소가 있으니 각자 걸레 하나씩 준비해서 오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욱아, 같이 가자.”
오늘 하루 종일 광종과 지욱이 붙어 있는 모습을 봤던 아이들은 몇몇은 웃고 몇몇은 보지 않은 척 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르게 행동하는 이도 있었다.
“야, 그만 좀 해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던 아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목소리를 향해 돌아갔다.
“너 뭐야?”
광종이 눈가를 좁히며 묻자, 대답은 바로 옆에 있던 아이에게서 나왔다.
“아, 아까 춤 좋아한다던 놈이네.”
그 말에 광종이 피식 웃으면서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하고 한 걸음 다가갔다.
“왜? 너도 재롱 좀 피워볼래?”
여민일은 비록 키는 크지 않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일자로 굳은 입술은 성격이 만만치 않을 거 같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성격이라면 광종도 한 성격 하는지라, 결코 꿀리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민일은 광종이 시비를 걸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첫 날부터 웃기지 말고. 니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데, 조심해라. 눈에 거슬리니까. 애들 괴롭히면서 일진 흉내 낼 생각도 하지 말고.”
광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뒤에 섰던 아이들도 얼굴을 굳혔다.
“너 어느 학교 나왔냐? 이 근방에서 나 모르는 새끼가 있는 줄 몰랐는데? 알면서 이러는 거면 겁대가리 상실한 놈이고.”
이죽거리는 광종의 발언에도 민일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한 걸음 다가서는 민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민일의 행동에 아이들이 경계의 시선을 던질 때, 지나가던 다른 반 아이들도 슬슬 눈치를 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틈에 집으로 도망갈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지욱은 아이들이 만든 벽에 쌓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던 그 때였다.
“죽고 싶냐?”
민일이 먼저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미 변성기가 시작되었던지, 민일의 목소리는 생긴 것과 달리 굵었고, 그런 목소리에 진정성(?)이 들어간 경고가 전달되자, 모여든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흥미진진하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이 재미난 액션활극일 따름이었으니까.
아이들의 짐작대로, 광종은 쉽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주먹을 들고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 등근육이 수축되며 잔뜩 힘을 비축한 주먹이 앞으로 뻗어나가길 기다리는 그 때, 그 순간의 틈에 민일의 스트레이트가 광종의 콧잔등을 때렸다. 놀란 광종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선제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힘을 잃고 주먹은 허공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틈에 다시 또 다른 스트레이트 광종의 광대와 명치를 치고 지나갔다. 얼굴에 와 닿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명치에는 제대로 맞았던지 순간 숨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와아!”
구경하던 아이들 중 몇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은 전염성을 지녔는지 점점 여러 아이들이 흥분에 찬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민일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이미 내지른 이상, 끝을 보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민일은 광종의 배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민일은 싸울 줄 아는 게 분명했다. 처음 광종의 코를 때리는 일격은 가벼운 잽이었다면, 명치를 때리는 스트레이트는 제대로 힘을 실은 공격이었다. 그리고 광종의 움직임이 멈추었음을 보고 확인사살 겸 주먹을 날렸다. 복부를 향해, 몸을 살짝 숙이고, 주먹을 세우며, 크게 스윙을 하는 동작으로 팔을 휘둘러 광종의 갈비뼈 아래 부분, 옆구리를 강타했다.
모래가 가득한 샌드백을 두드리면 저런 소리가 날까, 아이들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광종이 허리를 꺾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주먹으로 광종의 하루 천하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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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일이 떠나고, 당사자가 떠나니 더 이상 붙어 볼 이유가 없어진 아이들이 흩어지고, 그 틈에 지욱이 도망을 가고, 광종과 한 무리가 되려 했던 아이들 몇이 사라지면서 남은 자리에는 어금니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광종과 그와 오래 함께 했던 초등학교 동창 두 사람만이 남았다.
“괜찮아?”
광종은 고통 때문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여는 순간, 비명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았고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비록 기습(!)에 당해 이 꼴이 되고 말았지만, 아직 자존심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두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광종이 눈을 부라리며 교문을 바라보았다.
“죽여 버릴 거다.”
두 친구는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광종을 위로하며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도와줄 테니까, 일단 집에 가자.”
그 세 사람마저 사라진 뒤, 교실에는 반장인 지태를 비롯한 몇 명만이 남았다.
“이상한 놈들 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이게 무슨 꼴이야.”
지태 옆에 있던 소년이 투덜거렸다. 지태는 피식 웃으면서 일어났다.
“우리도 정리하고 가자.”
“반장, 쌤한테 이야기 할 거야?”
지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히 이런 거 고자질했다가 뒤탈나면 어쩌려고. 게다가 진짜 반장도 아니고.”
“너 반장 안 할 거야?”
“몰라. 아직은 결정 안했어.”
책상 줄을 맞춰가는 소년의 손은 쉬지 않았다.
“너 전교회장도 했잖아? 그럼 반장 정도는 해줘야지.”
“무슨 논리냐, 그게.”
“너만한 애가 없다는 소리지.”
소년은 익살 궂은 웃음소리를 내며 지태를 바라보았다. 지태는 씩 웃다가, 칠판을 지우고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넌 어때?”
그러나 칠판을 정리하던 소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자길 부르는 줄도 모르는 건가 싶어서 지태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김단유, 넌 어떠냐고?”
그 소리에 단유가 고개를 돌리고 지태를 바라보았다.
“나?”
지태가 맑은 미소를 띠면서 단유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고급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