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ris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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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박헌영 선생님과는 다른 의미로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지루해서, 할 게 없어서 본다기 보다는 전략적인 의미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인데, 그런 시간동안 함께할 이들이 어떤 얼굴에, 어떤 모습일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은 필수 과정이었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내 주위에 함께 할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다만 박 선생님과 다른 점이라면, 단유는 학생들이 아닌 선생님들을 관찰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앉아 있는 위치상 주변의 아이들을 여유롭게 둘러볼 여유를 부릴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선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일은 꽤 중요한 일이었다.
그간 초등학교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도 느꼈던 일이지만, 결국 교실을 통제하는 것은 학생이 아닌 교사였다. 그 교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쉽게 끝날 일도 학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의 일이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일어났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학업에 전념하고 싶은 단유로서는 선생님들의 성향이나 행동 양식 등을 대충이라도 알아놓는 것이 좋았다.
“···학생의 신분으로 학생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학업에 매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에···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유려하지 못한 환영사를 계속하시는 중에 단유는 한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시선을 돌리려 했는데, 그 선생님이 계속 자신을 쳐다보았다. 혹시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가 싶어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냥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데, 함부로 입을 열 입장이 아니라서―교장선생님이 평교사보다 높은 직위라는 정도는 알고 있는 단유였기에―신호를 주시는 건가 싶어서 계속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뜻을 알기 어려웠다.
반면, 덤덤한 눈빛으로 자신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학생을 바라보던 박 선생님은, 정말 모처럼 골 때리는 놈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없던가, 개념이 없던가, 둘 다 없던가.
교장선생님의 환영사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의 말없는 눈싸움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박수소리와 함께 교장 선생님이 뒤로 물러날 때, 박 선생님도 시선을 거둬들였다.
‘너 끝나고 보자.’
박 선생님은 몸을 돌려 강당 무대 위로 올라갔다. 교감선생님이 주임선생님부터 해서 1학년 담임선생님과 담당 교과목 선생님들을 소개했다.
“다음은 3반 담임이시며 수학과를 맡으신 박헌영 선생님이십니다.”
강당에 박수소리가 차올랐고, 박 선생님은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주변이 어수선해졌지만 여전히 그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그 학생은 무대 위의 선생님들을 죽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 묘한 눈빛이 마치 노예시장에 나선 물주의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몰래 머리를 털어 생각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너무 나갔군.’
다만 그 학생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겼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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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안내받은 뒤, 담임선생님이 교탁 앞으로 나섰다.
“반갑다. 이제부터 1년간 함께 지내게 되었다. 내 이름 기억나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굳은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하얀 분필을 들고 칠판에 큼지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썼다.
“읽을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는 기가 막히게 잘해도 한자는 일부터 십까지도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박자, 헌자, 영자입니다.”
입을 열고 말하려는 찰나,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놀란 눈으로 대답한 이를 찾으려는 때에, 아이들이 먼저 ‘오오’ 하는 탄성과 함께 대답한 주인공을 돌아보았다.
“이름이 뭐지?”
동글동글한 얼굴에 안경을 쓴 아이는 또박또박 이름을 말했다.
“유지태입니다.”
“오, 영화배우!”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릴···리가 없었다. 첫날의 서먹함 때문에 농담이 먹히지 않을 아이들이었다. 굳은 얼굴로 그 아이를 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저런 모습이 일반적이기에 탓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감있게 나선 이에게는 메리트가 주어져야 한다.
“선생님 이름을 기억한 거야, 아니면 한자를 읽은 거야?”
“할아버지가 한자를 가르쳐 줬습니다.”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아이에게 박 선생님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럼 오늘부터 임시반장은 너다. 앞으로 정식으로 반장을 뽑을 때까지 우리 반 반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 알겠지?”
“네.”
다소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지태는 자리에 앉았다. 아니 앉으려 했으나, 선생님의 부름에 엉거주춤 서야만 했다.
“한 사람씩 나와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먼저 지태부터 나와서 소개하고, 그 다음 앞에 앉은 사람부터 한 명씩 하자. 알겠지? 나와.”
지태는 교탁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중계 초등학교를 졸업한 유지태라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대자, 선생님은 취미나 특기 같은 거라도 발표하라고 도움을 줬다. 선생님의 발언은 곧 매뉴얼이었으니, 이후부터 모든 학생들은 매뉴얼에 맞춰 발표할 게 뻔했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있어야 아이들이 가까워지기 편할 테니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기는 서예고, 취미는 독서입니다.”
10명 중 9명의 취미가 독서이리라. 그래도 특기는 남달라서 기억하기 좋겠다.
“안녕하세요, 장계 초등학교를 나온 여민일이라고 합니다.”
특이한 성씨네, 라고 출석부를 보며 선생님이 시선을 돌린 사이, 특기는 춤이고 취미도 춤이라는 민일의 소개가 끝이 났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역시나 ‘아이돌’이란다.
그 뒤로도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 만큼이나 틀에 박힌 자기 소개를 매뉴얼에 맞춰 진행했다. 가끔 선생님이 끼어들어 물으면 한 문장 이내로 짧게 답을 하곤 자리로 서둘러 돌아갔다.
이윽고 제일 뒤에 있던, 그러나 있는 줄도 몰랐던 아이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출석부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던 선생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안녕하세요. 인평 초등학교를 나온 김단유라고 합니다.”
너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단유가 말을 이었다.
“취미는 독서고 특기는 없습니다.”
없는 특기도 만들어 내는 것이 자기소개였다. 그런데 당당하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기가 없어?”
“네.”
“왜 없어?”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던 탓에, 선생님은 이 아이가 다소 반항기가 다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생긴 건 멀쑥하게 생긴 놈인데···. 얼굴값이라도 한다고 바람 든 놈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지만 이른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성에 일찍 눈이 뜨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자기 얼굴 잘난 줄은 알아서 함부로 까불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랬을 거라고 예상되는 아이를 맡아본 적도 있었고.
“특기를 가질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투가 여간 심상치 않았다.
“왜?”
“···책을 좋아해서 책 읽는 것 외에는 한 게 없습니다.”
잠깐의 머뭇거림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높낮이 없는 침착하고 조리 있는 말투와 깊이감이 느껴지는 발성에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말하는 투만 보자면, 결코 가벼운 아이는 아니었다. 선생님은 잠시 자신의 선입견을 접어두고 질문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줄래?”
단유는 잠시 생각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책이라면 다 좋아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은 ‘논어’입니다.”
“논어?”
중학교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이 많이 읽은 책이 ‘논어’라고? 그러나 생각이 조금 이어지자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쉽도록 삽화와 함께 나오는 책들이 얼마나 많던가? 예전에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던가, 그런 책도 있었는데 ‘만화로 보는 논어’나 ‘만화로 보는 사서삼경’ 같은 게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아니 있을 것이다.
“그래, 알았다. 혹시 그거 말고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건 없나?”
단유는 아이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낯선 이들의 시선이 모여듦을 느꼈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경계심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던 찰나였다. 이럴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숱하게 경험했다. 적당히 자신을 숨기는 것. 마치 에르케넨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인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던 동물들처럼.
특이한 인간, 이라는 인상만 심어주지 않는다면 특별히 경계 대상이 될 리가 없었다. 그리되면 또 1년을 편안하게, 자기 일에만 집중하며 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단유는 몰랐다. 이미 자신을 매우 특이한 학생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는 인물‘들’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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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박 선생님. 여기 좀 와 봐요.”
“네.”
주임선생님의 부름에 헌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임선생님에게 뛰어갔다.
“선생님 반에 주의할 학생이 한 명 있어요.”
“저희 반에요?”
하마터면 ‘또요?’라고 말할 뻔했다. 대신 헌영은 입을 다물고 주임선생님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주임 선생님 역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주변을 살피다가 헌영을 자기 옆에 앉히고 말을 이었다.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란 거 박 선생님도 잘 알잖아요?”
잘 안다. 일부러 그러는 거. 소속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인가. 그러나 소속을 떠나 한참 후배인 탓에 헌영은 말을 아꼈다.
“어떤 아인데요?”
그리고 만약 그런 아이가 있으면, 아침에 미리 알려줘도 되지 않나? 굳이 쉬는 시간에 이렇게 불러서 급하게 알리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생각할수록 가슴속에 피어오른 검은 불꽃이 몸집을 불리는 느낌이었다.
“6학년 때,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전과가 있는 아이라네요.”
헌영은 입술을 짓이기다가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폭력, 인가요?”
주임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상습절도라네요.”
헌영은 이마를 짚었다.
“누군데요?”
“이름이··· 아, 지욱이네요. 양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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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욱아! 이리와 봐.”
책상에 엎드려있던 지욱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아이였다.
“왜?”
“오라면 와, 이 새끼야.”
낄낄대면서 지욱을 부른 아이는 책상 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몸만 보면 중3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키는 대략 165㎝에 몸무게는 70㎏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지욱이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왜?”
“여기 매점 가서 빵 좀 사와.”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진 돼지 같은 동창의 발언에 주변에 모여 있던 몇몇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진짜 시키는 거야?”
“인마, 내가 이거 얼마나 해보고 싶었는데. 형들이 다들 하나씩 셔틀 만들고 다닌다고 했단 말야.”
자기 말이 우습기라도 한지 키득대던 돼지가 지욱을 보며 말했다.
“뭐해, 쉬는 시간 끝나기 전에 갖다 와.”
“5분도 안 남았는데···.”
“갖다 오라고.”
돼지가 목소리를 깔고 으르렁거렸다. 지욱은 눈치를 보다가 교실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사실 지욱은 보호처분을 받는 동시에 전학을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교실에 자신이 ‘도둑질하다 잡힌 놈’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6학년 때 전학을 가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흔한 경우는 아니었기에 어떤 학부모가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용케 전학사유를 알아낸 그 학부모가 찌라시 돌리듯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돌렸고, 아이들까지 알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그 때부터, 지욱은 이전 학교에 있을 때보다 더 괴로운 6개월을 보내야 했다. 중학교에 올라오면 달라질까,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자기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광종이 같은 반이 되어서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지욱이 교실 문을 열고 나설 때, 교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지욱은 귀를 막고 싶었다. 그 때 교실 안으로 들어오려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지욱은 습관적으로 사과했다.
“미안.”
“···괜찮아.”
단유가 먼저 길을 틔워 주었다. 그 틈으로 지욱이 뛰어갔다. 단유는 그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음소리 가득한 교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