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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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즈 멤버들은 단유네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잠깐이나마 북적대던 거실에 휑하게 변하니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 정도···.
“누나들, 보고 싶다. 그치?”
명수가 소파에 앉으며 짐짓 어른스러운 말투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니. 조용해서 좋아.”
취향이 명확한 단유는 단호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그래? 난 누나들이랑 같이 이야기하는 거 재밌던데.”
단유는 머리를 흔들었다.
“난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좀 그런 거 같더라. 난 니가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봤잖아. 아까는 깜짝 놀라가지고 내가 계속 입을 이렇게 벌리고 있었는데, 봤어? 하마터면 침 흘릴 뻔 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진짜로 침을 흘리려는 명수의 턱을 붙잡고 올렸다.
“하지 마. 무슨 뜻인지 알겠어.”
“흐흐흡.”
장난기 한 스푼을 눈에 담은 명수가 단유의 손에 제압된 상태로 웃음을 흘렸다.
그 때 배웅을 하고 돌아온 하은이 거실로 들어오자, 명수가 손을 들고 물었다.
“누나, 저희 이제 나가서 놀아도 돼요? 썰매 타러 가도 돼요?”
하은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단유와 명수를 데리고 바로 옆의 썰매장으로 간 하은은 두 사람이 지칠 때까지 눈썰매를 타는 동안, 눈썰매장 근처의 휴식처에서 두 사람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오전 중에 있었던 인터넷 방송 당시의 일들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매니저는 들키지 않으려 했겠지만, 사실 하은 역시 채팅창에 올라온 글 중에서 단유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목격했었다. 고아인 것이 죄는 아니지만, 비아냥이나 까닭모를 지적의 대상이 된다면 분명 상처가 될 일이었다. 다행히도 단유나 명수는 그 내용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은은 그 내용에서 그 동안 몰랐던 현실을 깨닫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이 바로 고아라는 사실. 자신이야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자신을 두고 뭐라 하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저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편견의 시선은 불편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갤럭시즈 멤버들은 표정 변화 없이 유연하게 상황을 넘겼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자신 없어.’
물론 그들이 방송에 있어서는 프로이고―그들이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이긴 하지만, 하은에 비하면 프로인 것은 사실이니까―상황 대처에 발 빠르게 대처하도록 교육받는 아이돌들이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단유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던 순간이었다. 반면 자신이었다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아차릴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처할 말도 생각해내지 못해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방송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트에서, 거리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자신은 과연 의젓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선생님, 혼자 있으니까 심심해서 그러죠? 같이 가요.”
언제 왔는지 명수가 눈썰매를 옆구리에 끼고는 서있었다. 옆에 선 단유도 명수와 같이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재밌어?”
“네!”
“단유는?”
“재밌어요.”
단유가 모처럼 미소를 띠었다. 확실히 단유는 머리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을 싫어하진 않았다. 싫어했다면, 아침마다 운동하러 다니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가끔 단유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늘 부지런하고 자기 맡은 일은 누가 뭐라든지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보면 12살처럼 보이질 않았다.
“그럼 선생님도 같이 타 볼까?”
하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수가 히죽 웃으면서 하은의 팔을 붙들었다.
“너도 잡아!”
명수의 말에 하은과 단유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은이 팔을 내밀자 단유가 그 손을 잡았다. 하은은 단유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
짧은 시간이지만 별 일을 다 겪고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단유는 다시 일상의 루틴대로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고, 명수는 호빵과 놀다가 공원에 공을 차러 갔다.
하은은 거실에 홀로 남은 호빵을 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휴가 잘 다녀왔다고 보고하는 거지.”
―그저께도 전화 해놓구선, 무슨.
주영에게는 둘째 날, 갤럭시즈를 배웅한 뒤에 전화를 했었다. 눈이 많이 왔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하던 주영에게 안부를 전하는 전화였다.
―정말 무슨 일인데.
“사실은···.”
하은은 어렵게 말문을 뗐다.
“나, 이거 그만둬야 할 거 같아.”
―···응? 뭐라고? 잘 안 들렸어.
“들었잖아?”
주영은 자신이 들은 바를 믿을 수 없었기에 끝내 되물었다. 휴가까지 잘 지내고 온 마당에 왜 갑자기 그만둔다는 거지? 하지만 하은과의 통화가 길어지면서 주영은 점점 고개가 숙여졌다. 하은의 고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주영이 알던 하은은 가벼운 친구였다. 진짜 가벼운 것이 아니라 가벼운 척을 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하은은 소위 영재 중의 영재였던 아이였고, 과거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조기 대학 졸업까지 해낸 친구였다. 그러나 타인과 진심으로 교류하는 법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는 친구여서 방황을 하던 차에 주영이 가벼운 마음으로 과외교사직을 권했고, 상대가 아이라는 사실에 마음의 장벽이 낮았던 하은이 수락을 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하은은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던 마음의 장벽과는 다른 벽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그 벽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버거워?”
―응. 내가 함부로 아이들을 가르쳐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래.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래. 너한테도 그렇고.
“···언제까지 피할 순 없잖아? 이번 기회에 마음 다 잡고 이겨내 보는 건 어때?”
잠시 수화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바닥을 긁는 숨소리가 들리더니 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야. 이번에는 이겨보려고.
“응? 무슨 말이야?”
하은은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밝혔다.
―제대로 공부를 하고 준비가 돼야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누가 누굴 챙기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지금 애들 보면서 해도 되잖아?”
―안 돼, 지금은. 내 자신이 어떤 결정도 자신 있게 내릴 수가 없어. 어떤 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는지를 판단할 자신이 없어. 이대로면 아이들한테 폐만 될 거 같아. 난 그러기 싫어.
주영은 하은을 설득할 수 없었다. 하은의 생각은 꽤나 확고했고 고집스러웠다.
“아이들이 만약 널 떠나보내기 싫어하면?”
―···그래도 가야 돼. 아이들을 위해서.
통화 중에 몇 번이나 한숨을 내셨는지 모를 정도로 하은은 고민을 했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을 주영은 무시할 수 없었다.
“재훈 선배랑 이야기해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
―상관없어. 하지만 어쨌든 되도록 빨리 아이들을 잘 돌봐줄 사람을 찾길 바랄게.
한숨이 전염되었는지, 통화를 마친 주영은 이보다 더할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셨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다. 돌아서서 창을 바라보던 재훈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들으셨죠?”
재훈은 투명한 채광창 위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겨울의 태양은 그 빛마저 차갑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는 건 진리지. 그리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각자의 계절을 보내며 성장을 하지. 하은이도 이제야 그 겨울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는 거야. 꽤··· 오랜 겨울을 보내던 친구였으니까, 우린 하은의 결심을 응원해줘야겠지.”
주영은 모처럼 진지한 재훈의 말을 경청했다.
“다른 사람 구할까요?”
“···일단 그렇게 해야겠지.”
창 밖의 메마른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떨어질 낙엽도 없어 걸릴 것도 없는데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애잔하기 그지없었다.
****
“···그래서 선생님이 당분간 떠나야 될 것 같아.”
하은이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이별의 말을 전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단유와 명수가 서로 쳐다보았다.
“사실 선생님이 너희들한테 잘 못해준 거 같아서 말이야. 어쩌면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와서 너희를 봐주는 게 너희들한테 더 큰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단유와 명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너희도 잔소리만 하는 선생님은 싫을 거 아냐? 그치?”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는 하은을 여전히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웃음이 잦아들며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하은에게 명수가 물었다.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어쩌면··· 가끔씩 찾아올 지도 몰라. 그 때 선생님이 명수 너 공부 잘하나 못하나 계속 검사할 거니까, 평소에 열심히 공부해 둬야 해. 알았니?”
명수는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떠난다니까 슬퍼?”
하은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명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명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슬픈 것도 있는데요, 그냥 실감이 안 나서요.”
“왜?”
“모르겠어요.”
단유가 말했다.
“그래서 언제 돌아오실 건데요? 말씀대로라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신 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게··· 공부를 마치면 바로 돌아오긴 할 건데,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네.”
교육학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관건은 사실 마음의 공부였다. 자기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 때 돌아올 수 있을 터. 그런데 문제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기다릴게요.”
“응?”
“공부가 끝나면 돌아오시라고요. 기다려 드릴게요.”
명수가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기다리는 거 잘해요.”
하은은 주먹을 꼭 쥐었다.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금니에 몰래 힘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씩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그럼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빨리 돌아올게.”
“그러세요.”
단유가 담담히 말을 건넸다.
“가끔 와서 스테이크도 많이 사주고 가세요. 알겠죠?”
명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괜히 자기 배를 퉁퉁 두들겨 보이면서. 단유가 소파에서 일어나 하은에게 다가왔다. 하은과 단유의 시선이 가까워지다가, 단유가 하은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두 손으로 등을 감쌌다. 단유의 온기가 하은에게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그렇게 쉽게 안 울어요.”
“나두, 나두.”
명수도 발딱 일어나서는 하은에게 달려들었다. 하은이 두 아이를 감싸 안으며 조용히 되뇌었다.
“고맙다. 고마워.”
눈앞이 흐려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를 물고 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놔두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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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이 시작하기 전, 새로운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과거 보육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는 아주머니 선생님은 포근한 인상으로 두 아이를 반겼다.
아이들의 일상을 시간표로 정하고, 그 시간표에 맞춰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강제로 정한 시간이 아니라, 일주일간의 관찰과 개인 상담을 거친 후의 결정이었기에 두 사람 다 불만은 없었다.
다만, 명수가 불만을 가진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안 돼요?”
“안 돼요.”
TV리모컨 앞에서 선생님은 단호했다.
“왜요?”
“아이들이 볼 만한 내용이 아닌 걸?”
“히잉.”
명수가 투정을 부렸지만, 선생님은 방긋 웃으면서 명수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명수 뒤를 쫓아가는 호빵의 꼬리가 힘차게 흔들렸다.
“호빵아, 이리 와.”
선생님이 부르자, 금세 돌아서서 선생님에게 달려가는 호빵이었다.
“배신자.”
명수가 투덜대보지만, 호빵은 이미 선생님의 손길에 배를 드러내고 누운 상태였다.
“공부 끝나고 놀자. 알았지?”
“예.”
명수가 방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싱긋 웃다가 간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수의 방에 들어가 간식을 주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마찬가지로 단유의 방에도 간식을 전달했다. 그 때, 단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하은이 떠나기 전, 단유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내가 너한테 TV를 보라고 했던 건, 니가 너무 하나에만 빠져 있는 거 같아서 그랬어. 마치 어릴 때 내 모습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난 니가 나처럼 되지 말았으면 해서 TV를 보자고 했던 건데, 아무래도 방법이 잘못 됐던 거 같아. 그치? 역시 너한테는 책이 제일 좋은 선물인 거 같아서 준비했어.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볼 테니까, 다 읽어 놔야 돼. 알겠지?”
단유는 하은의 말에 수긍하며 기꺼이 그녀의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단유에게도 어려운 단어와 내용이었는데, 억지로 참고 읽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거 너무 어렵지 않니?”
선생님은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이제 13살이 되는 아이한테 「논어」는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냥 읽을 만 해요.”
단유는 특이한 감상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신 그런 생각은 잠시 했다.
‘논어랑 TV드라마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은의 의도를 잠시 의심해 보는 단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