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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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 되게 유명하네요. 어쩌면 저희보다 더 유명하겠는데요?”
수영이 목소리를 한 톤 올려 밝게 웃었다. 수영의 의도를 읽은 지수가 역시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갤럭시즈 방송이 아니라 단유군 방송이 되는 건가요?”
“주객전도라고 하죠?”
“오오~!”
두 사람이 쿵짝을 맞추며 분위기를 띄었다. 어차피 수없이 많은 채팅글 중의 하나였다. 읽지 않고 넘어간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다. 티만 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단유와 명수는 채팅창을 보고 있지 않으니까, 자기들끼리 적당히 걸러서 읽고 진행한다면 방송에 문제가 없었다.
“우리보다 유명한 단유군에게 질문하나 해 볼까요?”
“그럴까요? 그럼 단유군? 단유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우리보다 선배니까 단유선배?”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단유는 볼을 긁적이면서 멤버들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알 턱이 있나? 명지가 은근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선배가 보기에 우리 중에 가장 예쁜 사람은 누구?”
나름 짓궂은 질문이지만, 또 어린아이의 대답에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니 무난하다 싶은 질문이었다. 단유가 다시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문든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멤버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방송을 하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핸드폰의 좁은 액정 위로 무수히 많은 채팅창 글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 지금 채팅창에서 단유가 수련이한테 반한 거 아니냐고 그러네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우리 단유 선배는 수련이만 보네요? 수련이가 그렇게 예쁜가? 시선을 못 뗄 정도로?”
수영과 지수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을 했는데 사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편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조마조마했다. 지금 수련이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 시한폭탄 같은 수련이 언제 폭발할까 두려운 마음에 지수는 저도 모르게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단유야, 수련이 그렇게 예뻐? 어떤 점이 예쁜지 이야기해줄래?”
손에 든 핸드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카메라에는 표정이 잘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수련은 채팅창 중간 중간에 ‘단유 보육원 출신’, ‘고아라는데’ 같은 글들이 보일 때마다 눈썹을 팅기며 입술을 깨무는 중이었다.
‘보육원 출신이면 어떻고 고아 출신이면 어떻다고 이런 글을 다른 사람들도 보는 곳에다가 버젓이 올려? 인신공격 아냐?’
수련의 머리에 열이 차오르고 있을 때였다.
“저 누나 얼굴에 흥미로운 점은 있어요.”
“응?”
수련이 고개를 쳐들었다. 단유가 수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단유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유가 말을 계속 이었다.
“일단 눈썹의 좌우 길이가 달라요. 그리고 눈 크기도 좌우가 미세하게 다르고요.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좌우의 균형이 살짝 안 맞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코끝에서 눈까지의 거리가 눈꼬리 사이의 거리와 1:1일 때 비율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보는데, 수련 누나는 코가 조금 길어요. 코가 높은 편이지만, 대신 비율적으로 손해네요. 입술은 가로 세로의 길이 비가 눈과 코 사이의 길이 비와 비슷해야 좋은데, 입술의 세로가 조금 더 길어서 두껍다는 인상을 주죠. 정확히 수치를 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략 1:2.5와 1:3 사이의 비율인 것 같아요. 광대와···.”
단유가 담담한 어조로 수련의 얼굴을 조각조각 해체하듯 분석을 하자, 멤버는 물론 바라보던 사람들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심지어는 채팅창까지 글이 멈출 정도였다.
“얼굴 전체 길이 비는 대략 1:1.2 정도 되는데 대각선 비율까지 고려하면 거의 1:1.1이 되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하다는 인상을 주죠. 아마도 그 때문에 누나가 옆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게 아닌가 싶네요.”
단유가 분석을 마쳤으나,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사자인 수련도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채팅창의 내용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단유의 말을 1도 이해하지 못한 명수만이 단유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무슨 말이야? 그래서 누나가 예쁘다는 거야, 안 예쁘다는 거야?”
“예쁘고 안 예쁘고는 개인의 취향이지. 다만 내 기준에는 불균형적인 비율이 보인다는 거고.”
“불균, 뭐 그런 비율이 보이면 안 예쁜 거야?”
“아니, 그래도 예뻐 보일 수도 있겠지.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니겠어?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다른 것처럼, 좋아하는 얼굴도 다른 거야.”
채팅창에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팩트폭력’이란 말부터 시작해서 ‘성형외과 출동’, ‘사장님이 잡으러 갑니다’, ‘성형외과 예약’, ‘미래 성형의 등장’ 등등 온갖 이야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와, 너 그런 거 어떻게 알아?”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수습한 예영이 단유에게 물었다.
“제가 수학을 좋아하는데요, 어떤 형이 가르쳐줬어요. 여러 가지 숫자로 수식을 만드는 것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수학으로 읽을 수 있다면 재밌지 않겠냐고 하셔서요.”
숫자로 수식을 만드는 것과 얼굴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어떻게 대등한 관계로 묶일 수 있는 것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수는 일단 수학을 좋아한다는 단유의 말에 포커스를 맞췄다.
“단유는 수학을 좋아하는 거야?”
“예.”
“우리학교 1등이에요.”
명수가 또 끼어들었다. 아무렴, 저 정도면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이라 하겠다.
그때 쯤 충격에서 벗어난 수련이 발끈하며 말했다.
“근데 왜 나만 해? 다른 사람도 해줘야지? 나만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잖아? 무슨 불균형이라 그러고 좌우가 안 맞느니 그러고.”
지수가 수련을 달랬다.
“워워, 거기까지! 우리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죠, 여러분?”
채팅창에서는 ‘다른 사람도 해라’, ‘수영이 먼저 해 달라’, ‘예영이 해 달라’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수련이 진심 흥분함’, ‘수련 1패’와 같은 글들도 간간히 섞여 올라왔다.
“이것 봐, 다른 사람들도 하라잖아! 언니 먼저 해!”
수련이 흥분하자, 지수가 여유로운 웃음으로 수련을 달랬다.
“우리 방송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요. 이제 곧 종료할 때가 됐는데 아직 우리 할 이야기 많지 않아요?”
지수는 채팅을 싹 무시하고 진행을 하려했다. 그때 단유가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련누나가 화면에 비쳐질 때 보면 왼쪽 얼굴이 드러나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오른쪽 얼굴이 드러날 때가 좀 더 비율이 좋아 보이는 면이 있어요. 왜냐하면 카메라 렌즈의 왜곡현상 때문인데요···.”
단유의 말이 이어지면서 다시 채팅창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놀란 눈으로 하은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어떻게 저런 걸 아는 거죠?”
하은으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여태 함께 살면서 저런 식으로 여자의 얼굴을 낱낱이 뜯어서 설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문득 자신의 얼굴도 저렇게 분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원래 수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친구긴 해요. 그리고 지금 이야기를 들어봐도, 모두 수학적인 접근법이죠. 비록 단순한 비율론이지만. 문제는 저 비율의 상대적 기준이 필요한 법인데···.”
혹시 나를 기준으로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실제 단유가 기준으로 삼은 것이 신의 은총을 받은 이의 얼굴임을 모르는 하은은 그녀 나름대로 이해한 점을 매니저에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서, 이쪽 눈썹과 저쪽 눈썹 사이의 거리를 기준으로 눈썹 끝에서 코끝까지의 거리를 비율로 재고 있잖아요? 근데 이게 어느 정도의 비율일 때 보기 좋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있어요. 들어보면 흔히들 말하는 황금비율을 두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말이죠. 뭔가 기준이 있으니까 손해라느니, 불균형이라느니 말을 하는 것 일 텐데, 그 기준을 모르겠네요.”
매니저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그 선생에 그 제자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를 저리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까 싶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채팅창에 올라왔던 글을 하은이나 단유는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멤버들도 기민하게 대처해서 단유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했다. 덕분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미안해 할 일이 없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다만 애초 「갤럭시즈의 불편한 휴가」라는 장난스런 제목의 방송이 진짜 ‘불편’해지고 있다는 점은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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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러나 애초에 공지된 시간을 오버할 수는 없었기에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방송을 마무리했다.
“우리 다음에 또 단유 데리고 방송하면 재밌겠다, 그쵸 여러분?”
채팅창에는 2탄을 방송하라는 글이 쇄도했다.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사실 여기 계신 선배님이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될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예영이 단유의 어깨를 폭 안으며 애교를 부리자, 단유가 얼굴을 붉혔다.
“어머, 우리 선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부끄럼 타는 거야?”
명지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단유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지만 단유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지수가 주위를 환기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수영이 마지막 멘트를 남긴 뒤 손을 흔들면서 방송을 마쳤다.
카메라가 꺼진 뒤, 매니저가 다가왔다.
“급마무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어.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아무튼 다들 수고했어. 단유랑 명수도 고생 많았어.”
지수가 손부채질을 하며 끼어들었다.
“오늘처럼 가슴 조마조마한 적이 있었나 몰라요. 그렇죠, 언니?”
수영이 동감한다는 눈빛으로 수련과 단유를 바라보았다.
“수련이 저 기집애는 언제 폭발할까 무서워서 그랬다치고, 단유 너도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니?”
너무 잘해서 하마터면, 성형상담 방송이 될 뻔 했다. 그것도 이제 고작 12살이 된 아이에게 성형상담을 하는 촌극이.
“죄송합니다.”
단유는 고개를 숙였다.
“아냐 아냐, 너무 잘했어. 덕분에 방송 재미있었잖아.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 방송 재밌다고 댓글도 많이 남겼고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수련이 카메라 포지션까지 챙겨줬다고 사람들이 반응이 좋았어.”
“덕분에 컨텐츠 있는 방송이 된 셈이지.”
매니저는 단유의 등을 토닥이며 웃음을 지어주었다. 다른 멤버들도 명수의 단유를 토닥이면서 덕분에 방송 잘 됐다고 고마워했다. 명수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뜬 상태라서 표정이 밝았지만, 단유는 평소의 담담한 표정보다 한층 더 어두워진 기색이었다.
“신경 쓰여?”
하은이 단유 앞에 다가가 물으니 단유가 속을 털어놓았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서요. 사실 수련누나가 표정이 어둡길래 왜 저런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근데 언제부터 했어? 책에서 읽은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배운 거야?”
“아까 말한 그대로예요. 수식 만드는 것처럼 그냥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거요. 예를 들어서 차번호가 8192면 81이 9의 제곱이라는 수식이 안에 들어있는 거잖아요? 그런 수식 찾는 것처럼 해 본 거예요.”
결과적으로 놀이의 일종이란 소리였다. 하긴 단유가 컴퓨터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 딱히 즐길 만한 게 없던 그 때 할 수 있는 놀이라곤 지적유희정도의 놀이 밖에 없었으리라. 하은은 단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고맙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수련이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진심이야. 그리고 나, 니 말에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말고.”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이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아니다. 오늘 정말 잘했어.”
멤버들은 수련이 말을 하다 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련이 말을 가리는 모습을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 주변을 정리한 매니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각자 짐 정리해. 30분 후에 내려갈 거야.”
“나갈 수 있대요?”
“그래. 오후 늦게 눈이 올지 모른다니까, 그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멤버들은 서로 손뼉을 부딪쳐가면서 환호했다. 쉬는 것도 좋지만 역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팬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더 좋았다. 아직까지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갤럭시즈였으니까.
“하은씨, 고마웠어요. 덕분에 푹 쉬다 갑니다.”
“별 말씀을요. 저희도 즐거웠어요. 너희도 그랬지?”
“예!”
명수가 소리를 빽 질렀다. 거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