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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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갠 하늘에서 비쳐진 햇살에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였다.
“우와, 저기 산이 아이스크림 같아. 그치?”
명수가 테라스에 발자국을 남기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리조트 왼편으로 늘어선 왼쪽 산을 가리켰다. 단유는 테라스에서 쪼그리고 앉아 눈을 굴리고 있었다.
“얘들아, 아침 먹으러 가자.”
하은이 하얀색 니트를 입고 나타났다. 명수가 단유가 굴리던 눈뭉치를 가리키며 녹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단유가 걱정 말라며 명수를 안심시키곤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 마침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갤럭시즈 멤버들과 마주쳤다.
“저희랑 함께 내려가요.”
하은의 말에 수영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니저 오빠가 내려오라네요. 같이 가시죠.”
그 때, 수련과 단유의 눈이 마주쳤다. 사실 수련이 꾸준히 단유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지만, 단유는 어지간하면 그 시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꽤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꼬마. 왜 계속 피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니?”
“수련아!”
“나 아무 말도 안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잘 지내면 좋잖아요?”
수련이 짐짓 삐진 척을 하면서 툴툴대자, 멤버들이나 하은이나 모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가자, 밥이나 먹자.”
수련이 손을 내밀었지만 단유는 멀뚱히 서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수련의 눈초리가 살짝 변하려는 찰나, 명수가 쪼르르 달려가 그 손을 잡았다.
“넌 왜?”
수련이 묻자 명수가 해죽 웃으며 답했다.
“아무도 안 잡아주면 민망할 것 같아서요.”
그 말이 더 민망하다, 이 녀석아. 모두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수련이 살짝 볼을 붉혔다가 명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이 녀석아.”
수련은 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객실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 나섰다.
어제 저녁과 달리 로비는 꽤 한산했다. 데스크에 선 직원들은 한가한 듯 보였지만, 얼굴에 잔뜩 피곤함을 묻히고 있었다. 새벽에 청소를 끝낸 모양인지 로비는 깨끗하게 닦여져 어젯밤의 소란은 전혀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로비 한편에 놓여 있던 소파에 매니저가 축 늘어져 있다가 일행을 보고는 벌떡 일어서 반겼다.
“잘 잤어?”
“네. 오빠는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간략하게 묻다가 매니저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스케줄이 3개가 있는데, 오전 스케줄은 일단 취소를 해 놨다.”
“우와!”
예영과 명지가 폴짝 뛰면서 즐거워할 때, 수영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왜요?”
“지금 길을 틔우고는 있다는데, 워낙 넓은 지역에 눈이 많이 쌓인데다가, 어떤 도로에서는 무리하게 길을 나섰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쉽게 길이 안날 것 같다고 그러네.”
매니저가 로비를 가리키며 발언의 출처를 밝혔다.
“오후에는 갈 수 있는 건가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일단 10시까지는 봐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오늘 오후에 다시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거지.”
“정말요?”
역시 매니저가 로비를 가리켰다. 로비를 바라보니, 수화기를 붙잡고 있던 직원 한 명이 뭔가를 열심히 쓰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기상청에서도 지금 난리란다. 어제 폭설도 제대로 예측을 못했는데, 오늘 오후의 날씨도 오락가락인가 보더라고.”
“에휴, 무슨 기상청이 그래?”
지수가 혀를 차며 팔짱을 끼자, 매니저가 손뼉을 치며 다시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일단 밥부터 먹자. 너희가 지금 이럴 걱정 할 때니? 모처럼인데 푹 쉬고 있으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빠, 우리가 스케줄 소화를 못하면 쫄쫄 굶어야 하는데, 마음이 편할 리가 있어요?”
“하루 쉰다고 뭔 일이나 나겠니? 그리고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그냥 휴가 받은 셈 쳐.”
그때까지도 명수의 손을 잡고 있던 수련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오빠가 할 소리는 아니네요.”
하긴 매니저가 초년도 데뷔한 걸그룹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지금 누구보다 더 많이 얼굴을 들이밀고 이름을 알려야 할 시기인데, 이런 시골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야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아, 맞다. 우리 인터넷 방송이나 할까?”
명지가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이 반색을 하며 박수를 쳤다. 요즘 어지간한 아이돌들은 다 한다는 인터넷 방송을 갤럭시즈도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성적은 처참할 정도였지만, 몇 안 되는 팬들과의 소통이 그렇게 반가운 적도 없었다.
“오빠, 저희해도 되요?”
매니저는 궁리를 해보았다. 즉흥적인 제안이지만, 나쁠 건 없다.
“알았어, 일단 준비해볼게. 너희들은 식사부터 하고 와. 그리고 방으로 미래 올려보낼게.”
수련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미래 왔어요? 현철 오빠도요?”
수련이 코디네이터와 로드매니저의 안부를 묻자, 빨리도 묻는다며 타박하며 식당으로 몰았다. 매니저는 하은을 뒤에서 붙잡고는 양해를 구했다.
“들은 바대로 사정이 이러니 좀 더 양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결국 방을 구하지 못해, 매니저는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하은이 그냥 다 같이 올라오지 않겠느냐고 묻자, 매니저가 격렬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하면 저희가 너무 실례죠. 저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혹시 저희 애들이 실례를 끼친다면 바로 말씀 주십쇼. 제가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다들 너무 좋으신 분들이시던데요.”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던 갤럭시즈 멤버들을 칭찬한 하은은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매니저는 곧바로 스태프들을 찾아갔다. 방송준비를 하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
“우와, 여기 누나 얼굴 나와요!”
“쉿! 지금은 조용히 지켜봐.”
갤럭시즈 멤버들이 소파에 앉아서 방송을 하고 있을 때, 명수와 단유는 멀찍이 주방 식탁에 앉아서 그들을 구경했다. 사실 단유는 방으로 들어가서 책이나 읽고 싶었지만, 명수가 꼭 붙들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강제로 촬영현장을 관람하게 되었다.
명수는 핸드폰과 거실 소파 위의 멤버들을 번갈아 보면서 신기해했다. 옆에 섰던 매니저가 슬쩍 보더니 하트를 누르라고 넌지시 주문을 넣었다.
그 시간, 갤럭시즈는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근황을 소개하고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가지고 발이 묶였어요.”
“여기 댓글 보니까, 눈 많이 온 곳이 많나 봐요. 동네에 눈이 많이 내려서 거기서 썰매 탔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와, 진짜요? 우리도 썰매 타고 싶다.”
각 멤버들이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련은 살짝 살짝 미소를 지을 뿐 특별히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가끔 ‘우와’ 나 ‘그렇죠?’ 같은 리액션만 간간히 조미료처럼 연출하면서 방송에 임했다.
“···그래서 방을 못 구해가지고 있는데요,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이렇게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한 번 인사드릴까요?”
“그럴까? 하나 둘 셋, 하은 언니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저희 말고 다른 분도 계신대요, 한 번 소개해 드릴까요?”
“그럴까? 여기 정말 귀여운 남자가 같이 있거든요? 부럽죠?”
“우리 어제 같이 앉아서 TV도 같이 봤어요. 나란히 앉아서.”
그리고 자기들끼리 까르르 거리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매니저가 슬쩍 눈치를 보다가 하은에게 물었다.
“애들 방송에 나와도 상관없죠?”
“뭐, 상관은 없겠죠? 그래도 애들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명수가 냉큼 대답했다.
“저 나가고 싶어요!”
명수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손을 번쩍 든 명수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명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명수가 핸드폰을 들고 조르르 달려가 명지가 벌려준 틈으로 쏙 파고 들어 자리를 잡았다. 지수가 카메라를 향해 명수를 소개하며 인사를 권했다.
“안녕하세요. 인평초등학교 5학년 인명수라고 합니다.”
씩씩하고 발랄하게 대답하는 명수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던지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턱을 괴고는 그 모습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넌 나가고 싶지 않아?”
라는 매니저의 물음에
“괜찮아요.”
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단유였다. 굳이 카메라 앞에 서서 할 말도 없었고 딱히 신이 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기 가운데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보다는 여기서 저 모습을 구경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손짓을 해도 오지 않자, 수련이 벌떡 일어나 단유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싫어?”
대놓고 물으면 단유로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예.”
수련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하은을 바라보았다. 하은 역시 어깨를 으쓱였다. 수련이 무릎을 꿇고 단유와 시선을 마주쳤다.
“도와줄래? 사실 지금 명수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꽤 좋아한단 말이야. 너도 나오면 아마 우리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다. 그러니까 좀 도와줘.”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련을 따라갔다. 매니저가 대신 하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가 뭘요. 애들이 결정한 건데. 그래도 뜻밖이네요. 단유가 저기 갈 줄은 몰랐는데.”
****
단유의 얼굴이 카메라 앵글에 걸리자 채팅창에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우와, 여기 봐. 단유 인기 좋은가봐?”
지수와 명지가 채팅창 반응을 살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너보고 잘생겼단다. 여러분, 사실 화면보다 실물이 더 좋아요.”
“우와, 하트 수 올라가는 거 봐? 질투난다, 너.”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카메라를 담담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 자연스러움에 은근히 감탄한 매니저가 슬쩍 물었다.
“카메라가 꽤 익숙한 모양인데요?”
“글쎄요, 아! 예전에 모델을 했다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모델이요?”
하은이 피식 웃으면서 시립도서관의 홍보포스터에 잠시 섰던 일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하은 본인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포스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호기심이 생긴 매니저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단유의 이름으로 몇 개의 블로그 사진이 있음을 알았다.
“TV출연한 적이 있네요?”
매니저가 놀라면서 연신 손가락을 움직여댔다. 그러는 사이, 채팅창에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너, 말 좀 해보래.”
단유는 수련을 힐끔 보았다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12살, 김단유라고 합니다.”
“여러분, 되게 잘생겼죠? 근데요, 보기랑 다르게 말수도 적고요, 되게 점잖아서요. 우리 매니저 오빠보다 더 점잖아요.”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리액션을 취할 때, 지수가 채팅창에서 어떤 글을 읽었다.
“어? 단유가 TV에 나온 적 있지 않냐고 그러는데요?”
“너 TV에 나온 적 있어?”
그 질문에 단유 대신 명수가 대답했다.
“얘, 옛날에 TV나온 적 있어요.”
“진짜? 언제? 왜?”
이야기의 주제가 갑자기 단유로 바뀌었다. 단유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유는 그 당시 자신이 저지른 짓이 떠올라서였다. 마법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해당 촬영분은 통편집이 되었고, 작가 누나가 꽤 어두운 얼굴을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무엇보다, 조심성 없었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남아서 그 때 일은 별로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어? 너 영재TV에 나온 적 있어?”
누군가의 제보로 단유가 나온 방송이 소개되었다.
“너 도서관 모델도 했다고 그러는데?”
단유가 무언가 수긍하거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제보가 이어졌다.
“너 실검에도 오른 적 있다는데?”
단유는 그냥 여기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단유가 입을 다문 사이에 신이 난 사람은 명수였다.
“전부 다 사실이에요. 그래가지고 단유가 우리 학교에서 되게 유명했었어요.”
단유에 대한 제보를 읽는 재미가 남달라서 모두들 방송은 제쳐두고 채팅창만 바라보는 일이 벌어졌을 때, 모두의 낯빛이 변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단유 보육원출신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