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92화 (192/956)

My Way(7)

-------------- 192/952 --------------

방에 불이 꺼지고 단유는 한숨을 내셨다. 아이를 살리긴 했나보다. 사실 끝까지 확인을 하진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다만 멀찍이서 응급실 안을 살피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래서 의사가 지온을 발견하는 순간, 단유는 곧장 리조트로 돌아왔다.

사실 이 방에 붙은 베란다 이야기는 반쯤은 사실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외부로 나갈 때도 베란다를 통해 주변을 살핀 뒤 나갔었고, 들어올 때도 베란다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까 수련이 자신을 찾았다는 이야기에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하나 하고 엄청나게 머리를 굴렸다. 이런 거짓말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했었다. 특히 수련이 방방 뛰는 동안 한 점 동요 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하은의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그러나 수련이 거실 테라스를 이야기하는 순간, 길이 보였다. 임기응변식으로 대답한 것이 다행히 통했는지 사태는 잘 마무리 된 것 같았다.

결국 단유는 자신이 원한대로, 의지한 대로 아이를 구해냈고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왔다. 자신은 그 아이를 도울 힘이 있었고, 그 힘을 잘 이용해서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다.

“하아.”

그럼에도 한숨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는, 역시 하은의 눈빛 때문이었다.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는 순간, 어쩌면 하은은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 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다른 사람을 구한 대신, 자신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당당하게 행동했다면 이렇게 가슴 답답할 리가 없었으니까.

침대 위에서 뒤척이던 단유는 명수가 들어와 코를 골며 잠이 들 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간, 하은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짓말이야.”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이여서 그런지, 자신은 아까 단유가 침착함을 잃고 당황해하던 것을 보았다.

“어떻게 나갔을까?”

그 질문을 떠올리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재수 좋게도 거실에 앉은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어올 때는 또 다르지 않는가? 어떻게 들어올 때, 나갈 때 모두를 눈치 채지 못하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걸 고민해봐야 답이 없었다. 물어봐야 답을 할 리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다. 지금 당장 의미가 있는 것은 단유가 건너 방에서 무사히, 그리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은은 믿지도 않는 신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부디 단유에게 떳떳하고 당당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디 단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래서 부디 단유와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 날, 하은은 자기 안에 생긴 감정이 ‘모성애’라는 것을 자각했다.

****

수련이 거실로 나오자, 소파 위의 사람들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너 뭐 했어?”

수영이 수련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아무것도 안했거든?”

수련은 투덜대며 예영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 거실에는 TV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만 먹먹히 울려 퍼졌다. 미녀들 사이에 앉아 있던 명수가 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졸려. 저 먼저 자러갈게요.”

누가 봐도 어색한 발연기였지만, 멤버들은 명수를 막지 않았다. 예영이 명수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잘 자라고 인사를 해 주었다. 명수가 방으로 들어간 뒤, 소파 위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야, 하수련.”

지수가 목소리를 깔고 수련을 불렀다. 평소에도 군기반장 역할을 하던 지수였던 탓에 지수 아래로는 모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련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한 탓에 지수의 부름에도 긴장 없이 대답했다.

“왜요?”

지수의 눈에 빛이 서렸다.

“너 분위기 파악 못하지? 지금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그제야 싸늘한 분위기의 지수를 확인한 수련은 허리를 바로 펴고 손을 앞으로 모았다.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곧 죽어도 하려는 것 모르는 건 아니야. 이야기 했었지? 근데 너 지금 혼자야? 넌 갤럭시즈 아냐? 니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했었잖아? 니 행동 하나하나가 갤럭시즈의 얼굴이 되고 이미지가 된다고 이야기 했었지? 그런데 왜 그래?”

지수의 말이 길어질수록 다른 멤버들의 자세도 경건해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가장 맏인 수영까지도 몸을 편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경직되고 있었다. 수련은 무릎 위에 올려진 손가락 하나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랬지? 차라리 할 말 있으면 우리 있을 때만 하라고. 왜 팬들한테까지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하고 그래?”

수련은 눈동자가 점차 붉어졌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아보던 수련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지수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조심하자. 알았지?”

“네.”

겨우 지수의 말이 끝나고 다른 멤버들은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시간. 수영이 마무리를 했다.

“자자.”

수련이 하은과 나갔던 틈에 정하기라도 했는지, 어느새 거실 한 편에 준비되어 있던 이불들을 들고와 거실에 깔고 잘 준비를 했다. 수련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지수가 수련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딱딱한 데서 못자잖아. 여기서 자라.”

지수가 소파 위를 가리켰다. 수련이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언니.”

지수는 말없이 베개를 집어 들어 소파 위에 올려준 뒤, 동생들이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불 끌게요.”

예영이 거실 불을 끄자, 어둠과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련이 몸을 조금 움직이자, 가죽 소파에서 뿌드득 거리며 작은 소음이 났다. 수련은 뒤척임을 멈추고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어쩐지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리를 양보했을 언니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 불편한 자세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들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낮은 콧소리가 들렸지만, 깊이 잠든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수련은 그 시간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신이 단유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던 건지 기억이 났다.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지만, 지수의 서릿발 같은 기세에 눌려서 꼼짝도 못했다.

‘난 그저 오해를 풀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곧 죽어도 해야’ 하냐는 지수의 말처럼 수련은 반드시 해야 속이 풀렸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미칠 것 같았다.

사실 과거에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데뷔를 앞둔 시기, 간간히 연습생 신분으로 인터넷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비추면서 곧 데뷔할 갤럭시즈를 홍보하는 데 앞장섰었다.

그리고 그 때 자신과 갤럭시즈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을 댓글을 통해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팬들을 통해 인기를 확인받으려 하는 것은 본능이자 의무였다. 그래서 동영상이 올라온 사이트의 댓글부터 관련 게시글에 올라온 댓글까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즐거워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수련을 잘 안다며 올린 댓글이 눈에 띄었다. 그 글은 수련의 더러운 사생활과 과거라는 주제로 글을 올려 모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비슷한 글들이 여러 사이트에 걸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건 거짓말이야!’

처음엔 그 글에 답글을 달고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모함과 비아냥거리는 글에 상처를 받았고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든 생각은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련은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이것을 읽고 사실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오히려 변명이네, 합리화네, 하면서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모함하는 글들에 더욱 신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기에 이르렀고, 최초 유포자를 잡는데 이르렀다. 회사에서는 말렸지만, 수련은 그 사람을 꼭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사과를 들을 생각인가 싶었더니, 경찰서에서 그 사람을 만난 수련은 폭풍 같은 말을 쏟아내면서 자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야, 그만해. 저 사람, 자기가 다 지어낸 말이라고 이미 진술했어.”

그러나 수련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 당시, 그 과거에 자신이 뭘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여자 앞에서 결백을 주장했다.

“죄송해요.”

이야기 끝에 여자가 너무 부러워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수련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부러워서 그랬다면, 스스로 노력을 해서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려야지, 왜 다른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려서 자신의 위치에 맞추려는 거죠? 그런 자격지심이 당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거 아닌가요?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는 저도 몰라요. 회사에서 결정할 테니깐요. 하지만 어떤 결과든 이번 일을 반성하고 안하고를 떠나 그 생각부터 바꿔요. 당신이 바뀌어야 세상이 변하는 거예요.”

수련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순간 수련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던 통렬한 쾌감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답답하게 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과 엉켜있던 실타래를 깨끗하게 풀어낸 것 같은 성취감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수련은 속에 있는 말은 참지 않고 뱉어내게 되었다.

오해받지 않고 살고 싶었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면서 살고 싶었고, 상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말이 속에 쌓이면 몸이 무겁고,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다 털어내려고요. 몸도 마음도 가볍게.”

수련의 직설과 독설에 시달리던 회사 사람들이 걱정이 올라가던 그 때, 대표와의 면담에서 수련이 한 말이었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사에서는 니 맘대로 해라. 그것까지는 봐줄게. 하지만 밖에서는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수련은 종종 방송국이나 거리를 가리지 않고 직설을 하기 시작했고, 매니저와 멤버들이 그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사실 단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별 거 아니었다.

“우리, 갤럭시즈가 얼마나 멋진 팀인지 알아? 다들 얼마나 오래 연습하고 고생해서 만들어진 팀인지 알아? 니가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팀이 아니라고. 좋아하지 않을망정,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 절대 내가 용납할 수 없어.”

****

지수가 상체를 일으켜 소파 위에서 뒤척이는 수련을 보았다. 아마도 방금 수련이 한 말은 잠꼬대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수련의 진심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가슴이 찡하게 아린 느낌이었다.

옆에서 자는 동생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난 지수가 소파로 다가갔다. 떨어진 이불을 들어 수련 위로 덮어주었다. 수련이 몸을 뒤척이자 소파가 거친 비명을 질렀다.

“쟤 아까는 저 소리날까봐 움직이지도 않더라.”

지수가 뒤를 돌아보자 수영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더 자요.”

“됐어. 차에서도 많이 잤잖아.”

수영이 일어나 다가왔다.

“맥주 한 잔 할래?”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치 않았던 기상 덕분에 뜻하지 않게 받은 휴가를 나름 알차게 보내는 두 사람이었다.

창밖으로 여전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약해진 눈보라가 창문을 간지럽히듯 살짝 닿았다 떨어져내렸다. 달빛인지 건물 외벽에 붙은 조명인지 덕분에 테라스 펜스 위에 쌓인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일 스케줄 많겠죠?”

“응.”

“내일은 여기서 나가야겠죠?”

“응.”

“내일부터 또 힘든 하루가 시작되겠네요.”

“응.”

그 뒤로 두 사람은 말없이 맥주를 홀짝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표정이 어둡진 않았다. 마치 두 사람이 바라보는 테라스 전경처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