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6)
-------------- 191/952 --------------
“거기 혹시 박지온이라는 아이의 부모님이 투숙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리조트로 걸려온 전화에 난리가 났다. 도대체 이제 갓 7살이 된 꼬마 아이가 어떻게 몇 십 ㎞나 떨어진 병원에 있을 수 있는지부터 해서, 이 날씨에 부모들은 어떻게 그 병원을 찾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까지 겹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리조트였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찾았다는 기쁨과 무사하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도, 응급실에서 응급 구조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돼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는 부모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완전히 통제돼서 가실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애는 거길 어떻게 갔다는 거예요?”
그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후의 이야기지만, 응급실 입구에 설치된 CCTV 어디에도 아이가 들어오는 장면은 없었다. 응급실 진료안내와 내원객관리를 위한 CCTV도 있었지만, 데스크 주변을 비출 뿐인지라 아이가 누워있던 침상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즉, 병원 어디에도 아이가 들어온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또 한 가지의 미스터리는 바로 아이의 신분을 증명하던 종이 쪽지였는데, 이 역시 CCTV에서 확인이 불가능했다. 확인가능 했던 한 가지는 간호사가 의사에게 녹차 티백이 담긴 종이컵을 건네기 직전까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걸 찾았을 때, CCTV를 보던 관계자들이 모두 팔에 돋아난 소름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는 후문이었다.
아이는 꽤 심각한 저체온 증상을 보였고, 이마에도 크게 찢어진 열상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너무 늦지 않게 치료를 받은 탓에 위험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경찰이 조사를 맡게 되었는데, 일단 해당 리조트에서 병원까지 떨어진 거리가 수십 ㎞라는 사실과 아이가 열상을 입은 채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유괴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었다.
아이가 실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이미 주변도로가 폭설로 통제가 되어서 차가 다닐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실제 주변 CCTV를 탐문해 보아도 도로 위에는 어떤 차도 지나지 않았다.
“저기, 그런데 반장님.”
“응?”
수사를 맡은 형사가 3일간 감지 않은 머리를 긁으며 나타났다.
“이상한 게 있는데요.”
“뭐?”
형사는 말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들키기 싫은 성적표를 내어놓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리조트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에 놓인 CCTV 중의 하나에 찍힌 영상인데요.”
형사가 태블릿으로 재생시킨 영상에는 희미한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흩어지는 함박눈에 가려져 길 위가 뿌옇게 보이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빛이 비추는 영역 가장자리에 생겨난 것이라 음영도 불확실하고, 형체도 불분명했지만 뭔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긴 했다. 그리고 나타난 형체가 무언가를 업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업힌 형체가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단정하기 힘들었다.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았고, 또 가장자리라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반장이 몇 번 들여다보다가, 가슴께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는 형사를 쳐다보았다.
“이걸 어쩌라고?”
“예?”
“정확히 어떤 형상인지 특정도 할 수 없는 그림자를 그저 니가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로 조사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리고 이게 지금 걸어왔냐, 뛰어왔냐? 아니면 어디서 날아왔냐? 응? 너 지금 나한테 초능력자가 나타났습니다, 라고 보고라도 할 참인거야? 응? 그런 거야?”
“아니, 그러니까, 제가 이상하다고···.”
“왜? 영화 찍게? 나랑 영화 함 찍을까? 니가 주인공하고 내가 조연하고, 여기 이 그림자가 악당 하고. 딱이네? 그림 좋네? 응?”
반장의 비아냥거림이 길어질수록 형사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헛짓하지 말고, 일이나 해, 새꺄.”
형사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들이 킥킥거리는데도 가타부타 할 말이 없었다. 자기도 말을 꺼내고 보니 너무 쪽팔렸던 것이다. 역시 사람이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 형사였다.
****
아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현관이 시끄러워질 무렵, 세 사람이 현관으로 돌아왔다. 수련이 발견한 흔적을 알려주려다, 로비를 메운 소란에 걸음을 멈췄다.
“찾았다고?”
매니저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둘러보다, 로비에 있던 후배에게 물었다.
“네, 찾았대요. 그런데 지금 병원에 있대요.”
“병원?”
후배는 자신도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어깨 너머로 들은 것을 전해주었다. 매니저와 하은, 수련은 눈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서로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당황스러움을 진정시킬 만한 답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러다가 하은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수련이 뒤따라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는 그냥 여기 계세요.”
매니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두 사람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봐야 했다.
“실장님, 씻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굳이 후배가 지적하지 않아도, 지금 온 몸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멀찍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만 봐도 당장 씻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쩐지 내팽개쳐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찝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단유야!”
문을 열고 객실로 들어선 하은이 소리치지,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하은에게로 쏠렸다.
“무슨 일이에요?”
명수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단유는?”
하은의 물음에, 왜 단유를 찾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명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방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때, 잠옷 차림의 단유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하은을 바라보았다.
“왜요?”
“너!”
하은이 소리를 버럭 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너 아까 어디 있었어?”
“아까라뇨?”
“아까, 그러니까··· 30분 전에 어딨었어?”
단유가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그 큰 눈을 끔뻑끔뻑 거리다가 대답했다.
“방에요.”
“너 없었잖아? 내가 아까 다 봤는데!”
뒤따라온 수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파에 앉아있던 갤럭시즈 멤버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수영은 지금이라도 수련에게 달려가 자제시켜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예영은 언니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 수련을 붙잡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방에 있었는데?”
“와, 쟤 뻔뻔한 거 봐?”
“아, 혹시 아까 테라스에 있을 때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아까 저기 테라스 확인 다 했거든?”
수련이 손가락으로 거실 쪽 테라스를 가리키자, 단유가 방 안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방에도 테라스 있어요.”
“어? 진짜?”
커튼이 쳐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저 방에는 조그만 테라스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본래는 작은 협탁 하나와 의자 두 개만 놓일 공간 정도의 테라스지만, 겨울철이라 잘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꺼운 커튼으로 입구를 가려놓아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창문 정도로 착각할 법도 했다.
수련은 얼굴이 붉어졌다.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가 사라졌다는 마음에 당황하여 건성으로 수색했던 것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옆에 선 하은을 바라보았다. 마침 하은도 수련을 바라보는데, 수련은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에 제대로 항변도 못했다.
“아니, 저기···.”
하은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련의 말을 잘랐다.
“괜찮아요. 수련씨도 놀라서 그런 거겠죠. 그러니까 아까도 열심히 움직이셨던 거겠죠.”
그리고 단유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너 계속 거기 있었던 거니? 어디 나가지 않고?”
그 말에 단유가 명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고 어디 안 갔었는데요? 계속 저 방에 있었는데?”
갤럭시즈의 멤버들도 머뭇대다가 명수의 말에 동의했다.
“저희도 계속 여기 있었거든요. 그래서 옆에 사람이 지나갔으면 알았을거에요.”
사실 저게 맞는 말일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흔드는 이야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했던 것이리라. 자신이라도 나가기 전에 저 방에 들어가서 확인을 했더라면 이 고생을 안했을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야. 우린 니가 밖에 나간 줄 알고 걱정을 했었거든.”
“그러셨군요.”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 된 줄로 알았다. 방으로 들어간 단유의 뒤로 수련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냐, 괜찮아. 잠깐 이야기만 할 거야.”
방으로 들어오기 전, 수련이 멤버에게 제지를 받는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수련은 이를 뿌리치고 끝내 단유의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위에 앉은 단유가 그녀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수련은 먼저 테라스가 있다는 곳을 확인했다.
“아니, 무슨 이런 커튼을 쳐놓고···.”
커튼을 젖혔더니 과연 좁은 테라스가 있었다. 아니, 테라스라고 하기보다는 베란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위에 튀어나온 천장이 지붕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수련은 툴툴거리면서 베란다 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침대 위의 단유를 바라보았다. 잠시 숨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오늘 할 이야기가 좀 많다, 그치?”
“전 별로 없는데요?”
입술을 짓뭉개던 수련의 눈꼬리가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난 좀 있거든? 어른이 이야기하면 잘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거든?”
“그런데요.”
단유가 수련의 말을 잘랐다.
“먼저 좀 씻으시는 게 어떠세요?”
그제야 눈밭을 뒹굴다 막 실내로 들어온 자신의 차림새를 눈치 챘다. 머리에 땀이 차기 시작하는데, 냄새도 심하게 나는 것 같았다.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던 수련이 고개를 돌렸다.
“저 욕실 쓸 테니까, 너 꼭 여기 있어. 알겠지?”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어디 안 가요.”
수련은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거실로 나가더니 곧 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물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 방문이 살짝 열리면서 수영이 들어왔다.
침대 위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던 단유를 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수련이는?”
단유가 보다시피, 라는 표정으로 욕실을 가리키자 수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수련이가 좀 성격이 그래. 모난 성격은 아닌데, 나쁜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뭔가 하나에 꽂히면 자기 직성이 풀릴 때까지 매달리는 편이라서 말이야. 사실 누나도 지금 쟤가 왜 저렇게 저돌적인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쁘거나 위험한 누나는 아니니까 너무 겁내지 말았으면 해.”
“겁 안나요.”
“어? 어, 그래?”
수영은 이마에 땀이 삐질 솟아나는 만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기 만약 혹시라도 수련이가 안 좋은 소리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줬으면 해. 그리고 만약 괜찮다면 말이야, 인터넷이나 다른 곳에 너무 나쁜 소문은 안내줬으면 좋겠고. 사실 우리 이렇게 함께 한 것도 인연인데 말이야. 그치?”
“네.”
단유의 무덤덤하고 성의 없는 대답이 영 못 미더운 눈치지만 자신까지 꼬마아이에게 미운 소리를 할 순 없었다. 혹시 기분이 나빠진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이것저것 말을 붙여보는 와중에 수련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언니 뭐 해?”
“야, 너야말로 왜 여기서 씻고 그래?”
“잘했어, 언니. 언니가 걔 잘 붙잡고 있었네.”
“동문서답하지 말고.”
“알았어, 언니는 가서 TV보고 있어. 금방 나갈게.”
수련이 억지로 수영을 일으켜 방 밖으로 쫓아 보낸 뒤, 단유를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 이야기 좀 해 볼까? 오붓하게 말이야?”
수련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단유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떤 이야기요?”
수련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매니저에게 제지당하고, 멤버들에게 제지당하고, 아이가 사라졌다고 착각하고, 눈보라 속을 헤매고, 따뜻한 물로 피로를 씻어내고 했더니,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야길 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나고 정작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수련이 단유의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혹시 나한테 할 이야기 없니?”
단유가 수련의 뒤로 걸려있는 시계에 시선을 잠시 주었다가 말했다.
“없어요. 그리고 지금 10시 넘었어요.”
“응?”
“졸려요.”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수련은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읽었던 탈무드의 한 구절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패배를 선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