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4)
-------------- 189/952 --------------
멤버들이 모두 드라마와 명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렸을 때, 수련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단유가 혼자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닫힌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슬쩍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다른 멤버들은 TV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을 들여다 본 수련은 이내 방문을 활짝 열고 몸을 들이밀었다.
“어디 갔지?”
방에는 텅 빈 침대만 있을 뿐, 단유가 보이지 않았다.
“씻고 있나?”
방에 붙은 욕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안에 있어?”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또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컴컴한 욕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방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안 수련이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12살 어린 아이라도 좁은 방 안에 몸을 숨길만한 구석은 없었다.
“어디 간 거지?”
분명 친구를 자기 멤버들 틈으로 밀어 넣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던 수련은 사라진 단유의 행방을 도저히 추적할 수 없었다. 한 눈 판 사이에 밖으로 나간 걸까, 의심해 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갈 수 있었을까 싶었다.
혹시 몰라 객실에 붙은 테라스로도 나가보았지만, 눈이 덮인 테라스는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 왜 그래?”
멤버 한 명이 수련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고는 물음을 던졌다. 수련은 곧 단유가 사라졌음을 알리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예감이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어쩐지 단유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느낌이 왔던 탓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랬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냐.”
테라스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 수련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으로 쭉 훑다가 확신을 가졌다. 분명 단유가 나갔다가 들어올 때, 그리고 아까도 차에서 입고 있었던 두터운 보드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얘, 단단히 미쳤구먼.’
수련은 고민을 했다. 지금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나갔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나간 것이 분명한 이상 여기 선생님에게도 단유가 나간 것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멤버들에게는 괜한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조용히 하은에게로 향했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주무세요?”
“아니요, 들어오세요.”
수련이 방으로 들어서니, 침대위에 걸터앉은 하은이 황급히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무셨던 건 아니시죠?”
“아니에요. 무슨 일이시죠?”
수련이 보기에 하은은 아까 보던 모습과 달리 꽤나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다. 누가 봐도 고민 중이라는 모습이었다. 무엇을 고민 중인지 모르겠지만, 판다 곰보다 더 검은 눈으로 멍하니 수련을 바라보고 있는 하은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해야겠지.
“저기, 사실 지금 그 단유라는 애가 안 보여서요.”
“단유요?”
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돌아본 사실을 알리면서 생각을 밝혔다.
“실종됐다는 애를 찾으러 나간 거 같은데···.”
하은의 얼굴이 와락 찌그러졌다.
“이 녀석이!”
하은은 옆에 벗어뒀던 점퍼를 챙겨들었다.
“저기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던 하은을 붙잡은 수련이 눈썹 끝을 긁으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멤버들은 몰랐으면 좋겠어요.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지금 많이 지친 상태거든요? 웬만하면 그냥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어요. 명수도 그렇고요.”
하은은 얼굴에 올랐던 열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수련의 말 그대로 ‘이기적’인 것인데, ‘명수’를 언급하는 순간, 감히 그 말을 부정하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알았어요.”
두 사람이 방문을 열고 나서자, 거실에서 TV를 보던 이들이 쳐다보았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매점에 잠깐. TV 보고 있어.”
“네. 맛있는 거 많이 사오세요.”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패딩을 입으며 나갔다.
“나도 같이 갔다 올게.”
수련이 살짝 오른손을 들어 흔들며 하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수상하지?”
지수의 말에 수영이 고개를 저었다.
“쟤 수상한 게 하루 이틀 일이니? 신경 쓰지 마. 피곤해.”
다시금 드라마에 몰입하기 시작한 이들이었다.
****
단유가 아이를 찾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매니저의 말 때문이었다. 응원하고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전제는 직원들이 전체 상황을 통제하는 가운데 수색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의 방법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서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손전등이니 뭐니 탓을 하지만, 도구는 둘째 치고 당장 영하의 날씨에 폭설로 앞도 안 보이는 지금은 ‘골든타임’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어린 나이의 아이가 눈 속에서 오래 버틸 리가 없었다. 더구나 아까 아이가 실종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벌써 1시간은 넘게 흘렀다. 이정도면 위험의 정도를 넘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스치고 지나간 것은, 작년 자신이 잠시나마 안아들었던 아기의 모습이었다.
‘좀 더 빨리 구해냈다면.’
단유는 생각했다. 이것은 시간 싸움이라고. 단순히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찾는 게 아니었다. 느긋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구조 활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자신은 누구보다 안전이 보장된 상태다. 누구보다 빠르게, 언제라도 방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무작정 눈보라 치는 어둠 속에서 아이를 찾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사람들이 아이를 찾는 소리마저 눈보라가 집어삼킨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따라서 단유는 보다 합리적인 수색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 쪽에서 바라볼 때, 명수 쪽 아이들 중 다른 곳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가끔 좁은 자리싸움을 하기 싫어서 무리에서 살짝 벗어나 눈을 뭉치기 시작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시권 안에서 움직였다. 너무 멀어지면 던져도 닿지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단유는 끊임없이 눈을 뭉치고 던지는 와중에도 시선은 상대 진영에서 떼지 않았다.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과거 무슬라에게 이렇게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고―목표물에서 눈을 떼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유의 시선 속에서 상대 진영의 아이들은 계속 담겨져 있었다. 물론 100%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동선이나 움직임이 겹치면서 가려진 틈에 다른 곳으로 움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일단 지금은 그런 자신의 기억과 주의력에 확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있었던 곳은 내가 있던 진영.’
그리고 그 가정이 맞는다면, 아이는 결코 건물 주차장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그 쪽 수색을 버리고, 반대쪽, 즉 리조트로 들어오는 입구 쪽을 수색해야 하는데, 이러면 사실 상황이 어려워지는 면은 있었다. 입구 쪽이라면 곧 리조트 밖으로 나갔을 확률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그 곳까지 쉽게 진출해서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단유는 곧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입구 근처에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아직 그 곳까지 가지 않았는지, 아니면 아예 가질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가로등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단유는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 이미 많은 눈이 쌓여서 흔적도 사라졌을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길 위를 살폈다. 핸드폰의 후레쉬 기능도 작동시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첫 걸음에 성공할 확률은 역시 없었던 모양인지 소득이 없었다. 단유는 주위를 둘러보다 적당한 장소로 몸을 이동했다. 최대한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대신 다른 이의 발자국을 찾기 위한 전략이었다. 발자국이 아니라도 어떤 흔적이 남을 것이다. 지금 거의 자신의 무릎 가까이 쌓일 만큼의 눈이라면, 더 키가 작은 아이에겐 숨기기 힘든 흔적이 남았으리라.
단유는 핸드폰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흔적을 찾아 나섰다.
****
로비로 내려온 하은과 수련은 여전히 로비를 방황하는 좀비 무리 속에서 매니저를 만날 수 있었다.
“왜 내려왔어?”
매니저의 물음에 수련이 빠르게 사실을 전달했다. 매니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더듬거리며 아무도 내려온 사람이 없음을 알렸다. 만약 아는 사람이 내려왔다면 자신이 보았을 거라는 이야기에 하은은 로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까보다는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진을 치고 있었다.
매니저의 말이 아니더라도, 12살 아이가 로비를 지나갔다면 누군가가 말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에 곧장 반대 의견이 생각났다.
‘어쩌면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왜냐하면, 남이니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하은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오늘 벌어졌던 일련의 일들에서 하나로 관통하는 단어가 바로 ‘남’이라는 것이었다. ‘남의 일’이니까 끼어들지 않고, ‘남의 일’이니까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라서 너무 지나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지나가는 아이가 있었더라도 그냥 본 척 만 척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12살짜리 검은색 패딩을 입은 사내 아이 보시지 못했어요?”
수련이 하은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경계를 표시하던 사람들은 수련의 외모에 어, 하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물음의 의미를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몇 몇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반응은 똑같았다.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개중 어떤 사람은 ‘또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이 날씨에 자기애도 관리 못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하은은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런 이야기가 귓가에 속삭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갔을까요?”
매니저의 물음에 세 사람의 시선이 바깥을 향했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로비 현관의 닫혀져 있는 유리문을 때리고 지나갔다. 부서진 눈 조각들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단유는 리조트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던 게 분명한 지 길 위가 너무도 깨끗했다. 아까 아이들이 눈싸움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덜 눈이 내렸다지만, 어린 아이가 홀로 눈을 뚫고 여기까지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진짜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이라도 건물 주위를 맴돌면서 아이를 찾는 목소리는 그쳐야 했던 것이 아닐까? 단유는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
리조트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경사길 위쪽으로 이동한 단유는 순간, 발아래가 허물어지면서 뒤로 굴렀다. 다행히 눈이 적당히 쌓여 있어서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발아래가 텅 빈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란 단유는 가슴이 거칠게 쿵덕거렸다.
자신은 눈으로 보고 위치를 가늠하여 이동할 수 있었다. 아직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입구 밖에서 올려다보고 적당한 자리라고 생각해서 이동을 했던 것인데, 알고 보니 경사로 옆에 조성된 화단의 낮은 회양목 위로 눈이 쌓여 착각을 한 것이었다.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이동했다가 회양목 사이로 빠지면서 중심을 잃었으니 크게 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순간, 단유는 깨달았다. 어쩌면 이 아이, 지금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까도 이 정도의 눈이 쌓였다면 모르는 상태에서 헛딛다가 넘어졌을 수도 있고, 그러다 사고가 났다면?
단유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리조트 건물 근처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찾고 있는지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묻혀 아득히 들려왔다. 곳곳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였다.
단유는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하은과 수련도 단유를 찾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저도 같이 찾아보죠.”
매니저가 뛰어나왔다. 모두 핸드폰을 치켜들고 핸드폰의 후레쉬 기능을 작동시켰다. 어지간한 손전등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밝기로 빛이 나와 발밑을 밝혔다.
“어디로?”
수련이 어느 쪽으로 갈 건지를 물었다. 하은이 좌우를 둘러보다가 한쪽을 짚었다.
“단유는 똑똑한 아이에요. 어려운 일에 처할 가능성은 극히 적어요. 그러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대신 그 아이를 찾으려면 우리가 영리하게 움직여야 해요.”
“그럼요?”
하은이 가리킨 방향은 사람들의 수색이 되고 있지 않은 어둠 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찾는 곳을 두 번 찾는 일은 하지 않을 아이에요. 그러니 지금 사람들이 미처 가지 않았을 법한 곳으로 가야죠.”
“그럼 제가 앞장서죠.”
매니저를 선두로 하은과 수련이 모자를 눌러쓰고 눈보라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