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88화 (188/956)

My Wa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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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직원들이 급히 랜턴을 준비해서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리조트 주변으로 아이를 찾는 목소리에 상황을 모르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로비를 나와 현관에서 구경을 하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꼬마 애가 저길 나갔겠어요?”

“혹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대요?”

이미 건물 안에도 방송실을 통해서 아이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상황이었다. 윗층 부터 해서, 건물 비상계단과 화장실 등 이곳저곳을 찾는 중이었지만 아직까지 소득이 없었다.

“실장님, 동쪽 계단에는 아무도 없답니다.”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주고받으면서 수색활동을 하는 직원들이었지만, 로비를 통제하는 직원들도 필요한 상황이라 아무래도 인력이 부족했다. 만약 건물 안이라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건물 밖에서 길을 잃은 것이라면 사태가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실장은 마른 뺨을 쓸어내리면서 침을 삼켜야 했다.

“지온아!”

지온의 부모와 직원들이 눈밭을 헤치며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릴 때, 현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직원들의 통제와 함께 로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부모님들은 방으로 데려가 주시고요, 방이 없으신 분들은 일단 지하 1층의 찜질방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긴급 상황이니 부디 직원들의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몇몇 젊은 남성들이 직원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희도 수색활동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기상 상태가 워낙에 좋지 않아서 저희가 통제하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저희가 가진 랜턴도 몇 개 없어서 수색이 어렵습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시든지, 방으로 돌아가 주세요.”

직원은 차분하고 조리 있게 남성들을 설득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단유의 어깨를 하은이 두드렸다.

“일단 올라가자. 여기 있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거야.”

단유는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다가, 하은을 따라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사람들 속에서 단유는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게 왜 이런 날씨에 애들을 밖에서 놀게 하는 거야? 부모가 문제 있네.”

“아까 다른 애들도 많았잖아요. 그래서 안심하고 내보냈던 거겠죠.”

“그래도 부모가 계속 주의를 쓰지 않았으니까 애가 사라진 거 아니겠어? 자기애가 사라지는지, 다치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속삭이는 듯 나누는 이야기는 엘리베이터 안에 탄 사람들에게 확성기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

“아, 배불러.”

수영이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다른 멤버들이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떽, 언니한테 그럼 못 써.”

수영의 투정이 또 귀엽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멤버들이었다. 식사 내내 웃음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냈던 멤버들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객실에 안내 방송이 들렸다.

“어머, 애가 없어 졌나봐요?”

막내 예영이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수련이 창밖을 힐끔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 밖에서 길 잃으면 위험할 거 같은데.”

지수와 셋째 명지가 창가로 다가갔다. 바깥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다. 그 와중에 지상에서 사람들이 불빛을 비쳐가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밖에서도 찾고 있는 거 같은데요?”

다른 멤버들도 우르르 달려가 창문에 얼굴을 붙였다.

“야, 여기서도 이 정도로 보일 정도면 밖에서는 더 안 보이는 거 아냐? 눈 때문에?”

“그럴 거 같은데요?”

멤버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을 때, 수련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그 아이들도 밖에 나갔었는데,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선생님이 따라갔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종 아이가 발생했다고 하니 괜한 걱정이 들었다.

모두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제가 복도에 나가서 한 번 볼까요? 혹시 모르니까?”

막내 예영은 의사를 묻는 것처럼 말을 하면서도, 발은 이미 현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때, 문이 달칵 열리면서 하은과 단유, 명수가 객실로 들어왔다.

“어? 왔네?”

예영이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반겼다. 먼저 치고 들어오던 명수가 예영의 인사에 주춤하다가 고개를 반쯤 숙여보였다. 그리고 뒤에 선 단유에게 속삭였다.

“우리 방인데 주인이 바뀐 거 같아.”

단유는 피식 웃으면서 창가에 몰려 있는 갤럭시즈 멤버들을 훑었다. 그 와중에 수련과 눈이 마주쳤는데, 단유는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관심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아니었나보다.

“야, 너.”

단유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수련이 팔짱을 끼고는 도도한 걸음으로 단유에게 다가갔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갈 때, 하은만은 말없이 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누구도 하은의 행동에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기세등등한 수련의 걸음과 12살 소년의 대치보다 주목받긴 어려웠던 것이다.

“너 왜 또 나 무시하는 거니?”

“제가요? 언제요?”

수련이 어이가 없다는 듯 파, 하고 탄성을 지를 때 단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이것 봐? 또 그러네? 왜 계속 내 말 씹니?”

뭔가 직감한 듯 수영이 얼른 뛰어와, 수련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단유에게 말했다.

“들어가, 얘가 지금 맥주를 한 잔 해서, 취해서 그러는 거야. 신경쓰지 말고 방에 들어가. 알았지?”

단유는 버둥대는 수련을 흘깃 쳐다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련은 더 어이없다는 듯 허공을 휘젓다가 힘으로 수영을 밀쳤다.

“아, 왜 막아? 방금 못 봤어요? 쟤가 나 이렇게 꼴아 보는 것 못 봤어요?”

“야, 오버 하지 마. 꼴아 보긴 뭘 꼴아봐? 그리고 그게 애한테 할 소리니?”

수련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퉁퉁 치면서 창가에 서서 지켜보던 관객(?)들에게 말했다.

“아니, 방금 애가 나 이렇게 쳐다보는 거 봤어요? 못 봤어요? 애가 눈을 이렇게, 이렇게 해서 쳐다보는 거 못 봤어요?”

관객들은 눈을 까뒤집는 흉내를 내는 수련의 연기에 박수대신 피식, 웃음으로 보답했다.

“아이, 이게 웃겨? 저 쪼꼬만 애가 나 무시하는 거 다들 봤잖아? 봤잖아요? 근데 이게 웃겨?”

“야, 쟤 취했나 보다. 좀 데리고 가서 진정을 시키든 재우든 해라.”

지수가 흘흘 웃음을 흘리면서 수련을 가리키자, 막내 예영이 눈웃음을 지으며 수련의 팔에 매달렸다. 그래봐야 갈 곳이라곤 거실 소파밖에 없지만, 억지로라도 소파에 앉혔다. 수영도 수련 옆에 앉아서 수련을 채근했다.

“너 제발 좀 조심해. 아무리 꼬마 애라도 인터넷에 악성 댓글 달 수 있단 말이야. 수련이 인성이니 어쩌니 하면서 글 올라가면 얼마나 타격이 심한지 알아?”

“치, 아까 오빠한테도 들었거든?”

“들었으면 좀 들어. 너를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팀을 위해서도 좀 조심해.”

수련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리고 니 성격도 좀 고쳐. 무슨 애한테까지 따지고 들려고 그래?”

“보통 애가 아니라니까? 아까도 봤잖아? 나 이렇게 째려보는 거.”

그때 대화를 지켜보던 예영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언니, 쟤한테 무슨 말하려고 하셨던 거예요? 그냥 심술부리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수련이 사람 안 가리고 독설을 날리는 편이긴 해도,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리면서 몰아세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예영이었다.

“그냥···사람이 늘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했었지.”

“뭐? 니가?”

“언니가요?”

멤버들의 격한 반응에 오히려 어리둥절해진 수련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항변했다.

“내가 그런 말 하면 안 돼?”

“야, 소크라테스라는 분이 그러셨어. 니 자신을 알라고. 양심이 있어야지,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은 있니?”

“내가 뭐? 내가 뭐? 그리고 소크라테스보다 먼저 이오니아 학파의 탈레스가 먼저 그 말을 했었거든?”

“애가 별 걸 다 아네. 말을 말지, 어이구.”

다른 멤버들까지 다가와서는 수련을 구박하는 그 때, 조용히 방에 들어간 하은은 침대에 엎어진 채 고민에 싸여 있었다. 단유의 말이 계속 귓가에 남아 잔향을 남기고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냐는 단유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할 때, 옆에 있던 매니저가 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차에서 들은 이야기의 연장선이라면, 내가 한 마디 해도 되겠니?”

단유가 매니저를 돌아보자, 매니저가 살짝 허리를 숙이고 단유와 눈높이를 맞췄다.

“어려운 위기에 처한다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착한 마음이고 옳은 행동이야. 그렇지만 말이야. 상황에 따라서는 실천 대신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지금 밖을 봐. 어둠과 눈 때문에 당장 이 앞을 벗어나면,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일 거야.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도구 없이 맨 몸으로 나서봤자 도움이 될 리가 없겠지. 그런데 옆을 봐. 저렇게 플래시라도 있어야 수색에 도움이 되겠지?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사람들이 부디 무사히 수색을 해서 아이를 찾아오길 기도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할 일이란 그런 거지.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나서봐야, 또 다른 실종자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또 다른 실종자가 나오면 또 곤란해질 사람들이 많아. 그러니까 내 말은,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 나가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뒤에서 응원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야.”

매니저는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말들을 골라서 하느라 느리긴 했지만 차분하게 말을 맺을 수 있었다. 단유가 하은을 힐끔 보았다가 매니저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변수를 줄여서 통제를 하겠다는 거군요.”

매니저가 동그래진 눈으로 단유를 바라볼 때, 직원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로비로 들여보냈다. 그리하여 하은과 단유 네는 객실로 들어왔다.

침대 위에 엎드려 있던 하은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어른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사실 이제 20대 중반에 불과한데, 또래 친구들은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나이인데, 새내기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하지 않은 나이인데, 결혼도 하지 않았기에 ‘어른’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만 한 나이인데 어느새 하은은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단유나 명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도 ‘어른’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어른인가? 어렸을 적에 되고 싶었던, 보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인가? 아니면 자신이 그토록 경멸해왔던 어른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 ‘어른’이라는 모호한 기준의 호칭에서 갑자기 커다란 책임감과 의무감이 느껴졌다.

‘떳떳한 어른이 되고 싶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나니, 하은은 부담감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하은이 ‘사춘기’와 ‘오춘기’의 사이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방에 들어온 단유는 옷을 벗지도 않고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들이 이곳저곳을 비쳐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 씻어?”

그새 샤워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은 명수가 어정쩡하게 서서 물었다.

“씻을 거야.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

명수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계속 눈이 문을 향하고 있었다. 단유는 명수의 속내를 눈치 채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TV보고 싶어서?”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서 봐.”

“그런데 밖에, 그 누나들 있잖아?”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TV만 보는 건데?”

그래도 명수가 머뭇거리자, 단유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명수의 손을 잡고 방문을 열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거실 소파에 모여 있던 갤럭시즈의 시선이 단유에게로 몰렸다. 단연 그 중에서도 수련의 활활 타오르는 시선이 가장 압도적이었지만, 이번에도 단유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제 친구가 TV 보고 싶다고 해서요. 혹시 봐도 될까요?”

수영이 얼른 대답했다.

“그래 봐. 여기 너희가 주인인데 주인이 TV본다는 걸 누가 말린다고 그래? 우리랑 같이 보자. 괜찮지?”

단유는 명수의 등을 밀었고, 명수는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면서 소파 가운데 난 자리에 앉았다. 명수를 둘러싼 미녀들(?)은 명수의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을 주었고, 명수는 붉어진 얼굴로 리모컨을 쥐고 TV를 켰다. 익숙한 채널로 변경한 뒤, 익숙한 음악과 함께 일일드라마가 나오자 명수는 곧 TV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점점 편안해지는 얼굴과 함께, 드라마의 전개에 맞춰 표정이 다양하게 변화했다. 갤럭시즈 멤버들은, 처음엔, 명수의 표정을 보면서 킥킥대다가 이내 명수가 이것저것 드라마에 대해 설명하면서 열을 올리자 함께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명수가 다른 건 몰라도, 드라마를 간략하게 설명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에는 도가 튼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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