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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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벨이 울리고 주문했던 식사가 올라온 덕에 짧은 대치가 흐지부지 돼버렸다.
“얘들아, 밥 먹자.”
명수와 단유가 식탁에 올라온 돈가스를 보며 군침을 흘릴 때, 하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수영을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사를 같이 주문하는 건데요.”
“아니에요. 저희도 따로 주문하면 되는 걸요. 저희 지금 룸서비스 시켜도 되죠?”
“예, 괜찮습니다.”
수련은 아이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리곤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욕실 앞에서 다른 멤버의 제지를 받았다.
“넌 마지막 순서야.”
“왜!”
신경질 부리는 수련에게 느긋한 표정으로 답해주는 둘째, 지수였다.
“너 아까 순서 정할 때 빠졌으니까.”
지수는 고깝게 듣지 말라며 수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달리 기가 세서 군기반장을 도맡은 지수의 말에는 수련도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 물론 수련도 기가 밀리는 편은 아니어서 종종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숙소 안에서의 일일 뿐이었다.
그렇게 순서가 정해진 갤럭시즈 멤버들이 욕실을 사용하는 동안, 하은과 단유, 명수는 식사를 시작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단유가 하은을 향해 물었다.
“뭐? 나? 괜찮아. 아까는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지금은 술도 다 깼어.”
조명보다 밝은 웃음을 지어보인 하은은 고기를 한 점 썰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속은 조금 복잡했다. 어쩐지 하루 종일 애들한테 안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았다. 애들을 달래고 지켜야 할 자신이 도리어 걱정만 끼치고 있으니.
“눈 많이 내리네.”
애써 화제를 돌리기 위해 창밖을 보며 날씨로 주제를 옮겼다.
“작년에도 저렇게 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은데.”
“맞아요. 작년에도 눈 엄청 와가지고요, 운동장에 눈가지고 눈사람 만들고 그랬어요. 맞다! 우리 이 앞에서 눈사람 만들면 안 돼요?”
“안 된대도.”
“멀리 안가고 이 앞에서만 놀게요. 네? 선생님?”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폭설 당시 유난히 들떠서 나가고 싶어 했던 명수였다. 감기가 걸려서 열이 많이 나는 몸이었음에도 명수는 누구보다 신나게 뛰어 놀았다.
단유는 명수의 편을 들어주었다.
“여기 건물 현관 앞에서만 놀게요. 로비 불이 밝으니까 위험하지도 않을 거예요, 선생님.”
단유까지 나서서 거들자, 하은은 피식 웃으며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같이 나가자. 아무리 그래도 니들끼리 나가게 하는 건 아니지.”
“선생님, 피곤하시지 않아요?”
명수가 걱정하는 척을 하지만, 속내를 감추기엔 표정이 너무 밝았다. 하은은 명수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석고야, 빨리 먹자!”
그리고는 진공청소기처럼 돈가스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으라는 말에도 여느 때처럼 소스 범벅이 된 얼굴로 씩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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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 마지막으로 씻고 나왔을 무렵, 거실에는 갤럭시즈 멤버들만 모여 있었다.
“다른 사람은?”
“나갔어. 애들이 놀고 싶다고 해서.”
수련이 혀를 차며 도망간 단유를 잡으러 가야 하나 고민했다.
“너도 적당히 좀 해라. 뭘 계속 궁시렁거리면서 그래?”
“아니, 애가 말이야.”
수련은 공연하기 전 있었던 일부터 해서, 공연이 끝난 후 단유의 반응까지 낱낱이 밝혔다.
“애가 한 마디 한 걸로 뭘 그렇게 쪼잔하게 구니?”
“쪼잔하다니? 애가 아까 어떤 눈으로 봤는지 알아?”
“야, 누가 보면 너 A형 인줄 알겠다. 왜 그렇게 소심해?”
수련이 발끈하며 일어섰다.
“소심하긴 누가 소심해!”
그 때, 벨이 울렸다. 룸서비스가 왔음을 알고 멤버들은 수련을 쳐다보았다. 수련은 투덜대며 문을 열어주었다. 남자 종업원은 들어오다 말고 연예인급 외모의 여자를 보며 살짝 멈칫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혹시···.”
남자종업원이 음식들을 식탁위에 올려놓은 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갤럭시즈 아니세요?”
“어? 우리 알아보시네? 팬이세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팬입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갤럭시즈 멤버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종업원은 각자의 싸인이 담긴 종이를 품에 안고 객실을 나갔다.
“그래도 우리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고맙네?”
“그게 다 내가 열심히 방송 한 덕분인 줄 알라고요.”
“생색은.”
음식이 오자 다들 기분이 업이 되어서는 별 말도 아닌데 웃음을 터뜨리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으로 함박눈이 창문을 소리 없이 두드렸다. 내일 저 눈길을 뚫고 나가야 하는 그들에게 고생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누구도 이를 미리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잠깐의 휴식이라도 마음 편하게 누리고 싶은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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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진짜 눈 많아!”
시끌벅적한 로비를 뚫고 나온 명수가 현관 앞을 꽉 매운 눈을 보며 소리쳤다. 보드 복에 달린 후드를 쓰고 눈만 빼곰 내놓은 하은이 팔짱을 낀 자세로 리조트 현관 양 옆으로 세워진 기둥 한편에 몸을 기대고 섰다.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놀아.”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인지, 아니면 가로등 불빛의 한계인지 현관 주변을 제외하곤 너무 어두워, 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선생님! 같이 눈싸움해요!”
하은은 진저리친다는 듯 도리질을 하며 몸을 숨겼다. 단유가 눈을 뭉쳐서 명수에게 던졌다.
“우리끼리 해.”
이내 단유와 명수는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연신 눈뭉치를 만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단유는 그간 운동을 한 이유가 마치 오늘을 위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지치지 않는 움직임으로, 마치 기계처럼 명수를 향해 던져댔다. 명수는 오늘을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운동장을 누볐노라 자랑하듯이 쉴 새 없이 눈을 피해가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 모양새가 워낙 치열해서 지켜보던 하은은 물론, 현관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 모을 정도였다.
“엄마, 나도 하면 안 돼?”
부모 곁에 서 있던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한 두 명 씩 참전을 시작했다. 곧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를 지어 눈싸움을 벌이는 대격돌로 이어졌고, 현관 앞은 어느 때보다 밝은 아이들의 환성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는 와중에도 로비에 모인 사람들은 몇 시간 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이 붐비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연장을 신청하는 사람들과 예약취소를 기다리는 사람들, 혹은 어떻게든 방을 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생떼를 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은은 잠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 아우성 속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을 리조트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져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 여기 계셨네요.”
“어? 매니저님! 방은 구하셨어요?”
이런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가득한 매니저는 하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렵네요. 역시 갑작스런 날씨 탓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사람들이 많나봐요. 오늘 공개방송 때문에 온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공연만 보고 갈 생각이었나 보더라고요. 저기는 방송국 사람들인데, 저 사람들도 방을 못 구해서 저러고 있네요.”
로비 한 편에 한 짐 가득 끌어안고 있는 무리를 가리키던 매니저의 말에 하은이 물었다.
“여기 옆에 민박집도 있지 않나요?”
“거기도 똑같죠.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주변 다 돌아다니고 나서 온 사람들일 거예요.”
매니저는 밖에서 눈싸움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저 나이 때가 참 좋은 거 같아요. 이런 고생 안 해도 되고 말이죠.”
하은이 가만히 있다가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네?”
“저 아이들 중에도 어른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을 겪거나 고생한 아이들도 있을 거라고요.”
하은의 말에 매니저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아까 함께 했던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매니저가 입을 다물고 있자, 하은은 괜한 말을 했다는 자책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매니저님도 저기서 예약 취소된 거 기다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후배 녀석이 대신 줄을 서고 있거든요.”
“아, 네.”
하은이 머쓱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도 괜한 이야기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될까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저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서 땀을 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색하나마 하은의 곁에 서서 아이들의 눈싸움을 구경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눈에 파묻히다시피 했던 아이들이 땀과 눈으로 젖어 지친 몸을 이끌고 전장을 벗어났다. 아이들이 열심히 전투를 치르는 사이, 어른들의 사정도 조금 풀려 리조트에서는 긴급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구호책을 내놓았다. 바로 지하에 있는 찜질방을 개방하여 사람들이 그 곳에서 쉴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원래는 오후 8시 까지만 운영을 하는데, 특별히 직원을 배정해서 24시간 운영하도록 한다네요.”
“잘 됐네요.”
매니저가 머리를 긁다가, 땀에 젖은 머리의 촉감에 흠칫 놀라 얼른 손을 내렸다.
“그런데 그렇게 넓지 않은 곳이라, 사람들이 다 수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군요. 뭐, 그래도 일단은 씻을 수 있는 곳이 생겼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죠.”
지금도 리조트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데스크에선 예약 손님들에게 전화해서 예약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취소분이 있을 경우 기다리는 손님에게 방을 내주는 일을 하느라 손에서 전화기가 떠나질 않았다. 또 몇몇 직원들은 밀대걸레를 들고 현관과 로비에 떨어진 눈을 쓸고 닦으면서 혹시라도 미끄러지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도 이제 올라가야겠네요. 쟤네들도 이쯤 놀았으면 지쳤겠죠?”
“지칠 때까지 기다리신 건가요?”
“보셨다시피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애들인지라.”
매니저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여전히 눈밭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은의 부름에 단유와 명수도 다른 아이들처럼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나타났다.
“이제 올라가자, 더 놀면 내일 힘들어서 못 놀지도 몰라.”
“그럴 리 없어요!”
명수의 확신에 찬 대답에 하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으나, 억지로 참아내고는 명수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재밌었냐는 하은의 물음에 명수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적중률을 보였었는지를 자랑했다. 눈싸움이라는 올림픽 종목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선수를 자원했을 기세였다.
다른 아이들도 부모의 부름에 하나둘 씩 나오고 있었다. 그 때 한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가 현관 앞에 울려 퍼졌다.
“지온아! 박지온!”
그러나 그 부름에 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애타게 부르는데도 이름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옆에 선 아주머니 한 분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먼저 안에 들어간 거 아니에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럴 리 없다며, 현관 옆에 계속 서 있었다고 답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현관을 벗어난 곳은 어둠이 내려앉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애 혼자 어디 갔을라고요?”
남자 아이의 옷에 묻은 옷을 털어대던 한 아주머니가 또 이야기를 건넸지만, 지온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엔 무리가 있었다.
“너희 혹시 이만한 키의 남자 아이 못 봤어?”
결국 주변의 아이들을 상대로 탐색을 하기 시작한 어머니는, 하지만 눈싸움의 와중에 제대로 상대를 볼 겨를도 없던 아이들의 도리질에 가슴만 무거워지고 있었다.
“너도 못 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유에게 물어본 하은은 단유가 모른다고 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아주머니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매니저 역시 안타까운 얼굴을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을 빼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매니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어머니의 부름에 나타나는 아이는 없었다.
“무슨 일이야?”
로비 안에서 대기 중이던 지온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어머니에게 사정을 듣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지온을 불렀다. 발을 동동대던 지온의 어머니도 함께 현관 밖을 나가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뛰어가며 지온을 불렀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던 어머니들이 한두 명 씩 로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가 실종됐다는 이야기에 뛰쳐나온 리조트 직원들이 현관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에 맞춰 다들 로비로 들어갔다.
그 때까지도 지온을 부르짖는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던 단유는 주변을 보다가 몸을 돌려 하은에게로 향했다. 단유의 시선을 의식한 하은이 바라보자, 단유가 물었다.
“이것도 아까랑 같은 건가요?”
하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