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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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단유의 외침에 명수가 잠에서 깨어났다. 반쯤 눈이 감긴 채로 고개만 들어 올리던 명수를 단유가 감싸 안을 때, 하은도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차 밖으로 거친 마찰음이 들렸고 이내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는데, 충격 대신 차 뒤편에서 충돌음이 들렸다. 하은이 고개를 들어보니, 다가오는 줄 알았던 차가 어떻게 방향을 틀었는지 예상했던 결과는 오지 않았다. 대신 하은의 차를 지나치며 갔던 그 차는 뒤차와 부딪혔던 것인지 뒤쪽에서 강한 충돌음이 들려온 것이었다.
“괜찮아?”
하은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당연히 부딪힌 일도 없으니 별 일은 없겠지만, 자신도 지금 심장이 크게 뛰고 있는 판이니 어린 애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던 것이다. 단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하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이제 막 일어난 명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명수는 여전히 사태가 파악이 안 된 것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바깥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사고 났어!”
바깥에서는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서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비상등의 깜빡임과 경적 소리가 좁은 길을 가득 채우는 중이었다.
“많이 다쳤을까?”
명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하은도 밖을 바라보았다. 사고가 난 차량은 보이는 차량만 세 대이고, 뒤로 지나간 차량도 포함하면 4대 이상이 사고 났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차량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어 슬쩍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나가서 살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단유의 말에 하은이 가만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직은. 그리고 나갔다가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예전 어떤 교통사고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교통사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차에서 내려 사고처리를 돕던 중, 뒤따라 온 차량에 부딪혀서 더 큰 사고를 당했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하은은 다들 그런 생각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누나, 저기.”
하은이 선 차선의 차량들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은도 비상깜빡이를 켠 상태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살짝 떼고 앞으로 갔다.
“저 사람들 많이 다친 거 아닐까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단유의 말은 하은을 갈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장 자신이 내린다고 해도 도와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돕다가 자신도 그 뉴스의 주인공처럼 사고를 당할까 두려웠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니 감히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마찬가지 이유로, 두 아이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고 그냥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똑똑.”
누군가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하은이 흠칫 놀라다가 조심스럽게 창 밖에 선 사람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내렸다.
“무슨 일이세요?”
바깥에 선 사람은 얇은 패딩조끼를 걸친 남자였다. 선이 굵은 외형의 그 남자가 몸을 숙여 안을 흘깃 보더니, 하은을 향해 말했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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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수련의 외침에 매니저가 앞을 바라볼 때, 강한 충돌이 있었다. 차가 앞뒤로 크게 흔들리면서 매니저는 앞으로 몸이 쏠렸다. 그러나 그의 두툼한 뱃살을 죄고 있던 안전벨트 덕분에 매니저는 앞 유리 창에 머리를 박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콜록!”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당한 사고에 놀란 탓인지 가슴이 크게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고통과 동시에 든 생각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었다.
“괜찮아? 수련아, 괜찮아?”
목을 부러질 정도로 홱 돌리다가 목에 담이라도 걸린 것인지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내 아이’의 안전이었다.
“괜, 괜찮아요.”
수련은 허리께를 짚으며 살짝 구부린 자세로 대답을 했다.
“뭐야, 너! 허리 다친 거야?”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조금 아릿한 정도에요. 저보다 오빠가 더 심한 거 아니에요? 오빠 이마에 땀 장난 아닌데?”
매니저는 수련 뒤에 가려진 스타일리스트의 안부도 물었다.
“미래야? 넌 괜찮아? 미래야?”
“저도 괜찮아요. 머리를 좀 부딪치긴 했는데, 크게 아프진 않아요.”
앞좌석에 이마를 부딪친 스타일리스트가 이마를 쓱쓱 문지르면서 대답을 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매니저는 그제야 옆에 앉은 로드매니저를 바라보았다.
“괜찮지?”
“네, 전 괜찮···.”
“그럼, 내려서 함 봐봐라. 차가 움직일 수 있을랑가.”
급한 마음에 어릴 때 쓰던 사투리가 나왔다. 로드매니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 쪽 보닛을 받은 상대차량은 비스듬하게 중앙선을 걸치고 멈춰 있었다.
로드매니저가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차 안을 보았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운전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또 조수석에 동승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남자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면서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로드매니저도 거기에 끼어 한 마디 거들었다.
“괜찮습니까?”
“전, 괜찮아요. 저희 남편이 좀 다친 것 같은데.”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로드매니저는 운전자에게도 괜찮냐고 물었다. 남자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부러지거나 피가 나지 않으면 다들 괜찮단다. 로드매니저는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보이지 않자,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그 안전벨트는 풀지 마세요. 아직 위험하니까요. 아주머니도요.”
아주머니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남편에 대한 걱정에 미간을 좁힌 주름이 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상대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지 되물었다. 로드매니저는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는 차를 살폈다.
미끄러졌던 차는 마지막 순간에 아내가 다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인지 핸들을 크게 비틀며 미끄러졌었다. 그 덕분에 상대 차나 자신들의 밴이나, 모두 운전석 쪽끼리 부딪치는 사고가 나고 말았지만, 속도를 꽤 줄였던 탓에 크게 부서지지는 않았다. 두 차 모두 보닛이 밀려들어가고 앞 범퍼는 떨어져 나갔지만, 그 외는 크게 문제가 없어보였다. 당장은 그랬다.
“현철아, 거기 위험하다. 일단 이리로 나와.”
조수석에서 내린 매니저가 로드매니저를 불렀다. 상대의 안전을 묻는 매니저의 말에 현철은 자신이 본 대로 이야기했다.
“어떡하죠?”
현철의 말에 매니저는 인상을 썼다. 앞으로 바라보니 조금씩 차가 나가고 있었다. 매니저는 빨리 머리를 굴렸다.
“잠깐, 기다려.”
매니저는 앞 차량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슬쩍 안을 쳐다보니, 뒷좌석에는 애들 둘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똑똑.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창문이 내려가면서 20대 초반의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 다름이 아니라 혹시 괜찮으시면, 동승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시다시피 저희 차가 저래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나마나, 이미 사이드미러를 통해 상황을 주시하던 하은이 슬쩍 애들을 확인한 후 물었다.
“인원이 많으면 저희도 힘든데···.”
“아뇨, 저를 포함해서 2명이 답니다.”
그렇다면 조수석과 뒷좌석에 한 명씩 태워도 부족함은 없으리라.
“괜찮니?”
하은이 애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단유와 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매니저를 돌아보며 답했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매니저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허리를 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발이 조금 더 세진 느낌이었다.
****
“이름이 뭐야?”
“저는 인평초등학교 5학년 인명수라고 합니다.”
명수가 씩씩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옷가지를 끌어안고 있던 수련이 한 손으로 명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넌 이름이 뭐니?”
“김단유예요.”
단유가 담담하게 소개하자, 수련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혹시 누나 아니?”
명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연예인이요!”
“이름도 알아?”
“아니요!”
수련은 초년 데뷔생의 비애를 실감하며 명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희가 TV를 잘 안 봐서 그래요.”
룸미러로 바라보던 하은이 대신 변명을 했다.
“우리 TV 많이 보는데?”
명수가 눈치 없이 끼어들자, 하은이 부랴부랴 변명을 덧댔다.
“넌 맨날 드라마만 보잖아! 쟤가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요. 다른 예능은 안 보고 드라마만 보거든요. 일일드라마랑 연속극은 다 챙겨보는 애라서.”
수련은 괜찮다고 답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누나가 연예인인건 어떻게 알았어?”
“저런 차 타는 사람은 연예인이라고 했어요.”
대답은 참 잘하는 명수였다. 수련은 그런 명수가 귀엽다며 입 꼬리를 올렸다. 반면 창가 쪽에 앉은 단유는 별 반 관심이 없다는 듯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되게 과묵하다?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나봐?”
“아, 석고가 원래 말을 많이 안 해요. 그래도 저랑 있을 때는 많이 해요.”
“석고는 뭐니?”
“별명이요. 1학년 때였나? 어떤 애가 석고보고 석고상 닮았다고 했는데, 그 때부터 석고라고 불렀어요.”
참 직관적인 설명이었다. 수련이 단유의 얼굴을 살피니, 옆모습 밖에 보이진 않지만 꽤 잘 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각진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수련의 혼잣말에도 여전히 단유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 사이 호기심이 폭발한 명수가 이것저것 물으면서 차 안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네요.”
매니저가 말을 건네자, 하은이 싱긋 웃었다.
“그쵸? 어쩔 때는 너무 버겁기도 할 정도예요.”
“조카들이신가요?”
“뭐, 비슷한 거라고 해두죠.”
나이만 보면 아들은 아닌 것 같은데, 조카도 아니라면 뭘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매니저는 캐묻지 않았다. 잠시 분위기 전환용으로 말을 던졌을 뿐 머릿속은 온통 이후의 일을 걱정하느라 복잡했기 때문이다.
로드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는 차에 남겨두었다. 공연장에 사고를 알린 후, 갈아입을 옷만 가지고 하은의 차에 동승했다. 이제 로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사고 수습에 도움을 주도록 시켜놓았으니 이후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또 한 번 검색어에 오를 기회가 생길 것이다. 선행이라면 선행이고, 프로페셔널하다는 평가도 받을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인 법이니까.’
매니저가 이 사고를 넌지시 알릴 언론사를 머릿속으로 물색하는 사이, 수련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단유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가끔 팬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관심 없는 척,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먼 거리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쫓는 사람들. 하지만 단유는 정말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쁜 남자 스타일인가?’
고작해야 12살인 아이에게 무슨 나쁜 남자 타령인가 싶어서 자신의 머리를 톡 두드리는 수련은 넌지시 단유를 불렀다.
“밖에 뭐 있니?”
그 말에 명수도 단유를 따라 밖을 바라보았다. 느리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차는 아까보다는 좀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그래봐야 시속 30㎞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리고 그런 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경치는 별 거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명수의 대답에 단유가 손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눈이 점점 많이 오는 것 같아서요.”
“눈을 좋아하니?”
수련의 말에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조수석에 앉아있던 매니저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아는 녀석이군.
“눈이 심해지는 걸 보니, 불안해서요.”
“불안해?”
“아까 다친 사람들 말이에요. 괜찮을지.”
그 말에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차의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 차들, 꽤 심하게 사고 난 거잖아요.”
수련의 밴과 부딪힌 차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서 사고가 난 차들은 꽤 심하게 부딪히면서 차가 엉켜있던 상황이었다.
“왜 아무도 그 사람들을 구하러 나가지 않았을까요?”
하은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할 때, 매니저가 말했다.
“그건 2차 사고가 걱정이 돼서란다. 만약 그 사람들을 돕는다고 나섰다가, 뒤따른 차들 때문에 또 사고가 난다면 더 사고가 커지지 않겠니?”
“사고가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둔 건가요?”
애가 조금만 더 컸다면, 그리고 그 말에 조금의 비아냥이 섞인 느낌이었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단유의 말은 그런 비아냥도 아니었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기에 되레 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그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만약 주변에 다친 사람이 있다면 구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질 않았으니까요. 그럼 아까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하고요. 그리고 만약 그 상황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어요.”
“그래서?”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까 선생님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위험할 수 있다고. 그런데 물론 구하는 사람이 위험할 수는 있지만, 정작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건 차 안에 있던 사람들 아닌가요? 저는 그게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후에 그 말을 뒷받침할 다른 주장이 생각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