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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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재림은 단유의 집에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굳이 왜 오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재림이 오지 않음으로 인해서 단유는 평소의 리듬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궁금하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명수가 단유에게 물었다.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 걱정하던 일도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고, 재림이도 도와달란 말을 하지 않으니까, 굳이 간섭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명수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궁금해서. 그냥 막 궁금해. 막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 싶어서 또 막 답답하네.”
“그럼 직접 물어봐.”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지. 난 궁금하지 않아서 물어보지 않았던 거고, 넌 궁금하니까 물어보는 거고. 물어보는 게 재림이한테 크게 피해를 주는 일 같지는 않으니까.”
대답 못할 이야기라면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명수가 재림에게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그러기 전에 재림이 먼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유에게 직접.
“나 물어볼 게 있어.”
“선생님한테 물어봐.”
단유의 말에 잠시 주춤하던 재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생님한테는 물어보기 힘들어.”
“왜?”
“어른이니까.”
단유가 빤히 바라보는데 재림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뭔데?”
재림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단유에게 들려주었다.
“그게 어른들이 말하는 진실일까?”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건 그 사람이 말한 진실이지.”
“그런데 우리 엄마는 아무 말도 안했어.”
단유는 재림의 행동을 이해했다. 진짜 ‘진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은 건 아니었나보다. 어머니의 반응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 엄마한테 물어봐.”
“못 해, 난.”
단유는 차분하게 재림을 설득했다.
“모르는 걸 묻는 건 죄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야. 특히 우리 나이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무엇이든 물어도 돼.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걸 부모가 가르쳐주는 건 당연한 거야. 당연한 걸 두려워하지 마.”
재림은 단유의 말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두려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머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어쩌면 지난 일과 맞물려서 혼날 지도 모른다.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면 단순히 혼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집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 쫓겨나기만 하면 오히려 다행이랄까, 더 심한 말을 들을 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말일지 상상은 가지 않지만.
“넌 똑똑하니까 알 거 아냐? 가르쳐 줘.”
선생님들이 놀랄 정도로 똑똑하고 늘 책을 읽는 단유라면 해답을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재림은 단유를 붙들고 늘어졌다. 단유는 어쩐지 쉽게 답을 말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의 답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했고, 아직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진실’에 대한 객관적인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마치 제윅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재림은 단유가 답을 알면서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단유를 계속 졸랐다. 단유가 자기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끈질기게 졸랐다.
“오랜 만에 왔네?”
하은이 며칠 만에 찾아온 재림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안 올 거면 미리 안 온다고 말이라도 해야지. 기껏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더니 제멋대로 빠지고 말이야. 그런 태도라면 더 이상 가르쳐 줄 게 없어.”
“···죄송해요.”
단유가 청소기를 붙잡고 명수가 호빵을 안아 들 때, 재림은 하은에게 불려가서 혼이 났다. 청소기가 멈출 때까지 계속된 잔소리에 재림의 혼이 빠져나갈 때 쯤, 간신히 단유가 재림을 구해줬다.
“재림이가 물어 볼 게 있대요.”
“갑자기? 뭐? 못 푸는 문제가 있어서 온 거야?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으면 관심 끊어버리는 녀석이었어, 너? 나쁜 남자네?”
“그런 건 아니고요. ···니가 말 해.”
단유는 일단 하은의 말을 끊고 재림에게 기회를 주었다. 재림이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재림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하은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나쁜 놈이네, 그거.”
‘그거’라고 지칭되는 게 아마도 변호사를 말하는 것 같은데, 뉘앙스로 유추해보자면 ‘진실’이라는 게 아마도 나쁜 뜻을 포함하는 것 같았다. 재림은 용기내서 물었다.
“그래서 ‘진실’이란 게 뭔지 궁금해서요.”
하은 역시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단유가 입을 열지 못했던 이유와는 다른 의미로 ‘진실’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하은은 이런 부분에서 도망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일단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니가 알고 있는 그대로일거야. 있었던 일, 혹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불러야 하겠지. 하지만 그 변호사가 말한 ‘진실’은 실제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말한 거야. 요컨대 자기들이 듣고 싶어 하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표현한 거지. 진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 싶은 것. 절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걸 ‘진실’이라고 표현한 거야. 예를 들어서, 명수는 수학을 못해. 정말 못해. 그게 진실이야. 그런데 명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지난 시험에서 비록 15점 밖에 되지 않지만, 90점이라고 말해. 그리고 그게 ‘진실’이라고 증언하는 거지.”
“그건 그냥 거짓말이잖아요?”
재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그래. 그냥 거짓말이지. 그런데 그 변호사는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야.”
“말장난이네요.”
단유가 한 마디로 줄여 말했다. 하은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만약 명수가 수학을 90점 받았다는 사실을 단유가 인정한다면?”
“제가요?”
단유가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하은이 손사래를 쳤다.
“예를 들어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아무튼 단유가 90점이라고 했어. 그럼 난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못 믿죠.”
단유가 덧붙였다. 피식 웃은 하은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사실 난 명수를 잘 아니까 못 믿겠지. 못 믿는데, 그래도 내가 단유라는 애를 잘 아는 만큼, 단유라는 아이가 한 말에 대해서도 깊이 신용하거든? 그러니까, 못 믿겠지만 그래도 사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단 말이지.”
재림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성적표 보면 금방 알잖아요?”
“그래. 성적표가 있다면 말이야. 그런데 성적표가 없다면 난 확신할 수가 없는 거지. 지금 니 상황도 똑같아. 애들이 널 때렸다는 증거가 있다면,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상관없이 ‘진실’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증거가 없잖아? 그러니까, 맞은 당사자인 니가 한 말이 맞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게 ‘진실’이 될 수 있는 거야.”
“거짓말이잖아요.”
“그래, 거짓말이라니까? 거짓말인데,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게 만드는 거짓말인거지.”
재림이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단유가 말했다.
“돈을 줄 테니까 거짓 증언하라는 이야기죠, 그건?”
“그래.”
“그럼 거짓증언을 해야 하나요?”
하은은 재림을 보며 말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어요.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왜긴? 돈 때문이지. 아마 그 변호사는 엄마한테 엄청난 돈을 약속했을 거야. 그러니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못했겠지. 말 한마디에 엄청난 돈이 들어오니까.”
하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저었다. 썩은 내 풀풀 풍기는 현실을 아이들한테 알려줘야 하다니.
“그런데요.”
호빵을 안은 채로 있던 명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이제 수학 잘하는 거예요?”
“응?”
“석고가 저보고 수학 잘한다고 했으니까?”
하은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지난번에 수학 시험, 15점 아니고 10점인데요?”
하은은 등을 돌렸다. 그 위로 은은한 오후 햇살이 내려앉았다.
****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재림을 앞에 앉혔다. 아버지 옆에 앉은 어머니는 초조한 눈치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다가 재림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래, 이야기가 끝나고 펴도 되니까.
“엄마랑 상의를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니 이야기를 들어야 될 것 같다.”
재림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양반다리로 앉은 아버지의 검은 양말을 바라보았다. 끝이 많이 해어진 양말이었다.
“그 6학년 애들한테 많이 맞고 다녔어?”
“···몇 번이요.”
“돈을 뺏기거나 그런 적은 없고?”
“몇 번 있어요.”
“걔네들이랑 어울려 다녔고?”
“네.”
“너도 애들 때리고 다녔어?”
“······.”
“대답해!”
“네.”
이미 경찰서에서도 진술된 내용이었다. 그것도 2주 전에 진술한 내용이었다. 이제 와서 대답 못할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왜 지금에서야 이를 묻는 건지.
아버지는 끝내 담배를 집어 들었다.
“내일 마지막 조사가 있다고 들었다. 그 때, 애들한테 맞은 적 없다고 이야기 해.”
“왜요?”
“왜는! 너도 잘한 거 없잖아!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덮는 게 너한테도 좋으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리고 이번 일 끝나면 전학 갈 거다. 거기서는 사고치지 말고, 착하게 행동하면 다 잘 될 거다.”
버럭 화를 내시는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지만, 재림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덮는 걸까? 왜 전학을 가야하지? 왜 다 잘 될 거란 거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말에 대해 신뢰가 없어진 재림이었다.
“그 형들이 절 때린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도 이 놈이! 지가 잘못한 건 생각도 안하고, 반성할 생각이 없는 거야! 아빠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주먹을 치켜드는 아버지의 행동에 움찔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여보, 왜 그래요? 옆집에서 다 듣겠어요. 조용히 해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는 담배를 하나 다 태울 때까지 방바닥만 바라보다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끌 때 입을 열었다.
“내일 엄마랑 같이 가서 그렇게 이야기 해. 아무 일 없었다고.”
절대 반론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아버지의 단호함에 재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어떻게 해야 돼?”
책을 읽던 단유를 졸라 기회를 얻은 재림이 생각을 묻자, 단유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니 생각대로 해.”
“모르겠어.”
“뭘 모른다는 거야?”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단유는 재림을 올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은 소연의 호기심에 찬 맑은 눈빛도 부담스러웠다. 단유는 재림을 데리고 운동장 스탠드로 나왔다.
“언제나 맞거나 옳은 건 없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거야. 어떤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옳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주먹을 휘두르는 게 옳을 수도 있어.”
“답이 없다는 거야?”
“우선 전제를 하나 하자.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고 나만의 방식이야. 너한테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너한테 불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어.”
“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원칙대로 하는 것.”
재림의 눈빛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단유는 잠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2, 3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 어설픈 동작으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난 강해지고 싶어.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어.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었어. 그 중의 하나가 자신에 대한 확신이야. 내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돼. 거기에 거짓이 끼어드는 순간 난 강한 힘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되거든.”
사람의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말이 생각을 좌우하기도 한다. 마법사였던, 그리고 마법사이길 원하는 단유는 말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를 자각한 이후부터 단유는 말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하려 했다. 특히 자신의 말과 행동에 거짓이 끼어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해. 그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이 아니라 진짜 진실.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 진실해야 당당할 수 있어.”
조금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말만큼은 이해했다. 재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처럼 당당해지고 싶어.”
재림이 단유에게 말했다. 단유가 똑똑해서 당당한 게 아니었다. 단유는 거짓이 없기 때문에 당당했던 것이다.
학교가 끝난 뒤, 재림은 본관 1층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조사를 받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