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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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선생님은 모처럼 세무서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시내 고기 집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기로 했다.
불판 위에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갈 때쯤, 소주 한 병이 비워졌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촉법소년은 4000여 명에서 1만여 명으로 늘었고, 범죄 형태도 흉포화 되었다고 하더라.”
“그걸 외우고 다니니?”
이 선생님이 술잔을 비우면서 대답했다.
“학교 선생이니까, 이런 정도는 외우고 다니는 거야. 다른 사람이면 촉법소년이고 어쩌고··· 이런 거 관심도 없어.”
이 선생님이 술잔에 술을 채울 때, 검지를 내밀어 잔에 갖다 댄 친구는 말려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화가 많이 나서 빨리 마시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달리면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란 말인가.
친구가 그런 고민을 하든지 말든지, 이 선생님은 연거푸 술잔을 기울인 뒤 친구가 건네준 안주를 입에 물고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있잖아?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니까. 내가 이러려고 교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야, 조용히 좀 말해.”
“애들이 순진하다고? 그거 다 옛말이더라. TV, 영화, 만화, 인터넷 같은 미디어를 하루 종일 바라보는 아이들이 순진할 거 같애? 아냐. 걔네들은 몸만 어리지, 머리는 이미···.”
이 선생님의 손가락이 꾸물꾸물 대면서 허공을 찔러댔다.
“저 끝에 닿았다니까. 성교육? 나 참. 인터넷이 선생이고 드라마가 교재야. 이번 것도 마찬가지야. 지네들이 무슨 조폭이라도 되는 거처럼 굴었다는 거잖아? 걔네들이 그런 걸 어디서 보고 배웠겠어? 이게 다 인터넷, 드라마, 영화에서 보고 배운 거라고.”
조사는 끝나지 않았고,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정황상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이 실제 가해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정황상 유죄인 것이지, 법적으로는 아마 유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증거 부족, 신빙성 결여, 또 뭐 있더라?”
“몰라, 그런 거. 그리고 그런 걸 왜 니가 신경 써? 넌 니네 반이나 신경 써. 어차피 걔네들 다 전학가고 그럴 거 아냐?”
“걔네들이 왜 가? 가면 재림이가 가겠지.”
“왜?”
“그렇게 합의될 거 같아.”
전학을 가게 되면, 죄의 유무를 떠나 아이가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걸리게 되고, 이것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뻔하기에 되도록 전학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게 부모의 입장이었다. 특히 이번처럼 든든한 부모를 뒤에 둔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전학을 갈 리가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관계에 있을 아이를 전학 보내는 게 좋다고 판단할 사람들이니, 결과적으로 재림이가 전학을 갈 것이다.
“내가 웬만하면 이런 이야기 안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사실 교사라는 것도 그냥 직업이야. 그런데 넌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거든? 니가 한두 명만 맡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명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데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고민하는 거, 너한테 안 좋다고 본다, 난. 솔직히 말해서 니 주위를 봐라. 너처럼 고민하는 교사가 몇이나 된다고 그래? 적당히 현실도 고려하면서 교사 생활할 줄 알아야 나중에 교감이라도 해먹지 않겠니?”
이 선생님은 친구를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
“넌 내가 얼마나 속물이고 현실적인지 모르는 것 같아서 그랬다.”
“웃기시네. 그런 애가 지금 자기 반 애 때문에 이렇게 술을 푸냐?”
이 선생님은 친구와 건배를 하고 소주를 넘겼다. 싸한 소주의 끝 맛이 혀 끝에 남았다.
“아, 생각났다.”
“뭐가?”
“촉법소년.”
지욱을 비롯한 아이들은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었다.
“형사사건도 아니라면서? 게다가 아직 기소도 안 된 사건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술병을 기울였다.
“폭력도 형사사건이야.”
“아직 기소도 안 된 일인데, 폭력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게다가 정말 학부모 말대로 거짓말이면?”
“······.”
이 선생님은 소주를 들이키며 생각을 해 보았다. 재림의 이미지가 좋지는 않았다. 첫날부터 담배냄새나 풍기던 아이, 수업시간에 늘 삐딱했다. 그러다 마침내 선생님을 때리기까지 했던, 문제아 중의 문제아였다. 하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용서하면서, 그리고 사과하면서 그 문제는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또 다른 피해자로 등장한 이 국면에서 거짓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이 선생님은 고기를 삼킨 뒤, 다시 소주를 들었다.
“짠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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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곱하기 9는?”
“1800이요.”
“1800을 13으로 나누면, 몫은 얼마고 나머지는 얼마야?”
명수와 재림이 노트에 대고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하은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들키지 않게 한숨을 내셨다. 지금 하는 수학문제는 3학년 때 풀었어야 할 문제인데, 이를 지금 낑낑거리며 푸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재림이는 밥 먹고 집에 갈 준비해.”
“벌써요?”
명수가 대신 물었다. 보통은 9시가 되어서야 재림이를 데려다 줬었기 때문이다.
“오늘 선생님이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늦게 있어주질 못하거든. 그래서 오늘만 일찍 집에 들어가자. 알았지?”
“네.”
기운 빠진 재림의 목소리에 명수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다가 하은에게 되물었다.
“나중에 단유랑 제가 배웅해 주면 안 돼요?”
“안 돼. 니들은 무슨 어른인 줄 아니?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허락 못해.”
“그러다가 만약에 못된 형들이 재림이 찾아오면 어떡해요?”
“그럴 리 없어. 지금도 수사 중인 사건인데 당사자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리가 있니? 게다가 걔네들 부모님들도 지금은 애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질 않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재림은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하은의 말이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르겠노라 대답했다. 그 때, 단유가 문을 열고 나왔다. 명수가 재림의 일을 이야기해주니, 단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별 일 없을 거야. 만약 니가 집에 오기를 기다렸었다면, 집에 늦게 온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을 거니까 굳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늘 선생님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봤을 테니까 접근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내 말이 그 말이야.”
명수가 재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재림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면서 식탁에 앉았다.
****
“집에 들어가서 문 잘 닫고 있어. 그리고 만약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아, 나 말고 경찰서에 신고하란 소리야. 알겠지?”
“네. 안녕히 가세요.”
이윽고 하은의 차가 배기음을 토해내며 멀어져갔고, 리어 램프의 붉은 빛을 보던 재림은 집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이지만 거실은 어두웠고, 집안은 조용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재림은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숨을 죽였다. 마치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누구라도 당장 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러기를 한참. 현관문이 열리면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재림이 들어왔니?”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재림은 얼른 이불 밖으로 나와서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씻었어?”
“네.”
반가운 목소리지만, 기운 찬 목소리는 아니었다. 힘이 다 빠져있는 목소리에 담긴 기색을 느낀 재림은 어느새 시무룩한 얼굴로 방으로 돌아갔다. 거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사이마다 낮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재림은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그 때였다.
―퉁퉁퉁.
누군가가 현관을 두들겼다.
“계십니까?”
이 시간에 누구지? 이미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고 귀를 기울여보는 재림이었다. 어머니가 서둘러 문을 열고 손님을 안으로 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변호사 이광훈이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변호사는 좁은 실내를 대충 훑다가 어머니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고 아드님의 장래를 위해 이야기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어머니는 주춤거리다가 변호사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사실 변호사는 가해자 측에서 선임한 변호사였다. 그는 누구의 예상처럼, 재림에게 합의를 종용하러 온 것이었다. 변호사는 다른 이야기는 섞지 않고 곧바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재림이 증언만 해주면, 그리고 전학을 간다면 섭섭지 않게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네?”
“아시겠지만, 지금 사건에서는 증거가 없습니다. 증언만 있죠. 하지만 증언들도 모두 관계자들의 증언일 뿐이고 서로 대치되는 상황이기에 이대로면 시간과 돈만 잡아먹힐 뿐입니다. 이는 서로에게 모두 좋지 않습니다. 재림이도 안정된 환경에서 학업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재림이 들어가 있는 방을 흘끔 쳐다보았다.
“이 사태를 질질 끌면서 장기전이 된다면 서로 피곤할 뿐입니다. 그러니 빨리 끝내야죠.”
“어떻게요?”
변호사는 가방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열어 보면서 말을 이었다.
“우선, 재림의 증언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구타 문제인데요.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이 필요합니다.”
“진실이라고요?”
구타를 당한 게 진실인데, 진실이 필요하다니?
“진단서 있으신가요?”
재림이 집단 구타를 이야기한 것은 작년 여름경의 이야기였다. 지금 그 진단서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진실이 필요합니다. 구타가 없었다는 진실.”
“네?”
“그리고 얼마 전, 지욱이라는 학생으로부터 맞았다, 고 진술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진실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가방끈 짧은 어머니라도 이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변호사가 말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럼 우리 아이는요? 거짓말을 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거짓말이라니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실’입니다. 그리고 주범은 이미 밝혀졌지 않습니까? 강병석이라는 학생으로요.”
변호사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수첩에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진실을 말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의이지요. 그리고 사실 진실을 밝히는 것에 인색한 것이 우리 사회지만, 저는 충분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득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해냈지요.”
변호사는 수첩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저희 쪽 부모님들이 진실에 대한 대가로 보답할 금액입니다.”
손의 떨림이 멈췄다. 대신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어머니에게 똑똑히 기억하라는 듯 오래도록 수첩을 보여준 뒤, 덮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말씀하시고, 전학을 가세요. 그러면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학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큰 아드님도 좋은 대학 가셔야죠. 성적이 아깝지 않게.”
어머니의 동공이 크게 열리면서 호흡이 일순 멎는 감각이 느껴졌다. 큰 아들. 우리 집의 희망.
변호사가 활짝 웃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과 상의하시고, 연락 주십시오. 아, 명함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가 떠나고, 집 안에 다시 침묵이 돌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큰 아들이 돌아왔다
그날 밤늦게까지 재림의 부모는 잠들지 못했고, 안방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보통 형이 잠들기 전에 재림이 잠들 곤 했는데, 오늘은 형이 깊은 잠에 빠져 낮은 콧소리를 내는데도 재림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재림의 귓가에는 변호사가 말한 ‘진실’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