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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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업이 끝나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가 학교를 빠져나가면, 학교는 생기 잃은 환자처럼 침묵에 빠진다. 늦은 오후의 봄 햇살이 짖쳐 들어올 때, 텅 빈 교실에서 이를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어 그저 텅 빈 책상 위를 훑다가 사그라질 뿐이었다. 공중에 떠도는 하얀 먼지들이 고요한 햇살 위를 부유하는 동안, 교실에 남은 선생님들은 각자 자신의 책상에서 고개를 숙이고 남은 일을 해야 했다.
사실 이 시간이 가장 피곤한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40명 가까운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다가, 들뜬 얼굴로 떠나는 학생들을 배웅한 선생님은 내일을 위한 수업준비와 교육부, 지방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에 따른 서류작업을 하느라 누적된 피로를 풀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 학교는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환자처럼 늘어져서 피로를 호소한다.
5학년 1반 담임을 맡은 이경자는 복장을 정리하고 눈앞의 문을 천천히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짧게 숨을 토해 낸 선생님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맞은편에 커다란 책상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쓰고 있던 늙은 교장이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입을 열었다.
“거기 앉으세요.”
눈짓이나 손가락으로 지칭하지 않아도 교장실에서 앉을 만한 곳은 검은색 가죽의 소파 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교장이 시선을 줄 때까지 정자세로 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교장이 펜을 놓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차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교장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눈은 웃질 않았다. 머그잔에 따뜻한 원두커피 한 잔을 부어 든 뒤,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은 교장은 정장 상의 단추를 풀면서 자세를 편하게 했다. 두드러지게 솟아난 뱃살은 아니지만, 원버튼 정장으로 가리기에는 갑갑했던 모양이었다.
“부른 이유는 잘 아실 테고.”
뜸을 들이며 말하는 교장에게 선생님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보고를 드렸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이 선생님이 미리 알 수가 없지요. 6학년 애들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선생님이 무슨 수로 알겠어요?”
선생님도 이 학교에서 4년 이상을 근속했다. 교장 선생님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교장 선생님의 말에도 쉽게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들어요. 그쵸? 선생님 반의 아이가 큰 고초를 겪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제 겨우 개학하고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엔 엮인 아이들의 수가 많다. 그 정도 무리가 지어져서 일탈을 했다면, 지난 시간까지 거슬러가야만 하고, 그렇다면 비단 이 선생님만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이 눈치 채기엔 고작 한 달이란 시간은 부족함이 있었다.
“이 선생님이 이번에 5학년 주임이시죠?”
“네.”
“그 말은 지금까지 우리 학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傾注)해 오셨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렇죠?”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럼에도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어쩌면 선생님의 경력에 작은 오점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물론 선생님을 탓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은 알기 힘들었으니까요.”
같은 말도 반복되니, 그 뜻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지난해까지도 우리 학교에서 폭력신고가 들어간 일이 지난 5년간 한 건도 없었다는 거, 잘 아시죠?”
“네.”
“그건 단지 아이들이 착하고 순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시간과 노력을 다하여 신경을 썼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지요. 전 그 사실을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생각했었지만, 6학년 아이들이 무리지어서 ‘일진’처럼 행동하고 다녔다면, 그것은 이미 오래된 관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난해까지도 학교에 암약했던 무리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폭력신고 없는 학교라는 명예는 명예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 일에 결코 결백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작년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자신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앞으로는 좀 더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 분위기 조성에 만전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책임과 면책 사이를 저울질하면서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교장 선생님은 적당한 결론을 내리면서 이 선생에게 주의를 주는 선에서 끝냈다. 어차피 이런 일(?)로 더한 징계는 내려질 수도 없었다.
“아, 그리고 학폭위는 열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해당 학생의 부모님께도 잘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학폭위, 즉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폭력사건 발생 시 그 대책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학교의 자치조직이었다.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및 학교폭력과 관련된 분쟁조정을 맡는다.
그런데.
“왜요? 왜 학폭위가 열리지 않는 거죠?”
이 선생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연히 학교폭력신고센터에 신고가 들어갔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분된 폭력사건인데?
교장선생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째는 피해자가 당한 폭력 수위가 경미하다는 겁니다.”
“네? 아무리 경미하다고 해도 폭력은 폭력입니다. 그리고 향후에도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저희 반 학생, 그러니까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문제는 끝까지 들어보시면 알아요. 두 번째는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을수록 기가 차는 느낌이 들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들어선 사람들도 똑같이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진짜 죄를 짓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조사를 하고 검토를 해서 진짜 죄를 지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할 학폭위를 열지 않겠다니?
어이없어 하는 얼굴의 선생님 얼굴을 힐끗 쳐다본 교장 선생님이 헛기침을 한 후, 마지막 세 번째 이유를 말했다.
“세 번째로, 이 사건은 경찰에게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교장 선생님은 머그컵을 들려다 다시 내려놓고 괜히 넥타이를 한 번 정돈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래봐야 똑같다.
“학교폭력신고센터에 들어간 이상, 센터에서 사건을 수사합니다. 때문에 해당 사건의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교에서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교육청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기도 안 차는 이야기다. 그런데 교육청의 지시라는 말에 예전에 얼핏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 때도 학교의 폭력사건이 감지된 직후, 학교에서 학폭위를 여는 대신 경찰에 우선 신고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인평초등학교도 마찬가지지만, 학교 내에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없었고, 때문에 해당 사건의 해결을 경찰이라는 공권력에게 미룬 것이다. 학교폭력신고센터라는 곳이 경찰에 설치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이 소송전을 벌였다는 뒷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교장선생님, 물론 교육청의 지시도 지시지만, 학교 차원에서도 대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학교 학생도 아니고 우리 학교 학생들입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저희 학생들이고 저희가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른 지식과 양식을 가르쳐야 할 저희가 학폭위를 열지 않는다면, 저희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 봅니다.”
교장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두툼하게 살이 겹친, 매끈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교육청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 모르시면서 하시는 건 아니죠? 게다가 말입니다. 이미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어요. 학교의 일은 학교가, 경찰의 일은 경찰이 하도록 말이죠. 그리고 이 일은 저희의 일이 아닙니다. 센터에서 알아서 합니다. 그렇게 알고, 선생님은 피해자 학생이나 가해자 학생에게 알려주세요.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말이죠.”
‘오해’라고 지칭한 부분이 사실은 ‘진실’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때로는 ‘진실’이 ‘오해’가 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의 현실직면론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교장은 식은 머그잔을 들어 남은 커피를 주욱 들이켰다. 쓰디 쓴 커피 찌꺼기까지 입 안에 털어 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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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사 중이래?”
하은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후 햇살이 가장 잘 비추는 위치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하은이었다.
“네.”
단유가 청소기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며칠 동안 전담 경찰이 학교에서 조사를 계속하고 있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과 피해자로 지목된, 혹은 피해자로 구분된 아이들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사결과를 일일이 알려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던지, 단유는 그저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 외에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럼 쟤는 계속 이리 오는 거야?”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서 눈치를 보는 재림을 가리키며 하은이 물었다. 단유가 힐끗 보았다가 대신 변명을 해주었다.
“여기서 선생님한테 과외 받는다고 했대요.”
“뭐!”
하은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언제 널 가르치겠다고 했어?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재림은 바지춤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던 중에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고요, 지금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요, 또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섭고요, 가다가 형들 만날까봐 무섭기도 하고요.”
구질구질하게 늘어놓는 변명을 끝까지 들을 생각은 없었던 하은이 소파 위 가죽을 찰지게 내리치면서 말했다.
“그래서 경찰한테 과외 받는다고 거짓말 했다는 거야? 아니 무서 우면 경찰한테 보호요청을 해야지,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경찰이 아니고요, 엄마한테···.”
“뭐?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재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힐끗 눈치를 본다. 몇 번 봤더니 이제는 별로 귀여운 지도 모르겠다. 아니 처음부터 귀엽지 않았었다. 저 애는 일진이란 말이다!
“왜?”
“그게 단유가 선생님한테 공부를 배워서 잘하는 거라고···. 그래서 같이 배울 수 있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괜찮다고··· 해서 같이 공부한다고···.”
하은은 기도 안찬다는 듯 재림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이 타고난 녀석인가? 어쩌면 맞았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닐까?
“단유가 공부 잘하는 건, 물론 내가 잘 가르친 탓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언제 같이 배워도 된다고 했어!”
하은이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본 재림은 주눅이 들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단유가 이를 지켜보다가 들고 있던 책을 재림에게 쥐어주고 말했다.
“일단 내 방에 들어가 있어.”
“선생님이랑 이야기 안 끝났는데 어딜 들어가!”
단유가 재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니, 재림이 눈치를 보다가 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선생님.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무슨 이야기? 너도 한 편이니? 넌 선생님 편을 들어야지,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일진 녀석의 편을 드는 거니?”
이 상황에서 내 편, 니 편이 어디 있다고.
“경찰이 보호한다고 해도 집까지 동행해서 하루 종일 보호해주는 건 아닌가 봐요. 그래서 6학년들이 진짜 나쁜 마음먹으면, 큰 일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겁을 많이 먹어서 저런 거니까 선생님이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내가 진짜로 쟤를 가르칠 것도 아니고, 아니 그 전에 내가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경찰이 물으면 어떻게 해? 나도 거짓말해야 하는 거야?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법 없이도 살았던 사람이라고. 그런데 고작 12살짜리 일진 꼬마 애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된다고? 신고를 한 것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인데,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까지 해야 되면 나 어떻게 해? 그 때도 거짓말해야 돼? 그러다 위증으로 잡히면? 위증죄도 굉장히 큰 벌이라던데?”
단유가 지긋이 하은을 쳐다보자, 하은이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많이 심심하셨나 보구나.’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 나랑 이야기 하자며?”
단유는 방문을 닫았다.